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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192화 (193/401)

192화

정략결혼은 권력을 강화하는 데 매우 좋은 수단 중 하나였다.

과거 아르곤 대제 역시 지방귀족들, 혹은 독립영주들과 정략결혼을 해서 화합을 도모하고 지지기반을 공고히 다지기도 했다.

오죽 했으면, 아르곤 대제는 전생에 무려 15명이나 되는 아내를 두었다.

즉, 정략결혼은 아르곤 대제가 즐겨 써먹던 수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북부대공의 손녀 엘리제라.”

아르곤 대제가 글렌의 말을 되뇌었다.

“오직 검밖에 모른다던 인물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그 엘리제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것이냐?”

“예, 폐하.”

글렌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북부대공의 손녀 엘리제는 혼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혼이옵니다. 또한, 북부대공 역시 그녀를 시집보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것으로 압니다.”

“으음.”

“폐하의 수려한 용모와 지혜, 경험, 그리고 강력한 무력이라면 능히 그녀를 매료시킬 수 있으실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물론 그럴 것이다.”

아르곤 대제는 글렌의 칭찬을 부정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뿐이지, 아르곤 대제의 무력은 엄청나게 강했다.

어디 그뿐인가?

외모도 뛰어나고, 언변도 훌륭했으며, 과거 제국을 일궈 본 경험이 있기에 경험도 대단히 뛰어났다.

“하지만 엘리제는 오토 드 스쿠데리아와 약혼한 사이가 아니던가?”

“폐하, 자고로 미인이란 더 뛰어난 자가 차지하는 법이라 하였사옵니다. 엘리제를 아내로 삼을 수만 있다면, 오토 드 스쿠데리아와 척을 지는 게 뭐가 두렵겠사옵니까?”

“듣고 보니 네 말이 옳구나.”

아르곤 대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대공의 가문이 가진 무력과 군사력, 그리고 경제력은 상상 그 이상.

게다가 북부대공은 제국의 북부 장벽을 총책임지는 존재이니만큼, 그 권력도 가히 대단했다.

여차하면 북부대공을 이용해 아라드 제국을 집어삼키고 황제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굳이 유망주인 오토 드 스쿠데리아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엘리제와 결혼하는 게 대륙통일을 이루는 데 있어 더욱 손쉬운 길일 수 있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있사옵니다.”

“좋은 기회?”

“곧 아라드 제국의 건국기념일이옵니다. 현 황제가 건국을 기념하여 연회를 열고, 세계 각국의 유력자들을 초대하였사옵니다.”

“오호라?”

“그 자리에 참석하신다면, 엘리제를 유혹할 기회를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유력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이옵니다.”

“좋구나.”

아르곤 대제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인맥이란 곧 권력과 돈을 의미한다. 건국기념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재기도 불가능은 아니다.’

과거 제국을 일궈 초대 황제의 자리에 올라 본 경험이 있는 아르곤 대제는, 인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걸 이용하는 법도 잘 알고 있었다.

카이로스와는 다르게.

“좋다.”

아르곤 대제가 글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 너의 조언을 받아들여, 건국기념연회에 참석하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아르곤 대제는 엘리제를 유혹하기 위해 아라드 제국의 건국기념연회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 * *

“…벌써?”

오토는 로우레딘 왕국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로우레딘 왕국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영토를 획득했다고? 고작 한 달 사이에?”

“그렇답니다.”

카미유도 어이가 없는지, 도저히 못 믿겠단 표정이었다.

“…이쯤 되면 반란 일으키려고 태어난 거 아냐?”

오토는 카이로스 일당의 엄청난 반란 능력(?)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슬레인 왕국과 발틴 왕국을 안정화시키고 흡수하는 동안 로우레딘 왕국을 집어삼킬 사전작업을 하라고 보내 놨더니, 혼자서 로우레딘 왕국을 통째로 꿀꺽할 기세였던 것이다.

‘설마 리볼트도 잡는 거 아냐?’

100인의 군주 중 하나인 리볼트는, 로우레딘 왕국에서 활동하던 용병이었다.

