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0화
몸단장하는 로웨나는 정말이지 까다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매만지고, 수백여 종의 장신구를 착용하고, 손톱 발톱을 다듬으며 자신의 미(美)를 극대화시키려 노력했다.
덕분에 죽어나는 건 시녀들이었다.
“오늘은 몇 벌째야?”
“…89번.”
“아휴.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실까.”
“알잖아. 대공 전하께서 오토 드 스쿠데리아 전하에게 한눈에 반하신 거.”
“그 신흥강국 이오타의 국왕?”
“응.”
“그 사람이 그렇게 잘생겼어?”
“모르지, 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륙에서 제일가는 미남이래.”
“정말~?”
“진짜인지 아닌지는 직접 봐야 알겠지만. 휴. 덕분에 우리만 힘들게 생겼어.”
“그러게. 정말 피곤해.”
시녀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로웨나의 변덕 덕분에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쌓여 가는 중이었다.
오토에게 잘 보이기 위한 로웨나의 노력은 광기에 가까워서, 곁에서 시중을 들어주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 인간이 얼마나 잘생겼기에 대공 전하께서 저러시는 거야?”
“두고 봐. 안 잘생겼으면 내 손으로 가만 안 둘 테니까.”
“그냥 좀 반반한 정도겠지. 대륙 제일 미남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잖아.”
“역시 그렇겠지?”
로웨나가 유난을 떠는 만큼 오토에 대한 시녀들의 궁금증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로웨나가 얼마나 야단법석을 떨었느냐 하면…….
“이건 너무 대놓고 야하질 않느냐! 내가 살롱의 매춘부라도 된다는 말이더냐!”
“하, 하오나 대공 전하께서 최대한 매혹적인 속옷을 준비하라 이르셔서… 꺅!”
“감히!”
로웨나가 시녀의 뺨을 후려치고는, 그녀의 얼굴에 입고 있던 속옷을 집어던졌다.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이고! 기품이 있으면서도 육감적인 속옷을 준비하라 했거늘!”
“주,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다시 준비해 오도록 해라! 다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들이켠다더니.
정작 오토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로웨나는 벌써부터 속옷에까지 신경을 쓰며 야단법석이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 속옷을 오토가 볼 일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 * *
한편, 오토는 로웨나가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토가 아는 로웨나는 다른 남자에게 눈이 돌아갈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도니스가 있는데 날 좋아할 리 없지.’
아도니스는 로웨나의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로서, 대륙에서 한 손가락에 꼽을 만한 미소년이었다.
로웨나의 시나리오에서, 로웨나는 우연찮은 계기로 에르제베트 왕국 출신의 아도니스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에르제베트 왕국 출신의 평민인지라, 로웨나와는 결혼할 수가 없었다.
잘생겼다는 걸 빼면 출신 성분이 워낙에 미천해서, 감히 아라드 제국의 황녀인 로웨나와 정식으로 혼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웨나는 아도니스를 시종으로서 곁에 둔다.
나중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그때는 눈치 보지 않고 아도니스를 정실 남편으로 맞아들여 국서―여왕이나 여황제의 남편―의 자리에 앉히겠노라 다짐하면서.
즉, 로웨나의 미친 야망은 출신 성분이 미천한 아도니스와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한 것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아도니스란 인물은 로웨나에게 있어 단순히 사랑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로웨나의 시종이자 애첩?(愛妾)이 된 아도니스는 뜻하지 않은 재능을 각성하게 된다.
그 재능이 뭐냐면…….
‘엄청난 군략가지.’
아도니스는 전략·전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본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목동 출신인지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로웨나 덕분에 정식으로 교육을 받게 된 후에는 그 재능을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아도니스는 로웨나의 연인이자 군사(軍師)로서, 장차 로웨나군의 총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로웨나가 아도니스를 만나는 시점이 아라드 제국의 건국기념연회가 끝난 뒤니까. 이미 만났을 거야. 첫눈에 반했고, 사랑에 빠졌을 테지.’
