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8화
오토는 이오타 왕국으로 복귀하자마자 서류 더미에 파묻히고 말았다.
현재 이오타 왕국은 기존 에르제베트 왕국의 영토를 흡수해 나가는 중이라 업무가 엄청나게 많았다.
또한, 아라드 제국의 황제가 에르제베트 왕국의 수도와 지믈라 평야를 하사한 덕분에 일감이 엄청나게 늘어 있었다.
덕분에 오토는 돌아오자마자 와지르 대공에 의해 감금당해 버렸고, 쇠창살이 설치된 집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만 해야 했다.
“……이게 죄수지 왕이냐고.”
오토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벌써 일주일째 갇혀 있는 게 말이 돼?”
“거 좀 그만 투덜거리십시오.”
카미유가 오토를 향해 와락 인상을 구겼다.
“도대체 지금 몇 번째 투덜거리시는 겁니까?”
“그럼 투덜거리지 안 투덜거려?”
“저는 무슨 죄입니까?”
카미유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씹어내듯 말했다.
“전하 덕분에 저도 세트로 묶여서 일주일째 퇴근 못하고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카미유는 오토의 업무를 보조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함께 감금당하고 있었다.
“그게 왜 내 잘못이야?”
“예?”
“억울하면 다른 왕 모시던가~”
“…….”
“그러게 충성 맹세는 신중했어야지~~”
부들부들…!!!
뚝!
깃펜이 카미유의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왜? 옛날처럼 검이라도 휘두르지?”
“슬슬 근질거리시나 봅니다.”
“어어? 치게? 왕을 쳐?”
“신경 긁지 마십시오. 일주일째 집에 못 간 것도 못 간 건데, 못 씻어서 지금 매우 괴롭습니다.”
오토와 카미유는 단순히 집무실 밖으로 도망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샤워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양치와 세수라도 할 수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면 천만다행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저, 유부남입니다만.”
“그게 왜?”
“유부남이 일주일째 집에 못 들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보통 유부남들은 그러잖아. 아내가 애들 데리고 친정에라도 가면 막 신나서 공중제비도 돌고 그러던데?”
“저는 아닙니다.”
카미유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결혼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에이.”
“전 행복합니다.”
“뻥치시네.”
“정말 행복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카미유의 표정은 정말이지 오묘해서, 진짜 행복하다는 건지 아니면 불행하다는 건지 도저히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유부남인데 일주일째 집에 못 들어가는 건 조금 잔인하긴……’
그때.
“카미유군.”
와지르 대공이 나타나 카미유를 불렀다.
“예, 대공 전하.”
“자네 아주 운이 좋구먼?”
“예?”
카미유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집에도 못 가고.
씻지도 못 하고.
일주일째 갇혀 있는 사람한테 운이 좋다니?
놀리는 건지.
아니면 진짜 운이 좋다는 건지.
“축하하네, 카미유군. 오늘부로 석방일세.”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저도 석방입니까? 헤헤헤.”
“미안하지만 네놈은 아니다.”
“왜죠?”
오토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왜 카미유 경은 석방이고 저는 계속 갇혀 있어야 하죠? 원래 기사가 왕 대신 감방 가는 거 아닌가요?”
오토가 카미유가 주먹을 불끈 쥐든 말든 성난 치와와처럼 와지르 대공에게 따지고 들었다.
“억울하면 네놈도 장가가서 아버지가 되려무나.”
“예?”
“임신한 아내를 둔 남자를 계속 가둬 둘 순 없지 않으냐.”
“이, 임신?!”
오토가 고개를 홱! 돌려 카미유를 바라보았다.
“임시이이이이이인?!”
놀란 오토뿐만이 아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미유가 쇠창살을 붙들고 와지르 대공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
“임신이라 했네.”
“……!”
“축하하네, 카미유 군. 이제 곧 아버지가 되겠구먼. 끌끌끌.”
와지르 대공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아!”
카미유의 얼굴에 도저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떠올랐다.
