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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22화 (223/401)

222화

“…포로 협상은 포기하겠소.”

칼마르는 오토가 몸값을 깎아 주지 않자 과감하게 협상을 포기해 버렸다.

“본국은 적국과 협상하지 않소. 대신.”

칼마르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짐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친정(親征)에 나서 우리 장병들을 구출해 오도록 하겠소이다.”

그건 과감한 결단이었다.

친정.

왕이 직접 전쟁터로 나가 군을 지휘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것.

앞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직접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게다가 국왕이 직접 나서서 포로들을 구출하겠다고 선포한다면, 당장 몸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백성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달랠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친정에 실패한다면 왕권이 추락함은 물론, 국가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겠지만.

“이오타 왕국에 전하시오. 앞서 제시한 금액의 5분의 1 정도에 합의를 보던지, 그게 아니면 협상은 없다고.”

“예, 전하.”

결단을 내린 칼마르는, 즉시 다음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징집령을 선포해 병력을 끌어 모으는 한편,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다시 이오타 왕국을 침공할 준비에 나선 것이다.

이 소식은 곧장 이오타 왕국에 전해졌다.

“체로키 왕국이 협상을 거부했습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보고했다.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아니면 합의하지 않겠답니다.”

“그래? 그럼 그러라고 해.”

“예?”

“협상 안 하면 나야 좋지.”

“……?”

“칼마르가 효자손이야, 효자손.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지금은 돈보다 노동력이 더 필요하거든.”

“예…?”

“체로키 왕국 포로들 다 토목공사에 투입하라고 해. 엄한 우리 백성들 데려다가 일시키는 것보다 그게 나으니까.”

“아!”

카미유는 그제야 오토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탄했다.

공사에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보다 포로들을 동원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힐뿐더러, 불만도 크게 줄어들 터였다.

“그럼 우리 군은 어떻게 합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당분간 전쟁에 대비해 훈련 강도를….”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체로키 왕국군이랑 싸우지 않을 거야.”

“예?”

“그리고 훈련은 드레이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도 돼. 우린 당분간 개인 수련이나 하자고.”

“전하.”

카미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토에게 물었다.

“전하께 비밀이 많다는 건 이미 겪어 봐서 알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말은 해 주셔야지 않겠습니까.”

“비밀이라….”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역사서를 보면.”

오토가 대답했다.

“대륙 서쪽 지방에 278년마다 엄청난 폭우가 내려.”

“예?”

“278년마다 엄청난 물난리가 난다고. 못 믿겠으면 이 지역 역사서를 다 뒤져봐.”

그 말은 사실이었다.

곧 있을 대홍수는 여러 역사서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대홍수가 278년 주기로 일어난다는 사실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주기가 워낙 길기도 길고, 중간 중간 이런저런 역사적인 사건·사고나 자료 유실 등의 이유로 예견된 대재앙을 눈치채고 대비하는 사람이 없을 뿐.

‘칼마르의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사건이기도 하지.’

칼마르 역시 100인의 군주 캐릭터 중 하나이니만큼, 시나리오상에 등장하는 성물이 반드시 있기 마련.

그중 하나는 대홍수에 관련한 성물도 있었다.

“난 그 대홍수에 대비하는 거야.”

“아.”

“우리뿐 아니라 체로키 왕국이 물바다가 될 거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야. 대홍수가 나면 전염병도 창궐하겠지.”

“그럼 그 대재앙에 대비하시는 겁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이크가 필요한 이유도 그거야. 우린 체로키 왕국군과 싸우지 않을 거야. 우리 상대는 물이야. 그러니까 해군이 필요하겠지?”

“…맙소사.”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오토가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고, 여태 허언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일단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를 믿기로 했다.

“명령, 충실히 수행해내겠습니다.”

“좋아, 좋아.”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 * *

이오타 왕국은 즉시 대규모 토목공사에 나섰다.

이오타 왕국은 강, 호수, 낮은 지대에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구명정을 제작하는 한편 구명조끼도 제작했다.

거기에 더해 막대한 양의 의료품을 사재기하기까지 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모든 일들은 체로키 왕국군 포로들이 제공한 노동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체로키 왕국의 국왕 칼마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체로키 왕국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오타 왕국 곳곳에 간첩들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무슨.”

보고서를 읽어 본 칼마르는 도저히 이오타 왕국의 동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을 뿐.

재정비를 마치면, 체로키 왕국이 이오타 왕국을 재침공할 것이라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이오타 왕국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움직임이었다.

‘징집령을 내리고, 군사 훈련을 실시해도 모자랄 판이다. 한데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제방을 쌓다니.’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세상은 언제 어느 때고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무릇 군주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국가 시설에 투자해야 하는 법.

뭐든 미리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면서까지 수해(水害)에 대비할 만한 시기가 아니었다.

당장 코앞에 다가올 전쟁을 준비해도 모자랄 판국에, 대규모 토목공사나 벌이면서 무리하게 국력을 갉아먹다니?

‘감히 과인과 본국을 무시하는 건가?’

칼마르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행동을 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할 테지. 개전 초기부터 그런 대승을 연거푸 거두었으니. 과인과 본국을 무시할 만하다. 과인으로서는 나쁠 게 없지만.’

적이 제 발로 방심해 준다는데, 칼마르의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오토 드 스쿠데리아. 만용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칼마르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 * *

한편, 이오타 왕국으로 불려온 드레이크는 정식으로 작위를 받았다.

