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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82화 (283/401)

제282화

미카엘은 새로운 교황의 옹립을 바라는 파벌인 개혁파의 상징적인 인물.

그런 그가 교황의 치매 치료를 반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면 미카엘의 반응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실 교황의 치매 증세는 꽤 오래된 일이었다.

교황이 처음으로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게 어언 20년 전.

그저 가벼운 건망증처럼 보였던 치매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심해져만 갔다.

미카엘을 최연소 추기경으로 임명했던 10년 전쯤에는 치매 증세가 매우 심해져서, 하루에 제정신인 때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상 교황으로서 맨정신일 때 마지막으로 처리한 업무가 미카엘을 추기경으로 임명했던 것일 지경이었다.

최고 권력자인 교황이 그 모양이었기에, 아즈란 제국은 지난 20년 동안 조금씩 병들어 갔다.

본래 교황은 성군으로서 잘 통치해 오고 있었는데,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서 아즈란 제국 내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점차 본모습을 드러내며 타락해 갔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미카엘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는 현 교황을 양위시키고, 새로운 교황을 옹립하자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병들어 가고.

교황의 치매는 나아질 기미가 없고.

게다가 교황은 치매 증세를 빼면 지나치게 건강해서, 잘만 하면 앞으로도 최소 10년은 더 살고도 남을 것 같았다.

애초에 치매는 불치병인지라, 현 교황이 정신을 차릴 가능성은 아예 없기도 해서 더욱 막막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토가 교황의 치매를 치료할 신양을 개발했다니, 미카엘로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만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교황 성하의 치매가 치료된다면….”

미카엘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저로서는 더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그런가요?”

“최근 파벌 싸움이 더욱 심해져 가는 데다가 타락한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일삼는 횡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내전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교황 성하의 치매가 치료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미카엘은 교황이 제정신을 차린다면 썩어빠진 아즈란 제국을 단숨에 개혁해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치매에 걸리기 전 교황은 성군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국정운영 능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즈란 제국 내에서 교황의 권위는 가히 절대적이라, 개혁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찍소리도 못할 게 분명하기도 했고.

‘그래, 그렇게 돼야지.’

오토는 속으로 생각했다.

‘교황이 그렇게만 해 주면 나도 더 바랄 게 없긴 하니까.’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교황의 치매는 치료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되고, 교황은 곧 죽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오토는 교황이 미카엘의 바람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오토 스스로 만들어 낸 변수를 이용해서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을 테니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함은….”

“저는 자선사업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제가 만약 교황 성하의 치매를 치료한다면 제 부탁 몇 가지를 들어주셔야 합니다.”

“뭡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교황 성하의 치매를 치료하면, 진혼의 오르간을 빌려 주셔야 됩니다.”

“지, 진혼의 오르간이라면….”

진혼의 오르간은 미카엘의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성물 중 하나로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라 현재 신전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 진혼의 오르간은 아즈란 제국의 국보라서, 오직 교황만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아무리 교황 성하라도 단독으로 진혼의 오르간을 빌려주시긴 힘들 겁니다. 미카엘 추기경님을 중심으로 개혁파에 속한 성직자분들과 귀족분들이 지지를 해 주셔야 할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카엘은 교황의 치매만 치료할 수 있다면, 진혼의 오르간을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꼭 그렇게 해 주셔야 됩니다.”

“제 목숨을 걸고 빌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제 목을 내어놓겠습니다.”

“좋습니다.”

미카엘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오토가 덧붙였다.

“치매 치료제에 대한 홍보와 아즈란 제국민들의 보험 상품 가입도 요구합니다.”

“음?”

“치매보험 상품입니다. 기간은 길어도 보험료는 저렴해서 누구나가 가입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역시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오토는 미카엘로부터 교황의 치매 치료에 따른 약속들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오토는 절대 자선사업 같은 걸 해 줄 생각이 없었다.

* * *

오토의 입궁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만약 미카엘이 교황의 치매를 치료하려 한다는 걸 보수 파벌이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보수 파벌의 대부분은 타락한 성직자들과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은 교황이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걸 이용해 온갖 비리와 월권을 저지르는 중이었다.

만약 미카엘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진즉에 아즈란 제국을 장악했을 게 분명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교황이 치매에 걸린 상태로 최대한 오래 생존해 있는 거였다.

최고 권력자인 교황이 허수아비가 되어 있는 동안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권력을 장악해 나가서, 적당한 때가 오면 정권을 완전히 휘어잡는다는 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때문에, 교황의 치매가 치료되거나 새로운 교황이 나타나면 보수 파벌에 속한 이들은 매우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할 테고, 최악의 경우 미카엘과 오토를 암살하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토와 미카엘은 야심한 밤 남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입궁해야만 했다.

