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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67화 (268/401)

제267화

그야말로 대승이었다.

회군하는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쳐부순 것은, 대륙 역사서에 남을 만한 대사건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취이이이이익! 승리다! 승리이이이!”

“만세! 만세에에에에!”

전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인간과 오크 가릴 것 없이 다 함께 거센 함성을 내지르며, 승리를 만끽했다.

설마 하니 강대국인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쳐부술 수 있을 줄이야.

늘 패배의 역사만 지니고 있던 이들에게 오늘 승리는 대대로 기념하고, 기억할 만한 사건이었다.

한편, 생각 외로 에르제베트 왕국군의 피해는 엄청나게 크지 않았다.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이 일찌감치 도망친 덕분에, 사기가 떨어진 에르제베트 왕국군이 매우 빠르게 항복했기 때문이었다.

오토는 에르제베트 왕국군에게 해코지하지 않았다.

“항복한 자들을 공격하는 자들은 내가 직접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예, 전하.”

오토는 엄명을 내려서 항복한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철저히 보호했다.

괜히 학살이라도 벌였다간 에르제베트 왕국의 백성들을 자극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 역시 피해자.

그저 전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포로의 신분으로서 잘 가둬 두면 될 일이었다.

한순간의 분풀이로 굳이 업보를 쌓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잘 싸워 주셨습니다.”

오토는 반 에르제베트 동맹에 속한 약소국 지휘관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격려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전하.”

앞으로 오토는 우르크 평원의 오크들뿐 아니라, 약소국들로 이루어진 반 에르제베트 동맹의 수장으로서 활약할 예정이었다.

부자는 망해서 3년을 간다는 말도 있듯이, 에르제베트 왕국이 이대로 무너질 리 없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토가 쪼그라들고 여러 전략적 요충지를 빼앗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대국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바그람과의 일대일 결투에서 전사한 바토리가 부패여왕이 되어 돌아올 예정이기도 했고.

“전장 정리하고, 바로 재정비해.”

오토가 바그람을 돌아보았다.

“아직 쉴 때 아니야.”

“취익?”

“성난 늑대 부족, 바로 친다.”

“……!”

“지금이 적기야.”

오토는 지체하지 않았다.

“우르크 평원을 장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지금이 기회다. 기세를 몰아서 확 쓸어버리고, 빨리 정리해 버려.”

부패여왕으로 부활한 바토리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세력을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다 같이 전력을 다해 싸워도 모자랄 판국에, 세력 내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들려서는 곤란했다.

하루라도 빨리 우르크 평원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오크 왕국을 세워 똘똥 뭉쳐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난 늑대 부족의 토벌이 필수고, 지금이 적기였다.

성난 늑대 부족의 군대가 한껏 위축되어 꼼짝 않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 * *

재정비를 마친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은, 기세를 몰아 성난 늑대 부족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으로 밀고 들어갔다.

“취, 취이이이이익!!!”

뒤늦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달은 베큠은, 이오타 왕국군과 천둥 발굽 부족의 연합군이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놀랐다.

온다던 에르제베트 왕국군이 본토로 회군하다가 궤멸당했고, 국왕인 바토리와 근위기사단은 행방불명되었다고 했다.

에르제베트 왕국군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던 성난 늑대 부족으로서는 졸지에 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천둥 발굽 부족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이오타 왕국군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심지어, 뿔피리마저 없으니 승산이 희미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제아무리 성난 늑대 부족이라도 순식간에 전멸을 면치 못할 터.

“취익! 부대를 이동한다! 취이이익!”

현명하게도, 베큠은 전면전을 피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모든 면에서 불리한 지금 전면전이 자살행위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취익! 피의 능선으로 이동한다! 취이익!”

“취익! 예! 족장! 취이익!”

피의 능선이란, 성난 늑대 부족의 영토 가운데서 제일가는 전략적 요충지.

지형 자체가 굽이치는 언덕이 계속되는 데다가 능선 윗자락은 공격해 오는 적들을 물리치기에 최적화된, 전술적으로 패배하기가 힘든 지역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성난 늑대 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피의 능선에서 버텨내서 극복해 낸 사례가 많았다.

