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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24화 (225/401)

224화

며칠 전.

“어?”

오토는 서류를 들여다보던 중 뭔가를 떠올리고는 깃펜을 놓았다.

‘이거 생사람 잡을 수도 있겠는데?’

오토는 칼마르의 시나리오를 알았기에, 설리번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칼마르가 바루나의 물기둥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설리번이 연구 결과를 들고 알현을 청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바루나의 물기둥은 오토가 가져간 뒤였으므로, 설리번이 거짓말쟁이로 몰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현재 칼마르는 거듭된 패배로 인해 크게 분노해 있을 게 분명했고, 또한 예민해져 있을 게 분명했다.

오토의 계략에 의해 호기롭게 시작한 전쟁을 개전 초기부터 거하게 말아먹었으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는 심정일 수밖에.

그렇다면?

‘바루나의 물기둥을 못 찾으면… 칼마르는 설리번을 의심할 거다. 우리가 심어 놓은 간첩이거나, 혹은 우리의 계략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정도로 오해하겠지.’

오토는 앉은 자리에서 칼마르의 심리를 훤히 읽어낼 수 있었다.

칼마르는 분명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군주 캐릭터.

그러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심리를 파악하기도 매우 쉬울 수밖에.

‘설리번 그 양반 잘못하면 죽겠는데?’

측은지심이 든 오토는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설리번을 구출해내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설리번은 영웅이었다.

싸움만 잘한다고 영웅이겠는가?

대홍수를 예견해 대재앙으로부터 체로키 왕국을 구하는 업적을 남긴 사람이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란 말인가?

그런 사람을 억울하게 죽게 만들 순 없었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가 보자.’

오토는 그 길로 마검사들을 데리고 체로키 왕국으로 향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본국은 설리번 남작님의 연구 결과를 믿습니다.”

“예…?”

“사실 본국은 몇 년 전부터 물난리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오토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오토를 가리켜 거짓말쟁이라고 했던 카미유의 말이 결코 헛된 지적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저는 우연히 입수한 고대 문서를 통해 278년마다 이 지역 일대에 큰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루나의 물기둥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

“그래서 그에 대비하던 중 우연히 첩보를 들었습니다. 설리번 남작님이 칼마르 국왕에게 올 가을 큰 물난리가 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지요.”

“그, 그랬습니다.”

“하지만 칼마르 국왕은 설리번 남작님을 본국의 간첩, 혹은 공작에 놀아난 꼭두각시 취급을 했습니다. 더불어 심한 고문과 함께 가택연금까지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허허허.”

설리번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오타의 첩보원―사실 첩보활동 아니었지만―들이 체로키 왕국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다고 오해한 것이다.

“설리번 남작님께서 겪으신 고초를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가시지요.”

“어딜 가자는 말씀이시오?”

“이오타 왕국에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오토가 설리번을 잡아끌었다.

“칼마르 국왕이 남작님을 제거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예?!”

“칼마르 국왕은 남작님을 의심하고 있을뿐더러, 혹시나 물난리가 날 것이란 유언비어를 퍼뜨릴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조용히 제거하려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

“목숨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가족들이….”

“다 함께 갈 겁니다.”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설리번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1층 거실로 내려갔다.

“여, 여보!”

“아빠!”

그곳에는 아내와 딸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설리번을 감시하던 기사들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어느 틈에?!’

설리번은 이오타 왕국의 침투 능력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은밀하게 경비병들을 제거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귀한 분이십니다.”

오토가 기다리고 있던 마검사들에게 명령했다.

“본국까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조심히 모셔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전하.”

그렇게 오토는 마검사들과 함께 설리번과 그 가족들을 데리고 체로키 왕국의 수도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 *

다음 날 아침.

“뭐라!!!”

칼마르는 설리번과 그 가족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 엄청나게 분노했다.

안 그래도 설리번을 이오타 왕국의 간첩으로 의심하고 있었는데, 가택연금을 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다는 것은…….

“그놈이 진짜 이오타 놈들이 심어놓은 간첩이었구나!!!”

칼마르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일개 학자가 수도 한복판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가택연금에 투입되었던 경비병들과 기사들을 조용히 제압한 것만 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이 개입했다는 게 확실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칼마르는 저 멀리 서쪽을 바라보며 오토를 향해 이를 갈았다.

“네놈이 아무리 잔머리를 굴린다 한들 또다시 짐을 속일 순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과인이 네놈 같은 근본 없는 놈에게 놀아날 줄 알았는가. 기다려라. 내 반드시 네놈을 철저하게 박살을 내줄 것이다.”

칼마르는 곧바로 어전회의를 소집해 신하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설리번 그놈이 이오타 놈들의 간첩으로 밝혀진 이상 올 가을 물난리는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할 것이오. 그러니 물난리에 대비해 투입했던 인력과 자금을 철회하려고 하오.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그러자 신하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옳으신 줄로 아뢰옵니다.”

“간악한 이오타 놈들의 계략을 간파하셨으니, 전하의 지혜가 실로 깊사옵니다.”

모든 정황·증거가 설리번이 간첩이라는 걸 뒷받침해 주는 이상 다른 의견이 있을 리 없었다.

