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힘을 드러낸 올리브의 전투력은, 가히 엄청났다.
북부 야만부족 출신인 그녀는, 만들어진 강자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타고난 강자였다.
날 때부터 포식자로서 태어난 그녀는, 굳이 강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올리브는 어릴 때부터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 남자아이들을 두들겨 팼음은 물론, 열여섯 살 무렵에는 부족의 전사들을 때려눕혔을 정도였다.
딱히 강해지기 위해 수련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게 가능했다.
올리브 역시 엘리제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퍽!
올리브의 주먹이 기사의 명치를 가격, 아니 관통했다.
주먹이 갑옷을 뚫어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단단한 가슴뼈마저 뚫어 버린 것이다.
“커헉!”
심장이 찌그러진 기사가 피를 토해 내며 허물어졌다.
“……!”
“……!”
“……!”
에르제베트 왕국 정보국 소속의 기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분명히 말했다.”
올리브가 다시금 말했다.
“모두 반으로 접어 버리겠다고.”
뒤이어 학살이 벌어졌다.
올리브는 기사들을 정말로 한 명 한 명 반으로 접어 버렸다.
“아, 악마다!”
“괴물이다! 괴물!”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기사들의 입에서 처절한 절규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브는 멈추지 않았다.
“단 한 놈도 살아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올리브는 도망치는 기사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기어코 묵사발을 만들어 버렸다.
쾅!
콰아앙!
올리브가 마지막 남은 기사의 발목을 붙잡고, 땅에 연거푸 패대기쳤다.
그럴 때마다 땅이 움푹 파였고, 갑옷은 찌그러졌으며, 기사의 몸도 기괴하게 꺾이고 비틀렸다.
“…컥!”
최후의 적이 피를 토해 내며 절명했다.
툭툭.
올리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털어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 내었다.
그리고는 다시 마차로 돌아가 와지르 대공 앞에 앉았다.
“처리했습니다, 대공.”
“허허.”
와지르가 훅! 하고 시가 연기를 뿜어내며 헛웃음을 지었다.
“거 살살 하라지 않았나, 살살. 진짜로 다 죽여 버리면 어떡하나.”
“감히 대공 전하를 암살하려 했던 놈들을 어떻게 살려 두겠습니까?”
“허허허. 자네도 참. 성질 많이 죽은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구먼.”
“예전보단 많이 죽은 겁니다.”
“하긴. 그런 것도 같구먼.”
와지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접는 정도가 아니라 사지를 다 뽑아 버렸을 테니, 확실히 성질이 죽긴 했구먼. 허허허.”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호호호.”
“아무튼, 고생했네. 이 늙은이 때문에 자네만 고생이구먼. 이런 걸 좋아하진 않지 않나.”
와지르 대공은 올리브가 싸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올리브는 어려서부터 꽃, 예쁜 인형, 화장품, 옷 등등 여성스러운 것들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북부 야만부족의 문화적 특성상 그러한 것들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부족민들은 오직 올리브가 부족 최고의 전사가 되기만을 원했고, 올리브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올리브는 부족을 떠나 야반도주했고, 우연찮은 계기로 시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후 아라드 제국의 시녀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어쩔 수 없었잖습니까. 호호호.”
“뭐. 그렇긴 하네만. 자네같이 여성스러운 사람한테 이런 싸움을 하게 만들다니, 못내 미안하네그려.”
“괜찮습니다. 오래간만에 운동 좀 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사람을 반으로 접어 버리는 걸 운동이라고 하진 않네만.”
와지르 대공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동이라는 게 언제부터 사람을 반으로 접는 것이었는지.
“아무튼, 수고했네.”
“별말씀을.”
올리브는 겸연쩍은 듯 웃고는, 다시 옷감을 붙잡고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마치 언제 적들을 반으로 접어서 죽여 버렸냐는 듯이.
슥슥. 스윽.
옷감에 수를 놓는 올리브의 손길은 가히 섬세하고 정교했다.
실제로, 올리브는 옷을 짓는 데 있어 대단한 재능을 지닌 장인(匠人)이었다.