그는 대단한 야심가였는데, 시나리오를 쭉 따라가다 보면 결국엔 로우레딘 왕국을 차지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즉, 카이로스의 과거 행적과 거의 유사한 방향으로 성장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물론 카이로스는 대륙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제국을 일구는 업적을 이루었기에, 그 스케일부터가 남달랐지만.

‘리볼트가 가진 성물이 꼭 필요한데.’

오토는 리볼트의 성물인 <마이트리야의 묵주>를 필요로 했다.

마이트리야 묵주는 본래 아트로포스 교단의 유물이었지만, 그 효과는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꽤나 거리가 멀었다.

왜냐하면, 마이트리야의 묵주의 효과는 불만에 찬 민중들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마이트리야의 묵주를 가진 자가 불만에 찬 백성들에게로 접근하고, 그들을 이끈다면 매우 손쉽게 반란을 일으키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오토는 이 묵주를 이용해 적국에서 반란을 일으켜 힘을 빼놓는 데 이용해 먹고는 했다.

‘잠깐.’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카이로스도 아트로포스 교단 출신 아니었나?’

카이로스는 과거 아트로포스 교단에 잠시 몸을 담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리볼트가 가진 성물인 마이트리야의 묵주는 그 아트로포스 교단의 성물.

‘이거 공교롭네.’

오토는 어쩌면 카이로스가 리볼트를 토벌하고, 묵주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리볼트가 제아무리 100인의 군주 중 하나라 할지라도, 카이로스와 그 부하들을 감당해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두고 보지 뭐. 로우레딘 왕국은 신경 안 써도 되겠어. 카이로스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오토는 당분간 로우레딘 왕국에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둬 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로우레딘 왕국에까지 손대면 행정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릴 것 같았다.

카이로스가 알아서 잘해 주고 있기도 했고.

“아, 그리고.”

오토가 카미유에게 물었다.

“카심이랑 펭이 소식은?”

“계속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하아.”

오토가 긴 한숨을 토했다.

“설마… 진짜로 죽은 건 아니겠지?”

카심은 벌써 한 달 하고도 반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뱀의 길을 파괴하던 중 사고를 당한 카심은, 도무지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운이 좋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무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긴 한데. 자꾸 신경이 쓰이잖아. 괜히 보냈나 싶기도 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않았습니까. 계속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으니, 머잖아 곧 다시 나타날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

오토와 카미유가 카심을 걱정하던 그때.

“오토 있느냐?”

와지르가 오토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앗! 대공 전하!”

오토가 벌떡 일어나 와지르를 맞이했다.

“어쩐 일이세요? 하하. 하하하.”

“네 녀석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둘러보고 왔다.”

“당연히 열심히 하고 있었죠. 아직 많이 남았지만요.”

오토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끌끌. 군주의 숙명이니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해라.”

“하하하.”

“혹시 다음 주에 시간 있느냐?”

“시간이요?”

“곧 아라드 제국의 건국기념일이 아니더냐.”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황제놈이 연회를 개최했다. 초대장이 날아왔더구나.”

“아?”

“나는 가고 싶지 않다만, 네 녀석은 생각이 다를 것 같다는 말이지.”

“건국기념일 연회라. 그건 좀 귀하네요.”

건국기념일 연회는 오토도 참석해 보지 못했다.

게임상에서는 그런 사소한 사건까지는 구현되어 있지 않아서,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어떠냐? 참석해 보겠느냐?”

“생각 좀 해 보고요.”

제국의 건국기념일 연회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일 테고, 유력자들도 많을 터.

하지만 연회에 참석하기엔 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연회에 참석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 * *

그날 오후.

오토는 건국기념일 연회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전하, 아가씨께서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그래? 줘 봐.”

“예.”

엘리제가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약혼자에게.

그간 너무 바빠서 찾아가지 못했다.

부디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바쁘지 않다면 나를 보러 와 줄 수 있겠나?

마침 건국기념일 연회가 열리는데, 그 자리에 함께 참석했으면 한다.

