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파직!
파지지지지직!
오토는 카미유를 아예 전기구이 오징어로 만들어 버릴 기세였다.
“저, 전하!”
“전하! 멈추십시오!”
보다 못한 마검사들이 나섰다.
“어허.”
카이로스가 그런 마검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니,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카이로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한 쌍의 전기뱀장어들처럼 뒤엉켜 있는 오토와 카미유를 돌아보며 웃었다.
“끌끌끌. 뺀질이 놈이 그래도 카미유 녀석 생각을 많이 해 주는구먼. 끌끌.”
“지금 무슨 상황입니까? 어르신?”
겨우 정신을 차린 카심이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보면 모르겠느냐? 뺀질이 녀석이 마나를 나눠 주고 있지 않느냐.”
“예…?”
“과충전 상태였던 뺀질이 녀석이 그냥 흩어 버려야 했을 마나를 카미유 녀석에게 나눠 주고 있는 것이다.”
“……!”
“아까운 마나를 그냥 흩어 버리느니, 저런 식으로 나눠 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 물론….”
카이로스가 덧붙였다.
“받는 카미유 녀석 입장에선 고통스럽겠지만 말이다. 끌끌.”
그런 카이로스의 발언은 아주 정확했다.
“크윽! 크으으으윽!”
카미유가 고통스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마나홀은 오토로부터 흘러들어온 마나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콸콸콸!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마나의 총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문제는 고통.
“으악!!! 으아아악!!! 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어찌나 고통스러워했느냐 하면, 그 인내심 강한 카미유의 입에서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끊임없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어지간한 고문조차 명함도 내밀지 못할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다.
‘마, 마나가 늘어나고 있다. 크윽.’
카미유는 그 와중에 마나홀에 마나가 꽉꽉 들어차는 걸 느끼고,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지직! 지지지직!
오토로부터 뿜어져 나온 전류가 세포 하나하나를 찢어발기는 듯했지만, 카미유는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흡수… 흡수해야… 크으윽!’
오토가 마나를 나눠 주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상 정신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중력을 발휘해 오토가 나눠 주는 마나를 마나홀에 잘 갈무리해서 흡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약 10여 분.
툭.
카미유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오토는 그제야 카미유를 놓아주었다.
“쩝.”
오토가 기절한 카미유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주 약해 빠졌구만, 빠졌어. 정신력이 이렇게 약해서야. 하여간 요즘 것들이란. 쯧쯧쯧. 아이고, 아까워라.”
오토가 남은 마나를 흩어 버리며 다분히 꼰대스러운, 카이로스나 할 법한 발언을 했다.
“…….”
“…….”
“…….”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잊어버렸다.
‘도대체 이게 정신력이란 무슨 상관인데?’
‘정신력으로 그게 버텨지면 사람이 아닙니다만?’
단 한 사람.
“정신력이 나약하구먼. 쯧쯧쯧. 나름 강인한 놈인 줄 알았거늘.”
카이로스만이 오토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평소 정신력 만능론(?)을 주장하던 꼰대다운 발언이었다.
그러나 오토와 카이로스의 말과는 달리 카미유는 결코 정신력이 나약한 게 아니었다.
카미유는 무시무시한 전기고문을 거의 15분 동안 당하면서, 그 와중에 집중력을 발휘해 마나를 흡수하려 최선을 다했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1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걸 감안하면, 가히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보여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에 카미유는 오토와 같은 신마지체의 육체를 가진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그래도 80퍼센트 이상은 흡수한 것 같네.”
오토가 기절한 카미유를 내려다보며 나름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정신력이 약해 빠졌다고 말했던 건 어디까지나 농담일 뿐, 오토 역시 카미유의 정신력을 인정했던 것이다.
“저, 전하. 카미유 경은 괜찮은 겁니까?”
카심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미유의 상태는 영 좋지 못했다.
코, 입, 귀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음은 물론 입술이 시퍼런 것이 매우 큰 타격을 입은 게 분명했다.
