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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53화 (254/401)

제253화

“갑자기 그건 왜 매만지십니까?”

카미유가 불쑥 오토에게 물었다.

“으응?”

“또 누구 머리통이라도 후려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아.”

오토는 그제야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각성의 부지깽이를 어루만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부러워서 그래, 부러워서.”

“예?”

“나만 없어, 성물….”

오토가 시무룩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서러운 게 사실이었다.

다른 군주들은 성물을 적게는 하나에서 많게는 몇 개씩 가지고 있기 마련.

그런데 이놈의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아이템인 성물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극한의 연구를 통해 공략법을 알아내기만 하면 게임을 손쉽게 풀어갈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존재했지만.

그래도 성물이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건 천지 차이였다.

성물은 군주로 하여금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아이템이자 매우 강력한 권능이 담긴 것.

그게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났다.

당장 몇몇 군주들의 경우 시나리오상에 등장하는 성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게임 진행이 아예 불가능하기도 했고.

“몇 개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카미유가 오토를 위로했다.

“그건 내가 뺏거나 얻은 거잖아!”

“예…?”

“자수성가 같은 거 질색이거든? 사람은 말야.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게 최고야.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뽑기라고.”

“…….”

“노력 따위. 흥.”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이뤄내는 것과, 좋은 혈통을 지니고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뭔가를 이뤄내는 것.

둘 중 무엇을 고르겠냐고 물어본다면, 백이면 백 후자를 선택할 테니까.

사서 고생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타고나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다들 노력하고 살아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래.”

오토도 카미유의 의견에 동의했다.

“다들 그러고 사는 거지, 뭐. 그렇다고 타고난 사람들이 노력 안 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당장 엘리제만 해도 천부적인 강함을 지닌 채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오직 검밖에 모른 채 살아오지 않았던가?

“뭐.”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도 얻은 게 많았으니까. 이만하면 엄청 남는 장사지.”

“그렇습니다.”

“슬슬 가자.”

“예, 전하.”

그렇게 오토 일행은 천둥산을 뒤로했다.

* * *

오토 일행은 즉시 천둥산을 떠나 천둥 발굽 부족의 영토로 향했다.

“먼저 가세요, 카심 경.”

“예, 전하.”

“귁! 귁귁귁!”

카심과 펭이가 와이번을 타고 떠났다.

“실컷 달려 봐. 난 뒤에서 천천히 쫓아갈 테니까.”

“취익! 알겠다!”

바그람은 오토의 권유에 따라 차우차우에 올라탔다.

오크 전사들 역시 각자의 멧돼지에 올라탔다.

- 뀌이이이이익!

오크들을 태운 멧돼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차우차우가 크게 포효하며 내달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직!

파지직!

차우차우로부터 뿜어져 나온 전류가 오크 전사들을 태운 멧돼지들을 휘감고.

뒤이어 오크들을 태운 멧돼지들의 갑옷이 더욱 멋지고 화려한 것으로 바뀌었고, 두 눈에서 스파크가 뿜어져 나왔다.

주변 멧돼지들을 강화시키는 차우차우의 권능이 발휘된 것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뒤이어 차우차우를 선두로, 멧돼지들이 가히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했다.

기존에 멧돼지들이 달리던 것보다 최소 1.5배 이상 빠른, 어지간한 명마도 울고 갈 만한 속도였다.

우르릉!

쿵쿵!

그런 멧돼지들의 육중한 발굽 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부족 이름이 괜히 천둥 발굽 부족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하?”

그 광경을 본 카미유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저흰 어떡합니까? 탈 것이 없잖습니까.”

“굳이 뭘 타야 돼?”

“예?”

“뛰면 돼.”

“지금 천둥 발굽 부족까지 뛰어가잔 말씀이십니까?”

“왜? 그럼 안 돼?”

“…….”

“뭐 해? 안 뛰고.”

오토가 내달렸다.

“…….”

