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화
“캬아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께에에에에에에에에엑!”
불길에 휩싸인 언데드 괴수들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고, 이내 곧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지하로 번져 온 불길은 보통의 불길이 아니었다.
영겁의 화형(火刑)이라 불리는 이 불꽃은, 고대의 금지된 마법으로서 지금은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저주받은 주문에서 비롯된 것.
그 무시무시하고 집요한 불길에, 지하에 득실거리던 언데드 괴수들은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쓰러져야만 했다.
비단 언데드 괴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바토리 역시 죽을 때까지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였고, 산 채로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치이이이이이익!!!
그러나 영겁의 불길은 자비가 없었고, 계속해서 바토리의 몸을 불태우며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를 뿐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런 바토리와 언데드 괴수들의 비명은 지하 묘지 바깥까지 들릴 정도였다.
“아이고.”
오토가 비명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객님들께서 내 서비스에 만족하셨나 보네. 너무들 좋아하신다. 히히히.”
“좋아하는 거 맞습니까?”
“그러엄.”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 대답했다.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소리까지 지르겠어.”
“…….”
“좋아 죽으려고 하네, 아주.”
진짜 죽으려고 하는 거잖아…….
카미유는 오토의 악랄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토의 현명함에 감탄했다.
오토는 바토리가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것을 예상하고, 지하 묘지로 들어가지 않겠단 판단을 내렸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오토의 성격상 사지(死地)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는 미친 짓을 벌일 리 없었다.
그래서 오토는 바토리가 자리한 지하에 기름을 퍼붓고, 오래간만에 대학살의 서를 펼쳐 영겁의 화형 주문을 사용했다.
들어가기보다는 밖에서 불태워버리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바토리와 싸울 필요 없이.
“막아 버리세요.”
“예, 전하.”
오토는 기사들로 하여금 지하 묘지로 통하는 철문을 아예 닫아 버릴 것을 명령했다.
쾅쾅쾅쾅쾅!!!
언데드 괴수들이 철문을 두드리며 몸부림쳤지만, 오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 철문 하나로는 부족해 보이니까, 뭐든 좋으니 문을 막을 수 있는 건 죄다 가지고 와서 막아 버려.”
“예, 전하.”
철두철미하게도, 오토는 지하 묘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더욱 단단히 틀어막을 것을 명령하기까지 했다.
단 한 마리의 언데드도 살아서 빠져나오지 못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더 밀어라! 더!”
“영차, 영차!”
기사들은 왕궁 내에 있던 조각상이나 가구 등 무겁고 단단한 것들을 가져와 지하 묘실 입구를 더욱 단단히 틀어막기까지 했다.
오토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스으으으!
오토의 검이 회색빛 오러를 머금었다.
촤라락!
부채꼴 형태로 뻗어 나간 회색 오러가 지하 묘지로 통하는 입구를 덮쳐, 그곳을 완전히 석화시켜버렸다.
크고, 단단하고, 무거운 물건들로 입구 보강 작업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돌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실로 치밀하고 용의주도하며, 또한 철두철미한 마무리였다.
‘이쯤 하면 됐겠지.’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돌아섰다.
“혹시 모르니까 기사들 배치해서 계속 감시하게 하ㄱ….”
그때.
콰아앙!
굉음이 울려 퍼지고, 거대한 거미가 입구를 부수고 오토를 덮쳤다.
* * *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입구를 부수고 지하 묘실을 뛰쳐나온 바토리가 피 맺힌 절규를 토해내며 포효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치이이이이이익!!!
그런 바토리의 몸뚱어리는 시뻘건 화염으로 불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몸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발휘해서, 입구를 산산조각으로 박살낸 것이다.
“커헉!”
저 멀리 나가떨어진 오토가 피를 왈칵 토해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나마 들이받혀서 망정이지, 만약 밑에 깔렸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등골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전하!”
카미유가 제일 먼저 오토에게 다가와 부축해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크윽.”
