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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06화 (207/401)

206화

“왜 화를 내고 그러느냐! 뺀질아!”

“너 같으면 화 안 내게 생겼냐? 미친놈이 하다하다 남에 약혼녀를 빌려달란 소리를 하네.”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너 아리엘 누나한테 다 말한다?”

“야 이 뺀질이 놈아!”

카이로스가 버럭 성질을 내었다.

“짐이 네놈 약혼녀를 어떻게 하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짐은 단지 수련 상대가 필요할 뿐이란 말이다!”

“아?”

“수련 상대로 저 아이만 한 상대가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네.”

오토는 말귀를 잘못 알아들었다는 걸 깨닫고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런 뜻인 줄은 몰랐지. 헤헤헤.”

“아무튼, 좀 빌려줄 수 있겠느냐?”

“빌려주고 말고 할 게 어딨냐? 도와주고 말고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지.”

오토가 엘리제를 돌아보았다.

“저 아저씨 수련하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물론이다.”

엘리제가 흔쾌히 카이로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르신.”

“괜찮겠느냐? 너에게는 귀찮은 일일 것이다.”

“아닙니다.”

엘리제가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배우는 것이 있을 테니, 어르신께서는 부담 갖지 마십시오.”

“껄껄껄!”

카이로스는 엘리제가 수련을 도와주겠다고 말하자 엄청나게 좋아했다.

“정말 고맙다! 내 나중에 술 한 잔 거하게 사도록 하마!”

“예, 어르신.”

“그럼 시간은 언제가 괜찮겠느냐?”

“일단은.”

엘리제가 오토를 돌아보았다.

“오늘 밤은 좀 그렇고. 내일 아침부터 도와드리겠습니다.”

“껄껄껄! 알겠다! 내 참고 기다리마!”

카이로스는 당장에라도 엘리제와 대련하고 싶어 몸이 잔뜩 달아오른 것 같았지만, 분위기를 봐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본인 일이 바쁘기로서니, 혈기왕성하고 꽃다운 청춘들의 밤 산책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미 살짝 방해하긴 했지만.

“흠흠. 그럼, 좋은 시간들 보내도록 해라. 흠흠흠.”

카이로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비켜 주었다.

“무슨 일 있는 건가?”

“아, 그게요.”

오토는 엘리제의 물음에 카이로스와 아르곤 대제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래서 아르곤 대제가 환생한 자를 처단하려는 건가?”

“네.”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일대일로는 못 이길 거 같으니까 벼락치기라도 하려나 봐요.”

“벼락치기라….”

“나름 오래간만에 이 악물고 수련한다는데,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르신께선 과거에 절대적인 무력을 손에 넣어 보신 경험이 있으니, 방법을 찾으실 것 같다.”

“예?”

“그만한 무력을 손에 넣어 본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어르신께도 방법이 있으니 벼락치기라도 하시려는 걸 거다.”

“그런가요?”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다.”

“네?”

“왜 내게 계속 존댓말을 하는 건가?”

“어?”

오토는 엘리제의 물음에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그러네. 내가 왜 계속 존댓말을 하고 있냐. 내가 오빤데.’

사실 오토가 엘리제보다 2살 더 많았다.

“그, 그러네요. 계속 존댓말하고 있었네. 하하하.”

“내가 불편한가?”

“그게 아니라.”

오토가 설명했다.

“엘리제 님은 워낙 강하시고, 혈통도 좋으시고, 예쁘시고, 본받을 만한 점이 많은 분이니까. 제 입장에서는 불편하다기보다는 어렵죠.”

“어려워할 필요 없다.”

엘리제가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그냥 사람일 뿐이다.”

“그건 알지만….”

“편하게 해라, 편하게.”

“편하게요?”

“말 편하게 해도 좋다.”

하지만 오토는 엘리제에게 섣불리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그래도… 되는… 건가…?”

“물론이다.”

“그, 그럼. 앞으로 말 편하게. 하, 할게. 하하. 하하하.”

편하게 한답시고 애써 말을 놓았지만, 오토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낑낑거렸다.

오토에게 있어 엘리제란 너무나도 어려운 사람이라서, 말을 놓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 * *

휘영청 달 밝은 밤.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오토와 엘리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약혼자.”

“으응?”

엘리제가 오토에게 물었다.

“너는… 아이를 가지고 싶은가?”

“잘못 들었습니다?”

오토는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아이를 갖고 싶으냐고 물었다.”

“가, 갑자기?”

오토는 정말로 당황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나?”

“그, 그건 아닌데.”

“그럼 갖고 싶나?”

“어. 음.”

“솔직히 말해도 괜찮다.”

“갖기 싫은 건 아니고.”

“그럼 뭔가.”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까. 아직은 현실로 와닿지가 않아서. 하하하.”

“대륙 정세를 걱정하는 건가?”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로운 시대라면 그러고 싶지. 물론 전쟁 중에도 사랑이 꽃피기는 한다지만.”

“그래서 나와 결혼하면, 아이를 가질 생각인가?”

“그, 그야….”

“나도 당장은 결혼할 상황도 아니고, 아이를 가지기 힘든 입장이다. 하지만.”

“하지만…?”

“많이 낳고 싶다.”

“어, 얼마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나는 오빠들이 많다. 어린 시절 오빠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좋았고, 행복했다. 오빠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오토는 이건 오빠들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빠들은 두들겨 맞아서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던데???’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오빠들의 생각일 뿐이겠지만.

“그래서 나는 힘닿는 데까지 낳고 싶다.”

“그, 그렇구나. 하하. 하하하.”

“네 생각은 어떤가?”

“능력이 되면 그러고 싶지.”

