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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85화 (186/401)

185화

발틴 왕국의 수도를 포위한 오토는, 즉시 정예 병력들을 이끌고 왕궁으로 침투했다.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오토는 왕궁에서 수도 외곽으로 통하는 모든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므로, 거길 이용해서 침투하면 그만이었다.

오토가 가진 이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가히 치트키와 같았던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침투한 이오타 왕국군의 정예 기사들은, 마치 성난 늑대 떼처럼 발틴 왕궁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봉에 오토가 있었다.

“무장한 적들만 공격하라!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 무장하지 않은 적은 절대 건드리지 마라!”

오토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체흐 4세가 있는 어전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어딜!”

“국왕 전하께는 이르지 못한다!”

수없이 많은 기사들이 어전 앞을 가로막고 결사항전에 나섰다.

그들은 발틴 왕국의 근위기사단으로서, 정예 중의 정예들.

오토 일행으로서도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실력자들이었다.

‘강해.’

오토는 발틴 왕국의 근위기사단을 보고, 카슈미르 지방의 기사들과 대륙 기사들의 수준 차이를 실감했다.

싸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스으으으으!

적들의 검에 서린 오러의 농도만 봐도 수준 차이가 명확했다.

하지만 오토는 근위기사단을 모조리 도륙 낼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 내 기사가 될 사람들이다.’

전쟁이 끝나면, 저들 중 대부분은 오토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될 터.

그렇다면, 지금 죽여 봤자 오토만 손해였다.

더욱이, 기사란 하루 이틀 훈련시켜서 키워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질 않던가?

어차피 근위기사단만 뚫어내면 체흐 4세가 있는 어전.

그렇다면…….

스윽.

오토가 허리춤에서 부지깽이를 꺼내들었다.

“…뭐 하십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제압하려고.”

“알겠습니다.”

죽이는 건 쉽다.

하지만 제압하는 것은 몇 배로 어렵다.

어설프게 제압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토와 카미유는 자신들의 실력을 믿었다.

“가자.”

“예, 전하.”

그렇게 말한 오토와 카미유가 발틴 왕국의 근위기사단을 향해 덤벼들었다.

뒤이어 벌어진 전투.

퍽! 퍼억!

“크악!”

“악!”

오토가 휘두른 부지깽이가 적들의 머리통을 연신 강타했다.

카미유도 만만치 않았다.

퍽! 퍽퍽!

“큭!”

“으아악!”

카미유도 최대한 적들을 살상하지 않는 선에서, 오토와 함께 근위기사단을 제압해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토와 카미유를 뒤따르는 마검사들도 발틴 왕국의 근위기사단을 제압하기엔 충분한 실력자들이었다.

그 결과.

“끄어어어억.”

“크윽.”

발틴 왕국의 근위기사단은 5분도 채 버티지 못했다.

실력 차이가 워낙에 압도적이다 보니, 상대가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음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전 앞을 지키던 근위기사단을 제압한 후.

“열겠습니다.”

마검사 두 명이 양옆에서 어전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익!

문이 열리고.

우르르르!

어전으로 난입한 마검사들이 좌우로 흩어져 길을 열었다.

“전하.”

“응.”

오토가 카미유를 앞세워 발걸음을 옮겼다.

체흐 4세와 발틴 왕국의 대소신료들이 있는 어전으로.

* * *

“고개 좀 들지.”

발틴 왕국의 옥좌에 앉은 오토가 체흐 4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체흐 4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게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꿈은 아니고?’

그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 며칠간 벌어진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카슈미르 지방은 변방 중의 변방.

발틴 왕국도 사실상 방치하고 유기했던 땅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골 깡촌에서부터 일어난 반란이 이렇게까지 번져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왕궁이 점령되기까지의 과정조차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납득이 되지도 않았다.

체흐 4세로서는 눈 뜨고 코를 베인 격이었다.

“순순히 왕위를 넘기면 그대뿐 아니라 왕가의 안전을 보장하지.”

“뭐, 뭣이?!”

