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05화 (206/401)

205화

오토는 아르곤 대제를 제거할 것을 결심하자마자 카이로스를 찾아갔다.

“…얘 뭐해.”

카이로스는 막사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마이트리야의 묵주를 통해 얻은 교리를 음미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수도승 같네.’

오토는 카이로스의 모습이 다소 낯설었다.

허구한날 술이나 퍼마실 줄만 알았지,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드르렁.”

카이로스가 코를 골았다.

“드르렁, 드르러어어어어어엉.”

“…….”

“쿠우우울.”

명상을 하다가 앉은 채로 잠든 게 분명했다.

“니가 그럼 그렇지.”

오토는 잠든 카이로스를 발로 뻥! 차서 깨웠다.

“뭐, 뭐냐!”

카이로스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뺀질이 네놈이 감히….”

“아르곤 그 새끼, 그냥 죽이자.”

“으응?”

“그냥 죽여 버리자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카이로스가 졸린 눈을 비비며 오토에게 물었다.

“그놈은 가지고 놀다가 천천히 말려 죽이기로 하지 않았더냐?”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오토가 아르곤 대제가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 카이로스에게 설명해주었다.

“계속 내버려뒀다간 애꿎은 피해자들만 더 생길 거 같아서. 그냥 죽이는 게 나을 것 같아.”

“으음.”

“우리 재밌자고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 보게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더 끔찍한 짓을 할 텐데.”

“그건 뺀질이 네놈 말이 옳다.”

카이로스도 오토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놈 같으니.”

카이로스가 분노했다.

“이제는 자기를 믿는 백성들을 노예로 팔아 치워서 군자금을 마련하겠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구나.”

“그렇지?”

“그놈은 인륜을 저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천륜까지 저버렸으니, 마땅히 죽음으로써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근데.”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할 수 있겠냐?”

“음?”

“이길 수 있겠냐고.”

“그걸 말이라고!”

카이로스가 발끈했다.

“짐의 무력은 단 한 순간도 놈에게 뒤쳐진 적이 없었노라! 일대일로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근데 지금은 아니잖아.”

“…….”

“아르곤 대제는 환생한 지 30년이 넘었어. 넌 고작 3년이고. 시간이 10배가 차이가 난다고.”

오토의 지적은 정확했다.

과거 카이로스의 무력이 얼마나 뛰어났다고 한들, 아르곤 대제 또한 만만치 않은 강자였다.

그런데 환생한 시간이 10배가 넘는 차이가 난다면, 카이로스가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카이로스는 딱히 수련을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이번 생에서는 강함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고, 내키는 대로 살기로 작정했기에 미친 듯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 지금 붙으면 무조건 져.”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현실을 일깨워주겠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긴다는 거, 아냐?”

“그, 그건.”

“지금 아르곤 대제는 리볼트보다 못해도 2~3배는 강해.”

“…….”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탈탈 털릴 거다.”

“이… 이이…!!!”

카이로스는 막상 아르곤 대제를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상대도 안 되던 놈에게 이기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탈탈 털리게 생겼으니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그냥 함정을 파서 잡을까? 힘 다 빼 놓고 말려 죽이면….”

“싫다!”

카이로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짐은 곧 죽어도 정면대결이다! 아르곤 그 새끼를 상대로 어떻게 비열한 수법을 쓰겠느냐! 남자답게 일대일로 쳐부숴야 속이 시원할 터인데!”

“꼴에 자존심은.”

“뭣이?”

“그래서 이길 수 있냐고.”

“…….”

“그러게 평소에 수련 좀 열심히 해 두지 그랬냐.”

“다, 닥쳐라!”

카이로스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오토에게 소리쳤다.

“짐이 알아서 할 터이니 뺀질이 네놈은 판만 깔아주면 된다! 알겠느냐!”

“그래서 진짜 일대일로 붙겠다고?”

“그렇다!”

“어떻게?”

“짐에게 불가능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면 그만이니라!”

“그런다고 돼?”

“된다!”

카이로스는 그렇게 소리치더니, 철퇴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너 어디 가냐?”

“수련하러 간다.”

“수, 수련?”

“아르곤 그놈을 쳐 죽이려면 수련을 해 두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긴 하지.”

…라고 말했지만 오토는 사실 좀 회의적이었다.

‘격차가 심한데 벼락치기한다고 그게 되겠냐.’

카이로스가 제아무리 과거의 절대자라지만, 기적을 일으키기엔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오토는 길어도 1주일 안에 아르곤 대제를 제거할 생각이었는데, 그 안에 카이로스가 지금보다 몇 배를 더 성장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 * *

한편, 아르곤 대제 일당은 노예로 팔아치울 백성들을 모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징집이다!”

“군에 복무해서 공을 세우는 자들게는 새로운 왕조가 열리면 귀족의 작위를 부여할 것이다!”

“지금 군에 입대하면 매달 월급의 3배를 지급하겠다!”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은 감언이설로 젊은 장정들을 징집했다.

“입대하겠습니다.”

“저도 입대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은 앞 다투어 입대를 신청했다.

그들에게는 이 징집이 기회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도 막막하고,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돈도 주고 나중에 귀족의 작위까지 약속한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약 2주 동안 훈련에 들어간다. 다들 따라오도록.”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은 입대를 신청한 청년들은 데리고 외딴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으악!”

“사, 살려 줘!”

젊은이들은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에게 제압당한 뒤 꽁꽁 묶이고, 입에 재갈까지 물려졌다.