성난 늑대 부족에게 있어 피의 능선이란 든든한 국밥 한 사발 같은, 굳건한 버팀목.

그곳이라면 에르제베트 왕국이 재정비를 마치고 다시 지원군을 보낼 때까지 몇 달 정도는 버티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인지라 눈이 아주 많이 오고 있었으므로, 버티기에도 적합한 계절이기도 했다.

“빠르게 이동한다! 취익! 피의 능선으로! 모든 부족의 전사들은 신속히 피의 능선으로 이동해라! 취이익!”

“취이익! 예! 족장! 취이익!”

그렇게 성난 늑대 부족은, 부족 최후의 보루인 피의 능선으로 향했다.

그러나…….

“……!”

군대를 이끌고 피의 능선에 도착한 베큠은, 너무나도 놀라 제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저 멀리 능선 위쪽에 천둥 발굽 부족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또한, 그 옆에 휘날리고 있는 깃발은 이오타 왕국의 것.

그렇다는 말은, 이미 이오타 왕국과 천둥 발굽 부족의 연합군이 성난 늑대 부족의 영토를 가로질러 이곳 피의 능선을 먼저 점령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취, 취익? 어느 틈에? 취이이이익?”

베큠은 계속해서 눈을 끔뻑이며 자신이 본 게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저런 대규모 병력이 어떻게 피의 능선이 떡하니 먼저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 베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상식이었고.

“조, 족장! 취익! 어서 퇴각하셔야 합니다! 취익!”

부관이 다급히 베큠을 향해 소리치던 순간.

삘릴리 취익취익 삘릴릴리-

삘릴리 취익취익 삘릴릴리-

저 멀리 능선 위에서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취, 취이이이익!!!”

베큠은 능선에 울려 퍼지는 뿔피리 소리, 정확히는 그 멜로디를 듣고 경악했다.

누군가가 우르크 울프들을 조종하는 멜로디를 부를 줄 안다는 보고를 듣고 반신반의하긴 했었는데, 그게 진짜였을 줄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삘릴리 취익취익 삘릴릴리-

삘릴리 취익취익 삘릴릴리-

야속하게도, 뿔피리 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지며 멀리멀리 뻗어 나갔다.

그 결과.

“컹! 컹컹!”

“컹컹컹! 컹컹!”

“크르르르! 컹컹!”

성난 늑대 부족의 진영 안에 있던 수천여 마리의 우르크 울프들이 미쳐 날뛰면서, 목줄을 쥔 주인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평소 매우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늑대들이, 주인을 물어뜯는 미친개로 돌변한 것이다.

“취, 취이익! 어서 막아라! 취익! 뿔피리를 부는 걸 막아야 한다! 취이이익!”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은 베큠이 다급히 소리쳤다.

누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계속 뿔피리를 불게 내버려 두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다.

완전히 통제를 벗어난 우르크 울프들이 성난 늑대 진영 안에서 미쳐 날뛰면, 그야말로 개판이 벌어질 터.

“취이이이익! 어서 뿔피리를! 취이이익! 어서!”

그러나 능선 위에서 부는 뿔피리를 못 불게 만들 방법 따위, 성난 늑대 부족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베큠도 다급한 마음에 소리친 것일 뿐,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소리친 것일 뿐.

그리고 그런 베큠의 예상은 아주 정확하게,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고스란히 현실이 되었다.

“크르르르르!”

“컹! 컹컹컹컹!”

“컹! 컹컹!”

뿔피리 소리에 반응한 우르크 울프들이 단순히 날뛰는 것을 넘어서서, 부족의 전사들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취, 취이이이이익!”

“취이이이익!”

당황한 전사들이 어떻게든 우르크 울프들을 말리려 애썼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끄르르르르르르르!!!”

이미 뿔피리 소리에 의해 눈이 돌아 버린 우르크 울프들은, 마치 미친개처럼 허연 거품을 질질 흘리며 통제불능으로 날뛰었다.

