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오토의 계획은 마치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잘 맞아떨어졌다.
에르제베트 왕국군이 성난 늑대 부족과 합류하기 직전.
오토는 에르제베트 왕국의 주변 세력들을 움직여 빈집털이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했다.
용기사들이 와이번을 타고 빠르게 소식을 전한 덕분에, 에르제베트 왕국의 주변 세력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즉시 군사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덕분에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급하게 본토로 회군해야만 했고, 성난 늑대 부족과의 합류는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졸지에 버려지게 된 성난 늑대 부족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주둔지에 틀어박혀서 움직이질 않았다.
뿔피리를 잃어버린 데다, 온다던 에르제베트 왕국군까지 오지 않자 족장인 베큠이 크게 위축되어 주둔지에 틀어박혀 버렸던 것이다.
두려움.
함부로 움직였다가 천둥 발굽 부족과 이오타 왕국군에게 섬멸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성난 늑대 부족의 발목을 잡아 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이 전투였다.
“와아아아아아!”
“취이이이이익!”
이오타 왕국군과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이 포위당한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전방위에서 압박하며, 무차별적으로 쓸어버리고 있었다.
특히나, 바그람의 활약은 눈부시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차우차우를 탄 바그람이 천둥 발굽 부족의 기병대를 이끌고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천둥 발굽 부족 기병대의 돌파 한 번에 진영이 완전이 붕괴되어 버렸다.
코뿔소만 한 크기의 멧돼지 150마리가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와 들이받는데, 그걸 버텨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취이이이익! 오크들의 해방을 위하여!!!”
바그람은 단 한 번의 돌파로 에르제베트 왕국군의 진영을 무너뜨리고는, 아스트라의 도끼를 휘두르며 그야말로 무쌍을 펼쳤다.
촤라라락!
번쩍!
쾅! 쾅! 쾅! 쾅!
바그람이 아스트라의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휩쓸었다.
“크아악!”
“으아아아악!”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그런 바그람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신수 차우차우와 아스트라의 도끼.
두 가지 성물을 가진 바그람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절대적.
게다가 바그람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그람은 이 전투가 에르제베트 왕국의 마수에서 오크들이 해방되는 지름길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이 전투는 오크라는 종족에게 있어 해방전쟁이었으므로, 어떻게 해서든 승리를 거머쥐어야겠다는 투지가 불타오를 수밖에.
“좋아. 잘하고 있네.”
오토는 대활약하는 바그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에르제베트 왕국군과의 일전은 바그람의 시나리오상에도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다.
바그람은 이 전투에서 에르제베트 왕국군에 대승을 거두고, 성난 늑대 부족까지 평정해 우르크 평원을 장악한다.
그런 뒤 왕국을 세우고, 오크 군주로서 대륙 역사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딱 여기까지가 바그람이라는 캐릭터의 시나리오 중반부.
이후 시나리오는 오크 군주로서 강대국인 에르제베트 왕국과 맞서 싸우면서, 숙적 바토리와 여러 차례 부딪치는 것.
물론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이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우선.
“적들을 섬멸하라. 모조리 쓸어 버려라.”
오토는 야만용사의 함성을 사용해서 아군들에게 버프를 걸어주는 한편, 적들에게는 슬로우 디버프를 걸어주며 전투를 지휘해 나갔다.
바로 그때.
꽈아악!
에르제베트 왕국군 진영 최후방에서 한 무리의 기사들이 활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신속저격여단.’
오토는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고, 위험성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성난 늑대 부족에 파견된 신속저격여단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
진짜 신속저격여단은 에르제베트 왕국군 본대에 있었다.
만약 저들이 본격적으로 원거리 공격을 시작한다면, 아군들의 피해가 극심할 터.
십중팔구 기사들이나 지휘관 같은 고급 인력들의 피해가 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오토가 저 멀리 신속저격여단의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서로 죽여라.”
적들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권능.
야만용사의 살육의 함성을 시전한 것이다.
그 결과.
쒜엑! 쒜에에에에엑!
“컥!”
“커허헉!”
“이, 이게 무슨… 으악!”
활시위를 당기던 신속저격여단의 기사들이 서로의 가슴과 머리를 향해 철화살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의 고급인력들에게 쏟아져야 할 화살이, 신속저격여단에 속한 기사들에게로 쏟아진 것이다.
그렇게 에르제베트 왕국군의 가장 무시무시한 병력들을 간단하게 무력화시킨 오토는, 검을 뽑아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는 에르제베트 왕국의 기사들.
아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들을 몸소 제거함으로써, 친정에 나선 국왕의 무력을 선보이려는 것이다.
* * *
전투의 흐름은 연합군, 그러니까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의 압도적인 승리로 전개되었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유리한 지형에서, 포위한 상태로 공격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병력의 숫자 역시 연합군 측이 훨씬 많았다.
게다가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지나친 강행군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체력 상황이 매우 나쁜 상태였다.
사실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너덜너덜 걸레짝이라 행군해서도 안 되고, 전투를 치러서도 안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천둥 발굽 부족의 기병대에 의해 진영이 박살나고, 오토에 의해 신속저격여단이 무력화되었으니 전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빨리 끝나지 않았다.
