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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09화 (210/401)

209화

형님 폐하.

과거 아르곤 대제가 카이로스를 부르던 호칭이었다.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그것은 아니 될 말이옵니다, 폐하.’

‘아 좀!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래도?’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그럼 형님, 하고 폐하라고 불러.’

‘예?’

‘형님 폐하라고 부르라고.’

‘그, 그건.’

‘우린 의형제잖아. 아우야.’

‘폐하….’

‘앞으로는 형님 폐하라고 불러. 알았지.’

‘예, 폐….’

‘어쭈? 황명이다. 앞으로는 형님 폐하라고 불러라.’

‘형님… 폐하.’

과거 카이로스는 아르곤 대제가 자신을 곧 죽어도 폐하라고 부르는 걸 꾸역꾸역 형님 폐하라고 부르게끔 시켰다.

그건 친근함의 표시이자 무한한 신뢰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카이로스는 아르곤 대제를 아꼈던 것이다.

“혀, 형님 폐하…!”

아르곤 대제는 자기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450년 전 자신이 배신했던 형님이 옛날 모습 그대로 살아 있을 줄은 꿈에도,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오랜만이다, 아우야.”

카이로스가 씨익 웃으며 아르곤 대제를 향해 한 발걸음 더 나아갔다.

그러자 아르곤 대제는 한 발걸음 뒷걸음질 쳤다.

쿵쾅쿵쾅!!!

아르곤 대제가 얼마나 경악했느냐 하면, 심장 박동 소리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어, 어떻게… 450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살아 계ㅅ….”

“아우야.”

카이로스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네놈도 환생했는데, 짐이라고 곱게 저승으로 갈 줄 알았느냐?”

“……!”

“그나저나 존경하는 형님 폐하를 만났는데 반응이 영 별로구나?”

“말도… 안 돼… 이 무슨….”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

“아르곤 네 이노오오오오옴!!!”

“이 개 같은 새끼야!!!”

“네놈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서 개 먹이로 던져 주마!!!”

카이로스의 심복인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가 아르곤 대제를 향해 피 맺힌 원한을 토해내었다.

“네, 네놈들은!”

아르곤 대제는 그런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비록 영혼기사가 되었지만, 아르곤 대제가 그들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목소리와 말투가 그들이 카이로스와 용병 시절부터 함께했던 동료들이자 충신 중의 충신이라는 걸 증명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들은 나중에 하고.”

카이로스가 아르곤 대제에게 물었다.

“왜 그랬냐?”

“…….”

“그렇게도 황위에 오르고 싶었냐? 그냥 달라고 했으면 줬을 텐데.”

“개소리!”

아르곤 대제가 카이로스의 말을 부정했다.

“내가 원했다고 네놈이 황위를 넘겨주었을 것 같은가!”

아르곤 대제는 카이로스의 말을 철저히 부정했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말은 100퍼센트 진심이었다.

애초에 카이로스는 대륙 통일이니, 황제니 하는 것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저 혼란스러운 세상을 안정화시키고, 이 대륙에 평화가 찾아오기만을 바랐을 뿐.

사실 카이로스는 전쟁이 끝나고 태평성대가 찾아오면, 성군의 자질을 가진 자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순정도 있었지만, 황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황위를 아르곤 대제가 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아우야.”

카이로스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르곤 대제를 향해 말했다.

“사실 짐은 네 녀석에게 황위를 물려주려고 했었다.”

“……!”

“네 녀석이 내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를 만큼 성군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북부 장벽이 완성되면, 그리하려고 하였다. 황위를 네 녀석에게 넘기고, 시골의 작은 수도원으로 들어가 소소하게나마 교단의 법을 설파하려 하였다. 그런데.”

카이로스가 서릿발 같은 어조로 아르곤 대제를 질책했다.

“네놈이 처음부터 황위를 노리고 내 밑으로 들어왔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

“……!”

“그래, 어찌되었던 네놈이 선정을 베푸는 성군이 되어 나라를 잘 이끌어 갔다면 짐은 복수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느니라. 하나 네놈이 일군 제국이 어떠하였느냐?”

카이로스는 진심으로 분노했는지, 두 눈에서 시퍼런 귀화(鬼火)를 뿜어내며 아르곤 대제를 질책했다.

“썩어빠진 나라를 쳐부수고 세운 나라가, 결국에는 귀족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리지 않았더냐? 결국 우리 손으로 무너뜨린 나라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썩어빠진 나라가 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카이로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르곤 대제는 대륙을 통일한 후 불안한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귀족들, 그리고 영주들과 수없이 많은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결속을 다졌다.

그 결과 크라레스 제국은 지방의 귀족들과 영주들이 득세하는 국가가 되어 버렸고, 그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병들어 갔다.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난세로 뛰어들었던 카이로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 * *

아르곤 대제는 카이로스의 호된 질책에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에 불과했다.

“다, 닥쳐라!”

아르곤 대제가 카이로스를 향해 소리쳤다.

“태생부터가 천한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오호라?”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귀족들이 평민들을 지배하는 것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게 뭐가 어떻다는 것이냐! 약자가 강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거늘!”

아르곤 대제는 철저하게 카이로스의 말을 부정했다.

“네놈 같이 출신 성분이 천한 놈이 뭘 알겠느냐! 고귀한 혈통이 통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네놈은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명색이 황제라는 자가 벌레 같은 백성들을 위해….”

