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86화 (287/401)

제286화

광속검을 켠 카미유의 검과 움직임은 그야말로 광속에 버금갔다.

고작 1초.

카미유가 한 무리의 성기사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는 데 든 시간이었다.

파직!

파지직!

그런 카미유의 검은 여전히 스파크를 튀어 올리며 전류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크 군주 바그람이 전류를 뿜어내 파괴력을 더했다면, 카미유는 전류를 이용해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검술을 구사했던 것이다.

“후우.”

카미유가 참았던 호흡을 내뱉으며 숨을 골랐다.

쿵쾅쿵쾅!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저릿저릿!

전신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대었다.

“…쉽지 않군.”

카미유는 조금 전 자신이 펼친 검술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는 걸 실감했다.

그 엄청난 빠르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신 근육들이 폭발적인 힘을 뿜어내야 했기에,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카미유가 전투불능에 빠진 건 아니었다.

단지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을 뿐.

“그럼, 계속 모시겠습니다.”

카미유가 교황을 돌아보았다.

“부탁하오.”

교황은 신성력을 끌어올려 카미유를 축복해 주며, 그 뒤를 따랐다.

탈출은 쉽지 않았다.

“저기! 저기 있다!”

“멈춰라!”

“교황 성하! 이리 오소서!”

성기사들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야말로 사방이 적.

까막이가 묶여 있는 뒤뜰까지는 적어도 몇백 미터는 남은 상황이었다.

좁은 아치형 복도.

우르르르르르!

시커멓게 몰려든 적들이 카미유 일행의 앞뒤를 가로막았다.

“제가 뚫겠습니다.”

“귁! 귁귁귁!”

이번에는 카심과 펭이가 나섰다.

화르르르르!

시뻘건 화염.

스으으으으!

그리고 차가운 냉기.

카심은 자신이 가진 네 자루의 검들 중 화속성의 백화검과 수속성의 수벽검을 움켜쥐고, 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검성으로부터 전수받은 이도류(二刀流) 검술을 펼치려는 것이다.

“거, 검성의 검이다!”

“백화검과 수벽검…!”

성기사들은 카심이 그 이름도 유명한 검성의 검들을 사용하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다는 말은, 카심이 검성의 후예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웅!

우웅!

카심의 주변을 맴도는 정육면체들이 일제히 성기사들을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다.

“으악!”

“크아아아악!”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던 성기사들은, 카심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차별적으로 휩쓸려 나갔다.

비록 카미유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했고, 카미유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카심의 무력 또한 적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카심은 혼자가 아니었다.

“귁! 귁귁귁!”

펭이는 전에 오토가 선물해 주었던 대파를 휘두르며, 성기사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팼다.

퍽! 퍼억!

대파에 맞은 성기사들은 코피를 쏟으며 쓰러졌고, 그대로 기절해 버린 뒤 일어나지 못했다.

“…맙소사.”

카미유는 펭이가 대파로 성기사들을 두들겨 패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설마… 평범한 대파가 아니었던 건가?’

상식적으로, 아즈란 제국의 성기사쯤 되면 상당히 뛰어난 기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터.

그런데 한낱 대파에 두들겨 맞고 쓰러진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펭이가 휘두르는 대파는 사실 평범한 대파가 맞았다.

단지 펭이가 대파에 펭족 고유의 마법을 걸어 내구도를 강화시킨 덕분에, 어지간한 둔기 이상으로 강력한 파괴를 가진 무기가 되어 있었을 뿐.

* * *

카미유, 카심, 그리고 펭이는 새카맣게 몰려드는 적들을 거의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며 포위망을 뚫어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좁은 복도를 지나 드넓은 광장이 나오자 카미유 일행은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잡아라!”

“교황 성하를 확보하라!”

“적들은 소수다! 모조리 척살하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수백여 명에 달하는 적들이 포위망을 좁혀 모여 카미유 일행을 압박했다.

“카, 카미유 경! 이제 어떡합니까!”

“귁! 귁귁귁!”

카심과 펭이가 카미유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카미유라고 해서 딱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적들이 너무 많았다.

이 많은 적들을 뚫고 지나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길을 열 테니 먼저 가라, 카심 경.”

“카미유 경!”

카심이 카미유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기서 잡힌다면, 카미유가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교황이야 폐위당한 뒤 구금될 게 분명했지만, 카미유 일행은 아니었다.

그들은 외국인이었으며, 다른 나라의 내전에 간섭한 범죄자들일 뿐이었다.

잡히면 무조건 사형당하리라는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도 길을 열겠다니…….

“다 같이 죽을 순 없지 않나, 카심 경.”

“하지만…….”

“길을 열 테니 교황 성하를 모시고 여길 빠져나가도록.”

“절대 안 됩니다! 그럴 순 없….”

그 순간.

번쩍!

한 줄이 섬광과 함께 카미유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또다시 광속검을 발동한 것이다.

촤락!

촤라라락!

시퍼런 검광(劍光)이 번뜩이고.

“으아아악!”

“크악!”

마치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 기적처럼, 포위망을 좁혀 오던 적들의 진영에 길이 생겼다.

광속검을 발동한 카미유가 일직선으로 돌진하며 앞을 가로막은 적들을 모조리 베어 버린 것이다.

“어서 가라! 카심 경! 다 같이 잡히는 것보다는 이게 나으니!”

“아, 알겠습니다!”

카심은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은 교황을 데리고 빠져나가기로 했다.

