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64화 (265/401)

제264화

공중자산이 있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메리트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는 공중 병력이 흔하지가 않아서, 제공권을 장악한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와이번들로 이루어진 공중자산을 지니고 있는 이오타 왕국의 전략·전술적 이점은 그야말로 막대했다.

카심이 지휘하는 이오타 왕국의 용기사단(龍騎士團)은 끊임없이 에르제베트 왕국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그 경로를 실시간으로 오토에게 보고했다.

만약 와이번이 까막이 한 마리만 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50여 마리에 달하는 와이번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돌아가면서 임무를 수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오토는 에르제베트 왕국군의 현재 위치와 행군 속도,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전략·전술을 짤 수 있었다.

보고를 받은 직후.

“캬.”

오토가 지도를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이게 맵핵이지. 다른 게 맵핵인가.”

“맵핵이 뭡니까?”

카미유가 물었다.

“있어, 그런 사기적인 게.”

“예…?”

“알면 다쳐.”

“…….”

“후후후.”

오토는 그렇게 웃고는, 지도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이 전쟁을 날로 먹을지,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적들의 피해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것이다.

“일단은….”

오토가 지도 위에 자리해 있는 말들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또 요건 요렇게 하면….”

“맙소사.”

카미유는 오토가 전략·전술을 짜는 과정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내가 만약 에르제베트 왕국군의 지휘관이라면….’

오싹!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온몸에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오토가 말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만 지켜봐도, 에르제베트 왕국과 성난 늑대 부족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충분히 가늠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오토가 짠 전략·전술대로 이루어진다면…….

‘아무도 돌아가지 못한다.’

카미유는 에르제베트 왕국군이 본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이곳 우르크 평원에 뼈를 묻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만큼 오토가 설계하는 개미지옥은 지독해서, 이게 사람이 짠 전략·전술인지 악마가 만들어낸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겁니까?”

“으응?”

“솔직히 말해서… 너무 악랄하잖습니까.”

“그렇지? 히히히!”

오토가 시시덕거리며 좋아했다.

“…좋으십니까?”

“좋지, 그럼.”

오토가 어이없어하는 카미유에게 말했다.

“극찬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딨어?”

“극찬은 아닙니다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악랄하다며. 그럼 극찬이지. 서로 목숨 내놓고 하는 게 전쟁인데, 악랄하면 악랄할수록 좋은 거지. 우리는 유리하게. 적들은 불리하게. 전쟁의 기본이잖아.”

“물론 그렇습니다마는.”

카미유는 오토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하지만 못내 찜찜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만큼 오토가 짠 전략·전술이 워낙에 뛰어나서, 그것에 당할 에르제베트 왕국군과 성난 늑대 부족이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렇게 쉽게 갈 건 아니었는데.”

오토가 말했다.

“적들의 움직임이 훤히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보이는 걸 모른 척할 수도 없잖아.”

“용기사단을 이용한 정찰과 감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하늘 위에서 훤히 내려다보고 있잖아. 그것도 실시간으로.”

“예.”

“그러니까 전략, 전술이 술술 나올 수밖에 없지. 상대 움직임을 다 아니까.”

“카심 경에게 포상이라도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토의 말마따나, 본래 이렇듯 날로 먹을 만한 전쟁은 결코 아니었다.

만약 카심이 이끄는 용기사단이 없었다면, 오토는 수십여 가지의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병력을 움직여야 했을 게 분명했다.

이렇듯 전략·전술을 술술 짜낼 수 있었던 건 카심이 이끄는 용기사단의 정찰 덕분이었던 것이다.

“줘야지, 포상.”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영지도 하나 주고, 작위로 후작으로 올려주고, 별도 하나 더 달아 주려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카미유가 미소를 지었다.

공적이란 단순히 무력만으로 세우는 게 아니었다.

와지르처럼 외교와 인맥으로 활약할 수도 있었고.

설리번처럼 기후를 예측해서 세울 수도 있었고.

카심처럼 공중자산을 활용한 정찰로 적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보고해서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카심은 이번 전쟁에서 이미 대활약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심의 정찰 능력 덕분에 아군 피해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었으므로.

“지금 당장 상을 내릴 순 없으니까. 우선 이 전쟁부터 끝내고.”

“예, 전하.”

“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후후후.”

오토가 사악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날 오후.

“캬아악!”

“캬아아아악!”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의 연합군 진영에서 와이번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와이번을 탄 마검사들.

즉, 용기사들은 오토가 준 편지를 들고 우르크 평원을 떠나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파멸로 몰아넣을 소식을 지닌 채.

* * *

그로부터 며칠 후.

우르크 평원에 거의 도착했던 에르제베트 왕국군, 정확히는 바토리 국왕은 뜻하지 않게 발목이 잡혀 행군을 멈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하! 아라드 제국군이 국경 요새들을 공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국경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쪽에서 이오타 왕국군이 본국의 소규모 영지들을 휩쓸고 있다고 합니다!”