에르제베트 왕국군이 워낙에 강군(强軍)이라, 이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었다.
괜히 강대국의 정규군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토는 완전히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조금 더 몰아붙여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카심 경.”
“예! 전하!”
“좌측으로.”
“예!”
카심이 펭이와 함께 왼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카미유는 오른쪽으로.”
“예, 전하.”
뒤이어 카미유가 오른쪽으로 내달렸다.
‘다 쓸어버린다. 적들이 항복할 때까지.’
오토가 전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후우욱!
그러자 회색 칼바람이 부채꼴 형태로 뻗어나가는가 싶더니, 적들이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쩍! 쩌억!
오토가 검을 이용해 뿜어낸 석화의 저주에 걸린 것이다.
“괴, 괴물이다!”
“사람을 돌로 만들었다!”
“괴물이다! 으아아아악! 괴물이야아아아아!”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감히 오토와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 강하다는 기사들조차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두려움에 떨었을 지경이었다.
그런 오토, 카심, 카미유의 대활약으로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점차적으로 무너져만 갔다.
압도적인 강자들이 진영을 뒤흔들어놓으니,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던 에르제베트 왕국군으로서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한편, 바토리는 근위기사단을 이끌고 전장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후퇴조차 해보지 못한 채 전멸당할 테고, 그렇게 되면 끝이었다.
국왕인 바토리가 여기서 포로로 붙잡히거나 전사하기라도 한다면, 에르제베트 왕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비켜라! 감히 과인의 앞을 막아서느냐!”
바토리는 최전방에서 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나가며 자신의 무력을 과시했다.
“크아악!”
“으아아아악!”
약소국의 기사들은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이 빠져나가려는 경로가 동맹국들이 병력들이 자리해 있는 곳이라서, 무력 차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달려라! 어서!”
“이랴!”
“이랴, 이랴!”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은 재빨리 말을 잡아타고, 동맹국 진영을 휘저으며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던 에르제베트 왕국군은,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듯 눈 깜짝할 사이에 와해되었다.
전투를 지휘해야 할 최고사령관인 국왕이 근위기사단과 함께 도주했으니, 에르제베트 왕국군으로서는 사기가 떨어지다 못해 싸울 의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쭈.”
오토는 저 멀리 바토리가 도망치는 걸 보고는 입을 씰룩거렸다.
“목숨이라도 건지겠다? 하긴. 국왕이 여기서 전사하면 뒤가 없을 테니.”
오토는 바토리의 결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토리를 놓아줄 수는 없는 노릇.
“그래, 도망쳐 봐라. 어디까지 도망치나 보게.”
오토는 굳이 바토리를 쫓지 않았다.
왜냐하면…….
“캬악! 캬아악!”
“캬아아악!”
50여 마리의 와이번들이 하늘 위를 비행하며 바토리 일행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바토리가 이미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제아무리 말을 타고 달린다 한들 공중을 나는 와이번들보다 빠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 * *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의 탈출로, 전투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왕과 근위기사단이 도망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에르제베트 왕국군들이 전의를 잃고 하나둘 항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지만, 오토 일행은 쉴 수 없었다.
“다들 모여~ 얼른~”
오토는 즉시 동료들을 불러 모은 뒤 와이번을 타고 바토리 일행을 뒤쫓았다.
국왕인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을 잡을 때까지 전투가 끝난 게 아니었던 것이다.
* * *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은 동맹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겨우 전투 현장에서 벗어나 에르제베트 왕국을 향해 내달렸다.
‘언젠가는 이 치욕을 반드시, 반드시 갚아 주고야 말 것이다.’
바토리는 훗날을 기약하며, 악착같이 도망쳤다.
동맹국은 그런 바토리 일행을 뒤쫓아오지 못했다.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이 탄 말들이 워낙에 혈통 좋은 명마(名馬)들인지라,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에르제베트 왕국의 영토를 약 10킬로미터쯤 남겨 두었을 무렵.
“저기요~~~~~~~~~~~”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바토리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캬아아악!”
“캬아아아아악!”
저 멀리서 50여 마리의 와이번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소, 속도를 더 높여라! 어서! 이랴! 이랴이랴!!!”
“히이이이이이이잉!!!”
바토리는 말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와이번 무리와의 거리가 멀어지지를 않았다.
“이야~~ 우리 국왕 전하께서는 엄청 빠르시네요~~~”
오토가 저공비행하면서 바토리를 조롱했다.
멀어질 만하면 앞지르고.
멀어질 만하면 또 앞지르고.
아예 바토리 일행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 개새끼야!”
결국, 바토리는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말을 세웠다.
사실 세운 것도 아니었다.
지친 말이 쓰러지기 직전이었으니까.
“당장 과인의 앞에 서라! 과인이 놈의 모가지를 썰어 버릴 터이니!”
바토리가 오토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오토는 까막이의 등에서 내리지 않았다.
바토리의 상대는 오토가 아니었다.
쿠웅!
까막이의 등에서 뛰어내린 바그람이 아스트라의 도끼를 움켜쥐고 바토리를 향해 다가섰다.
즉, 오토가 생각한 바토리의 상대는 자기 자신이 아닌 바그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