“건장한 놈들이니 값은 후하게 치러 주셔야 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젊은이들은 곧장 사하라 왕국에서 온 노예상인들에게 팔렸고, 비밀리에 이동되었다.

그렇게 팔려간 젊은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지만, 아르곤 대제가 점령한 지역의 백성들은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로 떠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도 진실을 알아챌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아르곤 대제는 팔려간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투입되었다가 전사한 것으로 통보할 생각이었고, 만약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죽여 버릴 계획이었다.

그렇게 아르곤 대제는 젊은이들을 팔아 치우고, 때로는 적대 세력 안에 자리한 마을을 약탈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건 반인륜적인 인간사냥이었다.

아르곤 대제의 기사들은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그저 물건 취급했다.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사하라 왕국의 노예상인들에게 넘기고, 그 자리에서 금궤를 받아 챙겼다.

하지만 누구도 아르곤 대제의 악행을 알아채고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만큼 로우레딘 왕국의 치안은 개판이었으니까.

흉년으로 인해 시작된 기근과 왕실의 폭정 탓에 완전히 무정부상태가 된 로우레딘 왕국은, 아르곤 대제와 같은 무법자들이 활개 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완벽할 것만 같았던 아르곤 대제의 범죄는, 이오타 왕국의 마검사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감시당하는 중이었다.

“이동경로 계속 추적한다.”

“예.”

마검사들은 매우 은밀하게 노예상인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고, 그들이 어느 항구를 통해 사하라 왕국으로 가는지도 모조리 알아냈다.

“우리 임무는 여기까지다.”

마검사들은 노예상인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자마자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드, 드레이크의 함대다!”

“드레이크의 함대가 나타났다!”

노예들을 싣고 사하라 왕국으로 향하던 노예상인들은, 바다 한복판에서 꼬르륵 군도의 지배자인 드레이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불법적인 노예무역을 하는 선박들이다. 모조리 나포하라.”

“예! 제독!”

이제는 어엿한 이오타 왕국의 해군참모총장이 된 드레이크는, 무역선들을 모조리 나포한 뒤 노예상인들을 포획했다.

“이놈들은 모조리 바다에 던ㅈ….”

아차차.

드레이크는 노예상인들은 바다에 던져 물고기밥으로 만들어 버리려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말을 멈췄다.

‘돈이 아주 썩어나지? 어? 상납금 낼 만한가 보네?’

어디선가 오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무, 물고기밥이 아니라. 저 노예상인들은 노예로 만들어 칼리프 왕국에 판매한다.”

“사형시키지 않습니까?”

“사형을 시키면….”

드레이크가 부관의 물음에 대답했다.

“우리가 돈을 못 벌잖아.”

“예…?”

“범죄자들은 곧 돈이야. 어차피 불법적인 노예무역을 한 놈들이니까,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나아. 그게 인과응보니까.”

“예, 제독.”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드레이크도 노예상인들은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꼬르륵 군도를 해군기지로 발전시키고, 이오타 왕국에 상납금까지 바치려면 예산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드레이크는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 노예상인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는 대신 노예로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던 것이다.

* * *

오토는 점령지역을 관리하면서, 아르곤 대제를 잡아 죽일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엘리제에게 위문편지를 보냈다.

북부 장벽 너머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엘리제를 위해 매주 정성스레 편지를 썼고, 전령을 통해 전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초콜릿도 넣고. 사탕도 넣고. 쿠키도 넣고. 또 뭘 보내 드려야 되지?’

오토는 엘리제에게 소포도 보내주었다.

편지와 함께 틈틈이 먹을 간식까지도 챙겨 보낸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 왜 고무신 된 거 같냐.”

오토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군대 간 남자친구를 둔 여자친구 같다는 걸 깨닫고 어이가 없었다.

“대한민국 여자들이 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때.

“잘 있었나.”

“저야 늘 잘 있… 히익?!”

오토는 엘리제가 어느새 자신의 막사 안에 와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다.”

“하하, 하하하하.”

“많이 놀랐나?”

“좀 놀라긴 했죠.”

안 그래도 엘리제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는데, 이렇듯 불쑥 나타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어느새 한 달이 지났구나.’

오토는 시간이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가는 걸 느끼며, 엘리제에게 자리를 권했다.

“일단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앉으세요.”

“고맙다.”

엘리제가 오토에게 물었다.

“그런데 뭘 하고 있던 건가?”

“아, 이거요.”

오토가 대답했다.

“편지 쓰고 있었죠.”

“내게 보낼 편지 말인가?”

“그럼요.”

이번에는 오토가 엘리제에게 물었다.

“편지는 잘 받으셨어요? 매주 보냈는데.”

“잘 받았다.”

엘리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보내준 간식들도 잘 먹었다.”

“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엘리제는 오토가 보내준 편지와 소포들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많이 부러우셨겠지. 다들 애인한테 편지 받고 소포 받는데. 그간 한 통도 못 받으셨으니까.’

오토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차 한 잔 하고 산책이나 하실래요?”

“좋다.”

오토는 엘리제와 더불어 차를 마신 뒤 밤산책에 나섰다.

그러던 중.

“뺀질아!!!”

저 멀리서 카이로스가 부리나케 뛰어와 소리쳤다.

도대체 뭘 하다 왔는지, 카이로스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뺀질아, 부탁이 있다. 마침 잘됐구나.”

“뭐가?”

“뺀질이 네놈 약혼녀 좀 잠시 빌리겠다.”

“그게 뭔 개소리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