오토가 고통에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안 죽었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오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젤리를 꺼내 입에 머금었다.
그러자 입가에 흐르던 피가 멎고, 시퍼렇던 얼굴 혈색이 금세 좋아졌다.
‘그 젤리’ 의 효과는 이러한 외상에 정말이지 탁월한 효능을 발휘해서, 즉사하지 않는 한 불사에 가까운 회복력을 자랑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네 이노옴… 내 이대로 허무하게 죽어 줄 줄 알았느냐!!!”
부패한 거미여왕 바토리가 버럭 소리치며 오토를 향해 피 맺힌 원한을 토해내었다.
그런 바토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거미 형태의 육체.
집채만 한 덩치.
그 와중에 몸은 부패의 저주로 인해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시뻘건 불까지 붙어 있었다.
지옥에서 갓 올라온 대악마(惡魔)가 있다면, 딱 이럴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지옥으로 가더라도… 네놈만큼은 반드시 데려갈 것이다… 반드시이이이이이이!!!”
바토리가 오토를 향해 덤벼들었다.
“전하를 보호하라!”
“귁! 귁귁귁!”
카심과 펭이가 마검사들과 함께 바토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취이이이이익! 이 바그람이 네년을 또다시 죽여 줄 것이다! 취이이이익!”
바그람도 아스트라의 도끼를 휘두르며 바토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버러지들 따위!!!”
바토리가 입을 쩍 벌리고 허연 액체를 뿜어내었다.
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그러자 허연 액체들이 덤벼든 이들을 덮쳐, 그들을 꽁꽁 묶었다.
“크으윽!”
“귀이이이익!”
“취이익!”
카심, 펭이, 바그람은 바토리가 뿜어낸 거미줄을 풀어 보려 노력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힘을 쓰면 쓸수록 거미줄은 더욱 강하게 그들을 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으으!
거미줄에 속박당한 이들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거미줄에 담긴 맹독으로 인해 중독된 것이다.
“다들 조심!”
카미유가 나섰다.
번쩍!
촤아아아!
광속검을 발동한 카미유가 눈 깜짝할 사이에 거미줄들을 잘라 속박되어 있던 이들을 풀어주었다.
“깔깔깔깔! 소용없다!”
바토리가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앞발을 마구 휘두르며 카미유, 카심, 펭이, 바그람, 그리고 마검사들에게 맹공을 가했다.
“크아악!”
“악!”
“취이이이익!”
카미유, 카심, 펭이, 바그람, 그리고 마검사들은 그런 바토리의 압도적인 전투력 앞에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만큼 바토리는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지닌 괴물이었다.
단단한 육체.
무시무시한 괴력.
카미유의 광속검에 대응할 만큼의 빠른 이동 속도.
그것도 모자라서 맹독을 품은 거미줄을 뿜어내고, 마치 칼날 같은 다리를 휘두르기까지 했다.
심지어 몸에 붙은 영겁의 불꽃조차 지금의 바토리에게는 실이 아닌 득이 되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이 내뿜는 그 엄청난 열기가 주변을 불태우면서, 공격해오는 이들에게 오히려 데미지를 입혔던 것이다.
그 불길이 오죽 뜨거웠으면, 지하 묘지로 향하는 입구 주변이 불바다가 되어 버렸을 지경이었다.
“끝까지 더럽게 구네.”
어느새 회복을 마친 오토가 바토리를 향해 다가섰다.
“카심 경!”
“예, 전하. 크윽!”
오토가 바토리와 맞서 싸우던 카심을 불렀다.
“저 검 하나만 빌려주세요.”
“예?! 으악!”
“제건 부러져서.”
오토가 두 동강이 난 검을 들어 보였다.
바토리에게 들이받히는 과정에서 검이 그만 부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예! 전하!”
카심은 자신이 가진 네 자루의 검들 중 수벽검을 내던졌다.
평소 같았으면 공손한 걸음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바쳤을 테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던져 준 것이다.
처억!
