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알퐁달 어르신의 발표회에는 쿤타치 가문의 피를 이은 거의 모든 이들이 참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알퐁달 어르신은 촌수와 항렬을 떠나 쿤타치 가문의 최고령 원로.
그러다 보니 쿤타치 성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가문의 큰 어른이신 알퐁달 어르신께서 평생에 걸쳐 연구하신 연구 결과를 발표하시겠다고 한다. 박수로 배웅하라.”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발표회는 가주인 콘라드의 발언에 쿤타치 가문의 혈족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스르르.
이윽고 알퐁달 어르신이 귀신처럼 미끄러져 나타나 단상 위에 섰다.
“아직까지 살아계시다니!”
“맙소사!”
쿤타치 가문의 혈족들은 알퐁달 어르신이 생존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발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생존해 있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다들 와 줘서 고맙구나.”
알퐁달이 미소를 지으며 쿤타치 가문의 혈족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늙은이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어 많이들 놀랐을 것이다. 끌끌끌. 내가 아직도 죽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서 이 자리까지 온 이유는, 연구를 완성함으로써 가문에 이바지하고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란다.”
그렇게 말한 알퐁달 어르신이 품속에서 초록색 액체가 든 유리병을 꺼내 보였다.
“이것이 내가 평생에 걸친 연구로 만들어 낸 신약(新藥)이다.”
“오오오오오오오!”
웅성웅성!
신약을 개발해냈단 말에 발표회장이 술렁였다.
“어떤 신약이지?”
“무좀 치료제인가?”
“예끼! 이 사람아! 무좀이겠나? 탈모 치료제 정도는 돼야지!”
“비염 치료제였으면 좋겠군.”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알퐁달 어르신이 어떤 신약을 개발해냈을지 궁금해했다.
‘연구가 신약 개발이었어? 어떤 약이지?’
오토도 알퐁달 어르신이 개발해 냈다는 신약이 궁금했다.
“이 신약의 이름은… 다이애닌이라 지었다. 그래도 열심히 연구해서 만들었는데 이 늙은이가 이름쯤 붙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세상을 떠나도 사람들이 기억을 해 주지 않겠느냐? 끌끌끌!”
“그래서 그 신약의 효과가 뭡니까!”
오토가 손을 번쩍 들고 알퐁달 어르신에게 물었다.
“이 신약은 말이다….”
알퐁달 어르신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치매 치료제란다.”
그 순간.
‘어?’
오토는 제 귀를 의심했다.
치매 치료제라니!
안 그래도 치매를 치료할 방법을 찾고 있지 않았던가!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단다.”
“정말 치매 치료제입니까? 정말로?”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해 있었단다. 끌끌끌.”
“맙소사.”
오토가 놀랐다.
“치매 치료제라니!”
“오오오오!”
“맙소사!”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치매는 마법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
생명체라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노화(老化)가 가장 최악의 형태로 드러나는 질병이었다.
게다가 치매는 그 원인이 되는 질환들이 워낙에 다양한 질병이기도 했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하셨다고?’
오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의학과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에서도 치매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인데, 그걸 알퐁달 어르신이 해낼 줄이야!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다만. 몇몇 늙은이들은 눈치챘겠지. 약 이름이 다이애닌이니 말이다.”
알퐁달 어르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후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오래전. 내 아내 다이애나는 치매를 비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나는 그때 다짐했단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치매를 치료할 방법을 찾기로.”
뒤이어 알퐁달 어르신의 입으로부터 가슴 아픈 옛날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 *
아주 오래전.
약 90년 전 즈음.
알퐁달의 아내 다이애나는 30대 젊은 나이에 중증 치매를 앓게 되었다.
젊은 알퐁달은 다이애나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보살폈지만, 치매는 정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었다.
다이애나의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는 어린 외동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다이애나는 자괴감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알퐁달은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내 반드시,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이 끔찍한 질병을 치료할 방법을.”
