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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93화 (294/401)

제293화

오토와 엘리제의 입맞춤은 짧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한동안 입술을 포갠 채 떨어지지 않았다.

긴 입맞춤이 끝난 후.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오토는 진심으로 엘리제에게 고마웠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주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는 엘리제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고마울 필요 없다.”

엘리제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약혼한 사이다. 당연한 거다.”

“그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응?”

“솔직히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

“나만의 일방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아니야.”

오토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다행이다.”

“이해해 줘서 정말 고마워. 약속할게. 내 의지로 떠날 일은 없을 거라는 거.”

실제로, 오토는 이 세계를 떠나 다시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보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실지 생각해 보면, 심장이 쿡쿡 찌르는 듯 아파 오곤 했다.

그러나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할지 결정하라고 한다면, 오토는 주저 없이 이 세계를 선택할 거였다.

이미 이 세계에서 이룬 것이 엄청나게 많기에,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거면 됐다.”

엘리제가 미소를 지었다.

“내게는 그 무엇보다 네 마음이 중요하다. 상황은 극복해 나가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오토는 홀가분했다.

엘리제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나도 널 지켜줄게.”

“그게 무슨 말인가.”

엘리제가 오토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토는 엘리제에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진실은 털어놓았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건 오토의 선택이 아니라 엘리제의 의지였다.

조금 전 대화를 나눌 때.

‘내게 모든 걸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난 그걸로 충분하다.’

오토가 뭔가를 말하려던 때, 엘리제는 고개를 저으며 듣지 않겠다고 말했다.

‘약혼자 너만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을 거다. 그러니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해 줄 필요 없다. 내게는 네 진심 어린 마음만 털어놓으면 그만이다.’

오토는 그런 엘리제의 의견을 존중했기에, 굳이 미래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럴 거라고.”

오토가 엘리제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

“헤헤.”

“그리고 그거 말이다.”

“응? 뭐?”

“키스라는 거… 참 기분이 좋았다.”

엘리제가 문득 부끄러워졌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남녀 사이의 입맞춤이 그렇게 황홀한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그래? 하하하.”

“조금 더 할 수 있겠나.”

“으응…?”

“이리 와 봐라.”

엘리제가 오토를 끌어당기더니, 입술을 포갰다.

오토는 저항하지 않았다.

‘다, 달콤해.’

엘리제와 나누는 입맞춤이 너무나도 황홀해서 오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 *

다음 날.

“몸조심하고 잘 지내고 있어라.”

“응. 조심히 가.”

엘리제는 또다시 북부 장벽으로 떠났다.

“편지할게! 소포도 보내고!”

오토가 멀어지는 엘리제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당분간 복면으로 얼굴 좀 가리고 다니십시오.”

카미유가 오토에게 핀잔을 주었다.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간밤에 도대체 뭘 하신 겁니까?”

“응?”

“벌이라도 쏘이셨습니까? 퉁퉁 부어서 썰면 한 접시는 나올 것 같습니다만.”

“그, 그 정도라고?!”

오토가 화들짝 놀라서 엘리제가 선물해준 군용 거울을 꺼내 자기 모습을 비쳐 보았다.

“히익?!”

카미유의 말마따나, 입술이 무슨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하, 하긴. 어제 좀 무리하긴 했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엘리제는 동이 터올 무렵까지 오토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 결과 오토의 입술이 이렇게 퉁퉁 부르튼 것이다.

“아가씨와의 관계가 많이 진전되신 것 같습니다.”

카미유가 미소를 지으며 오토에게 말했다.

“관계의 진전이라… 엄청 됐지.”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 좋습니다, 그런 모습.”

“으응?”

“평생 정상적인 연애나 결혼 생활은 못 하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허구한 날 살롱에 드나드시면서 매춘부들과 어울ㄹ…….”

“내가 언제!!!”

오토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쒸익쒸익!!!

오토는 억울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 새끼! 너 때문에 계속 오해받잖아!’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과거의 행적 때문에 이런 오해를 받다니, 정말이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언젠가 형한테도 말해야 할 날이 오겠지.’

오토는 차마 카미유에게는 진실을 털어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카미유와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

오토 드 스쿠데리아를 동생으로 여기는 카미유에게 진실을 털어놓았을 때,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도저히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정작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언젠가는 꼭 말할게. 지금은 내가 용기가 없어. 미안해.’

오토가 그렇게 생각할 때.

“저한테 무슨 잘못하신 거라도 있습니까?”

“가, 갑자기?”

“표정이 죄지은 사람 같으십니다.”

“아, 아니야. 그런 거.”

오토가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무튼!!!”

오토가 화제를 돌렸다.

“우리 동맹들 다 모이라고 해.”

“예?”

“이제 슬슬.”

오토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에르제베트 왕국을 사냥해야지.”

“바로 움직이십니까?”

“시간을 주면 줄수록 불리해. 빠르게 해치우는 게 나아.”

오토는 겨울이 오기 전에 에르제베트 왕국을 완전히 끝장낼 생각이었다.

계속 내버려두었다가는 부패한 거미여왕 바토리가 낳는 언데드 괴수들의 숫자만 늘어날 터.

