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판매 방법을 다양화시켜서 공급한다면 가난한 사람들도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요.”
“판매방식을 다양화시켜요?”
“그렇습니다요.”
에고가 설명했다.
“우선 치매보험 상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가입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요.”
“오?”
“실제로 모두가 치매가 걸리는 건 아니니까, 저렴한 값에 많은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할수록 이익이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요. 쿄쿄쿄.”
“그거 좋네요?”
오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실제로 들어오는 돈에 비해서 나가는 약값은 적을 테니까?”
“그렇습니다요! 쿄쿄쿄!”
“그리고요?”
“미처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장기 할부 상품을 이용하게끔 하겠습니다요. 쿄쿄쿄.”
“오!”
“마지막으로 정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심사를 통해 무료로 약값을 지원해 주기도 하고, 아예 이오타 왕국으로 이주시켜서 노동을 통해 약값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습니까요?”
“오오오!”
“가족 중 누군가가 군에 입대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나라에 봉사하는 대신 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요. 그렇게 하면 누구나 다이애닌으로 치매를 치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요?”
“크으!”
오토는 에고의 수완에 감탄했다.
에고의 말대로 하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치매를 치료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소인이 여러 가지 합리적인 금융 상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요. 쿄쿄쿄.”
“좋습니다.”
오토는 에고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 식으로 판매방식을 다양화한다면, 비싼 약값에도 불구하고 알퐁달 어르신의 뜻이 이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오타 왕국의 재정적인 부담도 훨씬 줄어들 테고.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요.”
“네?”
“약을 홍보할 필요가 있습니다요.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할 것입니다요. 그러면 당장 본국의 재정이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요.”
“아! 그러네요!”
“쿄쿄쿄.”
당장 치매에 걸리는 사람들보다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난다면, 이오타 왕국의 재정은 단기간에 크게 확보될 터.
“홍보라… 홍보….”
오토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더니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마침 좋은 홍보대사가 하나 있네요.”
“예?”
“홍보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후후후.”
“……?”
“곧 전 세계가 다이애닌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오토는 최고의 홍보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건 걱정하지 않았다.
‘마침 타이밍 좋네.’
안 그래도 다이애닌을 이용해 뭔가를 할 생각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쿠란 어르신도 치료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요. 하지만 당장 완치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요.”
“예?”
“어르신에게 적용되는 약의 용량이 얼마나 될지 모르질 않습니까요?”
“아, 하긴.”
쿠란은 드래곤.
평범한 인간의 용량대로 다이애닌을 복용한다고 한들 당장 효과를 보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드래곤에게도 인간과 똑같은 약효가 먹힐지 의문이기도 했고.
“일단 드셔 보시게끔 해 보죠.”
“예, 전하.”
오토는 일단 쿠란에게 다이애닌을 조금씩 먹여서 반응을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대량생산 시스템은 갖춰졌으니, 반응을 봐 가면서 용량을 늘려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 * *
다이애닌 생산 시설을 둘러본 오토는 즉시 왕궁으로 복귀했다.
그러던 중.
“전하를 뵙습니다.”
오토는 집무실로 가던 중 이오타 왕국의 교육사령관 스푸너와 마주쳤다.
전설의 교관 스푸너.
외팔이, 외다리, 외눈박이 남자.
본래 아라드 제국 출신의 전쟁영웅이었던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나 부랑자로 살아가던 중 이오타 영지의 영주이던 오토를 만났다.
그 후 스푸너는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아라드 제국에서 복무할 당시 갈고 닦은 전쟁 경험과 훈련 시스템을 적용시켜서, 이오타 왕국이 군사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오토는 스푸너에게 후작의 작위를 주었고, 아예 교육사령관으로 임명하고 3성 장군이라는 명예로운 계급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이오타 왕국군이 전투에 나설 때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건 오토의 전략·전술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푸너의 역할이 대단히 컸던 것이다.
“스푸너 장군님! 오랜만입니다!”
오토가 스푸너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충성! 중장! 스! 푸! 너!”
스푸너가 오토에게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경례를 취했다.
‘크.’
오토는 그런 스푸너의 모습에 감탄했다.
3성 장군임에도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란 정말이지 멋있고, 듬직했다.
당장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교육사령관부터가 저렇게 바짝 군기가 들어 있으니, 이오타 왕국군이 계급과 성별에 관계없이 군인으로서의 군기가 훌륭할 수밖에.
“잘 지내셨습니까? 한 몇 달 못 뵈었죠?”
“저야 늘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하!”
오토는 그런 스푸너의 모습이 좋았다.
비록 전쟁터에서 활약하다가 외팔이, 외다리, 외눈박이가 되어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군인으로서의 자세는 사지멀쩡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기품이 있었다.
의족과 의수.
그리고 눈에 찬 검은 안대.
그의 불편한 신체는 그의 과거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증명해 주는 일종의 훈장 같은 것이라, 불쌍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존경심이 들 지경이었다.
‘이런 사람들 하나하나가 우리 왕국에 소중한…….’
스푸너를 바라보며 존경심, 고마움, 그리고 따스한 감정을 느낄 때.
‘어?’
오토는 불현듯 드는 어떠한 예감에 눈을 번쩍 떴다.
뭔가 느낌이 왔다.
지금 뭘 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그런 오토의 느낌에 화답이라도 했던 걸까?
스으으!
아공간 인벤토리 안에 들어 있던 루비가 저절로 빠져나와 두둥실 떠올랐다.
통찰의 마안.
부패여왕 바토리의 권속인 아퀴나스가 남긴 유품.
그 효과는 죽음의 병사들이 살아생전 지니고 있던 잠재력을 알아보는 것.
