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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294화 (295/401)

제294화

“로웨나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로웨나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로웨나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동맹국 외교관들은 로웨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예를 갖췄다.

상대는 현재 세계 최강대국의 황족이자 대륙 서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

그러다 보니 약소국들로서는 로웨나에게 깍듯이 대할 수밖에 없었다.

“…취익.”

대륙 정세에 대해 잘 모르는 바그람만이 눈을 멀뚱멀뚱 뜨며 지켜봤을 뿐.

“동생~? 중요한 회의 중인데 내가 방해한 거야~~~?”

“아,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오토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방해한 거 맞지.’

반 에르제베트 동맹을 결성하고 한창 회의를 진행하던 도중에 불쑥 찾아온 것이니 오토의 입장에선 방해받은 게 맞았다.

하지만 오토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로웨나를 맞아주었다.

“방해라뇨. 미리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셔서 놀란 것뿐인걸요. 하하하.”

카미유는 그런 오토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접대 중이시군.’

카미유는 지금 로웨나를 대하는 오토의 미소가 접대용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호호호~ 동생을 놀래게 해 주고 싶어서 그랬지~”

“잘 오셨어요. 여기 앉으세요, 누님.”

오토가 로웨나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다.

“거긴 동생 자리잖아. 손님이 주인 자리를 뺏을 순 없지.”

“에이, 그래도….”

“난 옆에 앉을게.”

“빨리 의자 좀 가지고 와 주세요.”

오토가 시종으로 하여금 의자를 가져오게 해서 로웨나가 옆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어머, 우리 동생. 자상하기도 하지.”

“아닙니다. 누님을 모시는 데 너무 누추한 거 같아서 부끄럽네요. 이렇게 모실 분이 아닌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로웨나가 의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편하게 해, 편하게.”

“에이, 누님한테 어떻게 편하게 하겠어요.”

“아니야. 정말이야. 우리 동생 마음대로 해도 돼.”

“마, 마음대로?!”

“그러엄~ 뭐든 동생 마음대로야~”

로웨나가 오토를 향해 눈웃음을 쳤다.

오싹!

오토는 로웨나의 그런 말과 행동이 뭘 뜻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서 흠칫 몸을 떨었다.

‘다, 다행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점은, 엘리제가 이 자리에 없었다는 것.

만약 마주쳤다간……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 동맹국 외교관들은 오토를 대하는 로웨나의 행동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가?!’

‘맙소사. 저 로웨나 대공이 오토 국왕과 그런 사이였다니.’

‘오토 국왕이 믿는 구석이 있어서 에르제베트 왕국을 무너뜨리겠다고 했던 것이군.’

동맹국 외교관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오토를 대하는 로웨나의 말과 행동에 사심이 가득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들에게 있어 매우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했다.

오토와 로웨나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은, 에르제베트 왕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될 터.

로웨나가 지휘하는 아라드 제국의 군대가 합류만 해 준다면, 제아무리 에르제베트 왕국이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 * *

로웨나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인해 회의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동생~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저야 잘 지냈죠. 누님은 잘 지내셨어요?”

“나는 우리 동생 생각하느라 잘 못 지냈지~”

“그, 그럼 안 되는데. 하하하.”

“그러니까 동생이 자주자주 이 누님을 보러 와야지~”

로웨나는 오토 옆에 보란 듯이 착 달라붙어서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때문에, 오토는 도저히 회의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로웨나가 걸어오는 말을 받아주다 보니 회의를 진행할 만한 틈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로웨나에게 입 다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미치겠네. 으으으.’

오토는 속으로 괴로워했지만, 프로답게 로웨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로웨나는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였으므로, 심기를 거슬렀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회, 회의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결국, 오토는 회의를 더 진행하지 못하고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호호호! 동생! 일 끝났으면 같이 식사라도 할까?”

“그, 그러죠.”

로웨나는 자신이 회의를 망친 걸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눈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동생, 걱정하지 마. 회의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로웨나가 오토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런 쓰레기들이랑 어울려 봐야 동생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예?!”

“내가 있잖아.”

“……!”

“쟤들은 그저 동생이 시키는 대로 군대만 좀 보내면 되는 거야. 에르제베트 왕국은 내가 손봐 줄게.”

“하지만….”

“게다가 쟤들은 동생이 나와 친한 사이라는 걸 알았잖아. 그럼 된 거야. 그럼 알아서 동생에게 충성할 텐데 뭘 걱정해?”

그 순간.

오싹!

오토는 로웨나의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다 알고도 방해했다는 거다.’

로웨나는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등장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잘 알고 있어서, 회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동생은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하하하하….”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오토는 로웨나의 그 말이 좀 다르게 들려서 진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다.

물론 오토 입장에선 나쁠 게 없었다.

로웨나는 매우 강력한 조력자였기에, 에르제베트 왕국을 상대해야 하는 오토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전략적 카드였다.

득이면 득이 되었지, 결코 해가 될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토의 마음은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미치겠네. 점점 더 제어가 안 될 텐데.’

