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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12화 (213/401)

212화

“가지 마…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가지 말란 말이야… 흑흑… 흑흑흑….”

아리엘은 카이로스가 완전히 사라지자 털썩 주저앉아 오열했다.

“흑흑… 흑흑흑… 흑흑흑흑….”

아리엘이 어찌나 서럽게 울었던지, 평소의 그 누님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4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기적에 가까운, 아니 기적을 이루었는데 이렇듯 허무하게 끝나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폐하! 저희를 놔두고 어딜 가시옵니까? 폐하!”

“오라버니, 오라버니!”

“이런 젠장! 이게 말이나 됩니까! 폐하, 폐하!”

영혼기사들 역시 사라져 버린 카이로스를 부르짖으며 슬퍼했다.

설마 하니 아르곤 대제를 처단한 이후 승천해 버리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맙소사.”

카미유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카이로스 어르신께서 사라지시다니….”

오직 한 사람.

“흠.”

오토만이 뭔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하, 정말 카이로스 어르신께서 사라지신 겁니까?”

“그렇겠지???”

오토가 그걸 왜 나에게 묻느냐는 듯 대꾸했다.

“무리해서 전성기 시절의 무력을 내보려다가 강제로 세상에서 추방된 거 같은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드네.”

“예?”

“이게 개념이 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서.”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완전히 사라진 건가? 아니면 허공법계에 삼켜진 건가? 소멸하진 않았을 거 같은데. 생명체로서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한 것뿐이니까.’

영혼이 사라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면 데리고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살의 서는 허공법계에 접속할 수 있는 일종의 매개체이자 ID 같은 것이었으므로,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시도라도 해보자.’

이대로 카이로스를 떠나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간 정도 많이 들었고, 이제야 아리엘을 만나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데 승천해 버린 카이로스가 불쌍했다.

물론 카이로스 본인이 자초한 바였지만.

‘이게 악마한테 영혼을 판 거랑 뭐가 달라? 악마한테 잡혀가나 강제로 승천당하나 똑같지. 그렇게 큰소리 떵떵 치더니. 쯧쯧.’

오토는 카이로스가 자신만의 특별한 비법 같은 게 있다고 거짓말했다는 걸 떠올렸다.

‘하여간 허세는.’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학살의 서를 꺼내 들었다.

“내가 데리러 가 볼게.”

오토가 선언했다.

“……!”

“……!”

“……!”

“……!”

그러자 모두가 놀랐다.

사라져 버린 카이로스를 어떻게 데려오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그, 그게 정말이니?”

눈물범벅이 된 아리엘이 오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정말 그럴 수 있겠니? 정말로? 흑흑! 카이로스를 데려올 수 있어?”

“예, 뭐. 일단 시도라ㄷ….”

“데려와만 준다면 내가 뭐든 할게!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고! 그러니까 제발… 흑흑! 제바아알….”

“일단 진정하시고.”

오토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아리엘을 진정시켜 주었다.

“시도는 해 볼 테니까, 진정하세요.”

“흑흑… 흑흑흑….”

오토는 너무 기대하지 말란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희망을 조금이라도 꺾기엔 아리엘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던 것이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건가.’

오토는 그런 아리엘을 바라보며, 그녀가 얼마나 카이로스를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450년이 지나고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니….

‘엘프라서 가능한 걸까?’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카이로스를 사랑하는 아리엘의 마음은 누가 뭐래도 진짜배기.

‘저 누님 때문이라도 데리고 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학살의 서를 펼쳤다.

* * *

때마침 시기가 좋았다.

아르곤 대제의 부하들을 도륙 낸 덕분에, 대학살의 서에 영혼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였다.

만약 영혼에너지가 없었더라면 허공법계에 접속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이로스 살리자고 급한 대로 살인을 저지를 순 없지 않겠는가?

악당이 땅 파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해보자.’

대학살의 서를 펼친 오토는 즉시 전능의 권능을 사용해 보았다.

전능하다 했으니, 허공법계에 접속을 시도해 본 것이다.

