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
“……!”
“……!”
오토가 복구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공개 처형할 것을 지시하자 현장에 있던 귀족들은 거의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새로운 왕인 오토가 혈통과 신분 따위 속된 말로 x도 신경 쓰지 않는단 사실은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니들이 무슨 힘이 있는데?’
오토는 체로키 왕국 출신 귀족들이 눈곱만큼도 두렵지 않았다.
체로키 왕국 출신 귀족들은 이미 기반을 다 잃어버린 상태라, 딱히 이렇다 할 힘도 없었다.
대홍수로 인해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어 버렸는데, 귀족들이라고 해서 힘이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인재?
수입해 오면 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아카데미에서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오토는 배때기에 기름기 가득한 기존 기득권층보다, 열정 넘치는 젊은이들을 원했다.
왕조가 바뀐 만큼, 나랏일을 돌보는 인재들 역시 새 시대에 걸맞은 푸릇푸릇한 인물들로 채워 넣고 싶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민심이 흉흉한 이때에.”
오토가 바짝 엎드린 귀족들을 향해 싸늘하게 내뱉었다.
“네놈들 따위가 뭐라고. 꼴에 내 앞에서 귀족이랍시고 거들먹거려.”
귀족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못했다.
만약 여기서 입이라도 뻥끗했다가는…….
오싹!
오토의 기세를 보아하니,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즉시 처형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의 오토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피를 봐야만 하는 입장이었고, 또한 체로키 왕국 출신 귀족들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못한 상태였다.
즉, 언제든 체로키 왕국 출신 귀족들의 목을 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살고 싶고, 대우받고 싶으면 입 닥치고 열심히 일해. 그래야 그나마 밥벌이라도 하고 살게 될 테니까.”
오토는 살벌한 경고를 날리고는, 다시 삽을 움켜쥐고 도로를 뒤덮은 진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자자! 다들 작업 시작!”
“1시간만 땀 흘리면 간식이 옵니다!”
“힘내 봅시다!”
오토가 솔선수범을 보이자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앞다투어 연장을 움켜쥐고 다시 복구작업에 열중했다.
“…….”
“…….”
“…….”
체로키 왕국 출신 귀족들은 그 광경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왕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복구작업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삽은… 어디 있는가?”
체스터 공작을 선두로, 귀족들도 하나둘 다시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국왕인 오토가 같은 현장에서 솔선수범을 보이는데, 그들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신분과 지위를 박탈당하고 평민으로 강등까지 당한 마당에, 여기서 더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목이 달아날 판국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하는 것이다.
* * *
복구작업은 끝이 없었다.
애초에 체로키 왕국 전체가 초토화되어 버린 이상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민심만은 매우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오토가 복구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귀족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한 덕분에, 흉흉했던 민심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귀족들의 무능함과 무책임함 때문에 울분에 차 있던 백성들이 공개 처형을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을 누그러뜨린 것이다.
거기에 더해 오토를 포함한 귀족들이 직접 복구현장에 나가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 민심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덕분에 오토는 새로운 왕조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복구작업을 진행하던 중 전염병이 돌았다.
수해와 전염병 사태는 마치 한 몸과 같아서, 큰 물난리가 난 뒤에는 각종 질병이 창궐하기 마련.
하지만 오토는 그런 전염병 사태마저 매우 손쉽게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고블린 상인 에고를 통해 미리 의약품을 대량으로 사재기해 둔 덕분에,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조기에 치료해서 사태가 번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토는 복구작업에 열중하며, 민심을 차츰차츰 수습해 나갔다.
“이게 되네.”
무너진 성벽 보수 작업을 시찰하던 오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캬아아악!”
“캬아아아아악!”
와이번들이 무거운 벽돌을 들어 옮기는 광경이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와이번은 매우 사나울뿐더러, 길들이기가 어려운 생명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와이번에 대한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와이번들은 인간을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
“캭! 캬아악!”
와이번들은 까막이의 지휘에 따라서, 무거운 돌을 나르고 중장비를 들어 올리는 등 열심히 복구작업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런 까막이를 지휘하는 건 역시나 카심이었다.
“잘했다, 내 새끼.”
“귁! 귁귁귁!”
카심은 펭이와 함께 와이번들을 지휘하며, 복구작업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까막이가 와이번 무리의 우두머리에 등극하면서, 자연스럽게 와이번 로드(Lord)로 전직해 버린 것이다.
‘아무리 카심이 까막이 아빠라고 해도 와이번들이 너무 고분고분하네. 이것도 화합의 성서의 효과인가?’
오토는 그 사납다는 와이번들을 손쉽게 길들인 이유가 화합의 성서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카심은 이오타 왕국의 핵심 인물.
까막이는 그런 카심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반려(?) 와이번.
그리고 와이번들은 그런 까막이를 우두머리로 따르는 무리들.