“북쪽에서 쿤타치 공국의 군대가 공격해 들어왔다는 보고입니다!”

바토리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온 보고에 완전히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 그게 무슨 말이더냐! 지금 본국이 공격받고 있다는 것이냐?”

바토리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제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사방이 적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듯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 함께 공격해 온다는 말인가?

그 시기가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또한, 어떻게 이렇게 소식이 빨리 전해질 수 있었는지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전령을 많이 운용한다고 한들, 정보의 전달이 비상식적일 정도로 빨랐다.

이쯤 되면 에르제베트 왕국을 둘러싼 주변 세력들이 서로 연합했고, 바토리가 군대를 움직이고 있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공격을 해 왔다고 해도 믿길 지경이었다.

“전하! 군대를 물리셔야 하옵니다! 지금 즉시 돌아가지 않으면 본토를 방어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이이… 이이이…!!!”

바토리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지난 여정을 생각해 보면, 바토리가 분노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까마귀 협곡에서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험한 꼴을 당하고, 오토에게 조롱까지 당했다.

그런 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군대를 재정비해서 먼 길을 돌아왔다.

심지어 거센 눈발을 뚫는 고난의 행군을 해 가면서까지.

그런데 이제 와 돌아가야 한다니?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본토를 방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니?

“오토… 오토 드 스쿠데리아… 네놈이 나를 진흙탕에 빠뜨렸구나… 네 이노오옴….”

바토리는 비로소 이 엿 같은 상황이 오토의 계략이라는 걸 깨닫고 분노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질 확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죽여 버린다… 반드시 네놈을… 우욱!”

순간 혈압이 오른 바토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커헉!”

바토리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뒤로 넘어갔다.

너무나도 분노한 탓에 뒷목을 잡고 쓰러진 것이다.

“전하, 전하!”

“전하! 괜찮으시옵니까? 전하!”

“전하!”

“어의는 무얼 하는가! 어서 전하를 뫼셔라! 어서!”

바토리와 같은 강자가 혈압이 올라 쓰러지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대단히 드문 일이었으며, 실제로 벌어지기도 매우 어려웠다.

바토리쯤 되는 강자가 혈압이 올라 쓰러지는 것도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피를 토하면서까지 뒤로 넘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바토리가 받은 정식적 충격과 분노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 당장….”

신하들의 부축으로 겨우 몸을 일으킨 바토리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씹어내듯 명령했다.

“군대를… 돌려라… 지금 당장… 본국으로… 복귀한다.”

결국, 바토리는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이끌고 본토로 회군(回軍)해야만 했다.

우르크 평원이 중요하긴 했지만, 빈집털이에 당하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나라가 갈기갈기 찢겨가는 판국에 우르크 평원을 지키자고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게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우르크 평원 초입까지 왔다가 본토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덕분에 에르제베트 왕국군 장병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이런 x발!”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전투에서 뒈지는 게 아니라 길바닥에서 얼어 뒈지라는 거야? 뭐야?”

이 추운 겨울에, 펑펑 내리는 눈길을 뚫고 행군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심지어,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라니 장병들의 불만이 쌓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상황이 워낙이 좋지 못하다 보니, 바토리로서도 휴식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본토로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이냐.”

“나,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직접… 보시옵소서.”

바토리는 기사단장의 말에 마차에서 내렸다.

“저게… 무엇이냐.”

바토리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같은 길이었다.

우르크 평원으로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언덕이었던 길목에 각양각색의 군대가 자리를 잡은 채 진을 치고 있었다.

에르제베트 왕국의 남쪽에 위치한 약소국들의 연합군이 어느새 요새를 쌓고, 길목을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바토리가 버럭 분노를 토해내었다.

“감히 과인의 발목을 붙잡으려 해? 오냐, 내 네놈들의 피로 이 분노를….”

바로 그때.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갑자기 지축이 뒤흔들렸다.

번쩍!

우르릉!

콰앙! 쾅쾅!

쾅쾅쾅!

천둥·번개가 내리치는가 싶더니 안 그래도 어둡던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온 세상이 암흑천지로 돌변했다.

그리고…….

“전하!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의 연합군이 사방에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바토리는 그 보고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또다시 오토의 계략에 빠졌고, 이제는 어디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전멸당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 * *

같은 시각.

어느 틈에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포위한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 연합군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나가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충분히 거리를 좁혔으니, 총사령관 오토의 공격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했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전군.”

오토의 입에서 나지막하지만, 모두의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돌격하라.”

다음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들이 일제히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향해 내달렸다.

“가자!”

“놈들을 쳐부수자!”

“모조리 죽여 버려라!”

그와 동시에 약소국들의 연합군 역시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향해 덤벼들었다.

전술적으로 유리한 지형에서 벌어진 완벽한 포위, 완벽한 기습공격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