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왜 우느냐?”
쿠란이 오토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게야?”
“아, 아닙니다.”
“설마 내가 아파서 우는 게냐?”
“아뇨.”
오토가 찔끔 눈물을 닦으며 애써 미소 지었다.
“너무 반가워서요. 오랜만에 뵙잖아요. 멀리 다녀오느라 좀 바빴습니다.”
“끌끌끌.”
쿠란이 힘없이 웃었다.
“이런 착해빠진 녀석 같으니. 끌끌끌. 노친네 하나 아픈 거 가지고 울긴.”
“아닙니다.”
“늙으면 다 이런 법인 게야. 끌끌끌. 태어나고, 살고, 죽기 마련이지.”
“그런 말씀 마세요.”
오토가 쿠란을 나무랐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죠.”
“오토야.”
쿠란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난 이미 오래 살았단다. 드래곤 치고도 이만하면 아주 장수한 게야.”
“어르시인….”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답시고 이리 오래 사나 했더니, 다 네 녀석 만나려고 그랬나 보구나. 끌끌.”
오토는 코끝이 찡해져서, 좀처럼 말을 잇질 못했다.
“그나저나 걱정이로구나. 늙으면 곱게 가야 하는 것을.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갈 때도 편히 가지는 못할 것 같구나.”
“네…?”
오토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드래곤들은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육체를 분해해서 흩어 버린단다. 노환으로 고통받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가는 게야. 그게 우리 드래곤들이 삶을 끝마치는 방식이란다.”
“아.”
“문제는 내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최후의 주문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엄두가 나지 않는구나. 자칫 잘못했다간….”
쿠란이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쳤다.
“육체를 흩어 버리는 게 아니라 폭발시켜 버리거나, 혹은 미쳐 날뛰다 힘이 다해 죽을 수도 있단다.”
“그러시면 안 되죠.”
“갈 때만이라도 편히 갔으면 좋을 것을. 허허.”
결국, 치매가 문제라는 이야기였다.
“…어르신.”
오토는 그런 쿠란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부디 남은 생이라도 편하게 지내다 가셔야 할 텐데. 치매. 참 몹쓸 병이야. 정말로 몹쓸 병이야.’
치매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
드래곤조차도 피해 가지 못한 걸 보면.
“오토야.”
“예, 어르신.”
“그래도 고맙단다.”
쿠란이 주름진 손으로 오토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도 네 녀석을 만나 이리 보살핌을 받는구나. 정말 고맙단다.”
“아닙니다, 어르신.”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꼭 어르신이 치매를 극복하실 수 있게 힘써 보겠습니다.”
“허허. 무슨 수로.”
“찾아보면 방법이야 있겠지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서, 어르신의 고통을 덜어드리겠습니다.”
“기특한 녀ㅅ….”
그때.
“누구세용???”
치매가 도진 쿠란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
오토는 웃지 않았다.
‘이대로 고통만 받게 놔주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오토는 쿠란의 치매를 치료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다짐했다.
* * *
그 후 오토는 1주일 동안이나 쿠란을 직접 돌봤다.
할 일은 모두 미뤘다.
와지르 대공과 에고를 만나 지난 여정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일도.
대륙진출을 위한 준비도.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쿠란을 정성껏 돌보는 데만 힘썼다.
“옳지! 우리 애기! 아!”
“아!”
“밥도 잘 먹네!”
밥도 손수 먹여 드리고.
“어휴. 때 좀 봐.”
“자, 자기! 너무 따가웡! 히잉!”
목욕도 시켜 드리고.
“…많이도 쌌네.”
“응애! 나 애기 드래곤! 똥 싸쪄! 응애!”
똥 기저귀까지 갈아 드렸다.
“여, 여기서 뭐 하세요? 그건 왜 가져가시고요?”
오토는 웬 드워프가 쿠란의 기저귀를 가지고 가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전하.”
드워프가 대답했다.
“쿠란 어르신의 배설물로 젤리를 만들기 위해 가져가는 것입니다.”
“…….”
“아시다시피 어르신의 배설물로 만든 젤리는 죽은 사람도 되살려내는 명약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설물을 챙겨가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하여간 드워프란 종족의 집착이란…….
‘그냥 버리긴 아깝긴 하지.’
