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56화 (257/401)

제256화

“뀌이이이이이이이이익!!!”

포효하는 차우차우.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어 하늘을 뒤덮었다.

번쩍!

우르릉!

콰앙!

쾅! 쾅! 쾅! 쾅! 쾅!

뒤이어 붉은 망치 부족 오크들의 머리 위로 시퍼런 번개가 떨어졌다.

“취, 취익?!”

“천둥 발굽 부족이다! 취이이익!”

붉은 망치 부족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천둥 발굽 부족이 후방으로 치고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취이이익! 긍지 높은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들이여! 취익! 적 진영을 무너뜨리자! 취이이익!”

차우차우를 탄 바그람이 거센 함성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차우차우의 힘으로 인해 강화된 멧돼지를 탄 전사들이 그런 바그람을 뒤쫓아 함께 내달렸다.

그런 천둥 발굽 부족 기병―말을 탄 건 아니지만―들의 파괴력이란, 가히 어마어마했다.

쾅!

콰아앙!

천둥 발굽 부족 기병들은 마치 불도저라도 되는 것처럼 적 진영을 완전히 뭉개 버렸다.

멧돼지 부대의 돌파력이란, 가히 탱크와도 같았다.

그 누구도 바그람과 전사들의 앞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쾅!

콰앙!

오크들이 제아무리 힘이 세다고 한들, 코뿔소만 한 크기의 멧돼지들을 상대로 버틴다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파직!

파지지직!

기병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전류는, 주변 적들을 모조리 감전시킴으로써 전투불능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차우차우가 있는 천둥 발굽 부족의 기병대는, 단 한 번의 돌파만으로도 붉은 망치 부족의 진영을 완전히 붕괴시켜버렸다.

“취, 취익!”

“차우차우… 차우차우다! 취이이익!”

“전설의 차우차우가 나타났다! 취이이이익!”

붉은 망치 부족의 오크들은, 바그람이 차우차우에 올라타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차우차우는 비단 천둥 발굽 부족뿐 아니라 여러 오크 부족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매우 유명한 신수였기 때문이다.

“붉은 망치 부족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취익!”

바그람이 소리쳤다.

“인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취익! 몽둥이로 싸워라! 전사들이여! 취이익!”

바그람의 명령에 따라서,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들은 날카로운 날붙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귀신목을 깎아 만든 야만의 몽둥이만을 휘둘렀다.

야만의 몽둥이는 저주와 마비 효과가 있어서, 적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제아무리 나무 몽둥이라고는 해도 어지간한 강철보다 단단한 흉기이긴 했지만.

하지만 일부러 머리를 노리지 않는다면, 인명피해를 최대한 방지할 수 있을 터.

퍽! 퍼억!

바그람과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들이 야만의 몽둥이를 휘둘러 적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팼다.

“취익!”

“취이이익!”

야만의 몽둥이에 얻어맞은 적들은, 큰 타격과 함께 저주와 마비에 걸려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캬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와이번들도 붉은 망치 부족의 머리 위를 비행하며 압박을 가했다.

그 결과.

“취이이이익! 후퇴하라! 취이이이이이익!”

“취이이익! 후퇴다! 취익! 후퇴하라! 취이이이익!”

붉은 망치 부족은 더는 전투를 지속하지 못하고, 황급히 퇴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 후방에 적이다! 취이익!”

“포위! 포위당했다! 취이이익!”

이미 천둥 발굽 부족의 보병들이 퇴로를 가로막은 채 압박을 가해오는 중이라서, 붉은 망치 부족은 후퇴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앞은 맥라렌 왕국의 요새.

뒤는 천둥 발굽 부족의 군대.

앞뒤로 적들에게 둘러싸이고 만 것이다.

* * *

한편, 맥라렌 왕국의 지휘관은 홀연히 나타난 금발의 미남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도대체 누구인지.

어느 틈에 온 것인지.