“어서 나오게, 카미유 군.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자넬 기다린다네.”
“정말 감사합니다.”
카미유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홀린 듯 집무실을 벗어났다.
“카, 카미유가…… 아빠가 된다고?”
오토는 망연자실해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나도 이제 삼촌이 되는 거네…….”
물론 카미유가 결혼해서 아버지가 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므로,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단지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을 뿐.
“그럼, 고생하십시오.”
카미유가 오토를 향해 작별 인사를 고했다.
“저는 사정이 생겨서 그만.”
“사정이 생긴 게 아니라 하셨겠지.”
“예?”
“빨리 가 봐.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잔뜩 심술이 난 오토가 쿵쾅쿵쾅! 성난 발걸음으로 다시 책으로 가 앉았다.
“그럼, 전 이만.”
카미유가 등을 돌리던 순간.
“카미유.”
“예?”
“축하해. 아빠가 된 거.”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진심 어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카미유는 좋은 아버지가 될 거야.”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좋은 삼촌이 될 수 있도록 할게.”
“예, 전하.”
카미유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계속 ㅈ뺑이 치십시오.”
“뭐?!”
“가 보겠습니다.”
카미유가 도망치듯 감옥, 아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부들부들…!!!
카미유에게 일격을 얻어맞은 오토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두고 보자…… 두고 봐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다음 날.
“……그냥 죽을까.”
오토는 눈을 뜨자마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보고 삶의 의지를 잃고 말았다.
분명히 새벽 늦게까지 모든 서류를 처리했던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났더니 무슨 마법처럼 서류들이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증식하는 거 아냐?’
오죽했으면 서류라는 게 사실은 외계생명체고, 잠이 든 사이에 스스로 세포분열을 일으켜 증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미친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텔레포트라도 써서 도망칠까? 아냐. 이번에도 도망치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오토는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꾹 참아내며 이를 악물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그날 오후.
“끌끌! 뺀질아! 그간 잘 있었느냐?”
카이로스가 특유의 그 능글능글 건들건들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말했다.
“……뭐냐.”
오토가 이 새낀 뭐야? 하는 표정으로 카이로스를 흘겨보았다.
“웬일이냐? 네가 날 찾아오고?”
“어허! 이 뺀질이 놈이? 일개 왕 주제에 어딜 짐에게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끌끌끌!”
“시비 걸지 말고 가라.”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경고했다.
“나 지금 너랑 놀아 줄 기분 아니다.”
“줄 게 있어서 온 거다, 뺀질아.”
“줄 게 있다고? 나한테?”
“그렇다!”
“뭔데?”
“봐라!”
카이로스가 쇠창살 너머로 바나나를 내밀었다.
“쇠창살 안에 갇혀 있는 걸 보니 아무리 봐도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가 생각나지 뭐냐? 으헤헤헤헤헤!”
“이이… 이이이……!!!”
졸지에 원숭이 취급을 당한 오토가 분노를 터뜨리려던 그때.
“뺀질아,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말이다.”
“뭐하면 처하지 마세요.”
“짐이 곧 아빠가 될 예정이다! 껄껄껄!”
“……뭐라고?”
“이 위대한 카이로스가 곧 아버지가 된다는 말이다! 크핫핫핫핫!”
“아빠가… 된다고??? 네가???”
“그렇다!”
“맙소사.”
오토가 이마를 탁! 치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저 얼간이가 아빠가 된다고?’
아무리 상상을 해 봐도 아빠가 된 카이로스의 모습이 도저히 떠오르질 않았다.
‘애 감기라도 걸리면 소주에 고춧가루나 안 타 먹이면 다행인 인간이? 애는 뭔 죄야? 아닌가?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자식 바보가 될지도?’
오토의 상상 속 딸바보가 된 카이로스와 불쌍한(?) 딸의 모습이 그러졌다.
‘으헤헤헤! 우리 딸! 한번 안아 보자! 으헤헤헤헤!’
‘흐에엥! 아빠 술 냄새나! 싫어! 수염 따가워! 흐에에에엥! 엄마아아아아아!’