예술의 종족이라는 드워프들조차 올리브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할 정도였고, 오토가 입는 모든 옷들은 올리브가 직접 제작한 것들이기도 했다.
‘확실히 오토 녀석이 복이 많단 말씀이야. 이런 훌륭한 시녀장을 두다니. 왕으로서 그것도 제 복일 테지. 암, 그렇고말고.’
정작 오토는 올리브가 두려워서 벌벌 떨기 일쑤였지만, 어쨌든 복이라면 복이라고 생각하는 와지르 대공이었다.
* * *
기괴한 숲으로 간 오토 일행은, 계속해서 전투를 치르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기괴한 숲은 온갖 종류의 식물형 몬스터들과 악령들의 소굴이라,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전투, 전투, 그리고 또 전투.
거의 30분마다 전투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기괴한 숲에 사는 몬스터들과 악령들은 워낙에 경험치를 많이 주었고, 또한 숫자도 매우 많았다.
그래서인지 레벨도 쭉쭉 올랐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물론 상태창이 흐릿해서 지금 정확히 몇 레벨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토는 레벨업을 분명하게 느끼고, 인식할 수가 있었다.
단지 숫자로서 확인만 할 수 없다 뿐이지, 경험치 획득에 따른 성장은 확실히 체감되었다.
그건 비단 오토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경험치 잘 먹고 있네.’
오토는 바그람뿐 아니라 동료들이 경험치를 먹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상태창은 여러 가지 항목들에 대한 정확한 지표를 제시하는 장치였을 뿐이지, 특별한 기능이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괴한 숲에서 경험치를 먹고 성장해 나가던 오토 일행은, 어느새 숲의 중심부에 도달했다.
“잠깐 대기.”
오토는 일행의 전진을 막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췩? 왜 멈추는 건가?”
바그람이 오토에게 물었다.
“위험하니까.”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트릭스터의 재간을 이용해 분신을 불러내었다.
“취익?!”
바그람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하니 분신까지 만들어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봐 봐.”
오토가 분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벅저벅.
분신이 발걸음을 옮겼다.
펑!
퍼엉!
그러자 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초록색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지뢰독초라고.”
오토가 설명했다.
“생명체가 밟으면 터지면서 독이 뿜어져 나와.”
“취, 취익!”
“맹독이야. 중독되면 답도 없어. 일단 다 제거할 때까지 대기해.”
“알겠다. 취익.”
오토는 분신을 이용해 앞에 깔린 지뢰독초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제거했다.
분신은 진짜 생명체는 아니었지만, 지뢰독초가 반응해 준 덕분에 펑펑 잘만 터졌다.
게다가 분신은 독에 중독되지도 않았기에, 오토는 손쉽게 지뢰독초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휘이이이이!
뿜어져 나온 독 안개는 마검사들이 간단한 주문을 이용해 저 멀리 날려 버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숲의 지배자를 만나러 가니까, 다들 긴장해.”
오토는 발걸음을 떼어놓기 전 일행에게 경고했다.
이곳 지뢰독초 밭을 지나면 기괴한 숲의 지배자, 그러니까 보스 몬스터가 등장할 예정이었다.
‘꼭 잡아야지.’
천둥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괴한 숲의 지배자를 반드시 쓰러뜨려야 했다.
숲의 지배자로부터 차우차우를 공략법을 얻을 수 있는 데다가, 천둥산에서 버틸 수 있는 또 다른 아이템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말은, 이곳 기괴한 숲의 지배자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천둥산 공략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이, 천둥산 공략을 위해서는 기괴한 숲부터 먼저 공략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괴한 숲 자체가 바그람의 성장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레벨업 던전이기도 했고.
그렇게 어느 정도 나아가자 어두컴컴한 암흑천지가 펼쳐졌다.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했던 것이다.
그리고…….
툭!
투둑!
갑자기 땅거죽이 갈라지고 뒤집어지기 시작하더니, 수없이 많은 나무뿌리들이 오토 일행을 향해 뻗어 오기 시작했다.