지휘관으로서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귀하는 누구시오?”

지휘관은 금발의 미남자가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오타 왕국의 국왕입니다.”

“아.”

지휘관은 오토 드 스쿠데리아란 이름을 듣자마자 곧바로 수긍했다.

이오타 왕국의 국왕이 대륙에서 제일가는 미남이란 이야기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이오타 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허면, 지원군을 데려오셨단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지원군, 지원군은 어디 있습니까?”

지휘관이 오토에게 다그쳐 물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단 이오타 왕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지원군은 이미 왔습니다.”

“예…?”

“저기.”

오토가 하늘 위를 가리켰다.

“캬아아아악!”

“캬악! 캬아아아아악!”

그곳에는 와이번 라이더, 즉 용기사(龍騎士)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우리 공군입니다. 그리고 저기는.”

오토가 저 멀리 천둥 발굽 부족의 기병대를 가리켰다.

“우리 육군이고요.”

“예에?!”

지휘관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둥 발굽 부족이 우리 지원군입니다.”

“설마 오크들과 동맹을 맺으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둥 발굽 부족은 오크들이 인간들을 공격하는 걸 반대하고, 오히려 친해지고 싶어 하는 이들입니다.”

“……!”

“그래서 붉은 망치 부족으로부터 맥라렌 왕국을 지켜주기 위해 흔쾌히 움직여 준 겁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크가 오크로부터 본국을 지켜준다는 말씀이십니까?”

“보시다시피.”

오토가 전장을 가리켰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부상자들을 치료하시고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세요. 전투는 이미 끝났습니다.”

“미,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오크가 우리 인간을 도와준단 말입니까.”

“지켜보시다 보면 알게 되실 겁니다.”

오토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성벽 위에 걸터앉아 전투를 지켜보았다.

“자알 싸운다.”

이 전투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바그람.

그래서 오토는 나설 생각이 없었다.

지금 오토의 역할은 판을 깔아 두는 것이지, 직접 전투에 참가해서 공을 세우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포위당한 붉은 망치 부족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전장에 갇히고 말았다.

“취이이익! 가프! 나 바그람이 왔다!”

바그람이 크게 소리치며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 가프를 불러내었다.

“나 천둥 발굽 부족의 족장 바그람은!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 가프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취이이이이익!”

그러자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 가프가 어깨에 거대한 망치를 짊어지고 바그람 앞에 나섰다.

“취이이익! 나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 가프가 여기 있다! 취이이이이익!”

오크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족장들 간의 일대일 대결이 벌어지는 게 매우 흔했다.

특히나, 유리한 입장에 선 족장이 먼저 일대일 대결을 신청하면 불리한 입장에 선 족장은 그걸 받아주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승패가 거의 결정 난 상황에서 더 이상 무의미한 피를 흘릴 필요 없이, 족장들끼리 무력을 겨뤄 결판을 내는 것이 오크들의 문화였던 것이다.

“취, 취이익!”

가프는 차우차우를 탄 바그람을 보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부족의 족장으로서 물러섬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물러서봤자 부족의 전사들에게 겁쟁이로 낙인찍힐 게 뻔했고, 어차피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기정사실인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설 수밖에 없기도 했고.

“바그람! 천둥 발굽 부족이 이렇게 비열할 줄을 몰랐다! 취이이익!”

“그게 무슨 소리인가? 취익?”

“취익! 우리를 뒤통수쳐서 저 요새를 점령하려는 것이 아닌가! 취이익!”

가프는 바그람이 단순히 붉은 망치 부족을 뒤통수치고, 맥라렌 왕국을 집어삼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취익! 가프! 이 바그람이 네놈과 같은 악마의 자식인 줄 아는가! 취이이익!”

“취, 취이익?!”

“나는 네놈이 진정한 오크가 아닌 악마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취이이이익!”

“……!”

“오늘 나 바그람은 네놈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취이이익!”

