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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77화 (178/401)

177화

무역항이 혼란에 휩싸인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포, 폭발이다!”

“모두 대피하라!”

“물! 물을 가져와! 배에 불이 붙었다!”

오버하우저 상단의 선박들이 일으킨 대규모 폭발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무역항의 3분의 1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이, 이 무슨!!!”

아르곤 대제는 코앞에서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벌어지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사히 밀무역을 마치고 돌아왔다던 밀무역선들이 한꺼번에 폭발해 버릴 줄이야.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아,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밀무역을 주도했던 젊은 상인 글렌은, 아르곤 대제의 다그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왜???’

글렌으로서도 이번 사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인지라,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어찌해!”

아르곤 대제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비단 오버하우저 상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오버하우저 상단의 피해는 막심하다 못해 끔찍한 수준이었다.

애초에 밀무역을 추진한 이유도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는데, 밀무역선들이 모조리 폭발해 버린 이상 그 손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게 하필이면 밀무역선들이라서, 오버하우저 상단은 보험회사로부터 혜택을 한 푼도 누릴 수가 없었다.

즉, 이번 사고로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역항에 정박해 있던 다른 상단들의 선박들까지 피해를 입는 바람에, 피해보상금액이 감히 짐작조차 힘든 수준이었다.

만약 보험이라도 들어놨다면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보험금으로 피해보상을 해 줄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보험을 들지 않았으니, 다른 상단들에게 몇 배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판국이었다.

즉, 이번 사건으로 오버하우저 상단은…….

“아아. 아아아.”

아르곤 대제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폐하! 폐하아!”

주변에 있던 상단의 간부들이 아르곤 대제를 부축했다.

“쿨럭! 쿨럭쿨럭!”

아르곤 대제가 피를 토했다.

순간적으로 너무나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그게 내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제 어찌한단 말이냐… 이 일을 어찌 수습해야 한다는 말이냐….”

눈앞에 캄캄해진 아르곤 대제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번 사건은 토지·상가·선박 등등 상단의 모든 자산을 팔아치운다 해도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

막대한 자금력을 통한 매점매석에 실패한 것으로도 모자라 밀무역까지 거하게 말아먹은 이상 오버하우저 상단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사실상 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상단을 크게 키운 뒤 그 자금력을 이용해 다시 한번 대륙통일을 노려보려던 아르곤 대제로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진 격이었다.

‘역시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내가 하늘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하하하하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하늘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하늘은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 했건만.

“비, 비상대책회의를! 커헉!”

아르곤 대제는 그 말을 남기고는,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제아무리 대일통일의 대륙을 이뤄본 경험이 있는 아르곤 대제라 할지라도 이번 사건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도저히 정신줄을 붙들고 있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 * *

“으헤… 으헤헤….”

아르곤 대제가 쓰러지자 누군가의 입에서는 통쾌함 가득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으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으헤헤헤! 으헤! 으헤! 으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먼바다에서 망원경으로 아르곤 대제를 훔쳐보고 있던 카이로스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아르곤 대제를 보니 지난 450년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오죽했으면 길게 트림까지 했을까.

“크흐흐흐흐흐! 술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가는구나! 크흐흐흐흐!”

카이로스는 아르곤 대제의 해골로 만든 술잔으로 연신 술을 퍼마시며 통쾌해했다.

그건 카이로스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크핫핫핫핫핫! 꼴좋다! 꼴좋아!”

“호호호호! 속이 다 시원하네!”

“캬캬캬캬캬캬!”

아가토·힐데가르트·막시무스를 비롯한 영혼기사들 역시 매우 통쾌해했다.

그들에게도 아르곤 대제는 불구대천의 원수였기에, 단언컨대 이보다 통쾌한 장면은 없었다.

살아생전 갚지 못한 원수를 무려 450년이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갚았으니,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전생에 당했던 걸 생각하면 눈곱만큼도 갚아 주지 못한 셈일 테지만.

“껄껄껄!”

카이로스가 헤벌쭉 웃더니 돌연 얼굴을 굳혔다.

“아르곤 네 이노옴. 하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카이로스는 이대로 아르곤 대제를 놔둘 생각이 없었다.

“내 반드시 네놈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 것이란 말이다. 크흐흐흐흐흐흐.”

그 말은 진심이었다.

카이로스는 이번 생을 아르곤 대제를 괴롭히는 데 쓰기로 결심했고, 이번 사건은 어디까지나 그 신호탄에 불과했다.

카이로스는 앞으로도 아르곤 대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전생에 당했던 모든 것을 되갚아줄 생각이었다.

백 배?

천 배?

아니, 만 배.

전생의 그 피맺힌 원한을 모두 되갚아주기 전까지, 카이로스는 멈출 수 없었다.

그게 카이로스가 승천하지 않고 이 세상에 남은 이유였으므로.

* * *

“국왕 전하께서 돌아오십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이오타 왕국의 백성들이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오토 일행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으응?”

오토는 당황했다.

“뭐야? 웬 환영행사?”