“좋소.”

칼마르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명령했다.

“그럼, 물난리에 대비해 투입했던 인력과 자금을 이오타 정벌을 위해 쓰겠소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칼마르는 체로키 왕국의 모든 국력을 이오타 왕국과의 전쟁 준비에 쏟아붓기로 했다.

설리번으로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셈이었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이미 설리번은 체로키 왕국을 빠져나가 이오타 왕국으로 망명해 버린 뒤였으므로.

* * *

그 후 이오타 왕국과 체로키 왕국은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며, 다가올 가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오토는 개인 수련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그런 오토의 수련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역시나 엘리제였다.

엘리제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오토를 찾아왔고, 숙제 검사를 진행하며 성장을 도와주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콰앙!

“악!”

오토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크윽….”

오토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게 말이 돼?’

오토는 솔직히 좀 억울했다.

‘고작… 검 한번 휘두르는데 이런 파괴력이 나온다고?’

그때.

“일어나라.”

엘리제가 매우 엄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오토에게 ‘명령’ 했다.

“일어날… 겁니다.”

오토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털썩!

오토는 몸을 일으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욱신욱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대고.

부들부들!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쿵쾅쿵쾅쿵쾅!

심장은 당장에라도 터질 듯 두방망이질을 쳤다.

“그대로 쓰러질 건가. 포기하고 주저앉을 거냐는 말이다.”

엘리제가 오토에게 물었다.

수련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엘리제의 가르침은 그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오토의 실력이 올라감에 따라서, 엘리제도 수련의 강도를 올린 것이다.

그건 엘리제가 매우 탁월한 스승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왜?

현재 오토의 실력과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딱 거기에 맞춰 강도를 조절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너는 약자인가? 계속 약자로 살고 싶은가?”

“아닙니다!!!”

오토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말을 놓기로 했지만, 엘리제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면 마치 훈련병이라도 된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다나까 존댓말이 나와 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습니다.”

오토는 다시 안간힘을 써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털썩!

오토가 쓰러졌다.

“…….”

쓰러진 오토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완벽한 탈진.

그리고 기절.

정신력으로 꾸역꾸역 버티다가, 끝끝내 몸이 버텨내질 못한 것이다.

스윽.

엘리제는 오토가 쓰러진 것에 대해 전혀 화내지 않고, 다가가서 그를 살포시 안아 들었다.

엘리제는 오토가 벌써 1시간도 더 전부터 한계를 넘어선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기절한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또한…….

‘잘해 내고 있다. 아직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엘리제는 오토를 매우 기특해했다.

한계를 넘어선 상태로 1시간 이상 버티다 기절했다는 건 충분히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다.

그 증거로, 앞서 엘리제와 대련했던 카미유와 카심은 이미 정신을 잃고 실려 나간 뒤였다.

엘리제는 오토뿐 아니라 카미유와 카심의 수련도 도와주는 호의를 베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엘리제의 도움으로, 오토 일행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만 갔다.

세계관 최강자로부터 꾸준히 가르침을 받으니, 강해지고 싶지 않아도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하! 큰일 났습니다!”

엘리제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오토는, 카미유의 다급한 부름에 포크를 내려놓았다.

“뭔데?”

오토는 카미유가 이렇게까지 다급하게 소리치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무슨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진 건가 싶었다.

“까막이가 갑자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까막이가?”

까막이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카심에게 각인을 해 버리는 바람에, 카심을 어미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카심의 말을 매우 잘 들었고, 와이번답지 않게 순한 양처럼 얌전했다.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서, 여태까지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던 것이다.

“걔가 왜?”

“잘 모르겠습니다. 카심 경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 난동을 부리고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일단 가 볼게.”

오토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엘리제를 돌아보며 양해를 구했다.

“미안해. 갑자기 일이 터져서. 먼저 일어나도 될까?”

“나도 같이 가 보겠다.”

“아직 다 안 먹었잖아.”

“혹시나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겠나.”

“그, 그건 그렇지만.”

“가자.”

오토는 엘리제, 그리고 카미유와 함께 까막이가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 캬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는 두꺼운 쇠사슬들에 묶인 까막이가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쳐 대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처음부터 까막이를 쇠사슬로 묶어 둔 건 아니었다.

갑자기 난동을 피워 대는 바람에 급한 대로 쇠사슬과 그물을 이용해 묶어 둔 것일 뿐….

“까, 까막아! 왜 그래! 좀 얌전히 있어 봐!”

“귁! 귁귁귁!”

카심이 최선을 다해서 까막이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 캬악! 캬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까막이는 아예 입에서 불까지 뿜어대며, 더 미친 듯 난동을 피워 댔다.

만약 이대로 까막이를 풀어주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도대체 왜 저러는 거죠?”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카심이 쩔쩔매며 오토의 물음에 답했다.

오직 한 사람.

“흠.”

엘리제가 흥미롭다는 듯 까막이를 지켜보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유를 알았다.”

“으응?”

오토는 엘리제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를 알았다고?”

“그렇다.”

“뭔데…?”

“저 친구.”

엘리제가 까막이를 가리켰다.

“발정기가 찾아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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