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주르륵.
구멍이 뻥 뚫린 셰에라자드의 이마.
세로로 길게 찢어진 셰에라자드의 두 눈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해 있었다.
털썩!
셰에라자드가 오토를 향해 엎어졌다.
“으윽.”
오토는 셰에라자드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즉시 침대를 벗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잡아먹힐 뻔했네. 휴우.”
오토가 식은땀을 흘리며 혀를 내둘렀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선수를 치지 않았다면, 셰에라자드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했다.
‘그 뒤엔 빼도 박도 못하고 구울이 됐… 헉?!’
스윽.
셰에라자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 셰에라자드의 육체는 어느새 반쯤 썩어 들어가 있었고, 몸 곳곳에 바퀴벌레가 들끓었다.
그녀는 이미 인간이 아닌 구울이었던 것이다.
“헉!”
오토가 기겁했다.
‘어떻게 하지?’
당황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때마침 벽에 걸려 있는 장식용 검이 눈에 들어왔다.
날이 서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네놈이. 감히.”
셰에라자드가 홱! 돌아보며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으로 오토를 노려보던 순간.
뎅겅!
오토가 검을 휘둘렀다.
툭.
데구르르르….
셰에라자드의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타락 후 사악한 강령술사가 된 셰에라자드는, 피조차 흐르지 않는 괴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피를 마셨던 것일지도.
‘주, 죽었나?’
오토는 혹시나 싶어 셰에라자드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셰에라자드는 정말로 죽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머리와 몸통 모두 다.
‘죽었겠지. 목이 잘렸는데.’
오토는 조심조심 셰에라자드의 시체에서 물러나며 작게 볼멘소리를 내었다.
“…방심했으면 죽을 뻔했어.”
셰에라자드가 오토를 덮치려 한 건 명백한 변수였다.
본래 시나리오 상에도 살라딘은 셰에라자드와 동침하지 않았다.
오히려 셰에라자드를 깨우쳐 죄를 뉘우치고, 교단에 귀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셰에라자드는 달랐다.
일곱 밤이 지났음에도 오토를 부군으로 인정하지 않고, 육체적 쾌락에 집착하며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었다.
‘내가 살라딘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원래 이런 거야?’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본래 알고 있던 시나리오만 믿고 방심했다간 일이 꼬일 대로 꼬였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비열한 죽음구슬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비열한 죽음구슬>이 마나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잡아먹히고 말았으리라.
‘들키기 전에 얼른 성물 주워서 튀자.’
오토는 셰에라자드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빼앗았다.
그런 뒤 침실에 걸려 있던 액자를 옆으로 쭉 밀자 보물창고로 통하는 입구가 나타났다.
목걸이를 밀어 넣고 돌렸다.
문이 열리며, 보물창고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짝반짝!
부국[富國]의 술탄인 셰에라자드의 보물창고 안에는, 온갖 종류의 귀금속들이 수만 점은 넘게 보관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기, 갑옷 등 온갖 아티펙트들도 보관되어 있었다.
오토는 급한 대로 단검 형태의 마법검을 집어 들고, 목에 채워진 목걸이부터 제거했다.
강력한 마법이 걸린 단검이라 그런지, 금속으로 이루어진 목걸이를 마치 두부 자르듯 갈라 버렸다.
‘우선 한숨 돌렸고. 계시록은… 저기다.’
오토는 창고 정중앙에 보관되어 있던 커다란 책을 손에 넣었다.
[알림: <ㅖ시 ᅟᅩᆨ> ㅇ ㅣ ᅟᅦᆷ 을 ᅟᅬᆨ득ㅎ셨 ᅟᅳᆸ니ㄷ!]
알림창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될 대로 되라지.”
이쯤 되니 슬슬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처음에나 당황했지,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우선 계시록부터 챙기고. 옷부터 입자.’
목걸이를 해제해 마나의 사용이 가능해지자 아공간 인벤토리도 열렸다.
‘이제 좀 살겠네.’
지난 1주일 동안 야시시한 팬티 한 장과 가운만 걸치고 있다가 다시 옷을 입으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급하니까 챙길 것만 챙겨서 나가자.’