그렇다 보니 와이번들도 이오타 왕국의 일원으로 판정되어 화합의 성서의 효과가 적용된 모양이었다.
“에릭슨 님.”
“예, 전하.”
오토는 그 광경을 보고 즉시 드워프 에릭슨을 불러들였다.
“혹시 와이번들에게 입힐 갑옷을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설마 카심 경이 데려온 와이번 무리들을 무장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예.”
“오오오!”
에릭슨의 눈에서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와이번 전용 갑옷이라니! 그런 물건을 제작할 기회가! 우어어어어어어어어!”
“…….”
“전하! 저희 드워프들이 최선을 다해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우어어어어어!”
드워프는 타고난 대장장이이자 광부이며, 또한 예술가인 종족.
그런 드워프들에게 와이번들이 입을 갑옷을 제작할 기회라는 건 타고난 창작 욕구를 자극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드워프라 할지라도 살아생전 와이번들에게 입힐 갑옷을 제작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전하!”
“그,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와이번의 갑옷이라니! 와이번의 갑옷을 제작할 기회가 생기다니! 으하하하하하하하!”
“…….”
“와이번의 갑옷을 만든다! 와이번의 갑옷을!”
에릭슨은 그렇게 소리치며,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그게 그렇게 좋은가.”
오토는 멀어지는 에릭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간인 오토로서는 드워프들의 생각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뭐, 어쨌든.
“부르셨습니까?”
오토는 내친 김에 카심도 불러들였다.
“카심 경.”
“예, 전하.”
“공군참모총장으로서 와이번 라이더들로 구성된 기사단을 만드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와이번들이 카심 경을 따르니까, 우리 마검사들 중에서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서 와이번 라이더로 양성할까 하는데요.”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카심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럼… 제가 정말로 공군참모총장으로서 와이번 라이더로 이루어진 기사단을 이끌게 되는 겁니까?”
“그럼요. 카심 경이 동의만 해 주시면, 그렇게 되는 거죠.”
“공군참모총장… 와이번 라이더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의 기사단장….”
카심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냥 기사단장만 해도 출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와이번 라이더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의 단장이라면 그 위세와 대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시켜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기사단을 꾸려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카심이 제안을 수락하자 오토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내걸렸다.
이로써 이오타 왕국은 진짜 공군다운 공군을 갖추게 되었고, 앞으로의 전쟁에 있어 제공권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와이번들을 타고 적진 한복판까지 매우 손쉽게 침투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정규전뿐 아니라 비정규전인 특수 작전에 있어서도 작전 능력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것이다.
‘진짜 복덩이네, 복덩이야.’
오토는 카심이 너무나도 예뻐서, 콱 그냥 깨물어 주고만 싶었다.
와이번들을 이용해 공군을 만드는 건 오토의 계획에도 없던 일이라, 이건 정말이지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오토가 카심을 예뻐할 수밖에.
“그럼, 전권을 줄 테니까 한번 해보세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와이번들을 길들이는 건 카심 경 전문 분야잖아요. 까막이랑 한번 잘 상의해서 추진해 보세요.”
“예! 전하! 충성충성충성!!!”
카심은 크게 소리치며 오토에게 경례를 붙여 보이고는, 펭이와 함께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가자!”
“귁! 귁귁귁!”
오토는 그런 카심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 * *
대홍수로 인해 초토화가 된 것은 비단 체로키 왕국뿐만이 아니었다.
대홍수는 대륙 서부 전 지역에 걸쳐 일어난 대재앙이었고, 체로키 왕국 주변 지역들도 물난리를 겪었다.
그런 기존 체로키 왕국과 이오타 왕국 사이의 접경지대에 자리한 뒤틀린 황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던 뒤틀린 황야.
그러나 오토가 바루나의 물기둥을 가지고 간 덕분에, 뒤틀린 황야도 대홍수를 피해 가지 못했다.
결국 물바다가 되었던 뒤틀린 황야는, 물이 빠지자 질척거리는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마치 갯벌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뒤틀린 황야의 개펄 표면이 꿈틀거리며,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개펄을 뚫고 나타난 그 생명체들은 촉촉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으며, 인간의 것과 비슷한 팔과 다리를 가진 물고기 괴수들이었다.
그런 물고기 괴수들의 숫자는 가히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족히 수천, 아니 수만 마리는 넘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어, 그어어어.”
“그르르륵.”
갯벌에서 빠져나온 물고기 괴수들은 잠에서 깨려는 듯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랜 시간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들이 봄을 맞아 생체활동을 일깨우는 것과 꽤나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물고기 괴수들은, 몸에서 끈적끈적한 진액을 줄줄 흘리며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떼 지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틀린 황야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버려진 땅.
인적이라고는 수백 년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지역인지라, 물고기 괴수들의 출현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