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당연한 말이겠지만, 성난 늑대의 부족의 족장이 가진 뿔피리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맹수의 목청>이라 불리는 그 뿔피리는, 매우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천둥 발굽 부족이 멧돼지를 길들여서 타고 다니는 것처럼, 성난 늑대 부족은 거대한 우르크 울프들을 끌고 다녔다.
비록 타고 다니지는 않지만, 수천여 마리의 우르크 울프들이 전장을 휘저을 때면 그 위력은 가히 무시무시했다.
우르크 울프들은 보통의 늑대보다 덩치가 거의 2배 이상은 컸고, 평범한 호랑이쯤은 일대일로 싸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맹수들이었다.
맹수의 목청은 그런 우르크 울프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비록 성물은 아니었지만, 거의 성물에 버금하는 능력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수천여 마리의 우르크 울프들은 성난 늑대 부족 전력의 핵심이었으므로, 뿔피리를 훔쳐 온다는 건 대단히 큰 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투리안의 탈출과 구출이 바그람의 시나리오에서 매우 중요한 이벤트일 수밖에.
만약 투리안을 구해서 신비한 뿔피리인 맹수의 목청을 손에 넣는다면, 성난 늑대 부족의 전력은 한순간에 30퍼센트 이상 날아가는 셈.
즉, 오토의 입장에서는 굳이 지금 성난 늑대 부족과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투리안이 뿔피리를 강탈해 오면 성난 늑대 부족의 힘을 빼 놓고 싸울 수 있는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굳이 지금 맞붙을 리가.
오토가 바그람을 뜯어 말리고, 기다리라고 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에르제베트 왕국군의 합류가 늦는다 해서 괜히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에르제베트 왕국군도 끌어들여야 했고.
‘암살에 성공할 가능성은 아예 없고.’
성공 가능성은 1퍼센트 미만.
그마저도 성공해서 성난 늑대 부족을 탈출할 가능성은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실패할 확률이 99퍼센트. 대신 뿔피리는 확실하게 훔쳐 달아날 테니까….’
오토는 지금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도망치는 투리안을 중간에서 낚아채기만 하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본래 같았으면 일종의 특수부대인 마검사들을 육로로 침투시켜서 투리안을 지원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왜?
와이번들이 있었으니까.
공중 병력이 있다는 것은, 침투와 퇴출이 엄청나게 편해진다는 의미였다.
힘들여 적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침투할 필요도 없고, 퇴출 시 추격전을 벌이며 죽어라 도망칠 필요도 없었다.
슝 날아와서 작전을 성공시킨 뒤 슝 날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여간 복덩이란 말야.’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까막이의 고삐를 쥔 카심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으음?”
카심이 그런 오토의 시선을 귀신같이 느끼고, 얼굴을 붉혔다.
“왜 그러십니까?”
“기특해서요.”
“예…?”
“카심 경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하핫!”
카심은 오토가 뜬금없이 자신을 칭찬해 주자 푼수처럼 웃었다.
오토의 칭찬은 늘 카심을 춤추게 만드는 원동력이었고, 임무를 완수해낼 때마다 그 성취감·행복감·만족감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살랑살랑~!!!
‘으응?’
오토는 카심의 엉덩이 뒤에 웬 꼬리가 하나 돋아나 프로펠러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마치 주인에게 칭찬을 받아 기분 좋아진 멍멍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편하게 작전하네요. 다 카심 덕분이죠.”
“아,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카심.”
“충성충성충성!!!”
오토는 그렇게 카심에게 격려와 칭찬을 해 주고는, 즉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투리안을 중간에서 낚아채기에 가장 좋은 위치로.
* * *
그로부터 1시간 뒤.
“잡아라! 취이이이익!”
“투리안을 잡아라! 취이이익!”
“족장께서 당하셨다! 투리안과 그 일당들을 쫓아라!”
성난 늑대 부족 진영 전체에 들썩였다.
투리안이 성난 늑대 부족의 족장을 공격해 뿔피리를 빼앗아 도망치는,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취, 취익! 반드시! 반드시 놈을 잡아야 한다! 부족의 전사들이여! 투리안을 잡아라! 놈은 천둥 발굽 부족에서 보낸 간첩이다! 취이이익! 그놈이 나를 공격하고 뿔피리를 빼앗아 도망쳤다! 취이익! 어서 놈을 뒤쫓아라! 취이이이이이익!!!”