오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로웨나가 자신을 좋아할 거라던 와지르의 암시를 전혀 믿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로웨나의 시나리오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고, 또한 오토 드 스쿠데리아와 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남.
그러니 오토로서는 로웨나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단 말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게 당연했다.
오토는 그것보다 다른 걸 걱정했다.
‘근데 로웨나를 어떻게 구워삶지? 아도니스 그 자식이 워낙에 머리가 좋은 놈이라. 로웨나를 이용해 먹으려면 사실 아도니스 그 자식을 속여야 하는데.’
오토는 기존의 계획을 수정해서,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주범들인 황제의 형제들을 이용해 판을 주물러 볼까 고려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로웨나에게는 이 세계관에서 가장 뛰어난 지략을 자랑하는 아도니스라는 군사가 버티고 있다는 것.
지금이야 이제 갓 재능을 각성할 시기이긴 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아주 교활한 능구렁이가 될 게 분명했다.
오죽했으면 캐릭터 스탯에서도 지략이 100으로 설정되어 있을까.
‘내가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결국 평범한 인간에 불과해. 이 세계를 간접적으로 접한 게이머일 뿐이지. 아도니스라면…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아도니스와의 지략 대결에서 이길 자신 같은 건 없었다.
물론 오토도 스스로가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세계관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존재와 지략 대결을 펼쳐 이길 정도가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골치 아픈데. 일단 만나 보고 간이나 좀 봐야지.’
오토는 이 기회에 로웨나뿐만 아니라 아도니스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암살해야 할 사람을 딱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인물을.
* * *
그로부터 며칠 뒤.
오토는 용기사단과 함께 에르제베트 왕국의 하늘을 지나 아라드 제국의 서쪽 국경지대로 향했다.
로웨나를 만나러 가는 길.
“미안합니다, 카심 경. 휴가를 줄 시기인데 굳이 따라오게 해서요.”
오토가 카심에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카심은 크게 소리쳤다.
“저는 전하를 모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에이, 그래도요.”
“정말입니다!”
“이번 일 끝나면 휴가도 드리고, 포상도 해 드릴게요.”
“예! 전하!”
사실 카심은 오토가 주는 휴가나 포상보다 이렇듯 임무를 맡는 것이 훨씬 좋았다.
국왕인 오토를 태워 세계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까지 모시는 일이니만큼, 왕의 최측근이 맡을 임무를 수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하.”
“네?”
“오늘 정말 멋있으십니다.”
“그런가요? 하하하.”
오토가 카심의 칭찬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멋쩍어했다.
실제로, 오늘의 오토는 정말이지 멋있었다.
시녀장 올리브가 직접 제작한 의복을 입고, 옅은 화장도 하고, 머리칼에는 오일까지 바른 만큼 오늘 오토의 미(美)는 가히 대륙 제일의 미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설마 정말로 로웨나 대공에게 접대하러 가시는 겁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그… 접대ㄴ….”
“접대남 아니야!!!”
오토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냥 있어 보이려고 그래! 있어 보이려고!”
“예…?”
“외교사절이잖아! 신흥강국의 젊은 국왕과 세계 최강대국 아라드 제국의 황녀가 만나는 거잖아! 그러니까 격식을 차려야지!”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오해하니까 그렇지!!!”
오토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카미유에게 씩씩대며 성을 내었다.
안 그래도 중요한 자리라 기껏 꾸몄는데, 접대남 소리나 들으니 기분이 안 좋은 건 당연했다.
게다가 오토는 미남계를 써서 로웨나를 유혹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본인 말마따나, 오토의 목적은 로웨나로 하여금 이오타 왕국이 반란을 일으키는 데 있어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거라는 기대감을 심어 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겉으로도 꽤나 그럴싸해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인간은 말야.”
오토가 카미유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아니 대놓고 시각적인 동물이야.”
“예?”
