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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13화 (314/401)

제313화

“지금부터 저는.”

오토가 테르테미안에게 말했다.

“파라곤 대공의 손을 잡아 주는 척을 하겠습니다. 물론 로웨나 대공과도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입니다.”

“음!”

“먼저 적당한 시기가 오면 로웨나 대공부터 제거할 것입니다. 그때, 전하와 저, 그리고 파라곤 대공. 이렇게 셋이 힘을 합쳐 로웨나 대공을 제거합니다.”

“그게 가능하겠나?”

“어차피 파라곤 대공은 제가 테르테미안 전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테르테미안 전하가 속고 있다며 속으로 비웃겠지요.”

“허어!”

오토의 말을 들은 테르테미안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그렇게 되겠나? 하지만 내가 그대를 어떻게 믿겠는가? 만약 그대가 파라곤과 손잡고 나를 배신하는 거라면…….”

“전하께서 저를 믿지 못하신다면, 저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으음.”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금의 저는 전하와 파라곤 대공 중 마음에 드는 분을 선택하면 그만인 입장입니다.”

“크, 크흠!”

“선택은 오로지 전하의 몫입니다.”

오토의 말에 테르테미안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오토를 무작정 믿고 함께하자니 파라곤과 손잡고 뒤통수를 칠까 봐 두렵고.

그렇다고 오토와 손잡지 않는다면, 파라곤에게 밀려 황위 경쟁에서 굴러떨어질 테고.

세력 구도 자체가 오토에게 목숨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오늘의 선택이 내 운명을 좌지우지할 터인데.’

그야말로 전전긍긍.

테르테미안은 깊은 고뇌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상대는 신흥강국 이오타, 검의 명가 잘츠부르크 가문, 그리고 로웨나와 연합해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상태.

심지어 로웨나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인지라,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냉정히 말해서, 지금 테르테미안의 목숨은 오토의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걸려들었네.’

오토는 테르테미안이 고뇌하는 것을 보고, 그가 미끼를 물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민되겠지. 걱정도 될 테고. 그렇다고 답은 안 나와. 나를 믿고 가는 수밖에는 없으니까. 그게 유일한 살길이니까. 후후후.’

오토는 테르테미안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좋소.”

테르테미안이 결단을 내렸다는 듯 오토에게 말했다.

“그대와 손을 잡겠소, 오토 국왕.”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그대에게 내 모든 것을 걸지.”

“저 역시 전하께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테르테미안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사악한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 * *

파라곤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테르테미안과 빼다 박은 듯 똑같은 행동패턴을 보이며 오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콘라드와 지안카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오토를 돌아보았다.

“이, 이런 교활한 녀석.”

“허어! 어찌 그리도 간사할 수 있단 말인가!”

세 치 혀로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을 낚아 버린 오토의 모습이란, 정말이지 간사하고 비열해 보였다.

상대방을 수렁으로 끌어들인 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고, 스스로 목숨 줄을 내어놓도록 만드는 그 모략이 가히 일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오토의 장기이기도 했다.

오토는 언제나 판을 짜 놓고, 적을 깊숙이 끌어들인 뒤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하게끔 철저하게 쥐어짜 내곤 했다.

여태 수없이 많은 적들이 그런 식으로 오토에게 당했고,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오토를 위기에 몰아넣은 적도 없다시피 할 지경이었다.

이쯤 되면 모략 하나만큼은 가히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것이다.

“형님.”

지안카를로가 완전히 질려 버렸다는 듯 콘라드를 돌아보았다.

“어찌 저런 간사하고 교활한 손주를 두셨소?”

“크, 크흠!”

콘라드는 그런 지안카를로의 물음에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콘라드가 보기에도 오토의 모략이 너무나도 교활하고 비열해서, 어떻게 변호해 줄 말이 떠오르질 않았던 것이다.

“혹시 쿤타치 가문의 혈통에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

“뭬야!”

콘라드가 발끈했다.

“우리 쿤타치 가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네의 그 잘난 잘츠부르크 가문보다 훨씬 더 유서 깊은 명문가이거늘! 우리 오토가 조금 교활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의를 위해서가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저 정도면 사람인지 아니면 악마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요! 어찌 저리 더럽고 비열하고 교활하고 간사할 수가 있소!”

“더럽고 비열하고 교활하고 간사한 게 뭐가 어때서! 행동이 중요한가? 의도가 중요하지!”

콘라드가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발언으로 오토를 변호(?)했다.

“헤헤.”

그 와중에 오토가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할아버님들이 칭찬해 주고 계시잖아.”

“저거, 칭찬 아닙니다만.”

카미유가 눈을 질끈 감으며 오토에게 진실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오토는 카미유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싱글벙글하기만 했다.

오토의 귀에는 더럽고, 비열하고, 교활하고, 간사하다는 말이 비난이 아닌 칭찬으로 들렸던 것이다.

* * *

“할아버님.”

오토가 지안카를로에게 말했다.

“직접 보고 들으셨으니 이제 아시겠지요. 로웨나뿐만 아니라 테르테미안과 파라곤 역시도 반란을 꿈꾸고 있습니다.”

“으음.”

“이런 상황에서 북부제국이 침공해오기 전에 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그땐 대륙은 끝장입니다. 수년 동안 수천만 명의 피가 흐를 것이고, 전쟁의 소용돌이가 모든 걸 집어삼킬 겁니다.”

“이해한다.”

지안카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들이 반란을 꿈꾸고 있고, 그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로군.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 잘츠부르크 가문 역시 더는 중립을 지키기란 힘들어 보여.”