오토의 말을 들은 체흐 4세가 발끈했다.

“왕위를 넘기라? 네놈 같은 시골 영주 따위에게….”

“그 시골 영주 따위한테 무릎을 꿇고 있는 건 뭐고?”

“…….”

“자비를 베풀어 줄 때 순순히 받아들여. 맘 같아선… 네놈을 포함해 왕족들의 씨를 말려 버리고 싶으니까.”

흠칫!

오토와 눈을 마주친 체흐 4세가 몸을 떨었다.

“선택해라. 왕위를 넘기고 남은 생이라도 편하게 살지, 아니면 이대로 멸족당할지.”

“…….”

“나로서도 자비를 베푼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을 텐데.”

오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본래 같았으면 왕족이란 왕족은 모조리 죽여서 씨를 말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토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내게 충성하게 만들어야 돼.’

오토는 체흐 4세를 포함해 왕가의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발틴 왕국을 장악하길 바랐다.

지금 왕족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면 당장 왕권을 확실하게 틀어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체흐 4세와 왕족들이 오토를 지지해주기만 한다면, 발틴 왕국을 안정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선 왕위를 이어받은 후 선정을 펼쳐나가다 보면, 민심이 자연스럽게 스쿠데리아 왕조로 기울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선택하라.”

“…….”

“긴말하지 않겠다.”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체흐 4세가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왕위, 왕위를.”

체흐 4세가 아주 어렵사리,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이양(移讓)하겠소이다….”

쿠웅!

어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그리할 순 없사옵니다!”

몇몇 충신들이 들고 일어나 체흐 4세를 뜯어말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체흐 4세가 결정을 내린 이상 발틴 왕국의 왕위는 오토에게로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윽.

체흐 4세가 쓰고 있던 왕관을 오토에게 바쳤다.

“부디… 자비를 바라오.”

그러자 오토가 옥좌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은 체흐 4세에게로 몸을 숙였다.

“큰 결정 내려주시느라 참으로 고생하셨습니다.”

“……!”

“일어나시지요.”

오토가 체흐 4세를 손수 일으켜주었다.

“앞으로 상왕(上王)으로서 모시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이오?”

“전하께서는 발틴 왕국의 국왕이셨습니다. 제게 협조해 주셨으니, 마땅한 예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

“가슴 아프신 줄은 압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습니다. 받아들이시고, 마음 잘 추스르실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리겠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 꼴이긴 했지만, 체흐 4세로서는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왜?

이건 명백히 오토가 자비를 베푼 셈이었으니까.

“…고맙소이다.”

체흐 4세가 고개를 숙였다.

그게 지금 체흐 4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제 체흐 4세를 포함한 왕가의 운명은 오직 오토의 손에 달렸으니까.

* * *

오토가 체흐 4세를 체포하고, 왕위를 이어받음으로써 전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그로써 이오타 왕국은 주변 3국 중 하나인 발틴 왕국을 매우 깔끔하게 점령함으로써, 성공적인 대륙 진출을 이루었다.

“엥? 벌써 끝나 버린 것이냐?”

뒤늦게 달려온 카이로스와 영혼기사들은, 오토가 왕궁을 점령한 걸 보고 아쉬워했다.

“뭐 하다가 그렇게 늦었냐?”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그간 카이로스 일당은 오버하우저 상단의 밀무역선들이 폭발하는 걸 구경하라고 보낸 후 소식이 뚝 끊겨 감감무소식이었다.

발틴 왕국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중간에 회식을 좀 하느라 늦었노라.”

“…뭐라고?”

“끌끌끌! 아르곤 그놈에게 복수해준 것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끌끌끌!”

오토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곧 그러려니 했다.

카이로스와 깡통―영혼기사들―들이 아르곤 대제에 당했던 걸 생각하면, 몇날며칠 축제를 벌일 만했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술집이란 술집엔 다 들어가서 술을 거덜 내면서 왔겠지. 어휴.’

오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카이로스에게 말했다.