- 감히.
아주 오래된 느낌을 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두둑!
우두두둑!
거대한 고목(古木)이 나타나 오토 일행을 향해 호통을 내질렀다.
[귀신나무 왕]
귀신나무 왕.
기괴한 숲의 지배자로서, 오래된 고목나무에 깃든 악령이 몬스터화한 존재.
그 강력함은 가히 엄청나서, 어지간한 공격에는 나무껍질에 흠집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이다.
특이사항 :
- 화염 면역
- 마법 면역
- 물리 면역
특이하게도, 귀신나무 왕은 식물형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화염 면역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물리·마법에도 면역인지라 아무리 때려도 생명력이 거의 닳지 않는 금강불괴에 가까운 존재였다.
‘난 알지.’
하지만 오토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왜?
공략법을 알았으니까.
“주변 나무들부터 베! 햇빛이 잘 들어올 수 있게!”
오토가 소리쳤다.
* * *
일행은 오토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귀신나무 왕이 가지와 뿌리를 휘두르며 공격해 오는 마당에 주변 나무들을 베라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오토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러한 명령을 내렸을 리 없었으므로, 동료들은 각자 준비해 온 도끼를 꺼내 들었다.
기괴한 숲으로 출발하기 전.
오토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1인 1도끼를 챙기도록 했다.
도끼와 같은 중병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카미유, 그리고 마검사들에게까지도.
“나무를 베어 넘길 필요는 없어! 햇빛이 잘 들어올 수 있게 가지들만 베어내도 충분해!”
오토가 다시금 소리쳐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자 바그람과 천둥발굽 부족의 친위대원들, 카이로스와 영혼기사들, 그리고 카미유와 마검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우거진 가지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 이 쥐새끼 같은 놈들!!!
귀신나무 왕이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가지와 뿌리를 뻗어 내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토 일행은 전원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강자들이었기에, 우거진 나뭇가지들을 베어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결과.
스으으으.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인해 가려졌던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햇빛은 귀신나무 왕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치이이익!
치익!
햇빛이 닿은 귀신나무 왕의 뿌리, 껍질, 가지가 마치 불에 탄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연기를 뿜어내었다.
그 어떤 물리·마법 공격에도 면역인 귀신나무 왕의 약점은, 다른 무엇도 아닌 햇살이었던 것이다.
- 이이… 이이이이!!!
귀신나무 왕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치익!
치이이익!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피하기도 쉽지 않은데, 오토 일행을 마음 놓고 공격하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멈추지 마! 계속해서 베!”
오토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계속해서 나뭇가지들을 베어 나갔다.
치익!
치이이이익!
햇빛이 더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귀신나무 왕은 더더욱 고통스러워했다.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신나무 왕이 온몸을 비틀듯 몸부림치며 고통에 찬 절규를 내지르던 순간.
“모두 공격해! 도끼로 찍어 버려!”
오토가 소리쳤다.
콰직!
콰지직!
모두가 일제히 귀신나무 왕에게 달려들어 도끼를 휘둘렀다.
- 크악! 크아아악! 그, 그만! 도끼질은 그마아아아아안!
귀신나무 왕은 오토 일행의 도끼질 세례에 아무런 저항도 못 했다.
그건 귀신나무 왕이 가진 두 번째 약점이었다.
기본적으로, 귀신나무 왕은 물리 공격에 면역이었다.
그러나 햇빛에 의해 약해진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귀신나무 왕을 공격하는 무기의 형태.
아무리 햇빛에 의해 약해진 상태라지만, 물리 면역인 귀신나무 왕을 상대로 검이나 창 같은 무기는 그리 큰 데미지를 입힐 순 없었다.
하지만 도끼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귀신나무 왕은 도끼를 이용한 공격에는 100퍼센트 확률로 치명타 효과를 입을 뿐더러, 500퍼센트 강화된 데미지를 입었다.
즉, 햇볕을 쬐인 뒤 도끼로 패 죽이는 것이 귀신나무 왕을 가장 효과적으로 상대하는 공략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