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62화 (263/401)

제262화

“혀, 형님…! 취이이익…!!!”

투리안은 몇 년 만에 만난 형 바그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저 널찍한 등을 본 것이 얼마 만인지…….

“취익.”

바그람이 슬쩍 어깨 너머로 투리안을 돌아보았다.

“내 동생아. 취익.”

“……!”

“이 형이 구하러 왔다. 취익.”

“어, 어떻게… 취익.”

투리안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부족과 형님을 배신한… 비열한 배신자에 불과한데… 취익….”

“아니. 췩.”

바그람이 고개를 저었다.

“너와 전사들은. 취익. 이 형의 비밀스러운 명령을 받고. 취익. 목숨을 걸고 성난 늑대 부족에 침투해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취익.”

“취, 취익?!”

“수년 동안 부족의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성난 늑대 부족에 침투해서 신임을 얻고. 취익. 족장인 베큠의 암살을 시도했고, 뿔피리를 탈취한 거다. 취이익.”

“형님… 취익….”

투리안은 바그람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차마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간의 잘못을 덮어 주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부족민들에게는 공을 세운 것으로 이야기해 주겠다니.

한때나마 부족을 배신하고 적대세력에 몸담았던 투리안으로서는 그저 쥐구멍에라도 숨고만 싶을 지경이었다.

“동생아. 취익.”

바그람이 투리안에게 말했다.

“나는 절대 너를 버리지 않는다. 취익. 누가 뭐래도 너는 내 동생이고, 우리 자랑스러운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이다.”

“취, 취이익!”

“그러니 지난날의 과오는 잊어라. 취익. 또한, 내게 서운한 게 있다면… 부디 마음을 풀길 바란다. 취익. 나 또한 네 잘못을 잊을 테니. 취이익.”

“취… 취이이익….”

투리안은 형 바그람의 드넓은 마음씨와 포용력에 그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쳤다.

이런 형을 상대로 사사건건 대들고, 끝내는 의견 다툼 끝에 부족을 떠나 적대세력에 몸담았다니.

“물러서 있어라. 취익.”

바그람이 차우차우를 몰고 저 멀리 쫓아오는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에게로 향했다.

“뀌익… 뀌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차우차우가 거세게 울부짖으며, 강력한 전류를 뿜어내었다.

파직! 파지직!

그러자 그 전류가 쓰러져 있던 투리안 일행의 동료들, 그러니까 이제는 노쇠한 멧돼지들에게 전해져 그들을 휘감았다.

“뀌익! 뀌이이이이익!”

“뀌이이이이익!”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던 멧돼지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포효했다.

차우차우의 권능에 의해 강화되어, 떨어진 체력이 회복됨은 물론 노장(老將)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혈기왕성해진 것이다.

전류를 내뿜는 갑옷도 장착한 것은 담이었고.

“오오오! 취익!”

“차, 차우차우의 권능! 취익!”

“맙소사! 취이익!”

투리안과 전사들은 차우차우에 의해 멧돼지들이 강화되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둥 발굽 부족 초대 족장의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차우차우의 권능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취이이익!”

바그람은 차우차우를 타고 홀로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을 향해 맹렬히 질주했다.

추격해 오는 무리들 정도는 바그람 혼자서도 충분히 박살내 버리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 * *

차우차우를 탄 바그람의 무력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번쩍!

쾅! 쾅! 쾅! 쾅!

지지지지직!

바그람은 아스트라의 도끼를 휘두르며 번개를 내리치고, 전류를 뿌리는 등 대활약하며 추격해 오던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을 쓸어버렸다.

“취익… 취이익… 저것이 진정한 형님의 모습인가… 취이이익…!!!”

투리안은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바그람의 모습을 보고 전율에 몸을 떨었다.

현명하고 온화한 성격 때문에 늘 약해 보였던 형 바그람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전설의 신수 차우차우를 타고 초대 족장이 휘두르던 아스트라의 도끼를 든 바그람의 모습이란 정말이지 멋있고, 강해 보였으며, 또한 존경스러워했다.

그러는 사이.

슥, 스윽.

“아군을 보호한다.”

“귁! 귁귁귁!”

카심과 펭이가 마검사들을 데리고 나타나 투리안 일행을 보호했다.

“취, 취익?!”