절레절레-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한들 그런 장면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얼간이 같은 상상밖에 못 시키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가?’
오토가 그런 생각을 할 때.
툭.
카이로스가 쇠창살 너머로 바나나를 떨어뜨리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알려 줬으니 선물은 미리 빵빵하게 준비해 놓도록! 짐은 이만!”
“선물 같은 소리 하네.”
“으헤헤헤!”
“야.”
오토가 카이로스를 불러 세웠다.
“그래도 축하한다?”
그러자 카이로스가 뒤를 슥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뺀질아.”
* * *
다시 1주일이 지나고.
“죽여 줘… 제발… 그냥 죽여 줘…….”
무려 2주 동안이나 씻지도 못한 채 집무실에 갇혀 있던 오토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문제는 서류의 양이 많아졌으면 많아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단기간에 영토를 확장한 덕분에 행정업무가 미친 듯이 쏟아져서 도저히 사람이 감당할 만한 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토는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 행정업무를 등한시한다면 이오타 왕국의 내정 곳곳에 구멍이 뚫릴 테고, 그러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토는 누가 고용한 공무원이나 월급쟁이가 아니라 이오타 왕국의 국왕이었다.
제대로 된 국왕이라면 야근과 과로를 달고 살기 마련.
아무리 와지르 대공이 국정업무 전반을 돌본다고 한들, 국왕인 오토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영역들이 있었다.
어떻게 떠넘기는 게 불가능한, 왕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였던 것이다.
“이 의리 없는 새끼들… 두고 보자. 내가 계급이 깡패라는 걸 확실히 보여 줄 테니까.”
오토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카미유, 카심에게 부득 이를 갈며 악귀처럼 서류를 해치워댔다.
그러던 중.
“일은 잘하고 있느냐?”
와지르 대공이 집무실을 찾았다.
“……눼에.”
오토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느냐? 허구한 날 밖으로 싸돌아다니니 일이 쌓일 수밖에.”
“제가 몸이 두 개도 아니고…… 잠깐.”
오토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몸이 여러 개면 되는 거잖아?!’
오토는 어릿광대의 재간 권능을 사용해 분신들을 불러내 일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오토가 만들어 내는 분신들은 허깨비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오토와 똑같이 보고 듣고 말하는 존재.
마나가 유지되는 한 행정업무 정도는 충분히 맡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왜 여태 그 생각을 못했지?’
오토는 즉시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불발에 그치고야 말았다.
“면회다, 이 녀석아.”
“네? 면회요?”
오토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덜컥.
집무실 문이 열리며 엘리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엘리제를 본 오토의 얼굴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본 사람처럼 희망에 차올랐다.
또르르르…….
오토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엘리제야아아아아아아아! 컥!”
엘리제를 향해 달려가던 오토가 쇠창살에 가로막혀 머리를 쿵! 찧었다.
“쯧쯧.”
와지르 대공이 쇠창살을 열어 주고.
“엘리제야아아아아아!”
오토가 엘리제를 향해 와락 안겼다.
“흑흑! 흑흑흑! 보고 싶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흑흑! 흑흑흑!”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엘리제가 얼떨떨해하면서도 오토를 꼭 안아 주었다.
“괜찮다. 이제 정말 다 괜찮다. 안심해도 좋다.”
“흑흑, 흑흑흑.”
“진정해라. 내가 왔다.”
토닥토닥-
엘리제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오토를 토닥여주고 달래 주었다.
“근데 말이다…….”
엘리제가 오토에게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건가? 냄새가…….”
엘리제는 차마 오토에게 썩은 내가 난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인상을 살짝 찌푸림으로써 불쾌함을 표시했다.
“흑흑! 흑흑흑! 훌쩍훌쩍! 흐앵! 흐애애애애앵!”
오토는 너무 서러워서 대답조차 못하고 엉엉 울었다.
“……가자.”
엘리제가 오토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안아 들었다.
“씻겨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