“한바탕 할 거면 여긴 끝났으니까 딴 데 가서 해라.”

“으음?”

“마침 적당한 곳이 있어서.”

오토가 지도를 펼쳐 보였다.

“바로 옆에 로우레딘 왕국이라고 있거든? 지금 여기 상황이 심각해.”

“뭐가 심각하다는 것이냐?”

“작년부터 든 기근 때문에 식량난이 엄청 심각해. 벌써 몇만 명은 굶어 죽었을 거다.”

“허어!”

“그 와중에 왕실에선 자기들 배만 불리느라 민심이 아주 박살난 상황이야. 참다못한 백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난을 일으키고 있고, 왕은 그런 백성들을 몬스터 토벌하듯 때려잡고 있고.”

오토의 설명대로, 현재 로우레딘 왕국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또한, 국왕은 굶주림을 참지 못한 백성들을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죽여 대고 있었다.

굶어 죽은 사람보다 왕국군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군사를 주면 백성들을 규합해서 왕실을 무너뜨릴 수 있겠냐?”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카이로스가 가슴을 탕탕! 치면서 호기롭게 소리쳤다.

“민란(民亂)은 짐의 전문분야이니라!”

“어?”

생각해 보니 그랬다.

먼 옛날.

이 대륙이 혼란스럽던 시절.

카이로스는 용병단을 이끌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규합하였고, 거대 군벌로 성장해 대륙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를 세운 인물이었다.

반란을 일으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데에는 도가 튼 인물인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적임자가 여기 있었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맡겨 놓고 신경 꺼도 되겠어. 알아서 잘해 주겠지.’

오토는 로우레딘 왕국을 카이로스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그럼 로우레딘 왕국으로 가. 나는 식량을 계속 보낼 테니까, 그 식량으로 민심을 얻고.”

“걱정 마라! 뺀질아! 짐이 아주 확실하게 해결해 주마!”

카이로스는 오버하우저 상단이 폭삭 망해 버린 걸 계기로 기분이 매우 좋아져 있어서, 순순히 오토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이제 로우레딘 왕국은 신경 끄자.’

오토는 카이로스가 로우레딘 왕국을 무너뜨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 남았다.’

지도를 들여다보는 오토의 눈길이 슬레인 왕국에 머물렀다.

* * *

슬레인 왕국은 예로부터 이름난 기사들을 배출하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 배경에는, 슬레인 왕국이 전 대륙에서 최초로 기사를 양산해내는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 기사는 일인전승(一人傳承)으로 육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자가 한 기사를 수년간 모시며 배워나가다가, 때가 되면 기사 서임을 받는 식으로.

하지만 슬레인 왕국은 기존에 장교들을 양성하던 사관학교와 기사의 교육과정을 과감하게 통합시켜버림으로써, 대륙 최초로 기사 아카데미를 만들어 내었다.

그 후 여러 강대국들 역시 너도나도 앞다투어 기사 아카데미를 설립했지만, 아직도 슬레인 왕국의 기사 아카데미는 그 명성이 자자했다.

역사가 오래된 탓에 커리큘럼이 매우 체계적이고 잘 정립되어 있었고, 노하우 역시 상당해서 수준 높은 기사를 단기간에 양성해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유학생들이 아직까지 슬레인 왕국의 기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수련하고 있었다.

카미유처럼.

‘이런 날도 오는 건가.’

이오타 왕국의 다음 목표가 슬레인 왕국이라는 걸 들었을 때, 카미유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슬레인 왕국은 카미유가 유학생 시절과 견습기사 시절을 보낸 곳이었기에, 아무래도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카미유는 잠시 오토의 곁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야심한 밤.

카미유는 높은 성벽 위에 올라 슬레인 왕국이 자리한 서쪽을 바라보았다.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그때.

“뭐해?”

흠칫!

카미유는 그만 심장이 멎을 뻔했다.

도대체 어디 있다 튀어나온 건지, 오토가 성벽 모퉁이 사이에서 고개를 쏙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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