때문에 성난 늑대 부족은 순식간에 대혼란에 휩싸였다.

당장 후퇴해도 모자랄 판에, 진영 안에서 미쳐 날뛰는 우르크 울프들에게 물어 뜯겨야 하다니…….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저 멀리서 천둥 발굽 부족의 기병대, 즉 멧돼지를 탄 오크 기수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 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기병대의 선두에는 전설의 신수 차우차우를 탄 바그람이 있었다.

“취이이이이이익!!! 성난 늑대 부족이여! 나 바그람이 왔다! 취이이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천둥 발굽 부족의 전사들과 이오타 왕국군이 일제히 능선을 내달리며 성난 늑대 부족을 덮쳐갔다.

“취, 취이익! 방어! 방어 대형을 갖춰라! 취이이이이익!”

베큠이 명령했지만, 이미 성난 늑대 부족은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미쳐 날뛰는 우르크 울프들 덕분에 전투 준비 태세조차 갖추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컸다.

콰아아앙!!!

바그람이 탄 차우차우가 성난 늑대 부족 진영 최전방을 들이받았다.

“취이익!”

“취이이이이이익!”

그 충돌 한 번에 최전방에 자리 잡고 있던 성난 늑대 부족의 전사들 수백여 명이 저 멀리 날아갔다.

충격파만으로 전사 수백여 명을 날려버릴 정도로 차우차우의 돌진력은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최초 충돌 지점으로부터 수천 다발의 번개 줄기가 뻗어 나가며 성난 늑대 부족의 진영을 뒤덮었다.

광폭화를 발동시켜 바토리를 상대로 승리한 바그람의 무력은, 우르크 평원의 절대자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 * *

오토가 바그람을 도와 성난 늑대 부족을 토벌하고 있을 무렵.

화륵, 화르륵!

에르제베트 왕국의 왕궁 지하에 자리한 제단에 저절로 촛불이 켜졌다.

하나둘씩 스스로 불타오른 촛불은, 이내 곧 암흑천지이던 지하무덤을 환히 밝혔다.

그리고…….

스윽.

제단 앞에 쓰러져 있던 바토리의 시신이 꿈틀꿈틀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곧 두 발로 일어섰다.

뒤이어 되살아난 바토리의 시신이 팔을 움직여 둘로 쪼개졌던 머리와 가슴을 붙이더니, 스스로 꿰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반드시 복수하리라.”

누덕누덕 기워진 바토리가 피맺힌 원한을 내뱉으며 복수의 의지를 불살랐다.

그런 바토리의 피부는 거무죽죽하고 창백했으며,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정수리부터 가슴팍까지 대충 꿰맨 자국으로 인해 더없이 기괴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부패여왕으로 부활한 바토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절뚝절뚝.

으드득.

바토리가 얼어붙은 관절을 움직여서, 제단을 향해 다가가 꽂혀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스으으으!

초록색 검신이 환한 빛을 발하고.

화륵, 화르륵!

거대한 지하무덤 곳곳에 자리한 횃불이 초록색 불꽃을 피워 올렸다.

“깨어… 나라….”

바토리가 명령했다.

“에르제베트의 성좌(聖座)들이여…….”

그러자 거대한 지하무덤에 자리한 수백여 개의 석관이 동시에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그 안에서 죽음의 숨결을 내뿜는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과거 에르제베트 왕국에서 복무했던 기사들이었으며, 나같이 뛰어난 전공을 세웠던 영웅들이었다.

즉, 바토리가 부패여왕으로서 다시 태어난 이 지하무덤은 에르제베트 왕국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일종의 국립묘지였던 것이다.

“바그람… 오토 드 스쿠데리아….”

부패여왕 바토리가 썩은 죽음의 숨결을 내뱉으며 피맺힌 원한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런 바토리의 등 뒤로 역시 죽음의 숨결을 내뱉는 기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대형을 이루었다.

두 눈에서 초록색 귀화(鬼火)를 내뿜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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