해골섬 해전 당시 쿠란의 똥으로 만든 젤리의 효과를 톡톡히 봐서 그런지,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우웩.
좀 더럽긴 했지만.
“어르신 머리 빗겨 드릴게요.”
“고맙구나.”
오토는 쿠란의 머리를 빗겨 주며 씁쓸해했다.
‘정말 세월 앞에 장사 없구나. 어르신도 한때는 이 세계를 호령하시던 드래곤이셨을 텐데. 에휴.’
그렇게 오토는 1주일이란 시간 동안 쿠란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한 후에야 다시 국정운영에 복귀했다.
쿠란이 아무리 마음에 걸린다 한들 국정운영까지 등한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바쁘더라도 자주자주 찾아뵙고. 틈틈이 치매 치료 방법도 찾아보자.’
오토는 평소에도 잘하는 손주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 * *
“나는 잠시 어디 좀 다녀오마.”
와지르 대공이 뜬금없이 이별을 고했다.
“어디 가세요?”
“볼일이 있다.”
“하지만….”
“행정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으니 내가 없더라도 당분간은 별문제 없을게다. 그리고….”
와지르 대공이 눈을 흘겼다.
“도망가는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헉!
들켰나?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하! 하하하!”
오토는 와지르가 격무에 지쳐 도망치는 줄 알고 마음을 졸였다가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이 재밌는 놀이터를 놔두고 내가 어딜 도망가겠느냐? 다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이니, 얌전히 기다리도록 해라.”
“조심히 다녀 오십시오.”
그렇게 와지르 대공이 떠나고.
“전하! 대박입니다요! 대박!”
고블린 상인 에고가 기쁜 소식을 전했다.
“오버하우저 상단이 파산했습니다요!”
“오? 정말요?”
“예! 그렇습니다요! 밀무역선들이 폭발해 버리는 바람에 매점매석한 물품들의 대금도 갚지 못하고, 다른 상단들의 무역선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바람에 천문학적인 빚을 졌다고 합니다요!”
“푸하하하하하!”
오토는 아르곤 대제를 엿 먹이려던 계획이 아주 훌륭하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카이로스 이 양반 어지간히 좋아하겠네. 큭큭큭. 그러라고 보낸 건데.’
오토는 카이로스를 무역항으로 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에고에게 물었다.
“그래서요?”
“소인이 경매에 붙여진 오버하우저 상단의 자산들을 매입할 생각입니다요! 쿄쿄쿄쿄!”
“당연히 경매로 나온 물건들이니까 더 싸겠죠? 흐흐흐!”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쿄쿄!”
오토와 에고가 서로 마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급매로 나온 아르곤 대제의 자산들을 싸게 살 생각을 하니,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짜릿했다.
왜?
경매에 나온 아르곤 대제의 자산들을 살 때 사용할 자금도 결국 아르곤 대제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으니까.
“또 뭐 없나요? 다른 건?”
“쿄쿄쿄!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이번에 오버하우저 상단에서 사재기했던 물품들도 저희 상단에서 헐값에 매입하기로 했습니다요! 쿄쿄쿄!”
“오오오!”
역시 에고.
오버하우저 상단의 파산을 귀신같이 이용해서 돈을 버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 수완이 아니었다.
물론 다 오토가 판을 깔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일 테지만.
“게다가 잘랄라바드 공격으로 마정석의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엄청난 이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요! 정말 감축드립니다요! 전하! 쿄쿄쿄!”
“헤헤헤헤헤헤!”
카미유는 그런 오토와 에고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주 돈 귀신들이 따로 없군. 저렇게까지 죽이 잘 맞을 수가 있다니.’
오토와 에고는 그야말로 영혼의 단짝이었다.
적어도 돈에 있어서는.
* * *
에고와의 정산을 마친 오토는, 즉시 짐을 챙겨 떠날 채비를 했다.
“뭐 하십니까?”
“보면 몰라? 짐 싸잖아. 근데 뭘 그러고 있어?”
“예?”
“짐 안 싸?”
“…….”
“빨리 싸. 곧 떠나야 되니까.”
카미유는 어이가 없었다.
‘또 무슨 바람이 부신 건지.’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뜬금없이 짐을 싸다니.
“이번엔 또 어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셨잖습니까.”
“외조부님 뵈러.”