카미유는 멀쩡한 탈것들을 두고 굳이 뛰어가자는 오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뛰었다.

명령은 명령.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따르는 것이 기사 된 자의 도리.

마검사들 역시 그런 오토와 카미유를 따라 뛰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슉! 슈욱!

기이하게도,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분명 평소처럼 뛰는데, 실제로 이동하는 거리는 어마어마했다.

마치 공간을 압축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오죽했으면 앞서 달려간 차우차우와 멧돼지들을 순식간에 앞지르고, 아예 점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이, 이게 무슨.”

카미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전력으로 뛰는 것도 아니고, 늘 아침 체력단련 때마다 뛰는 속도로 달리는데도 눈 깜짝할 사이에 수 킬로미터를 이동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된 일이긴.”

오토가 히죽 웃으면서 대답했다.

“축지법이지.”

“추, 축지법… 말씀이십니까?”

“응.”

“워프나 텔레포트 같은 겁니까?”

“그런 거랑은 개념이 좀 다르고. 그냥 공간을 압축한다고나 할까.”

“예…?”

“이해하려고 하지 마. 다쳐.”

“…….”

“마나가 늘어나니까 이거 하나는 좋네.”

천둥산에서 얻은 기연으로 엄청난 양의 마나를 획득한 덕분에, 오토는 트릭스터의 재간 권능도 마음껏 활용할 수가 있게 되었다.

마나 소모가 부담스러워서 쉽사리 쓸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예 광역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축지법~~~~~ 축지법~!”

오토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국왕 전하 축지법 쓰신다아아아아아~~~~”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이 세상을 주름잡아~ 국왕 전하~ 가신다~~~”

“그건 도대체 무슨 노래입니까?”

카미유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오토가 부른 노래가 워낙에 해괴망측해서, 차마 들어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비밀이야.”

오토는 노래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직접 작사 작곡하신 겁니까?”

“뭐. 그런 걸로 해 둘게.”

오토는 <국왕 전하 축지법 쓰신다>라는 괴상망측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해서 내달렸다.

* * *

복귀한 바그람은 부족민들로부터 가히 열화와 같은 성원과 열렬한 지지, 그리고 환호를 들었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족장인 바그람이 부족의 전설에 등장하는 차우차우를 타고 나타났으니, 부족민들의 입장에선 전설의 재림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취이이익! 취이이익!”

“취익! 취익! 취익! 취익!”

부족민들은 바그람을 향해 거센 포효를 내지르며, 절대적인 지지와 경배를 보냈다.

전설의 신수 차우차우를 타고 나타난 이상 바그람은 천둥 발굽 부족의 절대자나 다름없었다.

족장 그 이상의, 부족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충성을 받아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는 비단 천둥 발굽 부족뿐 아니라, 우르크 평원의 다른 부족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단, 천둥 발굽 부족과는 오래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성난 늑대 부족은 빼고.

두 부족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앙숙이었고, 마치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였다.

그래서 차우차우를 탄 바그람은 성난 늑대 부족으로부터 더더욱 미움받을 수밖에 없었다.

적대감과 경계심을 더욱 자극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오토는 바그람이 차우차우를 얻으면 성난 늑대 부족으로부터 민심을 잃는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본래부터 잃을 인심도 없었지만, 사이가 더더욱 험악해지는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거지.’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바그람이 이끄는 천둥 발굽 부족은 성난 늑대 부족과 일전을 치러야 했다.

왜?

성난 늑대 부족에는 에르제베트 왕국이 심어 놓은 변종 오크들, 즉 오르쿠스들이 득실득실거렸으니까.

사실상 성난 늑대 부족은 에르제베트 왕국군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족장! 큰일 났습니다! 취익!”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바그람은 복귀하자마자 영 좋지 못한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무슨 일인가? 취익?”

“평원의 여러 부족들이 국경을 넘어 인간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취익!”

“뭐라!”

보고를 받은 바그람은 크게 놀랐다.