그렇다면…….
“음?”
스푸너는 갑자기 커다란 루비 하나가 두둥실 떠오르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물건이 드디어 좋은 주인을 찾았네요.”
오토가 스푸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걸 보니까, 이 루비는 스푸너 중장님 거네요.”
“예?”
“스푸너 중장.”
“중장 스, 푸, 너.”
“그대에게 하사한다.”
오토가 스푸너에게 다가가, 그의 안대 위에 루비를 가져다 대었다.
스으으으!
그러자 루비가 기다렸다는 듯 스푸너의 안대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부르르!
스푸너가 몸을 떨었다.
이윽고 안대 안쪽으로부터 붉은색 섬광이 흘러나왔다.
[알림: <전설의 교관 스푸너>가 성장했습니다!]
[알림: <전설의 교관 스푸너>가 기존 S등급에서 SSS등급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알림: <전설의 교관 스푸너>가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오토는 눈앞에 무언가 상태창이 떠오른 걸 보고, 스푸너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상태창이 안 보인다?
상관없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스푸너는 한 단계 더 발전해서, 병사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진 잠재력을 꿰뚫어 볼 수가 있게 될 터.
이제부터 스푸너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숨겨진 잠재력을 깨닫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이오타 왕국의 국력이 더욱 강해지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단순히 전투에 관계된 재능뿐 아니라 아주 다양한 잠재력들이 만개하면서, 이오타 왕국은 더욱 찬란하게 발전하리라.
“저, 전하. 이것은.”
스푸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안대를 풀었다.
놀랍게도, 전투 중 잃어버렸던 그의 한쪽 눈이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살짝 붉은 기운이 도는 것 같기는 했지만…….
“통찰의 마안입니다.”
“통찰의 마안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잠재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담긴 보석이에요. 지금 보니 평소에는 눈 역할을 하다가, 잠재력을 통찰할 때는 붉게 빛나는 것 같네요.”
“그럼 제게… 눈을 하사하신 것입니까?”
스푸너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성은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크흐흑!”
“아이고, 스푸너 중장님.”
“정말 망극하옵니다! 망극, 또 망극하옵니다!”
스푸너는 오토의 은혜에 감격해 거의 오열하다시피 했다.
오토를 만나 부랑자 신세를 면하고, 후작의 작위를 얻고, 3성 장군이라는 명예까지 얻었는데, 이제는 눈까지 하사받다니.
게다가 차고 있는 의족과 의수 또한 드워프들이 제작한 것이라, 몸이 불편한 것도 상당 부분 감수할 만했다.
스푸너에게 있어 오토는 자신을 알아봐 준 유일한 사람이고, 일생일대의 기회와 은혜를 동시에 가져다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크흑! 흑흑흑!”
“누가 볼까 무섭네요. 하하하.”
오토는 스푸너를 잘 다독여 주었다.
그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머지않아 중장님께 누명을 씌운 놈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웨나 대공과 연줄이 생겼으니, 당시 사건을 재수사해서 중장님께 누명을 씌웠던 놈들을 잡아들일 생각이거든요.”
“전하….”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라드 제국에서의 중장님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시켜 드릴 테니까.”
기왕 생각난 김에, 오토는 스푸너의 한도 풀어주기로 했다.
사실 오토는 아라드 제국에 큰 인맥을 지니고 있었다.
북부대공 가문인 잘츠부르크.
그리고 황녀 로웨나.
어마어마한 세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과 친분이 깊었기에, 아라드 제국군 내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을 재수사하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원한다면, 스푸너에게 해악을 끼친 자들에게 역으로 누명을 씌워서 처형시켜 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스푸너는 명예회복을 원하지 않았다.
“아라드 제국에서의 명예 따위,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
“제 명예와 영광은 오직 이오타 왕국에만 있을 뿐입니다. 과거의 불명예 따위, 제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
오토는 스푸너의 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제가 용서를 못하겠는데요?”
“예…?”
“딱 몇 달만 기다려 보시죠. 흐흐.”
오토는 스푸너에게 누명을 씌운 자들을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절대로.
* * *
오토는 밀린 행정업무를 계속하는 한편, 쿠란을 돌보며 다이애닌을 먹였다.
밖으로 나돌 때야 올리브가 대신 돌본다지만, 오토는 이오타 왕국에 머물 때만큼은 직접 쿠란을 모시며 지극정성을 다했다.
틈날 때마다 찾아가 목욕도 시켜드리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밥도 직접 먹여 드리는 등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왜?
약속했으니까.
잘 모시겠단 오토의 약속에는 결코 거짓이 없었던 것이다.
“어르신, 아.”
오토가 숟가락에 다이애닌을 한 스푼 떠서 쿠란에게 먹여 주었다.
치매 증세가 도져 있던 쿠란이 멍한 눈으로 다이애닌을 한 숟갈 먹었다.
“응애, 나 애기 드래곤. 이거 맛이가 없….”
그때.
“엥? 넌 오토가 아니냐?”
쿠란이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와 오토를 알아보았다.
“어?!”
오토는 다이애닌이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자 눈을 번쩍 떴다.
알퐁달 어르신이 평생에 걸쳐 개발한 치매 치료제인 다이애닌은 인간뿐 아니라 드래곤인 쿠란에게도 효과가 있…….
“누구세용???”
쿠란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토에게 물었다.
“…….”
오토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꾹 참고 다시 다이애닌을 한 숟가락 더 먹여 보았다.
그 결과.
“엥? 넌 오토가 아니냐?”
쿠란이 다시 또렷한 눈빛과 말투, 목소리로 오토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