게다가 피부 곳곳에 거미줄처럼 번개 문양의 흉터가 드러나 있어서, 누가 봐도 감전에 의해 중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오토는 카미유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괜찮죠. 흐흐.”
“……?”
“괜찮고말고요. 이런 부상쯤 얼마든지 치료 가능하죠.”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웬 커다란 유리병을 꺼냈다.
“히, 히익?!”
“귀이익?!”
카심과 펭이가 유리병 안에 든 내용물을 보고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유리병 안에는 뭔가 걸쭉하고, 불쾌해 보이는 죽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죽의 정체는…….
스윽.
오토가 스푼에 죽을 한 스폰 떠서 카미유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흐흐! 흐흐흐흐!”
광기로 희번덕거리는 눈을 빛내며.
* * *
정신을 차린 카미유는 갈팡질팡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기절한 척 유인해서 전기고문을 한 것도 괘씸하고, 치료랍시고 ‘그 탕약’을 먹인 것도 괘씸했다.
하지만 오토 덕분에 마나의 총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기에, 은혜를 입었다면 입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전기고문으로 병 주고.
마나를 나눠 주는 약을 주고.
또, ‘그 탕약’을 먹여서 약(?)을 주고.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고마워해야 할지.
카미유로서는 이럴 수도 없었고, 저럴 수도 없었다.
“고맙지? 그치? 이런 왕이 어딨어~ 마나를 막 퍼주고~ 치료까지 완벽하게 해 주고~~ 나 같은 왕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오토는 그런 카미유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히죽히죽 웃었다.
부들부들…!!!
카미유는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차마 하극상을 저지르지는 못했다.
오토가 악의적으로 골탕을 먹인 건 분명했지만, 엄청난 양의 마나를 나눠 준 것은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토가 나눠 준 마나는 상상 이상으로 카미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엄청나게 강해진 기분이 든다.’
느껴졌다.
파직!
파지직!
카미유는 자신의 마나홀 안에 전류의 핵이 생성되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가 가진 마나운용법에 최적화된 성질의 마나다.’
카미유가 익힌 건 <광속검>이라는 검술.
본래 쿤타치 가문의 창고에 처박혀 있던 것인데, 오토가 주워다가 카미유에게 준 검술이었다.
그런 광속검의 마나운용법은 전기와 비슷한 성질이 있었는데, 이번에 오토가 준 마나 역시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즉, 오토가 건네준 마나의 성질이 카미유가 가진 광속검을 펼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던 것이다.
이 또한 기연이라면 기연.
“감사합니다, 전하.”
카미유는 약이 오르는 것과는 별개로, 오토에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 왜!!!”
오토가 버럭 성질을 내었다.
“왜 고마워하기만 하는데! 왜!”
“예…?”
“검부터 휘둘러야지! 그래야 재밌지!”
“…….”
“왜 화 안 내냐고! 화 좀 내! 제발!”
카미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사를 일부러 화나게 해서 하극상을 저지르기를 원하는 왕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오토는 카미유가 하극상을 저지르지 않고, 심지어 화도 내지 않은 게 못내 불만이었는지 연신 입을 삐죽이며 심술을 부렸다.
“하여간 재미 없는 인간 같으니.”
“제가 무슨 광대입니까? 전하의 즐거움을 위해 하극상까지 저지를 생각은 없습니다만.”
“쳇.”
오토는 카미유가 먹이(?)를 주지 않자 하극상을 유도하는 걸 그만두었다.
‘두고 보자. 더 열받게 해서 하극상 저지르게 만들어 줄 테니까.’
카미유에 대한 오토의 기이한 집착(?)은 결코 끝난 게 아니었다.
* * *
한편, 바그람과 오크들은 축 늘어져 있는 차우차우를 둘러싸고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차우차우는 천둥 발굽 부족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물.
그런 차우차우를 실제로 구경하게 되었으니, 오크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취익.”