당황한 투리안.

“부족장! 취이익!”

뿔피리를 가지고 달아났던 바루가가 투리안을 향해 달려왔다.

“어떻게 된 일인가! 취익!”

“이들이 저를 보호해서 다시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취이익!”

바루가가 카심, 펭이, 그리고 마검사들을 가리켰다.

“족장과 동맹을 맺은 자들이라 합니다! 취익! 부족장과 저희 전사들을 구하러 온 이들이랍니다! 취익!”

“그, 그랬던가? 취익?”

그때.

“얘기는 나중에 하고.”

오토가 카미유와 함께 나타나 바루가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내놔 봐.”

“취, 취익?”

“내놓으라고, 빨리.”

“뭘 말이냐? 취이익?”

“이게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오토가 바루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내가 니네 족장이랑 밥도 먹고, 온천도 가고, 다 하는 사이인데.”

“취이익?”

“싸가지 없이 반말 찍찍 지껄이지 마라. 확 그냥 조져 버리기 전에.”

바루가는 오토가 윽박지르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취익? 어떻게 합니까? 부족장?”

“취, 취익.”

투리안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크인 이상 인간을 대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야 이. 뭘 주니 마니 하고 있어. 사람 짜증나게.”

“취, 취익?!”

“네가 안 주면 어쩔 건데?”

오토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루가의 손에서 뿔피리를 낚아채고는 눈을 부라렸다.

트릭스터의 재간 권능을 사용해 일종의 소매치기(?)를 해서 성공해 보인 것이다.

“너, 잘 봐.”

오토가 투리안에게 말했다.

“이건 이렇게 부는 거야.”

오토는 투리안이 뿔피리를 불어보려다가 실패했던 걸 언급하고는, 소매로 피리를 슥슥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보란 듯 뿔피리를 불어 보였다.

삐이이-

그러자 뿔피리에서 이전과는 다른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리안이 불었을 때와는 180도 다른 음정, 톤, 그리고 멜로디였다.

삘릴리 취익취익 삘릴릴리- 삘릴리 취익취익 삘릴릴리-

뒤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컹! 컹컹!”

“컹컹컹!”

투리안 일행을 둘러싸고 포위했던 우르크 울프들이 갑자기 제자리에 앉은 채 오토를 바라보았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처럼.

“취, 취익?!”

“취이이이익!”

“이, 인간이… 취익… 맹수의 목청을 다루다니! 취익!”

투리안 일행은 오토가 뿔피리를 능숙하게 다루는 걸 보고 경악했다.

오직 성난 늑대 부족의 족장만이 사용할 줄 아는 뿔피리를 이렇듯 손쉽게 다루는 인간이 존재했을 줄이야.

‘니들은 못해도 난 하지.’

오토는 뿔피리의 사용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뿔피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집단의 우두머리여야 하고, 그 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오토는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자격요건을 충족시킴은 물론, 우르크 울프들을 조종하는 멜로디까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삘릴리 삘릴릴릴리- 삘릴리 삘릴릴릴리- 삘릴리 삘리리- 삘릴리 삘리리- 삘릴리 삘릴릴- 리---

오토가 계속해서 뿔피리를 불고.

“컹! 컹컹!”

“컹컹컹!”

수백여 마리의 우르크 울프들이 갑자기 몸을 돌더니, 저 멀리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를 향해 내달렸다.

“크르르르르르르르!”

“컹! 컹컹컹!”

“컹컹컹! 컹컹컹! 크르르! 컹컹컹!”

뒤이어 우르크 울프들이 바그람과 싸우던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을 향해 달려들어,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물어뜯었다.

뿔피리의 힘에 의해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을 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취, 취이이익!”

투리안은 오토가 뿔피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걸 보고 정말이지 놀라서, 땅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형인 바그람과 밥도 먹고, 온천도 가고, 다 하는 사이라더니.

과연 달라도 다른 인간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차우차우를 탄 바그람과 뿔피리를 분 오토의 대활약으로,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바그람의 압도적인 무력과 사나운 우르크 울프 무리의 힘으로 손쉽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 * *

전투가 끝난 후.

“고생했다.”

오토가 투리안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취, 취익?!”

“뿔피리를 훔쳐서 도망친 건 진짜 큰 공이니까. 어깨 펴고 다녀.”

