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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81화 (182/401)

181화

어느 날부터인가 발틴 왕국에는 이오타 왕국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카슈미르 지방에 통일왕조가 들어섰대!”

“오토 드 스쿠데리아란 시골뜨기 영주가 카슈미르 지방을 통일하고 왕위에 올랐다는데?”

“근데 카슈미르 지방은 본래 우리 왕국의 영토 아니었나? 우리 조상님들이 거기 출신이셨거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발틴 왕국 사람들은 이내 곧 이오타 왕국에 대한 소문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카슈미르 지방이 워낙에 변방 중의 변방인지라, 딱히 흥미가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슈미르 마정석 팝니다!”

“저렴한 카슈미르 마정석 사 가세요!”

“카슈미르 마정석이 쌉니다! 싸요!”

그러나 에고 상단의 상인들이 나타나 카슈미르산 마정석을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마정석은 이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마나의 집약체인 마정석은 여러 분야에서 다방면에 걸쳐 이용되는 에너지자원이었기에, 세계 각국에서 가장 중요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발틴 왕국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겨울.

발틴 왕국은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나라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피해는 막심했다.

수만 명에 달하는 많은 동사자가 발생하면서, 나라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 많은 동사자가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발틴 왕국에 작은 마정석 광산 하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그마한 석탄 광산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발틴 왕국은 난방 연료의 대부분을 석탄과 나무 장작에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정석은 차원이 달랐다.

조약돌만 한 크기의 마정석 하나만 있어도, 한 가정이 겨울 내내 따뜻하게 지내는 게 가능했다.

석탄과 장작을 때서 얻을 수 없는 에너지라고 해 봐야 조약돌만 한 크기의 마정석에 비하면 발톱에 때만큼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젠장! 새치기하지 말라고!”

“한 사람당 구매 수량에 제한이 있다고? 빌어먹을!”

“나부터 주쇼! 나부터!”

발틴 왕국의 백성들은 벌떼처럼 모여들어 카슈미르산 마정석을 앞다투어 쓸어갔다.

지난겨울 아주 혹독하고 끔찍한 겨울을 보낸 터라 마정석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던 것이다.

게다가 카슈미르산 마정석은 품질은 좋은데 가격도 매우 저렴해서, 빚을 내서라도 구매하는 게 이득이었다.

일단 사서 쟁여놓았다가 나중에 비싼 값에 되팔아도 충분히 이득을 볼 만큼 가격적인 메리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소식은 국왕인 체흐 4세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

“뭐라? 카슈미르산 마정석이 팔리고 있다?”

“예, 전하.”

“허어! 카슈미르 지방에 마정석 광산이 있었을 줄이야!”

쓸 만한 자원이라고는 쥐뿔도 없을 것만 같던 카슈미르 지방에서 마정석 광산이 발견되었을 줄이야.

“카슈미르산 마정석은 값이 싸고, 질이 매우 좋사옵니다. 순도가 칼리프 왕국산 마정석에 못지않다고 하옵나이다.”

칼리프 왕국산 마정석은 전 세계에서도 순도 높고 안정성 높기로 유명했다.

물론 순도 높고 안정성 높기로는 사하라 왕국산이 최고의 명품으로 쳤다.

하지만 그만큼 값이 비싸고 유통되는 물량이 적어서, 사하라 왕국산 마정석은 일상생활에는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허어! 칼리프 왕국산 마정석에 비견될 정도라니! 이 무슨!”

체흐 4세는 이오타산 마정석이 칼리프 왕국산에 못지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라워했다.

사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왜?

지금 발틴 왕국에 유통되고 있는 이오타산 마정석들은 사실 칼리프 왕국산이었으니까.

“난리도 아니옵니다. 지난 폭설 사태 때문에 안 그래도 마정석의 수요가 높질 않사옵니까? 질 좋고 저렴한 카슈미르산 마정석이 시장에 풀리니 백성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옵니다.”

“그래서.”

체흐 4세의 표정이 돌연 싸늘해졌다.

“이오타 놈들이 본국에서 마정석을 팔아 떼돈을 벌고 있단 말이로군.”

