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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28화 (229/401)

228화

칼마르를 포함한 체로키 왕국 사람들은 다가오는 검은 함대를 바라보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대홍수가 났다고 한들 이곳은 내륙국가인 체로키 왕국의 수도.

그런 곳에 함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칼마르는 펄럭이는 이오타 왕국의 깃발을 바라보며, 그들이 대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기야, 이오타 왕국은 지난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전쟁을 준비하기는커녕 제방을 쌓고 구명정을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건 이오타 왕국이 대홍수를 100퍼센트 예측하고, 대비해 왔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설마?’

칼마르는 어쩌면 이 대홍수가 이오타 왕국이 일으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어떤 마법도 이렇게 큰 대홍수를 일으킬 수는 없을 터.

이런 커다란 자연재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았을 게 분명했다.

“후우.”

오해로 인해 끓어올랐던 분노가 싹 가셨다.

칼마르는 이오타 왕국이 그저 대홍수를 미리 예견했고, 거기에 대비한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오타 왕국이 대홍수에 대비하하는 움직임을 보인 건 설리번이 칼마르를 찾아오기 훨씬 더 전이었다.

‘아니. 다 쓸데없는 행동일 뿐이다.’

칼마르는 생각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렇게 된 마당에 생각을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러던 때.

“……!”

칼마르는 이오타 왕국 함대의 움직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오타 왕국의 함대가…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주고.

건물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배에 태워 주고.

정작 체로키 왕국의 왕인 칼마르가 하지 못하는 일을 이오타 왕국군이 해내고 있었다.

주객전도 현상이 너무나도 완벽해서, 누가 체로키 왕국의 왕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체로키 왕국의 왕은 칼마르가 아니라 오토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왕인 칼마르는 왕궁 높은 곳에서 손 놓고 멍하니 지켜만 보는데, 정작 적국의 왕인 오토는 체로키인들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뻗고 있었으니…….

“아아.”

칼마르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자격이 없다.”

칼마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스로 왕관을 벗었다.

“저, 전하!”

“전하! 어찌 왕관을 벗으시옵니까?”

신하들은 왕관을 내려놓는 칼마르를 바라보며 크게 놀랐다.

왕이 스스로 왕관을 내려놓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미안하오.”

칼마르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런 칼마르의 목소리는 나지막했고, 담담했다.

그건 칼마르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오. 체로키의 왕이 될 자격이 없소. 왕위에 올라 뜻을 펼쳐 보려 했건만, 이렇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구려.”

그러자 신하들이 오열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어찌 그리 말씀하시옵니까?”

“용기를 가지소서! 전하! 옥체부터 피하시옵소서! 훗날을 기약하소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칼마르를 포함한 체로키 왕국의 귀족들이 빠져나갈 방법은 단언컨대 없었다.

배 한 척도 없는 주제에 어딜 어떻게 빠져나간다는 말인가?

지금 칼마르와 신하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멍하니 이오타 왕국군이 오기만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물에 빠져 죽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칼마르는 몸을 던지지 않았다.

그저 왕관을 내려놓은 채 조용히 이오타 왕국이, 오토가 오기만을 조용히 기다렸을 뿐이었다.

* * *

오토는 서두르지 않았다.

차근차근 구해 줄 사람들을 다 구해 줘 가면서 전진했다.

칼마르를 잡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캬아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악!”

하늘 위에서 수십여 마리의 와이번들이 나타나 수면을 향해 급강하했다.

“모, 몬스터들입니다!”

“와이번들의 습격입니다!”

이오타 왕국군은 갑작스러운 와이번들의 공격에 황급히 원거리 무기를 꺼내 들고, 전투 준비에 나섰다.

“사, 살려 줘!”

“으아악!”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체로키인들은, 와이번들의 습격에 혼비백산했다.

이오타 왕국군 덕분에 물에 빠져 죽는 걸 면하나 했더니, 이제는 와이번들에게 잡아먹히게 생긴 것이다.

하지만 와이번들은 적이 아니었다.

“캬악!”

“캬아아아악!”

놀랍게도, 와이번들은 물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건져주거나 건물 지붕 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등을 내어주는 등 구조 활동을 펼쳤다.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도와주러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와이번 무리를 지휘하는 건 다름 아닌…… 까막이였다.

“전하! 제가 돕겠습니다!”

“귁! 귁귁귁!”

까막이에 탄 카심과 펭이가 오토를 향해 소리쳤다.

“…….”

“…….”

오토와 카미유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발정기가 온 까막이의 짝짓기 상대를 찾아주라고 보내 놨더니, 아제는 와이번 무리를 끌고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슨 드루이드냐고.”

오토는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카심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쯤 되면 다음에는 도대체 뭘 주워올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공군참모총장 시켜 놨더니 자릿값 하는 건가?’

어쩌면 저 와이번 무리를 이용해서 제대로 된 공군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족히 50여 마리는 될 것 같은 와이번들을 길들여 전투에 투입한다면, 제공권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와이번들이 하늘 위에서 폭탄만 떨어뜨린다 해도 적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제공권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이 세계에서는, 공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히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뽐낼 수가 있을 테니까.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잘됐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게 됐으니까.’