“일단 중립을 지켜주시고, 북부제국의 침공에 대비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내 그리하겠다.”

지안카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만부족들과의 휴전협정도 해 주셔야 합니다.”

“크흠…….”

“잘 아시다시피 장벽 너머 야만부족들은 강합니다. 그들은 우리 대륙인과는 유전자부터가 다른 족속들이라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북부 장벽 너머에 사는 야만인들은 평범한 결코 평범한 인간들이 아니었다.

‘올리브 시녀장님만 봐도 알 수 있지.’

야만부족 출신인 올리브는 그야말로 괴력의 소유자.

그녀는 어지간한 강자들은 맨손으로 접어 버리는 괴물 같은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과거 에르제베트 왕국이 기사들을 동원해 와지르 대공을 제거하려 했을 때, 올리브가 그들을 어떻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생각해 봐도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장벽 너머 야만부족들은 대체로 올리브만큼이나 강력한 괴력을 지닌 채 태어난, 타고난 강자들이자 포식자들이었다.

심지어 성장 속도도 어마어마하게 빨라서, 14살 무렵이면 육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벽 너머 야만인들은 육체의 에너지 효율이 엄청나게 좋아서, 같은 양의 식량을 먹더라도 대륙인들보다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출산율까지 높아서, 그 척박한 장벽 너머에서도 많은 인구수를 유지하고 있기도 했다.

괜히 카이로스가 북부장벽을 쌓고, 야만인들의 침공으로부터 대륙을 보호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이 엘리제가 북부 장벽 너머에서 활동해야 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했고.

“야만인 놈들의 강함이야 인정하는 바이지만서도…… 그들과 동맹을 맺고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한다 한들 그 이후엔 어떻게 되겠느냐?”

“그들을 대륙으로 이주시키면 됩니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지안카를로가 버럭 소리쳤다.

“야만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인구수가 불어 버릴뿐더러! 그들이 가진 타고난 강함은 대륙에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야! 야만인들이 이주하는 순간 대륙은 그들의 발 아래에…….”

“그렇지 않습니다.”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야만인들의 타고난 강함은 그들의 혈통 때문이 아니니까요.”

“음?”

“그들에게는 그들도 모르는 비밀이 있습니다.”

“어떤……?”

“그들의 영토 안에 자리한 어떠한 성물이 그들에게 그러한 힘을 부여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예.”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되면, 북부제국의 침공을 막아내고 나면.”

오토가 말했다.

“그 성물을 파괴할 생각입니다. 그럼 그들의 타고난 강함은 약해질 테고, 더는 제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그들을 이주시키는 것 또한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

“다만.”

오토가 말했다.

“함께 힘을 합쳐 북부제국의 침공을 막아내고 나면, 그들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해서는 안 됩니다.”

“……!”

“비열한 배신. 그리고 불필요한 학살.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야만인들과 우리 대륙인들 사이에 흐르던 피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렇게 말하는 오토의 표정은 평소와는 다르게 더없이 진지했고, 또한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오토가 목표가 북부제국의 침공과 세계대전을 저지해 이 대륙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걸 증명해 주는 표정이었다.

애당초 오토는 권력에 별반 관심이 없을뿐더러, 누군가를 짓밟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이 세계에 빙의된 이후 지금까지 쭉 생존만을 추구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였다.

그저 평화롭게, 엘리제와 더불어 가정을 꾸리고 소소하고 나태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게 오토의 꿈이었다.

누구에게도 위협받지 않고, 누굴 죽일 필요도 없으며, 딱히 근심·걱정 없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어째서 빙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알아내는 것뿐이었다.

본래 있던 세상에 계실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했고.

“으음.”

지안카를로가 오토의 말을 듣더니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네 녀석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의외로구나.”

“예……?”

“혹시 이것도 권모술수 같은 것이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하니 한 집안 사람인 우리에게도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네 녀석이라면 왠지 그러고도 남을 것 같구나.”

“…….”

“혹시 무슨 다른 계획이 있는 것이냐? 설마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륙을 통째로 꿀꺽하려고?”

“예?!”

오토는 지안카를로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자 어이가 없었다.

“제가 왜 황제의 자리를 탐을 내겠습니까?”

“왠지 네 녀석이라면 그럴 것 같은데?”

그러자 콘라드가 옆에서 거들었다.

“크핫핫핫핫! 역시 내 손주로다! 그저 강대국의 왕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게야! 대륙을 통째로 집어삼켜서 통일왕조의 황제가 되려는 하다니! 역시 우리 쿤타치 가문의 핏줄은 다르구나! 달라!”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지안카를로가 콘라드의 의견에 동의를 표시했다.

“암! 그렇고말고! 우리 오토가 어디 보통 인물인가? 이 콘라드의 손주 녀석인데! 내 손주라면 황제의 자리에 오를 만하지! 크핫핫핫핫핫!”

“크흠! 괘씸한지고! 사내대장부가 되어 가지고 야망이 있으면 있다 말할 것이지! 차마 내 앞에서는 황위를 찬탈하겠다는 말은 못하겠다는 것이냐? 이놈! 황제 폐하께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신데!”

지안카를로가 오토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황위를 찬탈하려 했다가는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 지안카를로와 잘츠부르크 가문이 충신 중의 충신이라는 걸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오토는 억울했다.

“진짜 아닙니다! 그런 거에 눈곱만큼도 관심 없습니다! 정말로요!”

하지만 콘라드와 지안카를로는 오토의 말을 전혀 믿어 주지 않았다.

“……자업자득이란 게 이런 겁니다.”

카미유가 오토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니이… 정말 그런 거 관심 없다니까요…….”

오토는 울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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