“그러하옵니다. 말은 카슈미르산이라 하는데, 실상은 이오타에서 채굴해서 판매하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오토 드 스쿠데리아라고 했던가. 이런 쳐 죽일 놈 같으니. 감히 반역을 저지르고 왕위에 오른 것으로도 모자라 마정석 광산을 발견했는데도 그걸 숨겨? 이런 괘씸한 놈을 보았나!”

체흐 4세가 옥좌의 팔걸이를 내리치며 분노를 드러내었다.

“전하!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전하의 허락도 없이 카슈미르 지방을 집어삼킨 역적이옵니다!”

“더 이상 좌시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와 저 괴뢰국 이오타를 벌하셔야 하옵니다!”

신하들 역시 분노를 드러내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노오옴! 그간 과인이 넓은 아량과 자비를 베풀었거늘! 모국을 저버리고 마정석 광산을 발견하고도 보고하지 않다니! 이는 곧 과인을 능멸하는 것이 아니더냐!”

오토의 예상대로, 체흐 4세를 포함한 발틴 왕국의 수뇌부들은 이오타 왕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고 듣는다는 말도 있듯이, 오토가 제아무리 정보를 잘 통제했다고 한들 결국 정보는 새어나가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당장 우리 군을 푼힐 요새에 전진 배치하고! 감찰관과 기사단을 파견하라! 오토 드 스쿠데리아에게 과인의 칙서를 전달할 것이다!”

“예, 전하.”

그렇게 발틴 왕국은 마정석 판매 사건을 계기로, 이오타 왕국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카슈미르 지방을 유기하고 방치한 주제에, 마정석 광산이 발견된 듯하자 숟가락을 들어 올린 것이다.

* * *

오토는 마정석을 유통시켜 발틴 왕국의 관심을 끄는 한편 카슈미르 산맥으로 향했다.

오토는 이오타 왕국의 최전방인 <체르고리> 요새에서 저 멀리 5킬로미터쯤 떨어진 발틴 왕국의 <푼힐> 요새를 바라보았다.

그런 푼힐 요새의 뒤편에는 깎아지는 듯한 절벽에 잔도(棧道)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잔도란 벼랑에 선반을 달아 놓은 벼랑길.

지금 푼힐 요새 뒤편에 자리한 잔도인 <뱀의 길>은 그 길이가 무려 3킬로미터에 달했다.

뱀의 길은 이곳 카슈미르 지방과 대륙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만약 뱀의 길을 이용하지 않고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서북쪽으로 북상했다가 하브르 초원을 가로질러서 내려가야 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현재 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그래서 이오타 왕국에게 이곳 뱀의 길은 사실상 유일한 진출로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뱀의 길이 발틴 왕국의 소유였다는 것.

이오타 왕국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뱀의 길을 장악해야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푼힐 요새를 넘어 뱀의 길을 통과하면 <토오롱> 요새가 나온다.

토오롱 요새야말로 발틴 왕국 최후의 방어선으로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오타 왕국이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푼힐 요새를 넘어 뱀의 길을 타고 가 토오롱 요새까지 함락시키는, 아주 복잡하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즉, 지형적으로 이오타 왕국이 너무나도 불리했다.

반면 발틴 왕국은 공격과 방어 어느 쪽이나 유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건 도무지 답이 안 보인다.’

카미유는 저 멀리 뱀의 길을 바라보자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푼힐 요새까지는 어떻게 점령해 볼 만했다.

그러나 군대를 이끌고 뱀의 길을 통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왜?

좁은 잔도를 지나가다 살짝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테니까.

뱀의 길을 무사히 통과한다고 해도 문제였다.

토오롱 요새에 병력을 집중시킨 발틴 왕국이 좁은 뱀의 길을 막아 버리면, 이오타 왕국군의 희생이 얼마나 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만약 억지로 뱀의 길을 지나 토오롱 요새를 뚫어내려 한다면, 이오타 왕국군의 시체가 산을 이루리라.

‘대륙 진출… 가능하긴 한 건가.’

