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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71화 (172/401)

171화

“…일단 하루는 넘긴 건가.”

오토는 셰에라자드가 잠든 걸 확인하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혹시나 셰에라자드가 깰까 조심조심 움직여 베개를 받쳐주고, 침대를 나섰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맨발로 걸어서 아주 천천히 침실 문을 열었다.

그렇게 무사히 첫날밤(?)을 넘기고 침실을 나선 오토는, 간이 떨려서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휴우.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털썩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오토.

“……!”

“……!”

“……!”

침실 앞을 지키던 여기사들은, 오토가 살아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네놈이 어찌!”

얼굴에 커다란 상처가 있는 기사단장 나디아는, 오토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살아 있는 걸 보고 거의 자지러졌다.

지난 10년 동안 하룻밤을 넘긴 남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오토가 버젓이 살아 있는 걸 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요.”

오토가 나디아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뒈지길 바랐는데, 안 뒈지고 살아 있어서?”

“뭣이?”

나디아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네놈이 뚫린 입이라고….”

“때려 봐.”

오토가 머리를 들이밀며 배짱을 튕겼다.

“때려 봐. 때려 보라고.”

“…….”

“풉. 때리지도 못할 거면서 윽박지르긴.”

“이… 이이!!!”

나디아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감히 술탄의 물건(?)인 오토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죽이든 살리든.

그건 오직 술탄인 셰에라자드의 손에 달린 것이지, 제아무리 기사단장이라 한들 감히 오토를 건드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것이 아주 작은 생채기라 할지라도.

“그래.”

나디아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용케도 살아남았다만, 이틀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네놈의 정력이 아무리 절륜하다 한들 술탄을 연속으로 만족시킬 수는….”

“어휴.”

오토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생각하는 게 얼마나 천박하면 그런 생각밖에 못하지?”

“뭐라?”

“하긴. 니가 머릿속에 든 게 뭐가 있겠냐. 온통 그 생각뿐이지. 어휴. 더럽고 추잡해라.”

오토가 경멸에 찬 눈으로 나디아를 노려보았다.

‘셰에라자드도 셰에라자드인데, 진짜 쓰레기는 이년이지. 희대의 쓰레기.’

셰에라자드는 타락하게 된 이유라도 있는, 나름의 사연이 있는 악[惡]이었다.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러나 이 나디아라는 기사단장은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는, 타고난 악마였다.

애초에 정식 기사 출신도 아니었고, 그저 황야를 떠돌며 온갖 범죄를 저지르던 흉악범에 불과했다.

셰에라자드의 기사가 된 계기도 걸핏하면 남자들을 죽이고 강제로 몹쓸 짓을 저질렀기 때문.

“피곤해 죽겠으니까 건드리지 마라.”

“…….”

“내가 만약 부군이 되면, 네년부터 조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닥치고 얌전히 있어. 줄 잘 서야지?”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셰에라자드의 침실 바로 옆에 자리한 방으로 들어가 대자로 드러누웠다.

‘피곤하다 일단 자자.’

내일도 밤새 셰에라자드에게 썰을 풀려면 잠을 좀 자 둬야 했다.

왜?

오토가 먼저 잠들면 잡아먹힐 테고, 그럼 성물이고 뭐고 구울이 되고 말 테니까.

* * *

오토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또 그 다다다음 날도 살아남았다.

그건 역대급 신기록이었다.

그 어떤 남자도 하룻밤 이상을 버틴 적이 없었는데, 무려 5일을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눈깔아.”

“…예.”

나디아는 오토가 다섯 번째 밤까지 살아남자 알아서 설설 기었다.

오토가 정말 셰에라자드의 부군이라도 되는 날에는, 자신의 목부터 달아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들었어? 그 외국에서 온 상인이 아직도 살아있대!”

“진짜 술탄께서 짝을 찾으신 걸까?”

“에이. 설마. 그것도 한계가 있겠지.”

“신기록은 신기록이긴 한데.”

왕궁 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토의 생존에 놀라워했고, 언제까지 버틸지 궁금해했다.

셰에라자드가 말한 1주일 중 무려 5일을 버텼으니, 어쩌면 남은 2일도 무난히 버틸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

그렇게 하룻밤이 더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맙소사.”