마음 같아서는 보물창고를 싹 털어가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아공간 인벤토리의 용량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이건 못 참지.’
오토는 <계시록>을 챙긴 뒤 돌돌 말려 있는 붉은색 양탄자를 챙겼다.
그렇게 보물창고 안의 알짜배기들을 챙기는 사이.
깜빡!
셰에라자드의 눈이 깜빡였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음에도.
스윽.
뒤이어 몸통이 스스로 일어나더니, 머리통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오토는 눈치채지 못했다.
보물창고 안에서 알짜배기들을 건지느라 침실에 쓰러져 있는 셰에라자드의 시체가 움직인 걸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 * *
한편, 왕궁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미유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별일 없으신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카미유는 약속된 탈출구인 하수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오토를 애타게 기다렸다.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오토는 분명히 강하고, 영리했으며, 임기응변에도 매우 능했으니까.
하지만 제아무리 오토라도 적진 한복판에서 홀로 작전을 수행한다는 건 너무나도 위험했다.
카미유에게는 오토가 물가에 홀로 내놓은 아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빨리 임무 마치고 탈출하십시오. 마냥 기다리자니 속이 탑니다.’
카미유가 오토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애를 태울 때.
“끌끌끌.”
카이로스는 그런 카미유의 속내를 귀신같이 꿰뚫어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 걱정되느냐?”
“예?”
“표정이 날이 갈수록 굳어 가는 것이 가관이로다.”
“…….”
“걱정하지 마라.”
카이로스가 카미유를 안심시켰다.
“뺀질이 그놈은 어디에 떨궈 놔도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놈이니라.”
“그렇습니까?”
“감히 짐을 고추밭에 던져 놓은 게 괘씸해 그 미친 여자에게 잡아먹혔으면 좋긴 하겠다마는.”
카이로스가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진다는 듯 씩씩거렸다.
“아무튼. 잠자코 기다려 보아라. 곧 나타날….”
그때.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멀리 하수구 안쪽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하십니다!”
카미유는 하수구 안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오토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채고, 검을 뽑아 들었다.
카이로스와 영혼기사들, 그리고 마검사들 역시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고 전투준비태세를 갖췄다.
“튀어!!!”
어느덧 하수구 끝에 도달한 오토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나 기다리지 말고 튀라고! 먼저 튀어! 빨리!”
“그게 무슨 말ㅆ….”
카미유는 말을 하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구와아아아악!”
“구와아아아아아악!”
“그르르르!”
오토의 뒤로 족히 수천 마리는 넘을 것 같은 구울들이 떼 지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 * *
약 15분 전.
‘이제 가자.’
보물창고에서 챙길 걸 모두 챙긴 오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긴 했다.
아무리 알짜배기만을 건졌다 한들, 이 많은 보물들을 두고 가려니 속이 쓰렸던 것이다.
‘탐욕은 화를 부를 뿐이다. 구질구질하게 미련 갖지 말자.’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오토가 보물창고에서 머문 시간은 고작 5분 남짓.
이만하면 탐욕을 최대한 자제하고, 신속하게 임무를 완수한 셈이었다.
“밤새웠더니 피곤하네. 빨리 탈출해서….”
그 순간.
“으응?”
머리 없는 셰에라자드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던 머리통을 집어 들고, 잘린 단면에 올려놓고 있었다.
스르륵.
그러자 잘린 단면이 빠르게 아물었다.
“히, 히익?!”
소스라치게 놀란 오토.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느냐.”
셰에라자드가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 볼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로 오토에게 물었다.
덜덜덜!
오토는 너무나도 놀라서, 그만 공포에 지배당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셰에라자드의 모습은 너무나도 기괴했다.
머리를 거꾸로 이어 붙이는 바람에, 몸통은 뒤를 돌아보고 있는데 머리통은 오토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수컷아. 나는 불사의 육체를 이룩한 존재이니라.”
“그, 그래 보이시네요. 하하. 하하하하.”
오토가 그 기괴함에 자기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셰에라자드의 이런 모습은 게임으로도 접해본 적이 없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다.
사악한 강령술사인 줄은 알았지만, 불사의 육체를 소유한 괴물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으득!
