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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72화 (273/401)

제272화

“정말로 로웨나 대공 전하 곁에 시종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럼요.”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로웨나 대공 전하를 바로 곁에서 모시는 시녀들 중 하나인걸요.”

“아.”

“로웨나 대공 전하 곁에 시종이 있다면, 제가 알았을 거예요.”

“그, 그렇군요.”

오토가 다시 물었다.

“혹시 아도니스란 이름의 시종이 아예 없나요? 궁내에?”

“네에? 아도니스요?”

“아.”

오토가 대충 시녀에게 둘러대었다.

“옛날에 제가 시골 영주이던 시절에 잠깐 알던 사이인데, 이 근방에서 시종으로 일한단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도니스란 이름을 가진 시종이 없답니다.”

“…….”

“혹시 그런 이름을 가진 시종이 들어오게 되면 따로 말씀을 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정말 좋죠.”

오토는 시녀의 친절함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로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친! 진짜 안 만났다는 거잖아?’

아도니스가 로웨나의 곁에 없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도니스가 없으면 로웨나의 전력이 크게 떨어질 텐데?’

로웨나의 세력은 아도니스의 번뜩이는 전략·전술 덕분에 세계대전 개전 초기부터 전투에 나설 때마다 연전연승을 거둘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도니스가 없다?

로웨나의 세력에는 특출난 전략가가 없어서, 앞으로의 행보가 매우 걱정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도니스를 못 만났다면… 로웨나가 첫눈에 반하는 상대가 사라졌다는 건데….’

아도니스는 로웨나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주연.

사실상 아도니스가 주인공이라 해조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만약 그 첫눈에 반한 상대가… 내가 된 거라면….’

흠칫!

소름이 끼쳤다.

로웨나는 100인의 군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순정파이며, 그야말로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는 순애보 같은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로웨나의 사랑은 본래 아도니스에게로 향해야 정상이었는데, 그게 만약 오토에게로 향한다면…….

“조, 좆됐다.”

오토의 입에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좆됐으니까.”

“예…?”

“쿠토의 화살이… 엉뚱한 데로 날아간 거 같은데…?”

<쿠토>란 이 세계에서 사랑의 신으로서, 오토가 살던 세계에서는 큐피드와 거의 엇비슷한 존재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몰라. 으으. 으으으으.”

오토가 괴로워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그런 거라면…….

‘차라리 지금 혀 깨물고 죽을까? 어쩌면 그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오토는 정말로 죽고 싶었다.

로웨나와 엮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 * *

그날 저녁.

‘아니야. 아직 몰라. 일단 좀 더 지켜보자. 그래야 돼. 꼭 그래야 한다고.’

오토는 못내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로웨나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 전하를 뺀 나머지 인원들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로웨나의 기사들이 카미유, 카심, 그리고 마검사들을 가로막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카미유가 로웨나의 기사를 향해 불쾌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 어떤 경호도 없이 국왕 전하를 홀로 두란 말씀이십니까?”

“이번 자리는 로웨나 대공 전하와 오토 드 스쿠데리아 전하께서 독대하시는 자리입니다. 식사 시중을 드는 시녀 몇을 제외하면, 저희 측 기사들 또한 누구도 입장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음.”

카미유는 로웨나의 기사들조차 식사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으니까 여기서 기다려.”

오토가 검을 풀어서 카미유에게 건네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기가 적진 한복판도 아니잖아.”

“하지만….”

“괜찮아.”

…라고 말하긴 했지만 오토의 속은 절대 괜찮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불안했다.

로웨나와 단둘이 식사하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로웨나가 흑심을 품었다면, 그건 정말로 난감했다.

이러다 오토, 엘리제, 로웨나의 삼각관계라도 형성된다면…….

오싹!

오토는 분노한 엘리제에 의해 자신의 머리가 뎅겅!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몸서리쳤다.

물론 엘리제의 성격상 그렇게까지 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 아닌가?

‘제발 아니길.’

오토는 그런 심정으로, 문을 지나 로웨나가 기다리는 식사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아.’

오토는 로웨나가 연회장이 아닌 마치 살롱처럼 꾸며진 공간으로 자신을 초대했다는 걸 깨닫고 그만 멘탈이 붕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서와.”

야시시한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로웨나가 고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오토를 반겼다.

‘아, 안 돼!’

오토는 이 자리가 마치 무시무시한 암컷 구렁이가 사는 뱀굴이라고 생각했다.

로웨나는 그 뱀굴에 사는 한 마리의 거대한 암컷 구렁이로서, 오토를 휘감은 다음에 한 입에….

‘방심하면 잡아먹힌다. 정신 바짝 차리자.’

오토는 마음을 굳게 먹고, 로웨나에게로 다가가 접대용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그게 정말이냐?”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호호호!”

로웨나가 웃으며 소파 옆자리를 내주었다.

“여기 앉도록 하여라.”

“아닙니다.”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어찌 제가 로웨나 대공 전하의 곁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여기 마주 뵙고….”

바로 그때.

덥석.

로웨나가 오토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옆에 앉혔다.

“헉!”

오토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사내가 되어서 그리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느니라.”

“그, 그게 아니라…….”

“나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황제 폐하의 여동생이기 이전에, 나 역시 여자이니라.”

“아무리 그래도 이 세계에서 가장 고귀하신 혈통과 신분을 지니신 분을 상대로…….”

“편하게 해도 된단다, 편하게.”

“…….”

“사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로웨나가 오토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더니, 고혹적인 표정을 지었다.

“누님이라 불러도 괜찮다.”

“……!”

“나 역시 네가 나를 누님이라 불러주길 원하고.”

오토는 어질어질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권력이 센 여성이 이렇듯 노골적으로 들이대는데, 거절하자니 뒷감당이 무섭고.