물론 그런다고 이 소식이 보수 파벌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닐 테지만, 그것까진 괜찮았다.

왜?

그들이 눈치챈 뒤에는 이미 교황의 치매가 치료된 뒤일 테니까.

“돌아가십시오.”

하지만 교황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교황 성하께선 주무시고 계십니다.”

침실 앞을 지키는 성기사들은 미카엘이 교황을 알현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신성 아즈란 제국의 추기경이며, 신성기사단의 기사단장이다. 내게는 교황 성하를 언제든 알현할 권리가 있다.”

“교황 성하께선 주무시고 계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미카엘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 했지만, 성기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어휴. 썩을 대로 썩었네.’

오토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보수 파벌의 힘이 이제는 교황의 최측근까지 뻗어 있다는 걸 실감했다.

‘미카엘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겠다는데도 버티고 서 있는 거 보소.’

보수 파벌은 교황과 가까이 있는 시종들과 시녀들부터 시작해서, 성기사들까지도 자기 사람들로 채워 나가는 중이었다.

이제는 교황 주변에 개혁파에 속한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게다가 함께 오신 분은 어찌 불경스럽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계신 겁니까. 정체를 드러내십시오.”

“저는.”

오토가 후드를 벗으며 정체를 드러내었다.

“이오타 왕국의 국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라고 합니다.”

“……!”

“비밀리에 밀사로 온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찌 이오타 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교황 성하가 아니면 말씀드릴 수 없는 용무입니다.”

“하지만 교황 성하께서는 주무시고 계실뿐더러, 이러한 사안은 다른 추기경분들과 귀족분들의….”

그때.

“안 주무시는데요?”

그렇게 오토의 두 눈이 초록색으로 빛났다.

“지금 장난감 가지고 놀고 계시는데?”

“……!”

“소꿉놀이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 그걸 어떻게….”

성기사는 오토가 칠실 내부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 말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실제로, 미카엘과 오토가 오기 전까지 교황은 코흘리개들이나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투시 능력을 통해 침실 안쪽에서 교황이 뭘 하고 있는지 꿰뚫어보았던 것이다.

“다 알고 찾아온 거니까 그냥 곱게 들여보내 주시죠.”

오토가 성기사를 압박했다.

“만약 저와 여기 계신 미카엘 추기경님의 방문을 막은 걸 교황 성하께서 알게 되시면… 장담컨대 이단심문관들에게 잡혀 가시게 될 겁니다.”

움찔!

오토가 이단심문관에 대해 언급하자 성기사가 몸을 떨었다.

“그, 그래도 안 됩니다.”

성기사는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교황 성하를 강제로 알현하려 하신다면, 부득이하게….”

“열어.”

“……!”

성기사는 오토의 언령에 마치 번개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토가 마녀 칼립소의 권능 중 하나인 영혼강탈의 힘으로 성기사에게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열어. 이 일은 비밀로 하고.”

“알겠… 습니다.”

성기사가 슬쩍 길을 비켜주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방금 그 목소리는….”

“영업비밀입니다.”

오토는 놀란 미카엘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산뜻한 발걸음으로 침실 문을 열었다.

* * *

같은 시각.

오토가 미카엘과 함께 교황을 알현할 무렵.

아즈란 제국의 수도 동쪽에 자리한 헤즈볼라 산맥에서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다.

“캬아아아악!”

“구와아악! 구와아아아악!”

“우어! 우어어어어!”

헤즈볼라 산맥에 사는 각종 몬스터들이 갑자기 떼 지어 대이동을 시작하며, 아즈란 제국의 수도를 향해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거센 지진이 일어났음은 물론.

쾅! 콰앙!

와르르르르르르르!

굉음과 함께 뭔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어, 어서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 어서!”

“빌어먹을! 빠르게 수도에 이 사실을 알려라!”

“전령을 보내라! 신속하게!”

“봉화를 피워 올려라!”

헤즈볼라 산맥에서 활동하는 산악경비대는 즉시 이 사태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현상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으니, 경비대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며 수도에 경고부터 해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저 많은 몬스터들이 무방비 상태의 수도로 진격할 테고, 그러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던 경비대원들은, 문득 기이한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헤즈볼라 산맥을 이루던 산 하나가 무너져 내리면서, 뭔가 거대한 생명체의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라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 거대한 생명체의 실루엣은 족히 200미터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생명체의 몸통은 희미한 달빛을 받아 초록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 설마.”

멀리서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경비대원은, 저 거대한 생명체의 실루엣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물론 실제로 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읽어주시던 동화책 속 그림과 저 거대한 생명체의 실루엣이 매우 비슷했기에 그러한 반응을 보인 것뿐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이 무슨! 맙소사! 아아아!”

경비대원이 탄식했다.

왜냐하면,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생명체의 실루엣이 마치…….

“드…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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