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
“……!”
오토아 카미유는 난데없이 난입해온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이지 과감하고, 무모하며, 또한 터무니없는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나름 신흥강국이자 예비 강대국인 이오타 왕국의 왕국에, 그것도 어전에 대놓고 쳐들어올 줄이야.
그것도 몸으로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온 걸 보면, 애초에 암살자와는 거리가 먼 놈들인 게 분명했다.
어전 근처까지 침투했으면 은밀하게 암살을 노릴 것이지, 어떤 멍청한 암살자가 이렇듯 대놓고 쳐들어온다는 말인가?
암살자로서는 정말이지 실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딜 감히.”
카미유가 번개처럼 검을 뽑아 들었다.
“전하를 해하려는 자들에게는 오직…….”
그 순간.
스으으으으으!
암살자들이 뽑아 든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피어올랐다.
“……!”
“……!”
오토와 카미유는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정도의 강자라면, 결코 평범한 암살자가 아닐 터.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인정받을 무력을 갖춘, 진짜 강자들이란 뜻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들을 적진 한복판에, 그것도 어전까지 밀어 넣는단 말인가?
‘잠깐.’
오토는 왠지 어전에 난입해 온 세 명의 암살자들의 정체를 알 것도 같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챙!
채앵!
카미유와 암살자들이 서로 뒤엉켜 한바탕 접전을 펼쳤다.
번쩍!
챙! 채앵!
촤라락!
카미유가 광속검을 전개했지만, 암살자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작은 생채기조차 하나 나지 않았을 정도로, 암살자들은 건재하기만 했다.
그들이 숫자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애초에 실력 자체가 카미유를 압도할 정도로 강했기에, 광속검의 그 엄청난 속도 앞에서도 완벽한 방어가 가능했던 거였다.
“저, 전하!”
카미유가 다급히 소리쳤다.
“어서 피하십시오! 어서!”
카미유 입장에서는 다급하게 소리칠 만했다.
카미유도 느낀 것이다.
저 세 명의 암살자들이 얼마나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는 검을 뽑아 들지 않았다.
우르르르르르르!
그러는 동안 근위기사단과 마검사들 역시 떼 지어 어전으로 몰려들어 암살자들을 포위했다.
“저기요.”
오토가 암살자들을 향해 말했다.
“형님들, 그만하세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그냥 와서 말씀하시면 되잖습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오실 것까진 없는데요.”
그런 오토의 말에 암살자들이 흠칫! 놀랐다.
“혀, 형님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린 형님들이 아니다!”
“형님들 같은 소리!”
그게 더 수상해 보여…….
“휴우.”
오토가 그런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 누가 헤르메스란 거냐!”
“누가 보면 우리가 잘츠부르크들인 줄 알겠군!”
“나는 케레스가 아니다!”
제 발 저린 암살자들이 극구 부인하며 자신들의 정체를 실토했다.
‘이러니까 남들이 잘츠부르크 가문을 이용해 먹고 싶어서 안달인 거잖아…….’
오토는 암살자들, 아니 정확히는 엘리제의 오빠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히, 전 대륙에서 여동생의 약혼자를 납치하겠답시고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올 사람들은 잘츠부르크 가문 사람들밖에 없었다.
“형님들. 그만하시고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안 그래도 긴히 드릴 말씀들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 납치해서 두들겨 패 봐야 소용없습니다만.”
그러자 엘리제의 오빠들이 슬그머니 검을 내려놓더니, 복면을 벗었다.
“어, 어떻게 알았나?”
“다 형님 때문이잖습니까! 그렇게 티를 내시니까 걸리는 거 아닙니까!”
“정말이지 엄청난 통찰력이로군. 우리 정체를 알아내다니.”
오토는 엘리제의 오빠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
딱 봐도 엘리제의 오빠들일 수밖에 없는데, 그걸 또 걸렸다고 감탄하면서 서로 남탓이나 해 댈 줄이야.
‘하여간 바보 형제들이라니까.’