성난 늑대 부족의 족장 베큠은 가슴팍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투리안의 기습적인 공격에 자칫 치명상을 입을 뻔했지만,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취이이익! 투리안을 잡아라! 취이이익!”
“모두 출동하라! 취이이이익!”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은 즉시 투리안 일행을 뒤쫓았다.
하지만 투리안 일행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투리안은 일행은 철저한 탈출 계획을 세워 두었고, 미리 준비해 둔 멧돼지들을 타고 도망쳤기에 눈 깜짝할 사이에 성난 늑대 진영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탈출이 쉬운 건 아니었다.
“컹! 컹컹컹!”
“크르르르!”
성난 늑대 부족은 즉시 우르크 울프들을 풀어 투리안 일행을 뒤쫓았다.
우르크 울프들은 엄청난 속도와 지구력을 지녔고, 늑대답게 후각 또한 엄청나게 뛰어났다.
타고난 사냥꾼들인 우르크 울프들의 추적은 가히 어마어마해서, 얼마 가지 않아 투리안 일행의 뒤까지 바짝 따라붙었다.
“취, 취익!”
투리안 일행은 저 멀리 우르크 울프들이 뒤쫓아오는 걸 보고 크게 당황했다.
우르크 울프들의 추적 및 추격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취익! 달려라! 취익! 더 달리란 말이다! 더 빠르게! 취이이이익!”
투리안이 연신 멧돼지를 몰아붙였지만,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질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투리안 일행이 탄 멧돼지들은 천둥 발굽 부족 시절부터 타오던, 이제는 나이가 들어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개체들이었다.
게다가 오크들이 타고 다니는 멧돼지들은 순간적인 돌진 속도와 파괴력은 크지만, 지구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즉, 순간적으로 성난 늑대 부족 진영을 탈출하는 데는 유리했지만, 장기적인 도주에는 너무나도 불리했던 것이다.
“취이익!”
투리안은 황급히 뿔피리를 꺼내 들고 있는 힘껏 불어보았다.
뿔피리는 우르크 울프들을 부리는 권능이 담겨 있는 아이템이었기에, 그것을 이용해 추적을 뿌리쳐 보려는 것이다.
뿌- 뿌우-
뿔피리가 웅장한 소리를 뿜어내었다.
“컹! 컹컹컹!”
“크르르르!”
하지만 우르크 울프들은 투리안이 분 뿔피리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화가 난다는 듯 으르렁대며 속도를 높였다.
“취, 취익!”
투리안은 당황해서 더욱 크게 뿔피리를 불어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투리안이 강한 오크긴 했지만 아직은 뿔피리를 사용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우르크 울프들을 지휘하기 위해서는 자격뿐 아니라 특유의 그 멜로디를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멜로디는 성난 늑대 부족의 족장들에게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기에, 투리안으로서는 우르크 울프들을 지휘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뿔피리를 사용하지 못하자 투리안 일행은 금방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뀍, 뀌익.”
“뀌이이이익.”
결국, 투리안 일행이 탄 멧돼지들은 더는 달리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늙은 멧돼지들로서는 이 이상 달리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 * *
“취, 취익!”
투리안은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자신의 멧돼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뀍, 뀌익….”
멧돼지가 투리안을 향해 무어라 속삭였다.
그 눈빛.
그 힘 없는 울부짖음.
그 의미는…….
‘어서… 가.’
멧돼지는 지쳐 쓰러진 도중에도 투리안으로 하여금 도망치라 말했다.
움찔!
투리안은 그런 멧돼지의 말뜻을 이해하고, 몸을 떨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은 멧돼지를 버려두고 도망치는 게 맞았다.
그러지 않으면 순식간에 우르크 울프들에게 둘러싸여 갈기갈기 찢길 테고, 결국에는 늑대 밥이 될 테니까.
“어서 가야 합니다! 취익!”
바루가가 투리안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투리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취익….”