카미유의 말마따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다 같이 잡히는 것보다야 카미유 혼자 잡히는 게 백번 나았고, 지금이 아니라면 도망칠 기회는 영영 없을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꼭 구하러 다시 오겠습니다.’

카심이 그렇게 생각하며 교황을 업고 내달리려던 그때.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까막이가 나타나 포효를 내질렀다.

“브, 블랙 와이번이다!”

“불이다! 불!”

까막이가 적들을 향해 시퍼런 불꽃을 내뿜었다.

“까, 까막아!”

“캬악! 캬아아아악!”

까막이가 놀란 카심을 향해 얼른 타라는 듯 울부짖었다.

똑똑한 까막이는 얌전히 뒤뜰에 묶여 있던 중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닫고, 카심이 걱정되어 스스로 쇠사슬을 끊고 날아왔던 것이다.

“카미유 경! 얼른 타십시오!”

“귁! 귁귁귁!”

눈 깜짝할 사이에 까막이에 올라탄 카심이 카미유를 향해 소리쳤다.

“간다!”

카미유는 적들이 당황하는 사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달려 까막이 위에 올라탔다.

“가자! 까막아!”

“귁! 귁귁귁!”

카심이 소리치고.

“캬아아아아아아아악!!!”

까막이는 적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크게 포효하며 위협을 준 후 잽싸게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

“……!”

“……!”

미처 원거리 무기를 준비하지 못했던 반란군은, 그렇게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멀어지는 카미유 일행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한들 하늘을 날아 도망치는 카미유 일행을 뒤쫓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하멜 추기경은 교황을 놓쳤단 보고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반란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황을 체포해 신병을 확보하는 거였다.

그래야 현 교황을 인질 삼아 새로운 교황을 옹립하고, 반대 파벌을 쓸어버릴 명분을 얻을 터.

그런데 교황을 놓쳤다?

반란군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셈이었다.

교황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이상 민심은 반란군에 불리하게 돌아갈 테고, 반대 파벌은 명분을 획득한 셈이었다.

게다가 현 교황이 반대 파벌의 중심이 되어 아즈란 제국민들을 설득한다면, 반란군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즉, 교황을 놓친 이상 반란을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 * *

무사히 교황을 데리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 카미유 일행은 까막이를 타고 서쪽의 헤즈볼라 산맥으로 향했다.

헤즈볼라 산맥 쪽에 있는 오토와 미카엘과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저기다! 저기로 가자! 까막아!”

“캬아아악!”

다행히 아직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있어서, 카미유 일행은 별 탈 없이 미카엘이 이끄는 군대와 합류할 수 있었다.

“이 무슨 일입니까!”

몬스터들에 맞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미카엘은, 카미유 일행이 교황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카엘! 내 아들아!”

“교황 성하!”

“반란이 일어나 부득이하게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바, 반란이라니! 설마….”

미카엘이 알 만하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

“하멜 추기경이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까.”

“자초지종은 알 수 없으나, 그런 듯하구나.”

“감히.”

미카엘이 분노했다.

“이슈타르께서 지켜보고 계시는데 반란을 저지르다니. 탐욕이 눈먼 자들은 신의 분노가 두렵지도 않다는 말입니까.”

“허허.”

교황이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사이에 성스러운 제국이 병들어 버리고 말았구나. 다 나의 잘못 아니겠느냐. 이슈타르시여. 어찌 이 죄인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아아.”

“아닙니다. 교황 성하. 단지 저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신의 뜻을 저버린 것일 뿐입니다.”

미카엘은 교황을 위로하고는, 카미유와 카심과 펭이에게 다가가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습니다. 그 대가가 목숨이라 할지라도. 이슈타르의 가호가 있기를.”

미카엘이 성호를 그으며 카미유 일행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토 전하를 포함해 여러분들이야말로 이슈타르께서 보내신 천사들입니다.”

그때.

“충성! 총사령관 각하!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산악여단의 정찰장교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미카엘에게 보고했다.

“정찰 활동을 벌이던 중 사고가 터져 급히 보고드립니다.”

“사고라니?”

“정찰병들이 보고하길 오토 드 스쿠데리아 전하께서 골드 드래곤에게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오토 전하께서 납치되셨다니?”

“정찰병들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거대한 골드 드래곤이 나타나 와이번을 타고 비행하시던 오토 전하를 납치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드래곤은 이미 멸종되었는데, 멸종한 생명체가 어찌 오토 전하를….”

미카엘은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전하께서 납치되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하께서 납치되셨다니!”

“귁! 귁귁귁!”

“캬아아아악!”

카미유, 카심, 펭이, 까막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정찰장교를 독촉했다.

“여,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미카엘이 카미유, 카심, 펭이, 까막이를 달랬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멸종한 생명체가 어떻게 오토 전하를….”

“드래곤은 아직 멸종하지 않았습니다.”

카미유가 미카엘의 말을 잘랐다.

“드래곤은 아직 존재합니다. 적어도 한 마리 이상은.”

“예?”

미카엘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드래곤이 아직 멸종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카엘은 카미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꼭 드래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ㅎ….’

미카엘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아직 살아 있는 드래곤을 알고 있습니다.”

“……!”

“예?!”

“맹세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살아 있는 드래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드래곤이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전하께서 직접 정찰을 나가신 것도 드래곤의 존재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정찰에 나서신 겁니다.”

“마, 맙소사.”

“전하께서 드래곤에게 납치되었단 보고가 올라왔다면… 정말 그랬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카미유의 표정은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다급해 보였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무려 드래곤에게 납치당했다고 생각하니 불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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