오토는 헤르메스, 아레스, 그리고 케레스가 왜 어려서부터 엘리제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알 것 같았다.
* * *
자리를 옮긴 후.
“매제! 어떻게 자네가 그럴 수가 있나!”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그래?”
“그렇게 안 봤는데!”
엘리제의 오빠들이 오토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십자포화를 퍼부어댔다.
사실 그건 애원에 가까웠다.
“자네가 안 데려가면 우리 엘리제는 누가 데려가나!”
“이런 빌어먹을! 엘리제가 화나면 그땐 자네가 책임질 건가? 자네 하나 죽는 걸로 안 끝나! 우리 다 죽어! 다 죽는다고!”
“제발 엘리제랑 결혼하면 안 되겠나? 사람 살리는 셈치고 제발 좀!”
헤르메스, 아레스, 그리고 케레스가 필사적으로 오토에게 매달렸다.
대련이라는 명목하에 엘리제에게 두들겨 맞던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절박함마저 엿보일 지경이었다.
‘테르테미안이랑 파라곤이 그세 바람을 불어넣었나 보네.’
오토는 엘리제의 오빠들의 반응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랑 로웨나랑 위험해 보인다고 빨리 결혼시켜야 한다고 부추겼겠지.’
엘리제의 오빠들은 그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쫓아온 것일 테고.
일단 오토를 납치한 다음 두들겨 패면서 협박이라도 할 심산이었던 게 분명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오토가 엘리제의 오빠들에게 말했다.
“우선 제 말씀부터 들어 보시죠. 딱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로웨나 대공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그러자 엘리제의 오빠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거짓말하지 말게!”
“예로부터 자네처럼 기생오라비처럼 잘생긴 놈 말은 믿는 게 아니라고 했지!”
“그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나!”
엘리제의 오빠들은 오토의 말을 쉽사리 신뢰하지 못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오토는 대륙제일미남이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뛰어난 미남이라서, 여성편력이 심하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과거 방탕하고 문란한 사생활을 즐긴 전적(?)도 있었기에 불신을 사기도 쉬웠고.
물론 지금 오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맹세코 로웨나 대공과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습니다. 로웨나 대공이 저를 일방적으로 마음에 담아 두고 접근해 오고 있을 뿐입니다.”
오토가 말했다.
“이런 젠장! 이래서 기생오라비 같은 놈들은 안 돼!”
“하여간 잘생긴 놈들은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군.”
“난 잘생긴 놈들이 싫어.”
아니이…….
코앞에서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고…….
다 듣고 있잖아…….
‘환장하겠네.’
오토는 울화통이 터지는 걸 꾹 참으며, 바보 형제들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오토와 로웨나의 사이가 부적절해 보인다는 얘기가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의 수작이라는 것을.
“그게 정말인가?”
“으음.”
“황족들이란 정말 골치 아픈 족속들이지.”
엘리제의 오빠들은 오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로웨나 대공은 저한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애정공세를 펼칠 겁니다. 로웨나 대공의 최종 목표는 황위에 올라 결혼하는 것이고, 엘리제를 밀어내고 정실부인의 자리를 꿰차는 거죠.”
오토가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엘리제의 오빠들이 또다시 길길이 날뛰었다.
“아니! 감히 그런 불충한 생각을!”
“괘씸하기 이를 데 없군! 감히 반역을 저지르려 하다니!”
“역모를 꾸미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감히 내 여동생의 자리까지 넘봐?”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카미유가 오토의 귓가에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성난 원숭이들처럼 보이는데 제 눈이 잘못된 겁니까?”
“너무 적절한 비유라 반박을 못하겠네.”
오토는 바보형제들이 잠시 날뛰게 놔뒀다가, 조금 잠잠해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로웨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적어도 결혼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계산기를 잘 두드리는 사람이죠.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정략결혼이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제의 오빠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세히 좀 설명해 보게.”
“말해 주면 경청하도록 하겠네.”