“약육강식이라.”

카이로스가 아르곤 대제의 말을 끊고, 발 발걸음 더 내디뎠다.

“말 한번 잘했느니라.”

“……!”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스윽.

카이로스가 철퇴를 빼들었다.

“강자인 이 형이 약자인 우리 아우를 잡아먹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겠구나?”

“이… 이이…!!!”

“오늘. 네놈은 감히 짐을 배신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다음 순간.

쒜에에에에에에에엑!

카이로스가 마치 포탄과도 같은 속도로 아르곤 대제를 덮쳤다.

* * *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폐하를 지켜라!”

“적들을 모조리 처단하라!”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일제히 오토 일행을 향해 덤벼들었다.

이에 오토는…….

“단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절대로.”

오토가 마검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오토는 업보가 쌓이는 걸 막기 위해, 혹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불필요한 살생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곳에 있는 적들은 죽어 마땅한, 인간이길 포기한 악마들이었다.

자신들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이용하고, 노예로 만들어 판 인간들.

그런 자들에게 베풀 자비 따위, 오토에게는 없었다.

때마침 대학살의 서를 사용하기 위한 영혼 에너지가 필요하던 참이었으므로, 오토는 마음 놓고 적들을 응징하기로 한 것이다.

마음을 독하게 먹은 오토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으악!”

“으아아아아아악!”

오토는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며, 그간 갈고 닦은 검술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임을 증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으으으!

오토는 적들을 돌로 만들어서 깨부수고, 중독시켜서 죽이기도 했다.

리볼트와의 전투에서 마검사로서의 전투 스타일에 눈을 뜨게 된 오토는, 검술과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적들을 향해 무자비한 살육을 보여 주었다.

그런 오토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느냐 하면, 지켜보던 카미유마저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

‘전하께 이런 모습이 있었나.’

카미유는 적들을 섬멸하는 오토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평소 최대한 살생을 자제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무자비하게 적들을 학살하는 오토가 180도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악마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런 오토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느냐 하면, 공포에 질린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어디 그뿐인가?

“하, 항복! 항복하겠소!”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아예 전의를 잃고 항복하는 자들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항복은 x발.”

오토가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살고 싶었으면 몇 년 전부터 똑바로 살았어야지.”

“크악!”

“항복은 지옥에 가서나 해라. 거기서도 항복은 안 받아주겠지만.”

오토가 목숨을 구걸하던 기사를 둘로 쪼개 버리며 내뱉었다.

오토는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을 단 한 명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노동자들과 로우레딘 백성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악행들을 떠올려 보면, 자비를 베푼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이건 복수다.”

오토가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을 쳐 죽이며 말했다.

“네놈들에게 짓밟혔던 자들의 복수.”

오토는 철저하게 응징해 줄 생각이었다.

비록, 그 응징이 학살이 될지라도.

* * *

한편, 뒤엉킨 카이로스와 아르곤 대제는 서로를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어대며 맞부딪혔다.

콰앙!

콰앙! 쾅! 쾅!

카이로스가 휘두르는 철퇴는 벽을 무너뜨리고, 바닥을 꺼뜨렸으며, 단순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의 파괴력을 담아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지금 카이로스가 휘두르는 철퇴가 곁을 스친다 해도 육체가 산산조각으로 찢어질지도 몰랐다.

그만큼 철퇴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격파가 가히 어마어마해서, 한 방 한 방이 포탄에 가까운 위력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곤 대제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니, 아르곤 대제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어느새 거대한 대검을 꺼내든 아르곤 대제가 카이로스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존경하는 형님 폐하. 큭큭.”

아르곤 대제의 얼굴에 여유가 넘쳤다.

왜냐하면…….

“어째 예전만 못하신 듯하옵니다. 큭큭큭.”

아르곤 대제는 카이로스의 무력이 전성기 시절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성기 시절의 카이로스는 철퇴 한 번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작은 산 하나를 무너뜨리는 게 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력을 자랑하던 절대자였다.

오죽했으면 전장에 카이로스가 나타나기만 해도 적들이 필사적으로 후퇴했을까.

당시의 카이로스는 그야말로 무신(武神)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이 정도로는 결코 카이로스라 부를 수 없었다.

철퇴 한 자루로 제국을 일군 사내의 무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옛날.”

아르곤 대제가 대검에 오러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형님 폐하께서는 무적의 무력을 손에 쥔 존재셨지요. 감히 배신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게 만드는 그런 존재셨습니다. 그때도 천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형님 폐하를 제거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옵니다. 하나, 지금은 아닌 듯하옵니다.”

아르곤 대제는 어느새 자신감은 되찾은 상태였다.

카이로스의 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엄습하던 공포가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비록 형님 폐하께는 미치지 못했다고는 하나, 이 아우의 무력도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던 실력이옵니다. 한데, 고작 그 정도 무력으로 이 아우를 혼내주려 하셨던 것이옵니까?”

그 순간.

촤라라라라락!

아르곤 대제가 카이로스를 향해 그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는 그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덥석.

카이로스가 아르곤 대제가 휘두른 검을 맨손으로, 그것도 한 손으로 가볍게 막아낼 줄이야.

씨익-

카이로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 뭐라 그랬느냐?”

아르곤 대제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싹!

카이로스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너무나도 무시무시해서, 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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