“오늘 밤만 버티면 술탄의 새 부군이 탄생하겠군.”

“인연이 있다더니.”

“믿을 수 없어.”

6일이 지나자 왕궁 사람들은 오토가 셰에라자드의 새로운 부군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무려 6일을 버텨 내었으니, 남은 하룻밤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오토는 그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마지막 날 밤.

‘아 씨. 큰일 났네.’

오토는 다시 셰에라자드의 침실로 향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이제 무슨 썰을 풀지?’

지난 6일 동안 알고 있는 모든 막장드라마의 썰을 풀어 버려서, 이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하룻밤만 더 버티면 되는데, 딱히 떠오르는 드라마의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6일을 버틴 것도 대단한 거였다.

썰을 푼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셰에라자드는 결코 호락호락한 관객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우 똑똑했으며, 통찰력 또한 대단했다.

때문에, 오토는 지난 6일 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다.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것 같은데. 질질 끌면서 분량을 늘리는 것 아닌가?’

‘헉! 더 빨리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개연성이 좀 없는 것 같다.’

‘절대 아닙니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주인공이 너무 멍청한 것 아닌가?’

‘그래 보이실 수 있지만 사실은 다 주인공의 계략이었습니다!’

셰에라자드는 중간 중간 이야기의 허점이 드러낼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채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토가 전문 이야기꾼도 아니고, 드라마의 내용을 대충 각색해서 들려주는 것인지라 이야기에 허술한 부분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차, 차라리 날 죽여. 으으으.’

오토는 그럴 때마다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쥐어짜내며 위기를 넘겼고, 기어코 셰에라자드를 만족시키며 살아남았다.

문제는 오늘.

오늘 밤을 어떻게든 넘겨야 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준비해 왔느냐.”

셰에라자드는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어. 그게.”

오토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얘기를 해 주지? 뭐 괜찮은 드라마 없나?’

그러자 셰에라자드 표정이 돌연 사나워졌다.

“설마 더 할 얘기가 없는 건가? 어젯밤에는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고 말해 놓고서?”

“구와아아악!”

셰에라자드가 화를 내자 침실 구석에 묶여 있던 구울도 덩달아 으르렁거리며 오토를 압박했다.

“아, 아닙니다!”

오토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어떤 얘기를 해 드려야 하나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물론이죠!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해 드려야 만족하실 테니까요! 기왕 해 드리는 김에 최고로 재미있는 얘기를 해 드려야죠!”

오토는 급한 대로 자신이 아는 어느 막장드라마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옛날 어느 제국에 귀족들이 모여 사는 공동 저택이 있었습니다. 그 공동 저택의 최상층에는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권력과 부를 거머쥔 최고위급 귀족들이….”

오토는 셰에라자드가 혹시나 지루해할까 봐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밤새도록 썰을 풀었다.

“다음 이야기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어서 말해 보아라!”

“자, 잠시 목이 말라서 물 한 잔만 마시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창 썰을 풀던 중.

“어?”

오토는 저 멀리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썰을 풀다 보니 오토조차도 날이 밝아온 줄 몰랐던 것이다!

* * *

“정말 일곱 밤이 지났구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 셰에라자드가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그녀는 오토를 몇 번이고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토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밌어서,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다.

내일 죽이자, 내일 죽이자 하던 게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버린 것이다.

“너는 일주일을 버텨냈다.”

“예, 술탄이시여.”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내 부군이 될 자격이 있다. 여태 일곱 밤 동안 나를 만족시켜 준 남자는 없었으니.”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것은.”

셰에라자드가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를 가리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들을 모아놓은 보물창고의 열쇠이니라.”

“감사합니다.”

“아직 준다고 말하지 않았다.”

“네?”

오토는 당황했다.

‘뭐야? 왜 안 줘?’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일곱 밤이 지나면 셰에라자드가 열쇠를 건네주어야 했다.

그러면 열쇠를 건네받은 살라딘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날린다.

“그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 중 하나이고, 이웃 나라인 사하라 왕국의 술탄이오. 그대와의 결혼은 내게 있어 엄청난 기회일 것이오.”