최대한 빠르게 에르제베트 왕국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수도로 진격해서 부패한 거미여왕인 바토리를 끝장낸다는 게 오토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 * *

엘리제가 떠난 후.

‘살린다.’

오토는 지도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계획을 수정하기로 결심했다.

그건 오래도록 망설여 왔던 결정이었다.

원래 오토의 계획에는 엘리제의 생존 시나리오가 없었다.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엘리제와 잘츠부르크 가문은 장벽 너머에 자리한 북부제국의 대륙 침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할 운명이었다.

그 결과 북부제국의 강대한 군사력이 절반 이상으로 날아가면서, 세계대전은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로 게임을 클리어할 당시 그 시나리오에 맞춰서 최적화된 빌드를 짰기에, 원래대로라면 엘리제가 전사하고 잘츠부르크 가문이 멸망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엘리제와 맺어졌고, 깊은 관계가 된 이상 그 계획은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미 여러 가지 변수들이 생겼고, 나비효과가 점점 더 커져 가는 상황에서 본래 빌드를 고집하는 건 애초에 현명한 선택이 아니기도 했다.

‘우선 로웨나를 최대한 이용해서 세계대전을 최대한 늦춰야 된다.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북부제국이 남하하면 답이 없어. 그래야 엘리제가 살아.’

엘리제를 살리기로 결심한 오토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며 밤을 지새웠다.

‘세계대전을 늦추고. 북부제국의 남하를 막고. 그 뒤에 세계대전이 벌어지면… 절대권능을 완성해서 전쟁을 종식시킨다.’

오토가 떠올리는 <절대권능>이란 어떠한 능력 같은 게 아니었다.

<절대권능>이란 게임 영지 전쟁에 등장하는 151개의 성물 중 4개의 특정 성물과 1개의 유니크 아이템을 조합해서 만들어 내는 아이템이었다.

이른바 <초월 성물>이란 등급을 가진 절대권능은,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승리 계획의 핵심이었다.

또한, 오직 오토만이 그 존재를 아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절대권능의 존재 자체가 오직 오토 드 스쿠데리아로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에는 접할 수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쿤타치 가문의 성역처럼.

‘슬슬 절대권능의 재료템들을 모을 때가 됐긴 해. 세계대전 초기에 절대권능을 완성해서 빠르게 전쟁을 끝낸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큰 가닥을 잡은 오토는, 한동안 집무실에 처박혀서 몇 날 며칠이고 계획을 수립하고 검토하기를 반복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오토는 동맹국들에게 연합군을 결성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에 동맹국들은 흔쾌히 오토의 제안을 수락했으며, 즉시 외교관들을 파견했다.

동맹국들로서는 오토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현재 에르제베트 왕국은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데다, 주변 세력들이 국경 근처에서 끊임없이 무력시위를 벌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등 악재만이 가득했다.

게다가 수도의 민심 또한 흉흉했다.

연일 수십 명씩 실종되는 바람에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민심이 악화되면서 탈출 행렬까지 생겨난 마당이었다.

즉, 강대국인 에르제베트 왕국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토가 회의에 참석한 동맹국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토는 반 에르제베트 동맹의 의장으로서, 앞으로 벌어질 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예정이었다.

“취익! 우리 오크들은 이오타 왕국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오! 췩!”

처음으로 우르크 평원을 떠나 이오타 왕국으로 온 바그람이 오토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표시했다.

함께 자리한 외교관들은 그런 바그람이 다소 낯설고 두려워서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대놓고 티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왜?

지금은 에르제베트 왕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쳐부수기 위해 다 같이 힘을 합치는 자리였으니까.

에르제베트 왕국의 오랜 지배로부터 벗어날 절호의 기회인데, 동맹국들 가운에 오크가 있다고 해서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에르제베트 왕국의 국왕 바토리는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오토가 동맹국 외교관들에게 설명했다.

“그녀는 우르크 평원에서 저기 있는 바그람 국왕과의 전투에서 패했고, 전사했습니다. 지금의 바토리 국왕은 전사했다가 사악한 언데드로 부활한 존재입니다. 그녀는 현재 왕궁 지하에서…….”

바로 그때.

“전하.”

카미유가 황급히 회의장으로 들여와 오토에게 속삭였다.

“……!”

그러자 오토의 눈이 크게 떠졌다.

“와, 왔다고? 여길?!”

“예, 전하. 지금 이쪽으로 오는 중입니다.”

“왜?????”

오토가 그게 말이 되느냐는 듯 카미유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번에 초안을 작성한 협정서 때문인 것으로 압니다.”

“아니, 근데 왜 하필 지금인데? 그리고 만나기로 약속한 적도 없…….”

덜컥.

회의장 문이 열리고.

“로웨나 폰 아라드 대공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한껏 꾸민 로웨나가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아.’

오토는 불청객의 난입에 눈을 질끈 감았다.

“호호호~ 동생~?”

로웨나가 콧소리 가득한 목소리를 내며 오토를 향해 다가왔다.

“……!”

“……!”

“……!”

한편, 회의에 참석한 동맹국 사람들은 로웨나의 등장에 오토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설마하니 현 세계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의 황녀이자 어마어마한 군권을 지닌 로웨나가 오토를 ‘동생’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굴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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