“나, 이오타 왕국의 국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오토가 드레이크의 양 어깨와 정수리에 검을 살짝 가져다 대며 말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꼬르륵 군도의 영주로 임명하고, 후작의 작위를 하사한다. 또한, 프랜시스 드레이크에게 해군 제독으로 임명해 대장 계급을 부여하는 바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오토는 약속대로 드레이크에게 성대한 임관식을 열어 주었다.

꼬르륵 군도에서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약식으로 간략하게 치렀던 임관식을 제대로 열어 준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하.”

드레이크는 비로소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이룬 것 같아 눈시울을 붉혔…….

주르륵.

드레이크의 정수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으응?”

드레이크는 시뻘건 피가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보고 당황했다.

“아차.”

오토가 깜빡했다는 듯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의전용 검이 아니라서 날이 서 있는 걸 깜빡했네. 하하. 하하하하.”

“…….”

“뭐 어때. 죽는 것도 아닌데. 꿰매면 돼, 꿰매면.”

그렇게 드레이크는 본의 아니게 피(?)의 임관식(?)을 치르고 완벽하게 이오타 왕국의 귀족이 되었다.

“꼬르륵 군도에는 별일 없지?”

“예, 전하.”

“그럼 한동안 여기 머물면서 우리 병사들한테 수영 좀 가르쳐.”

“예?”

“기본적인 수영부터 물에 빠진 사람 구하는 법 같은 것들까지. 기초적인 교육 좀 해 달라고.”

“훈련을 시켜달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수중전에 대비한 훈련 교관으로 드레이크만 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드레이크와 그의 부하들 모두 드넓은 바다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이들이니만큼, 수영을 가르치기에 더없이 적합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오타 왕국군은 드레이크와 그 부하들, 그러니까 해군에게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 * *

“이, 이건!”

한편, 체로키 왕국의 천문학자이자 기상학자인 설리번은 고문서들을 분석하며 연구를 진행하던 중 뭔가 특이점을 발견했다.

여러 역사서들을 토대로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대륙의 서쪽 지방에 278년마다 큰 폭우가 내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설리번은 혹시나 싶어 자료를 더 찾아보았고, 그 결과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278년마다 내리는 폭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서, 대륙의 서쪽 지방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대홍수… 대홍수가 날 것이다.”

역사서에 적힌 대홍수에 대한 내용은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큰 대재앙이 그간 어떻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가. 아무리 주기가 길다고 한들 이런 대홍수가 거듭됐다면 분명히 알아차린 이들이 많을 터인데.’

그러던 중 설리번은 아주 오래된 고대 문헌에서 아주 신비한 성물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내었다.

‘이, 이런 신비한 유물이 존재했을 줄이야!’

유물에 대한 내용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른바 <바루나의 물기둥>이라 부르는 석상은, 특정 지역의 기상과 기후를 언제나 풍요롭게 조절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물난리를 막아 주기까지 해서, 이 석상을 가진 나라에는 날씨로 인한 천재지변이나 대재앙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 바루나의 물기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뒤틀린 황야!’

설리번은 현재 이오타 왕국과 체로키 왕국의 국경에 자리한 지역에 바루나의 물기둥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번성했던 고대 도시국가에 바루나의 물기둥이 존재했었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이 사실을 국왕 전하께 알려야 한다!’

설리번은 자신이 가진 모든 인맥을 동원해 현 국왕인 칼마르를 알현할 방법을 찾았다.

일개 천문학자이자 기상학자가 국왕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설리번은 평소 자신을 후원해 주던 귀족들을 통해 국왕을 알현하기를 청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설리번은 새로이 왕위에 오른 칼마르를 알현하게 되었다.

“그대가 나를 직접 알현하고자 했다고 들었소.”

칼마르는 이오타 왕국 재침공을 준비하던 중 설리번이란 학자가 알현을 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시간을 내어주었다.

안 그래도 이오타 왕국이 수해에 대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뭔가 찜찜해하던 참이었기에, 혹시나 싶어 알현을 허락한 것이다.

“예, 전하.”

설리번이 칼마르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리 알현을 청했사옵니다.”

“무엇이오? 편히 말해 보시오.”

“예, 전하.”

설리번이 조심스레 말했다.

“곧 어마어마한 물난리가 날 것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것이….”

설리번은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이 매달렸던 연구 결과에 대해 칼마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바루나의 물기둥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그, 그게 정말이오?!”

“예, 전하.”

설리번이 고개를 조아렸다.

“높은 확률로 10월에 큰 비가 내릴 것이고, 대홍수가 날 것이옵니다. 어서 대비하셔야 하옵니다.”

“그 대비라는 것이….”

“뒤틀린 황야로 기사단을 보내 바루나의 물기둥을 찾으소서. 그 신비한 유물만 있다면, 닥쳐올 대재앙을 무사히 극복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솔직히, 칼마르는 설리번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시하기엔 너무나도 찜찜한 것이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오타 왕국이 수해에 대비하고 있는 이유도 대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위기감이 들었다.

“좋소. 내 기사단을 급파해 그 신비한 유물을 찾아보겠소.”

칼마르는 설리번의 말을 믿고 뒤틀린 황야에 기사단을 파견했다.

두두두두두!

체로키 왕국의 기사단이 뒤틀린 황야를 향해 내달릴 무렵.

“조심조심!”

“천천히!”

거의 2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기둥이 이오타 왕궁 안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이야. 크다 커.”

운반 작업을 지켜보는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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