치료제 개발을 다짐한 알퐁달은, 그길로 연구실에 틀어박혀 평생을 연구에만 몰두했다.
알퐁달은 주목한 건 고위급 언데드들이었다.
고위급 언데드들은 육체가 이미 썩어들어가 뇌가 기능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고위급 언데드들은 기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또 학습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었다.
그건 치매를 연구하던 알퐁달에게 있어 가장 큰 미스터리였다.
의학적·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밝힐 수 없는, 그야말로 마법의 신비가 아닌가?
그래서 알퐁달은 평생에 걸쳐 고위급 언데드들에 얽힌 마법적 원리에 대해서 연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방법을 찾기 전까진 눈을 감을 수 없다.”
알퐁달은 흑마법을 이용해 수명을 강제로 늘리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치료제를 거의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치료제의 효과는 좋았지만,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된 것이다.
“이 부작용만 해결하면….”
그렇게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매진하던 중.
알퐁달은 오토의 부탁으로 영혼기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옵시듐.
우주의 암흑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금속.
알퐁달은 영혼기사들을 제작하면서 옵시듐 입자를 한번 이용해 보기로 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침내 치명적인 부작용마저 극복한, 가장 완벽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승리, 아니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의 승리였다.
치매로 인해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내와 아들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는, 그렇게 이 세계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구어낸 위대한 업적이었다.
* * *
“나는 앞으로.”
알퐁달 어르신이 말했다.
“우리 가문이 이 신약을 대량생산으로써 더는 치매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단다. 그러니 부디. 제발 부탁하건대.”
알퐁달 어르신이 오토를 바라보았다.
“너는 우리 가문의 소가주이자 차기 가주로서, 이 신약을 이 세상에 널리 배포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어르신.”
“약속할 수 있겠느냐? 이 신약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붙이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가난한 사람들도 이 신약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베풀겠느냐?”
그걸 말이라고.
김도진 역시 치매환자의 가족으로서 고통받아 본 경험이 있었기에, 알퐁달 어르신이 평생에 걸쳐 개발한 신약으로 폭리를 취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약속드립니다.”
“그럼 되었다. 네 녀석이 더없이 총명하다 들었다. 이 약의 생산단가를 낮추고, 널리 보급할 방법을 찾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르신의 위대한 업적에 결코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약의 보급에 힘쓰겠습니다.”
“그럼 되었다. 내 소가주의 약속을 받았으니 여한이 없다.”
알퐁달 어르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쿤타치 가문의 혈족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더는 생명 연장이 불가능해 3일 뒤에 눈을 감을 생각이란다. 그러니 앞으로 3일 동안은 우리 혈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구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토가 놀랐다.
“이렇게 가시려고요?”
“나는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았어. 신약 개발을 마쳤으니 이제 쉬고 싶단다. 이제는 내 아내와 아들 녀석을 보러 갈 때가 된 게야.”
“어르신….”
“다들 슬퍼하지 말고, 이 늙은이 가는 길 배웅이나 해 주길 바란다.”
그러자 쿤타치 가문의 혈족들이 일제히 알퐁달 어르신을 향해 한 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가문의 큰 어른께 올리는 후손들의 경의(敬意)였다.
* * *
콘라드는 장례식을 준비하는 한편 알퐁달 어르신을 배웅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알퐁달 어르신의 뜻에 따라, 연회는 다들 웃고 떠드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다들 잘 있으려무나.”
알퐁달 어르신은 쿤타치 가문의 혈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
“불행한 삶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일찍 떠나보냈지만, 그럼에도 태어나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거든. 게다가 신약의 개발에도 성공했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니었나 싶구나.”
알퐁달 어르신의 혈족들을 슥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삶이란 희로애락의 연속이다. 행복한 날이 있으면 불행한 날도 있고, 불행한 날이 있으면 행복한 날도 있는 법이다. 어떤 날은 슬프고, 어떤 날은 기쁜 게야. 그게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 행복한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할 줄 알았으면 좋겠구나. 그럼, 나는 이제 가 보도록 하마.”