오토가 날아오는 수벽검을 낚아챘다.
스으으!
수벽검을 잡자 차가운 한기가 전해졌다.
스릉!
청명한 금속성 울림이 전해져 오기까지 했다.
“명검이네.”
검성이 사용하던 검이라 그런지, 확실히 보통 물건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물러서.”
수벽검을 쥔 오토가 바토리와 맞서 싸우던 동료들에게 명령했다.
“저 괴물은 내 손으로 처단할 테니까.”
다음 순간.
스으으으으으으으!!!
오토의 손에 들린 수벽검이 시퍼런 냉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 * *
“전하! 위험합니다!”
카미유가 오토를 뜯어말렸다.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건 나지, 저 괴물이 아냐.”
“예…?”
“구경하고 있어.”
그렇게 말한 오토가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마법처럼.
그렇게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
“……?”
“……?”
모두가 의아해하던 그때.
촤아아아!
어느새 바토리의 코앞에 나타난 오토가 좌에서 우로, 수벽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푸화아아악!
바토리의 가슴팍에서 초록색 피가 확! 튀어 올라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
“……!”
“……!”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벌레 주제에.”
“벌레 주제에.”
“벌레 주제에.”
여러 명의 오토가 바토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어, 어디서 그런 잔재주를!!!”
바토리가 버럭 소리치며 자신을 포위한 오토들을 향해 미친 듯 앞발을 휘둘렀다.
“느려.”
“느려.”
“느려.”
여러 명의 오토는 그런 바토리의 공격에 당해 주지 않았다.
촤락!
촤라락!
여러 명의 오토가 바토리를 향해 수벽검을 휘둘렀다.
촤락!
촤라락!
시퍼런 검광(劍光)이 빗발치고.
툭, 투둑!
바토리의 그 육중한 몸뚱어리를 지탱하던 다리들이 하나둘씩 잘려 나갔다.
“마, 말도 안 돼!!!”
바토리는 여러 명의 오토가 허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분신 아닌 분신.
여러 명으로 늘어난 오토는 단순히 허깨비 같은 환영 따위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오토가 수벽검을 휘두를 때마다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모두가 진짜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쿠웅!
바토리의 그 육중한 몸뚱이가 무게중심을 잃고 허물어졌다.
다리들이 잘린 덕분에 졸지에 앉은뱅이가 된 것이다.
“이 개새끼야!!! 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이리 와라!!! 이리 오란 말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바토리가 미친 듯 바동거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덟 개였던 다리가 고작 두 개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그마저도 왼쪽 앞다리와 오른쪽 뒷다리라서 거동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스윽.
어느새 분신을 해제한 오토가 바토리의 이마 정중앙에 수벽검 끝을 가져다대었다.
“시끄럽게 짖어 대네.”
“……!”
“그런다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뒤집어진 벌레마냥 자빠져서 꿈틀대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이… 이이이…!!!”
“특별히.”
오토가 대학살의 서를 꺼내 들었다.
“지옥으로 보내 줄게. 이 개 같은 X아.”
“지, 지옥…?”
“지옥의 문이여.”
오토가 주문을 외웠다.
쩌억!
쩌어어억!
그러자 시공간의 틈이 벌어지더니, 지옥의 문이 나타나 바토리를 빨아들였다.
- 깔깔깔깔!
- 너는 저주받은 영혼이로구나!
- 히히히! 너를 데리러 왔다! 히히히히!
악마들이 나타나 바토리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바토리가 오토를 향해 애원했다.
저기 끌려 들어갔다간 어떻게 될지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제발! 사, 살려 줘! 부탁이야!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제발! 죽이더라도! 그냥 죽여 줘! 제발! 싫어! 지옥에 가기 싫어! 으악! 으아아아아악!”
사악한 언데드인 부패한 거미여왕이 되었음에도, 바토리는 지옥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영혼에 각인된 공포였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고통의 시작임을 깨달은 이상 울고불고 살려 달라 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