답장 부탁한다.

- 약혼녀가.

엘리제 역시 아라드 제국인이기에 건국기념일 연회에 참석하는 모양이었다.

“풉.”

오토는 편지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이.”

오토가 카미유에게 편지를 보여 주었다.

“이거 봐봐.”

“…맙소사.”

편지를 본 카미유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편지 내용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간결하고, 투박한 내용이 평소 엘리제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과연 엘리제가 보낸 편지답다고 할까?

문제는 필체.

“이게… 뭡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정말 엘리제 아가씨께서 보낸 편지가 맞는 겁니까?”

“나야 모르지.”

오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본인이 직접 쓴 거 맞을걸? 누구한테 시킬 성격은 아니잖아.”

“하지만….”

카미유가 편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글씨체가 도저히 어른의 것이라 보기 힘듭니다.”

“그렇지?”

“애들도 이거보다는 글씨를 잘 쓸 것 같습니다만.”

엘리제는 심한 악필(惡筆)이었다.

그냥 악필 정도가 아니라, 글씨체가 삐뚤삐뚤 꼬불꼬불 난리도 아니었다.

카미유의 말마따나, 엘리제의 글씨체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만큼이나 꼬부랑했다.

“행정업무랑은 담 쌓고 살아서 그런 거 아닐까?”

“그, 그런 겁니까?”

“책상 위에서 펜대 굴리는 것보다 전장에 직접 나가서 검을 휘두르는 게 익숙할 테니까. 그리고 글씨 좀 못 쓸 수도 있지. 귀엽고.”

“아가씨가 귀여우십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히 귀여우셔. 몰랐어?”

“…그거 장벽 너머 야만인들이 들으면 피를 토하고 쓰러질 발언입니다만.”

카미유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라는 엘리제를 가리켜 귀엽다고 말하는 사람은 오직 오토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히 가야지.”

오토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 대답했다.

“누가 부르는데 안 가겠어. 번번이 찾아와 주시는 것만 해도 미안한데.”

“아깐 바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없는 시간도 만들어 내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삐치기라도 하시면 어쩌려고. 나 죽기 싫어.”

오토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서리쳤다.

“그래서 가신다는 겁니까?”

“가야지. 준비해.”

“알겠습니다.”

카미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마다 초대장이 날아오긴 했었는데, 진짜 참석하게 되니 기분이 묘합니다.”

“뭐?”

오토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해마다 초대장이 날아왔다고?”

“예.”

“나랑 가서 가게 되는 게 아니라, 원래 갈 자격이 있었다는 거야? 지금?”

“그러면 안 됩니까?”

카미유가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되물었다.

“비록 실천은 보잘것없어도 헛된 명성이나마 있으니 초대장를 보냈던 모양입니다.”

확실히, 카미유는 유명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왕의 동생을 베고 사형을 선고받은 것.

일개 견습기사 주제에 연인을 빼앗아간 왕자를 끝끝내 지켜내어 왕위에 올려놓은 것.

그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기사도 정신을 저버린 적이 없으니, 초대장을 받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라이.”

오토가 입을 삐죽였다.

“나만 초대 못 받은 거였어? 대공 전하도 받고, 엘리제 님도 받고, 형도 받았는데?”

“예, 뭐.”

카미유가 난감하다는 듯 대답했다.

“외조부님이신 콘라드 대공 전하나 헬무트 후작님도 받으셨을 겁니다.”

“…….”

“진짜 나만 못 받은 거라고?”

“그런 모양입니다만.”

“나, 안 가.”

오토가 심통이 잔뜩 난 표정으로 선언했다.

“안 가! 아니! 못 가! 초대 못 받은 자리에 왜 가! 자존심 상해서 못 가!”

“…왜 이러십니까.”

“흥.”

오토가 콧바람을 확! 내뿜으며 씩씩거렸다.

“두고 봐. 내가 가나, 안 가나. 내가 돈이랑 권력이 없지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절대 안 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이야~”

아라드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 오토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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