오토는 카심이 와이번 무리를 끌고 온 것에 매우 만족했다.

와이번들은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구조 활동을 펼칠 수 있었기에, 구조가 어려운 곳에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구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와이번 무리와 함께 구조 활동을 펼치던 함대는, 어느 순간 더는 전진하지 못했다.

어느새 왕궁 앞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 * *

“신속히 상륙하라!”

“지금부터 왕궁을 점령한다!”

함대에서 내린 이오타 왕국군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왕궁을 장악해 버렸다.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왕궁에 있던 사람들은 적이 아니었다.

기사, 병사, 귀족, 시녀, 시종 등등 출신과 성분을 가릴 것 없었다.

그들은 모두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이오타 왕국군은 먼저 공격해 오지만 않는다면 거리낌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오토는 이오타 왕국군이 왕궁을 장악하자 가장 드높은 첨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칼마르가 체로키 왕국의 신하들과 함께 오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가 오토 드 스쿠데리아로군.”

칼마르가 기다렸다는 듯 오토에게 말을 걸었다.

“듣던 대로 미남이시오.”

“칭찬, 고맙게 받지.”

오토가 담담한 말투로 대꾸했다.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소.”

“…….”

“긴말하지 않겠소. 받으시오.”

칼마르의 그 말이 떨어지자 한 신하가 왕관을 가져다가 오토에게 바쳤다.

“나에게는 왕의 자격이 없소. 그러니 이제부터 그대가 이 나라의 왕이오.”

명백한 항복 표시.

끄덕.

오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카미유가 오토를 대신해 칼마르의 왕관을 받았다.

“그럼, 이 나라의 백성들을 잘 부탁하오.”

칼마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첨탑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난간을 향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저, 전하!”

“전하아아아아!”

신하들이 황급히 칼마르를 뜯어말리기 위해 나섰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결심을 굳힌 칼마르는 한 점 망설임 없이 난간에서 몸을 내던졌고, 그 길로 추락해 풍덩! 하고 빠져 버렸다.

휘이이이이이이이!

소용돌이치던 물살이 탐욕스럽게 칼마르를 집어삼켰고, 이내 곧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오토는 그런 칼마르를 굳이 살리려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평생을 후회와 죄책감 속에 살아갈 테니까.’

오토는 칼마르의 선택을 이해했다.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나라를 말아먹은 사람의 심정이란, 살아도 사는 게 아닐 테니까.

“현 시간부로.”

오토가 선언했다.

“체로키 왕국의 통치권을 행사한다.”

그 순간.

후둑, 후두둑!

매섭게 퍼부어 대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쳐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으으으!

시커멓게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물밀듯이 밀려 나가면서, 한 줄기 빛이 첨탑으로 내리쬐었다.

“경들은 들으라.”

햇살을 등진 오토가 체로키 왕국의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복구작업에 최선을 다한다. 예외는 없다.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복구작업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해라. 알겠는가.”

오토가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며, 또한 싸늘한 말투로 경고했다.

오싹!

체로키 왕국의 신하들은 그런 오토의 명령에 흠칫 몸을 떨며 두려워했다.

뿜어내는 기세도 무시무시했을뿐더러, 오토가 왕권을 계승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태양이 내리쬐기 시작한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그래서 체로키 왕국 신하들의 시각에서는, 오토가 마치 저 하늘이 보낸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홍수가 난 체로키 왕국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 말이다.

“다들 알아들었나.”

“예, 전하.”

오토의 물음에 체로키 왕국의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들을 바라보는 오토의 시선은 더없이 차가웠다.

‘백성들은 물에 빠져 죽었는데, 니들은 귀족이란 이유로 살아남았으니까. 최소한 복구작업이라도 열심히 해. 그래야 살려주지.’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체로키 왕국의 귀족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 * *

오토가 왕위를 계승받은 후 체로키 왕국의 물난리는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비는 그치고.

태양이 내리쬐고.

심지어 나라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던 그 많은 양의 물들도 마치 하수도를 통해 빠져나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토가 체로키 왕국을 접수하자마자 바루나의 물기둥이 힘을 발휘하며, 대홍수를 완전히 지워 버린 것이다.

그게 성물의 힘이었다.

성물이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템들로서, 그곳에 담긴 권능은 가히 어마어마한 것.

성물의 등급에 따라서는 바루나의 물기둥보다 더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낼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군주들이 자신의 성물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렇지.

단언컨대, 지금 이 세계에서 성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오토였다.

어쨌거나 바루나의 물기둥을 이용해 대홍수를 잠재운 오토는, 즉시 복구작업에 나섰다.

전 국토의 80퍼센트 이상이 물에 잠겼던 체로키 왕국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재산피해를 떠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부터가 가히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나라 전체에 익사한 시체들이 퉁퉁 불어터진 채로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란, 끔찍하다 못해 참혹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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