스으으으!

대학살의 서가 은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르륵.

오토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카이로스처럼.

“저, 전하!”

놀란 카미유가 오토를 향해 소리쳤다.

“괜찮아. 일단 가 볼게.”

오토는 그렇게 대답하는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 결과.

‘보인다.’

오토는 어느 순간 자신이 허공법계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공법계는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었고, 그 공간의 수는 무한에 가까웠다.

지금 오토가 와 있는 허공법계는 아트로포스 교단의 신전이었다.

그 옛날 카이로스가 잠시 몸담았던 교단 말이다.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카이로스는 그곳에서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야!”

오토는 저 멀리 카이로스를 향해 소리쳤다.

“음?”

카이로스는 실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다가, 오토가 달려오고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빼, 뺀질이?! 네 녀석이 여긴 어떻게 왔느냐?”

“어떻게 오긴 뭘 어떻게 와? 다 오는 수가 있지.”

“뺀질이 이 녀석아, 여긴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카이로스가 오토를 타박했다.

“여길 드나들어 버릇하다가는 뺀질이 네 녀석도….”

“시끄럽고.”

오토가 카이로스의 말을 잘랐다.

“너 근데 여기서 뭐 하냐? 방금 전까지 이별해 놓고 여기 와서 명상이 되냐?”

“짐이 여기 온 지는 벌써 10년도 넘었다.”

“뭐?!”

“허공법계와 현실은 시간 개념이 완전히 다르지 않더냐.”

“그, 그래?”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뭘 어쩐 일이긴 어쩐 일이야. 데리러 왔지.”

“뺀질이 네 녀석이 짐을 데리러 왔단 말이냐?”

카이로스가 놀랐다.

“그게 가능한 일이더냐?”

“가능할 것 같으니까 쫓아온 거 아냐.”

오토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카이로스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가자.”

“놔, 놔라!”

“아, 글쎄 가자고.”

“잠깐, 잠깐만 기다려라!”

카이로스가 오토에게 애원했다.

“짐에게도 할 일이 있단 말이다!”

“할 일?”

“성좌(星座)를 이루기 직전이었단 말이다!”

“그게 뭔 개소리야?”

“봐라.”

카이로스가 자신이 쓰고 있던 경전을 오토에게 보여 주었다.

“짐의 권능을 이 경전 안에 담았느니라.”

“음?”

“곧 끝나니 조금만 기다려라.”

카이로스는 오토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경전을 써 내려갔다.

휙!

휘익!

뒤이어 공간이 바뀌었다.

바뀐 공간은 거대한 도서관이었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무한의 대(大)도서관이었다.

스윽.

카이로스는 그 대도서관의 빈 책장에 자신의 경전을 꽂아 놓고는 오토를 돌아보았다.

“이제 끝났다.”

“방금 뭐 한 거냐?”

“이 도서관은.”

카이로스가 대답했다.

“전 우주의 신들의 힘이 담긴 곳이다.”

“정말?”

“멈춰라!”

카이로스는 오토가 호기심에 가까이 있던 책을 꺼내 들려고 하자 황급히 뜯어말렸다.

“이 안에 있는 책들을 함부로 건드리면 절대 현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 그래?”

“여긴 신들의 힘이 보관된 장소란 말이다!”

“근데 네가 여기 책을 왜 넣어? 네가 신도 아니면서.”

“짐은 이제 신이다.”

“으응?”

오토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신이라고?”

“그렇다!”

“음주가무의 신? 아니면 폭음의 신? 그것도 아니면 구토의….”

“이 뺀질이 놈이!”

카이로스가 버럭 화를 냈다.

“짐은 민란(民亂)의 성좌이니라!”

“민란의 성좌…?”

“앞으로.”

카이로스가 선언했다.

“우리가 살던 세계의 지배층들이 폭정을 일삼아 백성들의 고통이 한계치에 달하면… 짐의 권능이 강림할 것이다.”

“……!”

