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실제로 본 아라드 제국의 수도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특유의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게임으로 보던 것과 실제로 보던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건국기념일 시즌이라서, 수도 전체가 축제분위기이기도 했다.
“우와. 이야. 진짜 대박. 오오오오.”
오토는 아라드 제국의 수도를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만 좀 하십시오.”
카미유가 오토를 뜯어말렸다.
“왜 자꾸 그러십니까?”
“뭐가?”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잖습니까. 감상을 하시더라도 좀 티 안 나게 하실 순 없는 겁니까?”
카미유의 말마따나, 오토는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그 자체였다.
“풉.”
“촌뜨기네, 촌뜨기야.”
“눈알 굴리는 거 보소?”
오토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자꾸 감탄하는 바람에, 곁을 스치는 사람들이 킥킥대고 있었다.
딱 봐도 시골에서 올라온 티가 팍팍 나게끔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창피해? 어? 쪽팔려서 그래?”
“예.”
“뭐라고?!”
“제발 체통을 지키십시오, 제발.”
“나 참 서러워서.”
오토가 투덜거렸다.
“마음 놓고 관광도 못 하겠네. 이렇게 눈치를 주나. 픽하면 괄시하고 눈치 주고. 흑흑.”
오토가 눈가를 훔치며 서럽단 표정을 지었다.
“연기하지 마십시오. 언제는 자존심 상해서 안 오신다지 않았습니까.”
카미유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쳇. 안 속네.”
오토가 입을 삐죽였다.
“아무튼, 눈치 좀 그만 줘. 구경 좀 하게.”
“…….”
“와! 저 건물 좀 봐! 진짜 대박!”
카미유는 오토의 호들갑을 말리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그냥 보시게 둬야겠군.’
카미유는 잘 몰랐지만, 오토는 정말로 관광 온 기분이었다.
태어나서 이런 대도시를 실제로 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해외여행 한번 가 보지 못하고 서울에서만 살던 오토에게 있어 이곳 아라드 제국의 수도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 * *
다음 날 저녁.
오토는 황궁 주변에 자리한 잘츠부르크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
본래 잘츠부르크 가문의 본거지는 장벽이 자리한 북부에 있었고, 저택은 단순히 수도에 올 일이 있을 때만 이용하는 일종의 별장이었다.
하지만 그 저택조차도 규모가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입구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정원을 통과해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저택의 크기조차 어지간한 소국의 왕궁에 맞먹을 정도였다.
과연 제국의 공작가는 그 위세부터가 남달랐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환영행사 역시 성대했다.
척!
좌우로 늘어선 잘츠부르크 가문의 기사들이 검을 들어 올려 오토 일행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다.
“환영합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전하!”
잘츠부르크 가문의 기사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오토 일행을 반겨 주었다.
“어서 오게! 사위!”
북부대공의 아들이자 엘리제의 아버지인 란돌 공작이 오토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네!”
“란돌 공작을 뵙습니다.”
오토가 엘리제의 아버지 란돌 공작을 향해 예를 갖췄다.
오토가 왕이기는 했지만, 제국의 공작에 비빌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서 와요.”
엘리제의 어머니인 벨라트릭스 공작부인도 오토를 반겨 주었다.
그녀는 우아한 기품이 넘치는 중년 여인이었는데, 젊은 시절 남편인 란돌 공작을 압도하는 검술 실력을 지닌 강자라 알려져 있었다.
즉, 엘리제의 천재성에는 유전적인 영향도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다는 결코 아니었지만.
“우리 손녀사위 왔는가! 껄껄껄!”
북부대공 지안카를로 역시도 오토를 크게 환영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대가 내 여동생의 약혼자로군.”
“반갑다.”
“내 평생 매부를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반갑다.”
엘리제의 오빠들도 오토를 반겼다.
장남 헤르메스.
차남 아레스.
그리고 삼남 케레스.