“언제쯤 도착할 것 같다 연락을 넣어 두었는데,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말했다.

“그래?”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좋네.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옛날엔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았었는데.”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텅 빈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 공허함이.

‘그래, 그랬지. 반겨 주는 사람 하나 없었지.’

그땐 그게 참 힘들었었는데.

정작 다른 세계 사람들이 이렇게 반겨 주니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그때야 지은 죄가 있으시니 그럴 만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으응?”

“다들 전하를 싫어했습니다. 오죽하면 동네 꼬맹이들도 전하를 죽여 버릴 거라고 떠들곤 했겠습니까.”

김도진이나 오토나 아무도 반겨 주는 사람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김도진에게는 죽여 버리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야 이.”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 얘기 아니거든?”

“예?”

“자꾸 옛날 얘기 할래? 어? 옛날처럼 한번 망나니짓해 봐?”

“아, 아닙니다.”

“팍 씨.”

오토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카미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자꾸 바가지 긁어? 확 형 책상 위에다가 어?”

“…….”

“확 해 버리는 수가 있어?”

움찔!

카미유는 오토의 협박에 흠칫 몸을 떨었다.

오토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 단지.”

카미유가 덧붙였다.

“잘하고 계신다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으응?”

“전하께서는 달라지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도 달라졌습니다. 보십시오.”

카미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전하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잘하고 계십니다.”

카미유는 그렇게 말하고는 민망한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워낙 까칠하고 무뚝뚝한 성격인지라 오토를 칭찬하는 것도 괜히 부끄러워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 그러시겠지.”

“예?”

“살라딘 그 양반이 성인이 돼서 승천하고 나니까 이제 오갈 데 없다 이거지?”

“또 그 얘깁니까?”

“드래곤 대신 와이번이라 이거지? 어? 살라딘은 드래곤이고 난 와이번이란 거지? 그지? 쒸익쒸익!”

“…….”

“아주 그냥 콱!”

훈훈할 만하면 삼천포로 빠지는 건 오토나 카미유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좋네.’

오토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야.’

지난 여정이 워낙 길었기 때문일까?

이오타 왕국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오토였다.

* * *

“껄껄껄! 왔느냐!”

“다녀오셨습니까요! 전하!”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왕궁에 들어선 오토를 와지르 대공과 고블린 상인 에고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네, 다녀왔습니다.”

오토가 와지르 대공과 에고를 향해 씩 하고 웃어 보였다.

“껄껄껄! 이번에 아주 큰 건을 해냈다 들었다! 무역 흑자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지? 크핫핫핫핫!”

와지르 대공은 오토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오타 왕국은 이제 막 성장해 나가는 단계.

그러다 보니 늘 예산이 부족해 허리띠를 졸라매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오토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왔으니, 와지르 대공으로서는 뛸 듯이 기뻐할 수밖에.

그건 에고도 마찬가지였다.

오토가 칼리프 왕국과의 무역을 성사시킨 덕분에, 앞으로 에고 상단 역시 막대한 수익을 거둘 게 예상되는 상황.

거기에 더해 꼬르륵 군도를 거점 삼아 본격적인 해상무역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와지르 대공과 에고는 할 수만 있다면 오토를 업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와지르 대공은 너무 늙어서, 에고는 키가 너무 작아서 오토를 업을 수 없을 테지만.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터이니, 한 며칠 푹 쉬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꾸나. 수고했다.”

“피곤하실 터인데 오늘은 푹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요.”

와지르 대공과 에고가 오토에게 휴식을 권했다.

“네!”

오토도 피곤하긴 매한가지라서, 휴식부터 취하기로 했다.

‘벌써 봄이 왔네. 아닌데. 이제 곧 여름인가?’

오토는 왕궁을 거닐며 지난 여정이 상당히 길었다는 걸 실감했다.

칼리프 왕국을 향해 떠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추운 겨울이었건만.

이제는 봄의 기운이 만연하고,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맞다.”

오토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침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 가십니까?”

“어르신한테 문안 인사 여쭈려고.”

“쿠란 어르신 말씀이십니까?”

“응.”

오토에게 있어 쿠란은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같은 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라,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모시겠다고 해 놓고 잘 챙겨드리지도 못하네. 휴우. 그렇다고 계속 붙어 있을 수도 없고. 쉬더라도 찾아뵙고 쉬어야겠다. 그게 사람 된 도리지.’

그런 생각으로 쿠란을 만나러 갔는데.

“네? 편찮으시다고요?”

“그렇다.”

오토는 시녀장 올리브로부터 쿠란이 앓아누웠단 얘길 전해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워낙 연로하시다 보니 노환이 드신 것 같다.”

“아….”

“한 며칠 끙끙 앓으시다가 이제는 기운을 좀 차리셨으니 만나 뵙는 건 가능하다.”

“알겠습니다.”

급히 만나 본 쿠란은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오토 왔느냐.”

쿠란이 힘없는 목소리로 오토를 돌아보았다.

오래간만에 본 쿠란은 너무나도 야위어 있었다.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모습.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을 떠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어르신.”

오토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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