투리안은 쓰러진 멧돼지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투리안과 멧돼지는 지난 20년 동안 동고동락한 소중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천둥 발굽 부족을 떠나 성난 늑대 부족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함께했을까.
“취익… 옛날엔 너도 혈기왕성했었는데… 췩.”
투리안이 안타깝다는 듯 멧돼지를 달랬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취익!”
“하지만….”
투리안은 멧돼지를 버릴 수 없었다.
그건 다른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들은 어렸을 적부터 멧돼지와 함께 생활하며 친화력을 올리기 마련.
그런 멧돼지들을 두고 도망치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이대로 멧돼지들을 두고 간다면, 성난 우르크 울프들에게 뜯어 먹힐 게 분명했고.
“취익… 우리 천둥 발굽 부족은….”
투리안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췩.”
투리안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창을 꺼내 들었다.
“취이익!”
바루가는 투리안이 내린 결정에 크게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 적과 싸우겠다는 것은, 정말이지 미련한 행동이었다.
멧돼지들이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리 동료들이 숨 고를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지 않겠나. 취익. 놈들을 해치우고, 동료들이 기력을 되찾고 나면 다시 도망친다. 취익.”
“알겠… 습니다. 취익.”
바루가는 투리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바루가. 취익.”
“예. 취익.”
“너는 이 뿔피리를 가지고 먼저 형님께 가라. 취익.”
“아, 안 됩니다! 취익! 그럴 수는 없습니다! 취익!”
“어서!!!”
투리안이 바루가의 등을 떠밀었다.
“우리가 여기서 죽는다 한들! 취익! 이 뿔피리가 다시 베큠 그놈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된다! 취익! 어떻게든 형님께 이 뿔피리를 전해야 한다! 취이익!”
“하, 하지만….”
“취이익! 어서 가라!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이자 부(副) 족장으로 명령한다! 취이익! 어서 가라!!! 취이이이익!!!”
투리안은 스스로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이자 부족장이라는 정체를 강조했다.
돌고 돌아 결국엔 그 근본이 천둥 발굽 부족임을 인정한 것이다.
“바,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취익.”
바루가는 눈물을 흘리며 투리안의 명령에 따라 뿔피리를 받아들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취이이익! 와라! 이 투리안이 네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취이이익!”
“취이이이익!”
뒤이어 투리안과 천둥 발굽 부족 출신 전사들과 우르크 울프들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불행히도 투리안 일행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새카맣게 몰려든 우르크 울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투리안 일행을 포위했고, 무차별적인 맹공을 퍼부어대었다.
“취, 취이이익! 취이이익!”
“으르릉!”
“취이이이익!”
“깨갱!”
투리안은 자신의 등짝을 물고 늘어지던 우르크 울프를 내팽개치며 창을 휘둘렀지만, 역부족이었다.
“취, 취익!”
“취이이이익!”
전사들 역시 우르크 울프들의 공격에 하나둘 쓰러져갔다.
“취익….”
무너진 투리안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신음했다.
“으르르릉!”
“크르르르르르르르!”
우르크 울프들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투리안 일행을 포위한 채 천천히 원을 그렸다.
저 멀리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이 올 때까지 투리안 일행을 붙잡아두려는 것이다.
“이렇게… 취익… 끝인가… 형님께 사죄하지도 못하고… 취이익….”
투리안이 형 바그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후회하던 그때.
번쩍!
한 줄기 섬광이 내리치고.
촤라라라라라라!
시퍼런 전류가 원형으로 퍼져나가며 우르크 울프들을 휩쓸었다.
“……!”
“……!”
“……!”
난데없이 빗발치는 번개에 투리안 일행이 놀라던 그 순간.
쿠웅!
실로 거대한, 정말이지 엄청난 덩치를 지닌 멧돼지가 전류를 뿜어내며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취, 취이이익!!!”
투리안 일행은 그 거대한 번개 멧돼지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차우차우.
천둥 발굽 부족 출신이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전설 속 신수.
그리고 그 위에 탄 오크는…….
“취이이익!”
바그람이 아스트라의 도끼를 움켜쥔 채 호령했다.
“나 바그람의 동생을 건드리는 놈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취이이이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