바그람은 그렇게 소리치더니, 차우차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가프를 향해 아스트라의 도끼를 휘둘렀다.

파지지지직!

아스트라의 도끼가 무슨 화염방사기처럼 전류를 뿜어내며, 가프를 압박했다.

“취, 취익! 취이이이이이익!!!”

가프는 바그람의 매서운 공격 앞에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해보지 못했다.

본래 실력 차이도 바그람이 압도적인데, 아스트라의 도끼라는 성물까지 앞세우니 가프는 상대도 안 되었던 것이다.

“취익! 취이이이이이이익!”

가프는 아스트라의 도끼에서 뿜어져 나온 전류에 감전되어 연신 비명을 지르다가, 기력이 다해 쓰러지고 말았다.

바그람은 가프를 죽이지 않았다.

콰직!

바그람의 손아귀가 가프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보라! 붉은 망치 부족의 전사들이여! 취이이익! 너희 족장의 정체가 무엇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라! 취이익!”

바그람은 그렇게 소리치고는, 단검으로 팔을 살짝 그어서 피를 내었다.

그리고 그 피를 가프의 입가에 억지로 흘려넣었다.

그 결과.

“크륵… 크르륵… 취익… 취이이이익!”

가프의 피부색이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취, 취익?!”

“족장의 피부가! 취이익!”

“악마! 취이익! 악마의 자식이다! 취이이이익!”

붉은 망치 부족은 족장 가프가 오르쿠스임이 드러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족장뿐만이 아니다! 취익!”

바그람이 소리쳤다.

“너희 전사들 중에서는 수없이 많은 악마의 자식들이 숨어 있다! 취익! 악마의 자식들은 순수한 오크의 피를 마시면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니 싸우지 말고 서로의 피를 조금만 마시게끔 해라! 취익! 그러면 누가 악마의 자식이고, 누가 진정한 오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취이이익!”

바그람의 말을 들은 붉은 망치 부족의 오크들은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피를 내어 오르쿠스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취, 취이익!”

“이런 빌어먹을! 취이익!”

숨어 있던 오르쿠스들은 안 그래도 포위당한 상태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쩔쩔매다가 정체가 탄로 나 버렸다.

다들 피를 마셔서 오르쿠스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는데, 그들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눈치만 살살 보고 있으니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차례 소란이 지나간 후.

“붉은 망치 부족이여! 취익! 너희들은 속고 있던 거다! 취이익! 인간들을 공격하게 된 것은 악마의 자식들이 선동했기 때문이다! 취익! 그러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취익!”

바그람이 외침에, 붉은 망치 부족의 전사들은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족장부터가 악마의 자식이라는 게 드러난 이상 더는 싸울 의지도, 명분도 없었기 때문이다.

* * *

“굿.”

바그람이 붉은 망치 부족을 항복시키는 것을 본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게 전설의 시작이지.”

오크 군주 바그람이 우르크 평원을 통일하는 건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위대한 여정의 첫 발걸음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기분이란…….

“보셨죠?”

오토가 지휘관을 돌아보았다.

“천둥 발굽 부족은 우리 인간들을 공격하러 온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켜주려고 온 거죠.”

“마, 맙소사.”

“국왕 전하를 만나고 싶습니다. 전령을 보내 회담을 주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본국의 국왕 전하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으음.”

지휘관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오토의 청을 들어주었다.

“전령을 보내 드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토는 맥라렌 왕국의 국왕이 회담을 수락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맥라렌 왕국의 국왕은 에르제베트 왕국에 쌓인 게 많아서, 어떻게든 그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물.

이오타 왕국은 물론 오크인 천둥 발굽 부족과 손을 잡는 것도 망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맥라렌 왕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자리해 있었기에, 에르제베트 왕국이 아닌 이오타 왕국과 손을 잡아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르제베트 왕국을 손절하기 쉬운 입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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