“알겠다, 취익.”

“그리고….”

오토가 투리안의 뒤통수를 퍽! 하고 후려쳤다.

“커헉! 취이이익!”

“니네 형 말 좀 잘 들어라, 인마.”

“취, 취이익….”

“너 때문에 니네 형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아냐?”

“…….”

“앞으로 형 말 안 듣는다 소리가 들리면, 내 손에 뒈질 때까지 얻어터질 줄 알아라. 알겠냐.”

“아, 알겠다.”

“알겠다는 반말이고.”

오토가 투리안에게 눈을 부라렸다.

“팍 씨!”

움찔!

오토가 주먹을 치켜들자 투리안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오토가 말은 가볍게 해도,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워낙에 압도적이라 본능적으로 기가 죽은 것이다.

“너, 내가 앞으로 지켜본다. 알겠냐.”

오토가 투리안에게 경고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오토는 투리안이 정신 못 차리고 예전같이 날뛴다면, 직접 손봐줄 생각이었다.

오크답지 않게 너그럽고 이성적인 성격을 지닌 바그람이 차마 동생인 투리안을 두들겨 패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만 더 옛날 버릇 못 버리고 까불면.”

그 순간.

스으으!

오토의 두 눈이 위협적으로 빛나며, 투리안의 영혼을 압박했다.

그건 마녀 칼립소의 사악한 고위급 흑마법 영혼강탈의 권능을 사용, 투리안의 뇌리에 메시지를 각인하는 거였다.

“내가 반드시 네놈을 박살낼 거다. 명심해라. 형 속 썩이는 날엔 그날이 네놈 제삿날이 될 거란 걸.”

“……!”

투리안은 너무나도 무서워서, 선 채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다고 투리안이 겁쟁이인 건 절대 아니었다.

투리안은 목숨을 걸고 성난 늑대 부족의 족장 베큠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고.

뿔피리를 훔쳐 달아났으며.

동료 멧돼지를 차마 버리고 가지 않고, 추격해 오던 적들과 맞서 싸우기까지 했다.

충분히 용기 있는 오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의 권능 앞에서 투리안은 한없이 무력했다.

“기억해라. 또 사고 치는 날에는, 내가 직접 네놈을 응징할 테니.”

오토는 투리안의 마음속 깊은 곳에 공포를 새겨 넣었다.

투리안이 또다시 예전과 같이 행동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이 되진 않았던 것이다.

“취, 취익. 알겠… 습니다. 취익.”

투리안은 오토의 으름장에 두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끄덕였다.

그만큼 오토의 경고가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동생아. 취익.”

어느덧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을 정리하고 온 바그람이 차우차우에서 내려 투리안에게 다가섰다.

“혀, 형님. 취익.”

투리안은 면목이 없어 감히 바그람을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제 와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족으로 돌아가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한들, 과거 바그람에게 대들고 부족을 뛰쳐나가 성난 늑대 부족에 몸담았던 게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래간만이다, 내 동생아.”

“……!”

“그간 잘 지냈느냐.”

바그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형으로서 동생 투리안을 뜨겁게 안아주었다.

그건 바그람이 투리안을 얼마나 아끼는지, 묵은 감정 따위는 없다는 걸 확실하게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취익. 정말 다행이야. 취익.”

“취, 취익.”

투리안의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찰나.

쒜에에에엑!!!

어디선가 날아온 철화살 한 발이 투리안의 등짝 정중앙을 관통했다.

“커헉!”

투리안이 엎어지며 바그람을 깔아뭉갰다.

화살에 실린 운동에너지가 워낙에 강력해서, 투리안을 아예 날려 버린 것이다.

“도, 동생아!”

놀란 바그람이 투리안을 부축했다.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화살은 투리안의 등판을 뚫고 가슴 정중앙으로 삐져나와 바그람이 입은 갑옷의 가슴 부분을 거의 뚫어버릴 뻔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커헉! 컥! 커허억!”

바그람이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었다.

치명상.

어쩌면 심장이 꿰뚫렸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부상을 입은 것이다.

“비켜!!!”

오토가 버럭 소리치며 투리안을 향해 달려갔다.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몇 초 이내에 숨이 끊어질 터.

최대한 빨리 투리안에게 ‘그 탕약’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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