으드득!
셰에라자드의 몸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배가 하늘을 향하게 거꾸로 엎드린 자세.
그 와중에 머리는 반대로 붙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 일단 진정하시고. 제가 명백히 실수를 한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하하. 하하하. 그러니까 우리 원만하게 대화로 해결….”
“죽여 버리겠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거꾸로 몸을 뒤집은 셰에라자드가 긴 혀를 날름거리며 네 발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오토는 비명을 지르며 셰에라자드를 피해 달아났다.
와장창!
급한 대로 침실 문을 거의 부수다시피하고 밖으로 도망쳤다.
‘비, 비밀통로까지만 가면 돼!’
오토는 비밀통로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어딜 도망가느냐!”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그런 오토의 뒤를 셰에라자드가 바짝 뒤쫓았다.
“잡아라!”
“놈을 죽여라!”
이윽고 금남의 구역 <다비하>에 있는 여기사들과 여전사들 역시 오토를 뒤쫓아 왔다.
“반드시 네놈은 죽여 버릴 것이다!”
어느새 따라붙은 기사단장 나디아가 적의를 드러내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어 대었다.
지난 1주일 동안 오토에게 쌓였던 분노를 기다렸다는 듯 쏟아낸 것이다.
“으아악!”
오토는 굳이 대응하지 않았다.
‘얼마 안 남았어.’
최대한 빠르게 내달리며 <다비하>를 벗어났다.
“구와아아아아아악!”
“구와아아악!”
“그르르르르르르!”
수천 마리는 될 것 같은 구울들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쫓아왔다.
“어딜 도망치려 하느냐!”
“네놈은 절대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이놈!”
“감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느새 나타났는지, 벌거벗은 대머리 근육때밀이들도 오토의 앞을 가로막았다.
“니들이 제일 징그러우니까 좀 꺼져!”
오토가 버럭 소리치며 대머리 근육때밀이 넷을 단칼에, 그것도 한꺼번에 베어 버렸다.
셰에라자드나 구울들도 소름끼쳤지만, 벌거벗은 대머리 근육때밀이들은 더욱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 * *
“이런 젠장!”
카미유가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야 이 뺀질이 놈아! 뭘 끌고 오는 것이냐!”
카이로스 역시 오토를 향해 버럭 소리치며 내달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기어코 하수구를 빠져나온 오토.
“구와아아아악!”
“구와아악! 구와아아악!”
“구와아아아아악!”
수천여 마리의 구울들 역시 하수구를 빠져나와 오토 일행을 뒤쫓았다.
“어딜 도망가는 것이냐! 수컷들아! 네놈들은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셰에라자드는 피맺힌 절규를 토해내며, 오토 일행을 집요하게 쫓아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왕궁을 빠져나온 기병대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왔다.
“어쩔 셈입니까! 이러다가 잡힙니다!”
“뺀질아! 다 같이 뒈지자는 것이냐!”
카미유와 카이로스가 오토를 향해 소리쳤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오토가 적들을 끌고 도망쳐온 건 희대의 트롤링이었다.
특수작전은 은밀함이 생명.
침투 후 퇴출이 관건.
그런데 이렇게 적들을 끌고 왔다?
카이로스의 말마따나 같이 죽자는 소리밖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토는, 무턱대고 적들을 끌고 온 게 아니었다.
“빨리 타!”
가장 뒤쳐져 있던 오토가 어느새 앞질러 와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펄럭!
그런 오토는 커다란 붉은색 양탄자에 올라탄 채 아주 낮게 비행하고 있었다.
오토가 보물창고에서 챙긴 양탄자의 정체는, 하늘을 나는 신비한 양탄자였던 것이다.
“어서 타! 빨리! 빨리 빨리 올라 타!”
그렇게 오토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에 동료들을 태우고,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졸지에 닭 쫓던 개꼴이 되어버린 셰에라자드가 도망치는 오토 일행을 향해 괴성을 질러대었다.
제아무리 불사의 육체를 이룬 고위급 강령술사라 할지라도, 하늘을 날아 도망치는 오토 일행을 붙잡을 순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