오토는 솔직히 로웨나의 광기를 제어할 자신이 없었다.

로웨나는 사랑과 야망에 미쳐 버린 인물.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광기의 화신이었으며, 걸핏하면 학살을 저지르는 인간 도살자였다.

지금이야 하하호호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사이라지만, 나중에 가면 어떻게 돌변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던 것이다.

* * *

불쑥 찾아온 로웨나는 지난번에 작성한 협정서에 도장을 찍으며, 이오타 왕국과 동맹을 이루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좋았는데.

“동생~? 이리 좀 와 봐~”

“아, 아닙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오래도.”

로웨나는 이오타 왕국에 머무르는 동안 오토 옆에 착 달라붙어 틈날 때마다 스킨십을 시도했다.

‘어떻게 해서든 함락시키고 말겠어!’

로웨나는 오토에게 들러붙어 시도 때도 없이 유혹했다.

작정하고 덮쳐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상대하는 오토의 입장에선 정말이지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관계를 악화시킬 순 없었기에, 오토는 최선을 다해서 로웨나를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여?”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흘 내내 로웨나에게 시달렸더니, 오토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단기간에 살이 빠져서, 눈이 퀭하고 볼이 푹 패여 있었다.

“기 빨려 죽겠어. 으으.”

“단호하게 끊어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랬다간 에르제베트 왕국을 도와줄걸?”

“예?”

“로웨나는 절대 건드려선 안 돼. 최대한 비위를 맞춰 줘야 돼. 안 그럼 언제 미쳐 버릴지 모른다고.”

오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로웨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거나 버림받는 순간 완전히 미쳐 버리게 되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힘들더라도 최대한 잘 어르고 잘 달래서 구슬려야 돼. 그게 답이야.”

“힘드시겠습니다.”

카미유가 진심으로 오토를 위로했다.

곁에서 로웨나에게 시달리는 오토는 지켜보고 있노라면, 절로 동정심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노고가 많으십니다, 전하.”

“알면 됐어.”

우스갯소리로 접대남이라고 놀렸을 뿐이지, 사실 카미유도 오토가 국왕으로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잘 알았다.

로웨나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국익을 위해 노력하는 걸 보니 안쓰러울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오토가 떠나는 로웨나를 배웅했다.

“살펴 가세요, 누님.”

“아쉽네.”

로웨나가 아쉽단 표정을 지었다.

“동생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하하하하.”

“그럼, 조만간 또 봐.”

“조심히 가세요.”

로웨나가 떠나고.

“휴우!”

오토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해방감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지난 3일 동안 로웨나에게 하도 시달렸더니, 자유를 되찾은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다.

* * *

한편, 오토가 로웨나와 누나 동생 하는 사이라는 소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 나갔다.

오토를 대하는 로웨나의 태도를 본 동맹국 외교관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그 사실을 알리면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쫙 퍼져 버린 것이다.

동맹국의 지도자들은 그 보고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군대를 일으켰고, 즉시 에르제베트 왕국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로웨나라는 거물이 뒤를 봐주는 이상 이 전쟁에서 패배할 리 없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라 과감한 판단을 내리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덕분에 에르제베트 왕국은 주변 세력들로부터 더욱 큰 압박을 받게 되었고, 사방팔방에서 두들겨 맞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편, 이 소식은 왕궁 지하에서 알을 낳고 있던 부패한 거미여왕 바토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동맹국들에 심어 놓은 간첩들이 에르제베트 왕국의 정보국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 왔던 것이다.

“이이… 이이이…!!!”

바토리는 보고를 듣자마자 크게 분노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로웨나 그 망할 년과 손을 잡다니! 이 무슨!”

오토와 로웨나의 동맹은 바토리에게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내부에는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나고.

민심은 흉흉해지고.

그 와중에 주변 세력들까지 국경을 침범하며 공격해 오고.

거기에 더해 로웨나가 이끄는 아라드 제국군까지 침공해 온다면, 에르제베트 왕국으로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아아.”

바토리의 입에서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희망이 없구나. 아아.”

원래 바토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언데드 괴수들을 생산해내면서 힘을 비축하는 게 바토리의 본래 계획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이상 더는 미래가 없었다.

“…….”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딱히 크게 실수하거나 잘못한 게 없는데, 자꾸만 상황이 나빠지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의도하는 대로 흘러가기는커녕, 늘 정반대의 결과만 나오자 바토리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이대로라면 희망은 없다. 모든 게 끝이다.’

바토리는 더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절대 나 혼자만 죽지는 않겠다. 내 반드시 오토 드 스쿠데리아, 그 빌어먹을 놈에게만큼은 복수할 것이다.’

바토리는 암담한 상황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결단을 내렸다.

“모두 들어라.”

“예, 여왕이시여.”

좌우로 도열해 있던 언데드 신하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바토리의 명령을 받들었다.

“지금부터 수도를 봉쇄하라.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결국, 바토리는 자신이 가진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단기간에 병력을 불리기 위해서는 수도를 통째로 희생하는 방법만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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