“하지만 나는 그대와 결혼할 수 없소. 내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있소.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그녀를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니 나는 그대의 보물창고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 하나만을 가지고 이 나라를 떠나겠소.”

“부디 앞으로는 아난의 말씀에 따라 그간 저질렀던 악행을 참회하고, 진정한 성군으로 거듭나시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대를 사랑하는 부군을 만나 눈 감는 그날까지 행복할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셰에라자드는 살라딘의 고결한 인품에 매료되어서, 그간의 죄를 뉘우치게 된다.

그런 뒤 살라딘을 곱게 보내주고, 성군으로서 참회하는 삶을 살아가다가 신을 모시는 사제가 되어 여생을 마감한다.

즉, 시나리오대로라면 우선 열쇠부터 건네주며 오토를 부군으로 인정해주어야 정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셰에라자드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순순히 부군으로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가 아니었다.

“물론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줄 것이다.”

“헉!”

셰에라자드가 몸을 빙글 돌려 오토에게 올라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너를 부군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뭘 더 해야 합니까?”

“평생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만 듣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

“예?”

“정신적 사랑도 중요하지만 육체적 사랑도 중요하다. 이게 마지막 시험이다.”

쫘아악!

셰에라자드가 오토의 가운을 찢어발기더니, 갑자기 한 마리 짐승으로 돌변했다.

“나를… 만족시켜라. 네가 만약 절륜한 정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땐 정말 나의 부군으로 인정할 것이다.”

“자, 잠깐만요!”

“살결이 어쩜 이리도 부드럽다는 말이냐.”

“잠깐! 왜 이러세요! 에헤이! 으윽!”

“처음 본 그날부터 너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내 평생 너와 같은 미남은 본 적이 없으니. 하아.”

“으으윽!”

“나는 남자들을 죽이는 게 좋다. 남자들을 죽이는 것만이 내 유일한 쾌락이었다. 하지만 너라면. 너와 같은 미남을 평생 내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마지막으로 남자를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를 안아다오. 너와 남녀의 쾌락을 나누고 싶구나. 하아.”

눈 깜짝할 사이에 오토를 뱀처럼 휘감은 셰에라자드가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멈춰어어어어어!”

오토가 셰에라자드를 밀쳐냈다.

“약속이 다르잖아요! 약속이! 일곱 밤만 넘기면 부군으로 인정한다면서! 이러기 있습니까? 예?”

“너는… 나를 품에 안고 싶지 않은 것이냐?”

“그게 아니라.”

오토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싫지! 난 죽고 싶지 않다고! 나한테는 엘리제 님이 있는데!’

바로 그때.

“네놈.”

셰에라자드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방금 다른 여자를 생각했구나.”

“네?”

“내 눈은 속이지 못한다. 네놈은 방금 다른 여자를 생각했다. 눈앞에… 눈앞에 나를 두고서!!!”

“……!”

“역시 그랬구나. 네놈은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었음에도 나를 농락한 것이야!”

전남편이 수십 번이나 바람을 피워대서일까?

셰에라자드의 눈치는 아주 귀신같았다.

그 짧은 순간 오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어낼 줄이야.

“결국, 네놈도 똑같은 놈이로군. 역시 남자들은 다 쓰레기다.”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ㅂ….”

“너를 강제로 범하고, 죽일 것이다. 그냥 보내 주기엔 너는 너무 아까운 미남이다. 너를 가져야겠다. 영원히.”

셰에라자드가 오토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토는 저항할 수 없었다.

목에 찬 목걸이 때문에 마나의 운용이 불가능해서, 셰에라자드의 괴력을 감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날름날름!

뱀처럼 끝이 갈라진 셰에라자드의 혀가 쭉 늘어나더니 오토의 입으로 향했다.

혀가 어찌나 길었느냐 하면, 거의 20센티미터는 족히 넘을 정도였다.

“네놈의 입술부터….”

바로 그 순간.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

“퉤!”

오토가 셰에라자드를 향해 침을 탁! 뱉었다.

타앙!

그러자 마치 총알처럼 튀어나온 <비열한 죽음구슬>이 셰에라자드의 이마 정중앙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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