“능력은 키우면 된다.”

“으응?”

“지금부터 건강관리에 힘쓰도록.”

그게 무슨 말이야?

“건강… 관리?”

“충분히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내가 알아들었다고?

“아기를 갖는 건…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라 들었다.”

“…….”

“그러니 지금부터 스태미나를 기르는 데 힘써라.”

“으, 으응.”

오토는 그제야 엘리제의 말뜻을 이해했다.

‘…정력 키우라는 거잖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런 얘길 들어야 하다니.

‘설마 내가 비실해 보여서 그러는 건가?’

오토는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증명(?)을 할 수는 없으니 일단은 꾹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세계에서 누군가와 결혼해 아기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라…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오토는 이방인.

왜 이 세계에 오게 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

그런 입장에서, 엘리제가 던진 주제는 매우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그런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 * *

다음 날 아침.

오토는 엘리제와 함께 뒷산으로 향했다.

쾅!

콰아앙!

뒷산은 마치 전쟁이라도 터진 듯 폭음이 요란했다.

“…뭔 수련을 이렇게 요란하게 하냐고.”

오토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카이로스를 만나 보기로 했다.

“왔느냐?”

카이로스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밤새 수련한 것 같았다.

‘어?’

오토는 카이로스의 변화를 눈치채고, 살짝 놀랐다.

꿈틀꿈틀!

어느새 카이로스의 덩치가 상당히 커져 있어서, 근육들이 터질 듯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짧은 사이에 벌크업을 했다고?’

근육은 절대 단기간에 성장하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빠른 근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너 뭐 약이라도 먹었냐?”

“엥? 그게 무슨 말이냐?”

“갑자기 덩치가 왜 그렇게 커진 거냐?”

“껄껄!”

카이로스가 웃었다.

“짐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너 약 했지? 근육 크는 약 같은 거 먹은 거 아냐?”

“짐이 뺀질이 네놈 같은 줄 아느냐? 짐 같이 위대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육체의 성장도 정신력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게 뭔 개소리야.”

오토는 카이로스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만 하면 정신력이래. 그놈의 정신력, 정신력.”

그때.

“사실이다.”

엘리제가 카이로스의 말을 지지했다.

“극한에 이른 정신력은 육체를 지배한다.”

“그, 그게 정말이라고?”

“그렇다.”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나의 힘이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끌끌끌.”

그러자 카이로스가 그것 보라는 듯 미소를 흘렸다.

“들었느냐? 뺀질아? 불가능은 네 녀석 같이 정신력이 나약한 놈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니라! 크핫핫핫핫!”

오토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

다른 세계에서 온 오토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 짐의 수련을 도와줄 준비는 되었느냐?”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예, 그럼.”

스릉!

엘리제가 검을 뽑았다.

스윽.

카이로스 역시 철퇴를 뽑아들었다.

지난 대련에서는 목검을 썼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양쪽 다 진검을 든 이상 전력으로 맞붙으려는 것이다.

“먼저 가마.”

“예, 어르신.”

카이로스가 엘리제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련.

“뭐, 뭐야!”

오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콰앙!

펑!

펑펑! 펑! 펑!

콰아아앙!

카이로스와 엘리제의 대련은 결코 평범한 대련이 아니었다.

그건 초인(超人)들의 싸움이었다.

“…크윽!”

오토는 카이로스와 엘리제가 충돌할 때마다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다.

두 사람이 충돌할 때 터져 나오는 충격파가 어찌나 어마어마하던지, 주변에 있는 바위들이 부서지고 나무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져 나갔다.

‘이게… 진짜 강자들의 싸움이구나.’

오토는 자신과 리볼트의 대결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카이로스와 엘리제의 대련은, 단순히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였다.

엘리제의 검과 카이로스의 철퇴가 맞부딪힐 때마다 터져 나오는 충격파는, 강하다 못해 오토의 옷깃을 찢어발기고 피부까지 찢어 놓았다.

저 정도 파괴력이라면, 단 한 방에 성벽을 무너뜨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도대체 어떻게 이 짧은 기간에 저 정도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야???’

오토는 카이로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듯 비약적인 강함을 이뤄낸 것이 놀라웠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는 건지, 그 비결이 몹시 궁금했다.

‘끝나면 물어봐야겠다.’

오토는 카이로스에게 비결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았다.

‘저런 움직임이 가능해? 아, 저기서 저렇게 하는 거구나. 마나를 저런 식으로 써?’

카이로스와 엘리제의 대결은 오토에게도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절대강자들의 대결은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엄청나게 많아서, 수련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효과를 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지던 대련은, 결국 카이로스의 패배로 끝났다.

스릉!

어느새 엘리제의 검이 카이로스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주르륵!

카이로스의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전이었다면 목이 날아가고도 남았으리라.

“…….”

카이로스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굳었다.

“…짐이 졌다.”

카이로스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아직 한참 멀었구나, 멀었어.”

“그래도 기량이 올라오고 있질 않습니까.”

엘리제가 위로했지만, 카이로스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이질 줄을 몰랐다.

“옛날에 비해 아직 반도 못 올라왔구먼. 쩝.”

“천천히 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렇다만. 쩝.”

오토는 카이로스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그게 옛날에 가졌던 힘의 반도 안 된다고?”

“그럼 고작 이 정도로 대륙 최강을 논할 수 있었겠느냐?”

카이로스가 오토에게 되물었다.

“이 정도로는 짐의 전성기 시절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

“꼼수를 써서 단기간에 끌어올리긴 했다만, 역시 쉽지 않구나.”

“그 꼼수가 뭔데?”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는지, 아까부터 그 비결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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