알퐁달 어르신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 사랑 다이애나. 내 사랑하는 아들 알렉스. 내가, 이 아비가 간다. 그동안 많이 기다렸지. 빨리 보고 싶었는데. 연구를 완성하느라 그러질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늦게라도 이렇게 가니까, 부디 다시 만ㄴ….”
알퐁달 어르신이 돌연 말을 멈췄다.
그렇게 알퐁달 어르신은 가문의 혈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어르신, 편히 가십시오.”
콘라드가 가주로서 알퐁달 어르신의 눈을 감겨 드렸다.
장례식은 쿤타치 가문의 예법대로 검소하게 진행되었다.
장작 위에 오른 알퐁달 어르신의 시신은, 한 자루 검과 함께 마법의 불꽃을 이용해 화장(火葬)했다.
화장이 끝나면, 유골은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든 뒤 검과 함께 가문의 납골당에 보관될 예정이었다.
검과 마법의 가문인 쿤타치다운 장례 예법이었다.
‘어르신.’
오토는 불타는 알퐁달 어르신의 시신을 뒤로하며 굳게 다짐했다.
‘어르신의 위대한 의지, 제가 이어나가겠습니다. 그러니 편히 쉬세요.’
알퐁달 어르신의 역할은 개발까지였고, 지금부터는 오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다이애닌을 널리 보급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산에 필요한 재료들이 워낙에 희귀하고 비싼데다가, 공정 또한 복잡해서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을 벌어도 다이애닌 한 병을 사는 게 불가능할 게 뻔했다.
하지만 오토는 어떻게든 다이애닌을 대량생산해서 전 세계에 널리 보급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쿠란 어르신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오토는 다이애닌에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인간의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 낸 다이애닌이 드래곤인 쿠란에게도 통할지는 미지수였지만, 어쨌거나 한 가닥 희망은 생긴 셈이었기 때문이다.
* * *
알퐁달 어르신의 장례식이 끝나고.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카미유가 무적황제의 세 번째 권능을 얻기 위해 성역으로 향하는 오토를 배웅했다.
“조심히 다녀올 것도 없어.”
“예?”
“그냥 책 한 권 가지고 나오는 게 다야.”
“……?”
“책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시련이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그렇다고.”
오토는 그 말을 남기고, 성역에 들었다.
무한한 지식의 힘으로.
오토는 왼손에 커다란 책을 든 학자의 석상을 지나쳐 세 번째 던전에 입장했다.
카미유에게 말했듯, 던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단상 위에 커다란 책 한 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
[대학살의 서]
본래 이름은 전능의 마도서.
무한한 지식의 힘이 담긴 마도서이나, 그 힘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이 책을 쓴 사람조차 그 내용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분류 : 책 (둔기) (방패) (매우 느린 공격 속도)
등급 : 우주
내구도 : 무한 (∞) / 파괴할 수 없음
레벨제한 : 200레벨 이상
착용제한 : 신마지체 전용
공격력 : 측정불가
주문력 : 측정불가
특수능력 :
- 전지
- 전능
상태창이 흐릿흐릿하고 군데군데 지워져 있어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주요 상태창은 거의 다 외우고 있었으므로.
책을 소유하려는 자여.
부디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책에 담긴 힘이 그대로 하여금 업보를 쌓게 만들 것이다.
우주를 들여다본 자, 우주에게 삼켜지리라….
경고문을 읽고, 책을 집어 들었다.
[알림: <대학살의 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파직!
파지직!
책에서 강력한 스파크와 함께 무한한 공허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오토를 덮쳤다.
다음 순간.
‘…이건.’
오토의 눈앞에 어떠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과거 <대학살의 서>를 소유했던 자들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