“이런 멍청한 놈들이! 취이이이익!”

바그람이 버럭 소리치며 분노를 드러내었다.

“어쩌자고 인간들을 건드린단 말인가! 취익! 우리 오크들이 인간들에 의해 이곳 우르크 평원으로 쫓겨났다는 걸 모르는가! 취익! 무턱대고 전쟁을 일으키면 전 대륙의 인간들이 우리 오크들을 멸종시키려 들지도 모르는 것을!!!”

현명한 바그람은 오크란 종족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함부로 인간들을 자극했다가는 오크란 종족이 이 세계에서 완전히 멸종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섣불리 전쟁을 일으킨 다른 부족들의 행동에 대해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난 늑대 부족 역시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취익!”

“……!”

“족장! 비상사태입니다! 취익!”

“이런 빌어먹을….”

차우차우의 주인이 되어 복귀하자마자 들여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바그람은 이를 악물었다.

우르크 평원의 정세가 이렇듯 갑작스레 변화했으니, 바그람으로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곁에 있던 오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야. 바토리 그 누님이 열 좀 받으셨나 보네.”

오토는 오크들이 왜 평원을 빠져나가 인간들의 영토를 침공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주변 세력들에 대한 압박의 의미겠지. 힘도 없는 주제에 나대지 말라는 경고고. 오크들을 이용해서 반기를 든 주변국들이 알아서 기어들어 오게끔 만드는 거다.’

오토는 바토리의 행동 패턴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바토리가 이런 식으로 오크들을 이용해 주변국들의 힘을 갉아먹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30년 전.

바토리가 처음 왕위에 오르자마자 한 것이 오크들을 이용해 주변국들을 초토화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말은…….

‘아이고, 고마워라.’

오토는 바토리의 행동 패턴에 따른 대응 방법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하면 되는지.

어떻게 바토리에게 카운터펀치를 한 방 먹여 줄 수 있는지.

오토가 모르는 건 없었다.

혹시나 모를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당황하지 말고.”

오토가 바그람에게 조언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해. 그러니까 진정하고, 차분하게 움직이자.”

“취익?”

“바그람 너만 잘하면 인간과 오크들 간 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취익?”

“인간들을….”

오토의 입에서 그야말로 파격적인, 오크들의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충격적인 발언이 튀어나왔다.

“도와줘. 지금이 기회야. 두 종족이 화해의 물꼬를 틀 기회.”

“취, 취익!”

바그람은 오토의 말에 크게 놀랐다.

오크가 인간을 돕는다.

이는 인간과 오크 두 종족의 사이를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발언이었다.

인간들에 대한 오크들의 증오와 불신이 얼마나 깊던가?

오크들의 입장에서는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인간들을 도와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오토의 생각은 달랐다.

“그게 오크들이 살길이고, 인간과 오크 두 종족이 화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취, 취익! 하지만 부족민들이….”

“따를 거야.”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넌 초대 족장만 탈 수 있었던 차우차우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고, 그가 쓰던 도끼를 가지고 있어. 지금 네 통솔력은 천둥 발굽 부족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

“지금 부족민들은 네가 물에 빠져 죽으라고 해도 그렇게 할 거야.”

오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차우차우와 아스트라의 도끼를 얻은 바그람의 통솔력은 가히 절대적인 것.

지금이라면 인간들을 도와주자는 바그람의 말에 군말 없이 따를 게 분명했던 것이다.

“어때?”

오토가 바그람에게 물었다.

“할 수 있겠어?”

“취익.”

바그람은 고민했다.

제아무리 오토와 친구가 되었다고 한들, 오크로서 인간들을 도와준다는 게 바그람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바그람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좋다. 췩.”

바그람이 결단을 내렸다.

“인간들을 도와주겠다. 취익.”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바그람은 지혜롭고 현명한, 그러면서도 용맹한 오크 군주.

그런 바그람이라면 기꺼이 인간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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