그들 모두 아라드 제국의 기사이자 북부군을 지휘하는 장교들이었으며, 엄청난 강자였다.
“겉만 너무 번지르르한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잘생기긴 엄청나게 잘생겼군. 얼굴값 한다고 우리 엘리제 속 썩이면 어떡하지?”
“죽고 싶어서 환장하지 않고서야.”
엘리제의 오빠들이 뒤로 속닥속닥 귓속말을 나눴다.
다 들린다고!
다!
“모두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라고 합니다.”
그래도 오토는 엘리제의 가족들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다들 환영해 주는 분위기였고, 적대적인 느낌은 단 1도 없었다.
오빠들이 조금 극성인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제의 가족들에게 있어 오토는 일종의 구원자 같은 존재였다.
가족들 모두 엘리제가 평생 독수공방하며 혼자 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름 약혼자라는 놈(?)과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여겼던 것이다.
즉, 오토는 잘츠부르크 가문에게 있어 아주 귀한 사윗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엘리제의 가족들은 오토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주.
“식은 언제 올릴 생각인가? 콘라드 형님께 말씀은 드렸는가?”
“그래, 자네는 꿈이 뭔가?”
“우리 엘리제를 사랑하나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어디까지 나갔나?”
“설마 벌써 그렇고 그런 단계까지 간 건 아니겠지? 어른 행동 같은?”
온갖 질문들이 쏟아졌다.
“하하. 하하하하.”
오토는 엘리제의 가족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여섯 명이서 한꺼번에 질문을 해 대니 정신이 산만해져서 어느 질문부터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으으! 사, 살려 줘!’
오토가 카미유에게 도와달란 눈빛을 보냈다.
‘이걸 제가 어떻게 도와드립니까?’
하지만 카미유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다 업보려니 하고 받아들이십시오. 처갓집의 관심 아닙니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찮아!’
‘어쩔 수 있습니까.’
‘으으으.’
그렇게 한동안 괴롭힘을 당하던 중 구원자가 나타났다.
덜컥.
저택 문이 열리고, 엘리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엘리제는 평소처럼 군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등이 훤히 드러난 드레스차림에 힐을 신고 있었으며, 옅은 화장과 소소하게나마 장신구까지 차고 있었다.
“……!”
“……!”
“……!”
오토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엘리제를 보고 그만 숨이 멎을 뻔했다.
그야말로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
신이 단 하나의 조각상을 깎는다면, 그건 엘리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쿵쾅쿵쾅!
오죽했으면 오토의 심장이 미친 듯 두방망이질을 쳤을까.
“왔나.”
엘리제가 오토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날 보러 와 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제가 감사하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토는 자기도 모르게 연신 엘리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말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단언컨대, 이 세상 그 어떤 남자라도 엘리제의 미소 앞에서는 넙죽 절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에스코트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레이디.”
오토가 엘리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좋다.”
그렇게 오토는 엘리제가 마차에 탈 수 있게 에스코트해 주었다.
“출발하겠습니다!”
뒤이어 오토와 엘리제가 탄 마차를 포함해 거의 스무 대가 넘는 마차가 줄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회가 열리는 황궁을 향해서.
* * *
마차 안.
“그간 잘 지냈나.”
엘리제가 오토에게 안부를 물었다.
“저야 항상 잘 지내죠. 이래저래 바쁘긴 했지만요.”
“나도 그랬다.”
엘리제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너무 바빠서 널 보러 갈 수가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찾아가기로 해 놓고.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아닙니다.”
오토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바쁘신 거 아는데요, 뭘. 번번이 먼저 찾아와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한걸요.”
“그게 정말인가?”
“그럼요. 그러니까 이렇게 바로 달려왔죠.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고마울 것 없다. 나야말로 고맙다.”
“하하.”
“그건 그렇고.”
엘리제가 오토에게 물었다.
“그간 수련은 열심히 한 건가?”