“짐은 한평생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원할 길을 찾아 헤맸다. 허나 몸은 하나인데, 구원해야 할 백성들은 많았다.”

“그래서 성좌가 돼서 앞으로도 고통받는 백성들을 도와주겠다는 거냐?”

“그렇다!”

카이로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바란다면. 스스로를 구하려는 자에게 짐의 권능이 강림할 것이다.”

오토는 카이로스의 말을 듣고, 그가 진정한 성군(聖君)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민란의 성좌까지 될 줄이야.

‘이래서 허공법계로 오려고 했던 건가?’

오토는 이 또한 카이로스의 본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 계획이었을지도.’

카이로스는 겉보기엔 그저 술주정뱅이 아저씨였지만, 내면의 의식세계는 현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이로스는 아트로포스 교단의 교리를 깊게 이해하고 공부한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퇴 안에 깃들어 있는 동안 무(無)의 공간에서 450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고, 전생에는 대륙 최강자라는 경지를 이룩한 절대강자이기도 했다.

결코 바보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나쁜 뜻은 없으니까.’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이로스의 뒷덜미를 다시 잡아챘다.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오토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곳 허공법계에 접속하게 해 준 대학살의 서의 영혼에너지가 거의 고갈되어 가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정말 돌아갈 수 있는 거냐?”

“아! 몰라! 일단 가자고!”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현실로 도약을 시도했다.

* * *

공간이 바뀌었다.

“헉!”

카이로스는 자신이 현실로 돌아왔다는 걸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 여보오오오오!”

아리엘은 카이로스가 나타나자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

“아, 아리엘.”

“흑흑… 흑흑흑….”

아리엘은 카이로스의 품에 안겨 한참 동안이나 울었다.

이제 진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듯 다시 만나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나 버렸네…?”

아리엘이 광기에 물든 눈으로 카이로스를 노려보았다.

“그건 정말로 미안하게 됐… 헉!”

“죽어.”

아리엘이 카이로스를 향해 가시 달린 몽둥이를 휘둘렀다.

푹!

퍼억!

카이로스의 등판에 가시가 박히며 묵직한 몽둥이가 작렬했다.

“꾸웨에에엑!”

비명을 지르는 카이로스.

“넌 진짜 뒈질 줄 알아! 이 개새끼야!”

“아, 아리엘!”

“죽어, 죽어어어어어어어엇!!!”

아리엘이 카이로스를 향해 무차별적인 몽둥이찜질을 시전했다.

“크악 으아아아아악!”

카이로스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무시무시한 몽둥이찜질에 곤죽이 될 때까지 얻어터져야만 했다.

힘을 거의 다 잃어버려서 전성기 시절의 무력은커녕, 평소보다도 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은 죄가 커서, 전성기 시절의 무력을 보유한 상태라 해도 분노한 아리엘의 화풀이를 막을 수 없는 입장이기도 했고.

“에라, 모르겠다.”

“언니! 저도요!”

“기회다!”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도 기회는 이때다 하고 카이로스에게 발길질을 퍼부어 댔다.

일말의 상의도 없이 훌쩍 승천해버린 카이로스가 괘씸해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퍽퍽!

퍽!

퍽퍽퍽! 퍽퍽!

“꾸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덕분에 카이로스는 아내와 부하들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두들겨 맞으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었다.

“…근데 전하는 왜 끼시는 겁니까.”

카미유가 어이없다는 듯 오토에게 물었다.

오토가 은근슬쩍 아리엘과 아가토, 힐데가르트, 막시무스의 틈바구니에 끼어 카이로스에게 발길질을 퍼부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밌잖아. 헤헤헤.”

“…….”

“뭐 해? 형은 안 때려?”

“예?”

“이때가 아니면 언제 패 보겠어? 해 봐.”

“…….”

“해 보라니까.”

“그, 그럼.”

카미유도 못 이기는 척 카이로스를 향해 발길질을 퍼부어 대었다.

옛말에 까마귀 노는 데 백로야 가지 말란 이야기가 있듯이, 어느새 카미유도 오토에게 물들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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