“쿤타치 가문에 가시는 거였습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왔으니까 오랜만에 외조부님 얼굴도 뵙고. 성역에도 들리게.”
지난 여정 동안 레벨을 많이 올린 오토는, 무적황제의 세 번째 권능을 손에 넣을 자격을 거머쥔 뒤였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성역으로 가 무적황제의 세 번째 권능을 손에 넣는 게 중요했다.
‘세 번째 권능은 못 참지.’
오토 드 스쿠데리아.
아니.
정확히는 무적황제의 권능을 손에 넣은 자는, 세 번째 권능을 얻을 때부터 폭발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한다.
세 번째 권능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성능이 180도 달라질 정도였다.
사실상 무적황제 권능의 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세 번째 권능.
“아, 그리고.”
오토가 덧붙였다.
“알퐁달 어르신 소식도 궁금하네.”
“아.”
“설마 벌써 돌아가시진 않았겠지. 평생 연구하신 연구 결과는 발표하고 가신다고 하셨는데.”
“딱히 연락이 온 게 없으니 아직 돌아가시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얼른 가 보자.”
“예.”
오토와 카미유를 타타르 품종의 말을 타고 쉴 새 없이 내달려 쿤타치 공국으로 향했다.
“오토 이놈!”
쿤타치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찌 그동안 편지 한 통이 없었느냐! 이 할아비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느냐! 이 무심하고 야속한 녀석 같으니!”
콘라드는 오토를 보자마자 버럭! 화부터 내었다.
오토가 칼리프 왕국에 다녀오는 동안 따로 연락을 주지 않아 어지간히도 답답하고 서운했던 것이다.
“죄송해요.”
오토가 콘라드를 달랬다.
“정말 많이 바빴거든요. 그래도 복귀하자마자 바로 달려온 거니까 봐 주세요.”
“으음. 그게 정말이냐. 바로 달려왔다는 것이.”
“그럼요.”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 길 다녀왔는데 바로 할아버님께 문안 인사부터 드려야죠.”
“으음.”
“그리고 이번에 무적황제의 세 번째 권능을 얻을 예정이거든요.”
“그, 그게 정말이냐!”
“예.”
“음! 많은 성취가 있었나 보구나! 세 번째 권능을 얻을 예정이라면! 크핫핫핫핫!”
콘라드가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얼마나 바빴기에 이 할아비에게 편지 한 통 할 겨를이 없었느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오토가 콘라드에게 지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그래?”
“허어!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맙소사!”
“칼리프 왕국에 성인이 출현하다니!”
콘라드는 오토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썰을 잘 푸셨지?’
카미유는 오토가 무슨 이야기꾼처럼 콘라드를 몰입시키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오토는 실제 벌어졌던 일들에 적절한 과장까지 섞어 가면서 콘라드에게 열심히 썰을 풀었다.
“허허! 그런 여정이었다니! 내 평생 들어본 모험담 중에서 가장 재미있구나!”
콘라드는 오토의 썰에 완전히 매료되어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딴 데 눈을 돌리지 못했다.
오토는 살아남기 위해 셰에라자드에게 썰을 풀면서, 어느새 전문 이야기꾼이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랬구나, 그랬어.”
덕분에 오토는 자신에 대한 콘라드의 서운함 마음과 삐침을 달래 주는 데 성공했다.
“이 할아비가 그런 일이 있었던 줄도 모르고 너를 너무 타박했구나.”
“그러실 수 있죠. 헤헤헤.”
“그래, 무적황제의 세 번째 권능을 얻으러 왔다고?”
“예.”
“급한 일이냐?”
“급하긴 한데 1분 1초를 다툴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이 할아비와 같이 알퐁달 어르신의 발표회에 들렀다 가자꾸나.”
“예?”
“2시간 후에 알퐁달 어르신께서 평생에 걸쳐 연구하신 연구 결과를 발표하실 예정이다.”
“그래요? 근데 뭐에 대해서 연구하신 거죠?”
“그것은 아직 말해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세상을 놀라게 할 자신이 있다고 하셨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좋습니다.”
오토는 성역에 들르기 전 알퐁달 어르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다.
‘어차피 세 번째 권능을 얻는 데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
안 그래도 알퐁달 어르신이 평생에 걸쳐 연구해 온 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던 참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