“내면이 중요하단 말은 나중 문제고. 일단 겉으로 보이는 게 1순위라고.”
“그렇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물론 고결한 기사 나으리께서야 그러시겠지.”
카미유는 성격상 사람의 겉모습이나 첫인상에 현혹되지도 않을뿐더러, 별반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즉, 그 고결한 성품 탓에 시각적인 효과에 대해 잘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근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게 아니거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로 상대방을 자기 멋대로 오해하고, 기대해. 그게 사람이야.”
“음.”
“그러니까 그럴싸해 보일 필요가 있다고, 인간은.”
“그러니까 예쁘고 잘생긴 게 최고라는 말씀이십니까?”
“나쁠 거 하나 없지. 똥파리들이 좀 꼬인다는 걸 빼면.”
그건 사실이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로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빌런들이 꼬이는데, 그 원인은 대부분 외모 때문이었다.
워낙에 미남인지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음침하고 음흉하고 음란한 인간들이 접근해 오곤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번 회담은 아주 중요하니까 이래저래 긴장들 하자고.”
“예, 전하.”
그렇게 오토 일행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해서 로웨나가 다스리는 영토를 향해 비행했다.
* * *
며칠 후.
“대공 전하! 저기 옵니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나와 오토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로웨나는, 보고를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캬아악!”
“캬아아악!”
저 멀리 갑옷을 입은 50여 마리의 와이번들이 편대를 이루어 접근해오고 있었다.
“오오오!”
“용기사들이라니!”
사람들은 오토 일행이 와이번들을 타고 오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세계에서 하늘을 나는 존재들을 길들여서 타고 다닌다는 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었고, 그게 와이번이라면 더더욱 대접받기 마련이었다.
와이번들은 비록 지금은 멸종―사실 한 마리가 남아 있긴 했지만―했다고 알려진 드래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생명체였다.
괜히 와이번을 비룡(飛龍)이라 부르며 드래곤 취급을 해 주고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쿠웅!
용기사단이 착륙하고.
“로웨나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오토가 제일 먼저 까막이의 등 위에서 내려 로웨나를 향해 예를 취했다.
그 순간.
“……!”
“……!”
“……!”
로웨나의 시녀들은 오토의 수려한 외모에 너무나도 놀라 그만 숨이 멎고 말았다.
얼마나 잘생겼는지 두고 보자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게 무색했다.
‘어머, 어머.’
‘어떻게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나 어지러워….’
실제로 본 오토의 외모는 상상 이상이라서, 시녀들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
그건 비단 시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어. 음.”
로웨나는 까막이에서 내린 오토를 보고 그만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려서, 차마 말을 잇지를 못했다.
“머, 먼 길 오느라. 고, 고생… 했다.”
로웨나는 오토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까지 더듬었다.
올리브가 만들어 준 예복을 입고 작정하고 외모를 꾸민 오토의 미모에 넋이 나가 버렸던 것이다.
첫 만남 당시 보여 주었던 그 냉혹하고도 위엄 넘치는 모습과는 180도 다른 반응이라, 오히려 당황한 건 오토였다.
‘이 누님 왜 이래???’
오토가 아는 로웨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위엄이 서려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로웨나는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이거 아도니스한테나 보이던 행동 패턴인데??? 설마.’
로웨나는 아도니스를 보고도 별 감흥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며칠 후엔 늘 아도니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를 그리워하며 마침내 깨닫게 된다.
자신이 아도니스에게 첫눈에 반했음을.
스스로의 마음을 인정한 로웨나가 아도니스를 다시 찾았을 때에는, 야수의 심장을 가진 야심가가 아니었다.
그저 수줍음 많은 한 여자였을 뿐.
그렇다는 말은…….
‘아도니스 어딨어???’
오토의 눈이 로웨나의 주변 사람들을 훑었다.
지금 이 시기라면 아도니스가 로웨나의 곁에 딱 붙어서 시종 노릇을 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