답답해진 카미유가 오토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오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양아치 같은 놈들! 쒸익쒸익!”

오토는 저 멀리 뱀의 길을 바라보며 씩씩대고 있었다.

“화는 왜 내십니까?”

“발틴 왕국이 부러워서!”

“예?”

“그동안 통행세를 얼마나 받아 처먹었겠어? 쒸익쒸익!”

발틴 왕국은 뱀의 길을 오가는 사람들, 특히 상인들에게 매우 높은 통행세를 매겨 왔다.

에고 상단 역시 대륙과 이오타 왕국을 오갈 때마다 엄청난 액수의 통행세를 지불해 온 게 사실이었다.

“저게 진짜 꿀 빠는 거지! 앉아서 돈 버는 건데!”

“…화가 나신 이유가 겨우 그거였습니까.”

“겨우 그거라니! 돈 아까워 죽겠네! 아이고야! 그동안 에고 상단에서 낸 통행세가 얼만데! 통행세만 없었으면 우리 이익이 더 커졌을 거 아냐!”

“…….”

“이런 획기적인 수익 모델 어디 없나. 나도 꿀 빨고 싶은데.”

“지금은 돈 말고 다른 걸 생각하실 때 아닙니까?”

“응? 뭘?”

“여길 어떻게 지킬지. 어떻게 푼힐 요새를 넘어 토오롱 요새를 함락시킬지. 그걸 고민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미 다 했는데?”

“예?”

“생각 끝났어. 그냥 여기 체르고리 요새에 우리 군만 조금 보충해 주면 돼. 많이도 필요 없어. 한 1,000명 정도?”

“그걸로 되겠습니까?”

“충분해. 차고도 넘쳐. 그러니까 걱정 말고, 이제 가자. 눈으로 봤으니까 됐어.”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체르고리 요새를 떠나 다시 이오타 왕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발틴 왕국의 국왕 체흐 4세로부터 명령을 받은 테오도르 백작이 이오타 왕국에 도착했다.

체흐 4세가 오토에게 보내는 칙서를 전달할 겸 이오타 왕국의 동태도 살필 겸 감찰관으로서 파견된 것이다.

‘감찰관인 내가 왔는데 돌려보내려고 애쓰지 않고, 뇌물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국경인 체르고리 요새를 지나는데도 아무도 막아서지 않았다. 굳이 숨기지 않겠다는 건가?’

그렇게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생각이 있으면 어떻게든 숨기려고 할 텐데, 이오타 왕국은 테오도르 백작을 너무나도 편하게 대해 주었다.

심지어, 테오도르 백작 일행의 헤매지 않도록 길잡이를 붙여 주기까지 했다.

‘설마 모국인 우리 발틴 왕국을 상대로 당당히 독립을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

테오도르 백작은 그런 생각으로, 이오타 왕국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여긴 이미 시골 영지 따위가 아니다. 사실상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맙소사. 어느 틈에 카슈미르 지방이 이리 발전했는가.’

테오도르 백작은 이오타 왕국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발전해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단순히 마정석 광산이 발견된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발전해 있을 줄이야.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 주종관계를 확실히 하든. 아니면 토벌하든. 확실하게 목줄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테오도르 백작이 판단하기에, 이오타 왕국을 내버려두면 앞으로 발틴 왕국에 큰 위협이 될 것 같았다.

‘내 돌아가면 전하께 카슈미르 지방 토벌을 강력하게 건의할 것이다.’

테오도르 백작은 그런 생각으로 오토를 만났다.

“국왕 전하 납시오.”

시종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어전에 든 오토가 옥좌에 앉으며 테오도르 백작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테오도르 백작은…….

“이런 불경한!”

테오도르 백작이 오토를 향해 버럭! 불호령을 내렸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남작! 그대는 어찌 국왕 전하께서 파견하신 감찰관을 옥좌에서 알현하는가! 썩 내려오ㅈ….”

그 순간.

스릉.

카미유의 검이 테오도르 백작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전하께 한 번만 더 불경한 언사로 소리친다면, 이 자리에서 즉시 베어 버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다, 테오도르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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