“빨리, 빨리.”
이에 오토가 말했다.
“로웨나는 잘츠부르크 가문과 껄끄러운 사이가 되고 싶어 하진 않을 겁니다. 테르테미안과 파라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그렇다고 저를 포기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래서 로웨나는…….”
오토의 시선이 바보삼형제 중 막내, 케레스에게로 머물렀다.
“황제 폐하의 중매를 통해 케레스 형님께 청혼할 겁니다.”
“나, 나한테?!”
케레스가 펄쩍 뛰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잘츠부르크 가문과 껄끄러운 사이가 되는 걸 막을 수 있고, 저와의 관계에 대한 의심도 손쉽게 피해 갈 수 있겠죠.”
“하지만 나는…….”
“압니다.”
오토가 희게 웃으며 케레스에게 말했다.
“지금 만나는 분이 계시다는 거.”
“그, 그걸 어떻게!!!”
케레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지금 그가 어떠한 여인과 연애 중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었으니까.
또한…….
‘알려져서도 안 되겠지.’
오토는 케레스의 연애 사실이 어째서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는지 역시 너무나도 잘 알았다.
왜냐하면…….
‘야만부족 여인과 만나고 있으니까.’
엘리제의 막내오빠인 케레스는, 사실 북부 장벽 너머에 사는 야만부족 여인과 남몰래 금단의 사랑을 키워 오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 * *
케레스와 야만부족 여인 쿠사키나의 로맨스는 게임 영지 전쟁 내에서도 꽤나 슬픈 로맨스로 유명했다.
북부대공의 손자 케레스.
그리고 야만부족 족장의 딸 쿠사키나.
놀랍게도, 이 둘은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나 눈이 맞았고 비밀리에 금단의 사랑을 키워 나간다.
그러나 북부제국의 남하를 계기로, 두 사람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운명이었다.
물론 케레스와 쿠사키나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건 아니었다.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북부제국의 남하와 함께 잘츠부르크 가문은 전멸하게 될 테니까.
엘리제 역시도.
“너 진짜 연애하는 거냐?”
“도대체 누구랑?”
헤르메스와 아레스가 케레스에게 물었다.
하지만 케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케레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오토에게 물었다.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겠지.’
오토는 그런 케레스의 심정을 이해했다.
어떻게 보면, 케레스는 적과 내통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라드 제국군에게 있어 철천지원수인 야만부족의 공주와 사랑을 나누고 있으니,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케레스나 쿠사키나나 둘 다 위험했다.
북부대공조차 케레스를 용서하지 않을 테고.
“이 자리에서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케레스 형님의 사생활. 비밀은 지켜드릴 겁니다.”
“고, 고맙다.”
케레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조심하고, 숨긴다고 숨겼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인물에게 연애 사실을 들켰으니 당황할 수밖에.
“뭔데? 누구랑 만나는데?”
“야! 말 좀 해봐! 뭔 소리야?”
아무것도 모르는 헤르메스와 아레스가 케레스를 닦달할 무렵.
콰앙!
와장창!
엘리제가 문을 산산조각으로 때려 부수며 ‘강림’했다.
“히, 히익?!”
“헉!”
“에, 엘리제?!”
엘리제를 발견한 바보삼형제는 무슨 시간이 정지한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가, 이내 곧 도주하기로 마음먹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동작그만.”
엘리제가 단 한 마디로 바보삼형제의 도주를 원천봉쇄했다.
“전선이 급한 상황에. 다들 어디 가셨나 했더니. 여기들 계셨던 겁니까.”
엘리제가 무척이나 냉혹하고, 엄격하며, 또한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아니라!”
“일단 오빠들 얘기부터 좀 들어보고….”
“우리가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바보삼형제가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그때.
“좋은 말로 할 때 따라들 나오십시오.”
엘리제가 그 한 마디를 남기곤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한 마디를 더했다.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바보삼형제가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는 엘리제를 뒤따랐다.
마치 체념한 상태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