바그람이 다가온 오토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취익?”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면 돼.”
“취익?”
“그럼 알아서 널 주인으로 인정하고, 태워 줄 거야.”
“췩! 그게 정말인가! 취익!”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우차우는… 어? 일어난다.”
오토가 차우차우를 가리켰다.
- 뀍, 뀌익.
기절해 있던 차우차우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차우차우]
천둥을 일으키는 발굽이여!
대지를 질주하라!
- 천둥 발굽 부족의 초대 족장
설명 : 천둥 발굽 부족의 초대 족장이 타고 다니던 거대한 멧돼지.
고대의 신수(神獸)로서, 천둥·번개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분류 : 성물 (생명체)
등급 : ★★★★
효과 :
- 주변 멧돼지들의 이동속도, 공격속도, 스태미나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주며 천둥과 번개로 강화시켜 줍니다.
- 뀍! 뀌익!
몸을 일으킨 차우차우가 바그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스윽.
뒤이어 차우차우가 앞발을 낮춰 바그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치 타라는 듯이.
“취익?”
당황한 바그람.
“뭐해? 타.”
“타, 타도되는 건가? 취익?”
“당연하지. 지금 널 주인으로 인정한 거잖아. 타라고 몸까지 숙여 주는데 왜 안 타?”
“취, 취익. 알겠다.”
바그람은 오토의 말에 따라 조심스레 차우차우의 등에 올라탔다.
파직!
파지직!
그러자 차우차우로부터 전류가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하늘 저 높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푸욱!
떨어져 내린 것은 날이 시퍼렇게 선 도끼날로서, 딱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아스트라의 도끼날]
번개를 부르는 도끼여!
- 천둥 발굽 부족의 초대 족장
설명 : 천둥 발굽 부족의 초대 족장이 휘두르던 도끼의 날.
번개를 다루는 권능이 담겨져 있지만, 너무나도 강력해서 그에 걸맞은 도끼자루가 없으면 사용자가 감전사할 수도 있다.
분류 : 성물
등급 : ★★
효과 :
- 번개 강화 +700%
- 명속성 저항력 +500
-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계속해서 성장함
“자.”
오토가 바그람을 향해 귀신목으로 만든 도끼 자루를 건네주었다.
그게 오토가 미리 도끼 자루를 만들어 두었던 이유였다.
바그람의 두 번째 성물인 <아스트라의 도끼날>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귀신목으로 만든 도끼 자루를 이용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던 것이다.
실제로, 게임상에서는 아무 도끼자루에 아스트라의 도끼날을 끼워 썼다간 바그람이 100퍼센트 확률로 감전사하곤 했다.
그만큼 아스트라의 도끼날은 매우 위험한 물건.
하지만 드워프들이 제작한 도끼자루인 <불멸의 도끼 자루>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바그람이 오토의 조언대로 불멸의 도끼 자루에 아스트라의 도끼날을 끼웠다.
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
그러자 매우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더니, 바그람에게 막강한 힘을 부여했다.
“췩… 취이이이익!!!”
바그람이 자기도 모르게 하늘 높이 <아스트라의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 결과.
번쩍!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번개의 비(雨)가 쏟아져 내리고.
- 뀌이이이이이이익!!!
차우차우도 덩달아 포효하며 전류를 내뿜었다.
“취이이이이이이익!”
“취익! 취이이이이익!”
오크 전사들이 진정한 천둥 발굽 부족의 족장으로 거듭한 바그람을 향해 환호성을 보냈다.
“쩝.”
오토가 부러운 시선으로 바그람을 바라보았다.
성물의 빈부격차(?)가 느껴져서 도저히 투덜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에라이. 누군 성물이 두 개네. 나는 쥐뿔도 없는데. 에라이, 이 더러운 세상.”
오토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매만졌다.
그런 오토의 손길이 쓰다듬은 건…… 각성의 부지깽이의 손잡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