그렇다고 장단을 맞춰주자니 이대로 휘말려 들면 피곤해질 테고.

오토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잔할까? 동생?”

로웨나가 엄청나게 비싼, 한 병에 금괴 여러 덩이를 호가하는 값비싼 와인이 든 잔을 내밀었다.

“어. 음. 예, 전ㅎ….”

“누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설마 나와 누나 동생으로 싫은 것이냐?”

로웨나가 살짝 성난 목소리로 오토를 압박했다.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감히 그런 큰 영광을 누릴 자격이….”

“너는 이미 자격이 있다.”

“…….”

“건배하자꾸나.”

“…네.”

결국, 오토는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로웨나와 누나 동생 사이가 되고 말았다.

* * *

식사를 가장한 술자리가 진행되는 동안 오토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했다.

로웨나가 은근슬쩍 기대오거나, 허벅지를 쓰다듬거나, 괜히 얼굴을 가져다 대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들이대며 유혹하는 통에 정신을 집중해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아휴, 더워라.”

로웨나가 슬쩍 드레스의 어깨 끈을 걷어내며 가슴골(!)을 노출하려던 순간.

“아이고, 손이 미끄러졌네.”

오토가 넘어지는 척 재빨리 어깨 끈을 다시 원위치시켜 놓았다.

“안 덥니? 우리 동생?”

“하하! 저,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 하하하! 제가 추위를 좀 많이 타거든요!”

“그래? 그럼 이 누님이 우리 동생을 조금 따뜻하게 해 줘 볼까?”

오토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로웨나와 옥신각신하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마치 미꾸라지처럼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오토도 로웨나도 지쳤을 무렵.

“동생.”

“네, 누님.”

“동생은…….”

로웨나가 오토에게 물었다.

“이 누님한테 여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니?”

“그렇지 않습니다.”

오토는 로웨나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보고 냉큼 대답했다.

여기서 로웨나를 울렸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므로.

“누님은 정말 아름다우시고, 매력적이세요.”

“그런데 왜 내가 다가가는데도 그렇게 매정하게 철벽을 치는 거야?”

“그야….”

“엘리제 그 계집애 때문인 거지?”

“…….”

“내가 그 계집애보다 나이도 많고 못생겨서….”

“절대 아닙니다, 절대로.”

“그, 그럼…?”

“누님은 엘리제 님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계세요. 매력이란 건 수치화시킬 수 없는 거니까, 엘리제 님에 비해 밀린다고 말하는 건 논리적이지 않아요.”

“하, 하지만….”

“저에게는 엘리제 님의 약혼자로서 정조의 의무를 다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누님께서 아무리 매력적인 분이라 한들 그런 배덕을 저지를 순 없어요.”

“동생은… 정말 좋은 남자구나.”

로웨나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오토가 건넨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여자만 사랑하란 법은 없는 거 아냐?”

“네…?”

“동생은 왕이야. 그런 동생이 여러 부인을 두는 게 흠이 될 만한 일은 아니잖아.”

“히, 히익?!”

“엘리제와도 결혼하고, 나와도 결혼할 수 있는 거잖아.”

“그, 그건.”

이 세계에서는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특히 황가나 왕가의 경우 더더욱.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벌써부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저로서는….”

“알아.”

“……!”

“농담이야.”

로웨나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냥 동생이 귀여워서 장난쳐 본 것뿐이야.”

“그, 그러시군요. 하하하. 하하.”

“결혼이야 나중 일이니까.”

오토는 로웨나의 말에 의미심장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화, 황제가 돼서 나한테 청혼하려고?!’

로웨나의 성향을 생각해 볼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만약 로웨나가 황위에 오르고 오토에게 청혼한다면, 그땐 거부할 방법 같은 건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좋든 싫든 잘츠부르크 가문은 아라드 제국에 소속되어 있었으니까.

황위에 오른 로웨나가 그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오토와 결혼하려 든다면, 엘리제는 정실부인 자리를 빼앗기고 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서.

‘아, 안 돼! 폭주하기 전에 막아야 돼!’

오토는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간파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어째 구도가 상당히 비슷했다.

출신 성분이 천한 아도니스와 결혼하기 위해 황위에 오르려는 로웨나.

그리고 엘리제를 첩으로 밀어내기 위해 황위에 오르려는 로웨나.

남자는 달랐지만, 그 맥락이 상당히 비슷했던 것이다.

* * *

“가자.”

오토는 뱀굴(?)을 빠져나오자마자 부리나케 숙소로 뛰어갔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있지, 있었지.”

“……?”

“비상사태야.”

“예?”

“아무래도 로웨나가 나한테 호감을 갖게 된 것 같아. 노골적으로 들이대더라고.”

“그게… 비상사태입니까?”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

“아.”

카미유는 그제야 엘리제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는 거 아닙니까?”

“로웨나라면 어떻게든 원하는 걸 가지려고 할걸?”

“……!”

“광기의 화신이야.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고도 남아.”

“설마 그러겠습니까.”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로웨나는 그런 여자야.”

“…….”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로웨나의 내면에는…….”

오토는 로웨나란 캐릭터 안에 숨어 있는 광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학살군주 로웨나.

이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학살을 저지르게 될 인물.

로웨나의 내면에는 전쟁광이자 인간 도살자로서의 광기가 잠들어 있어서, 자칫 잘못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란 단어는 로웨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로웨나가 가진 사랑에 대한 집착과 내면에 잠들어 있는 광기가 모두 오토에게로 향한다면…….

‘아니,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도니스를 찾아보자.’

오토는 우선 이 세계에서 가장 천재적인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전략가인 아도니스의 행방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누군가 아직 데려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도니스라는 천재를 등용할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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