과연 검밖에 모르는 사람다운 질문.
“어. 그건. 음.”
오토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 씨. 그간 좀 바빴어야지.’
칼리프 왕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대륙진출을 추진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수련을 거의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 차마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틈나는 대로 하긴 했지만.
“솔직히… 너무 바빠서 엘리제 님이 만족하실 정도로 수련하진 못했습니다.”
오토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괜히 거짓말을 했다가 실망감만 안겨 주느니 차라리 이실직고하는 편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군.”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많이 바빴다고 들었다.”
“네?”
“가문에서 네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잘츠부르크 가문에서요?”
“가문은 눈과 귀는 대륙 곳곳에 퍼져 있어서, 네 소식도 자연스럽게 접하기 마련이다.”
“아.”
“수련이야 내가 가르쳐주고 도와주겠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라. 화내지 않을 테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엘리제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 내게 편지하지 않은 건가?”
“펴, 편지요?”
“그렇다.”
“그게… 보내려고 했는데, 너무 바쁘신 거 같아서 참았죠?”
“다음부터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보내라. 아무리 바빠도 편지 한 통 읽을 시간이 없지는 않을 테니.”
그 순간.
‘설마 편지를 기다리셨던 건가?’
오토는 엘리제가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왜 편지를 보내지 않았냐고 물어볼 리 없을 테니까.
“편지… 받고 싶으셨어요?”
“그, 그건 아니다.”
엘리제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홍조가 떠올랐다.
“난 단지.”
“으응?”
“궁금했을 뿐이다.”
“뭐가 궁금하셨는데요?”
“북부군 장병들은 늘 편지를 기다린다. 고향에서 아내나 애인이 보내는 위문편지를.”
“아.”
“얼마나 마음에 위안이 되기에 갑옷 속에 품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니까 저한테 위문편지 받아보고 싶다, 이 말씀이시죠?”
“그, 그런 것은 아니다.”
“에이.”
오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받아 보고 싶으셨잖아요, 위문편지.”
“…….”
“다들 애인한테 위문편지가 오는데, 엘리제 님한테는 오지 않아서 섭섭하셨던 거죠?”
“…….”
“제가 매주 보내 드릴게요.”
오토는 흔쾌히 위문편지를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엘리제는 장벽 너머에서 매일 같이 전투를 치르는 전쟁의 여신.
그런 그녀의 지친 몸과 마음을 편지 한 통으로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써주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그게 정말인가? 매주 편지를 보내준다는 게?”
“그럼요. 제가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편지라도 자주 보내 드려야죠. 앞으로는 꼬박꼬박 보내겠습니다.”
“알겠다.”
엘리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그날 밤.
아라드 제국의 황궁에서는 그야말로 성대하고 호화로운 연회가 열렸다.
연회장의 크기부터가 과장을 좀 보태서 어지간한 왕국의 왕궁만 한 크기였으니, 준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돈이 들어갔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연회에는 이 대륙에서 가장 고귀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초대받았기에, 그들이 입장할 때마다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토와 엘리제 커플만큼 이목을 집중시킨 사람은 없었다.
“엘리제 아가씨께서 입장하십니다.”
“이오타 왕국의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오토와 엘리제가 연회장에 들어선 순간.
“……!”
“……!”
“……!”
연회장에 먼저 입장했던 사람들은, 오토와 엘리제를 보고 그만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오토와 엘리제가 이루는 미(美)의 조화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어서,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맙소사!”
“세상에 저런 커플이 있다니!”
“어찌 저리 잘생기고 아름답단 말인가!”
“도대체 저 청년은 누구이기에 저리 잘생겼단 말인가!”
“어머, 어머!”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을 떠들어 대며, 오토와 엘리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빌어먹을.’
먼저 연회장에 입장했던 아르곤 대제는 그 광경을 보고 분통을 터트렸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르곤 대제가 잘생겼다고 한들 오토에 비하면 생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