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15화 (316/401)

제315화

노르딕 산은 야만부족들의 영토 중심부에 자리해 있어서, 침투가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까막이를 타고 이동한다면 특정 지점까지는 침투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그다음.

노르딕 산 주변은 기온이 매우 낮은 데다가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기 일쑤라, 제아무리 까막이라도 근처를 비행하는 건 무리였다.

와이번은 추위에 약한 생명체이기도 했고.

때문에, 노르딕 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십 킬로미터 정도는 육로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르딕 산 주변에는 성지인 산을 지키는 야만부족이 있어서, 근처를 얼쩡거렸다간 그들에게 사냥당하기 십상이었다.

아무리 오토일지라도 노르딕 산으로 가겠다는 건 사실상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노르딕 산으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지금?”

카미유가 제 귀를 의심하며 오토에게 물었다.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전하라지만 이번만큼은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노르딕 산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할걸?”

“예?”

“정상까지 가야 하는데, 거기 도착하려면 온갖 몬스터들이랑 파수꾼들이 득실거리거든.”

“…….”

“아마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10배는 더 위험할 거야.”

“전하.”

카미유가 조용한 목소리로 오토를 달랬다.

“요즘 너무 과로하신 것 압니다.”

“응? 갑자기?”

“지나친 과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

“자살하려는 거 아니야!!!”

오토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위험한 거 알아! 안다고! 근데 어떡해! 가야 하는걸!”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없어.”

오토가 딱 잘라 말했다.

“이 방법만이 유일해. 노르딕 산 정상으로 가서 성물을 얻어야 동맹을 완성시킬 수 있어.”

“……저 곧 아빠 될 사람입니다만.”

“나도 1년 있다 유부남 될 사람이거든?”

“…….”

“싫으면 빠지던가!”

오토가 카미유를 째려보며 입을 삐죽였다.

‘사실 놓고 가고 싶긴 하지.’

실제로, 오토는 카미유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토는 악덕 상사가 따로 없었다.

아내가 임신 중인 부하 직원을 벌써 며칠째 데리고 출장 온 거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사지로 끌고 들어가려는 격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기사와 군인과 같은 무인(武人)들의 숙명일 테지만.

‘그래서 기사들이 이혼을 많이 당하는 건가?’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이번 작전, 빠질래?”

오토가 카미유에게 물었다.

“예?”

“빠지고 싶으면 빠져, 아니 그냥 빠져.”

“싫습니다.”

카미유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왜 작전에 빠집니까?”

“죽기 싫다며?”

“그냥 하는 소리였습니다만.”

“아냐. 정말 빠져도 돼. 그냥 빠져. 형수님 곁에 있어. 미안해서 그래.”

“싫습니다.”

카미유가 고집을 부렸다.

“저는 기사입니다.”

“그 잘난 기사 노릇 한답시고 여러 번 난감했으면서?”

“어쩌겠습니까. 이게 기사의 숙명인데.”

카미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출산 때가 오면 휴가를 신청하려고 하긴 했었습니다. 아직 몇 달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적당한 시기가 오면 그땐 정말로 휴가 가는 거다. 알겠지?”

“예, 전하.”

카미유가 미소를 지었다.

* * *

오토가 노르딕 산으로 간다고 했을 때, 엘리제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제정신인가?”

엘리제가 제 귀를 의심하며 오토에게 말했다.

“거긴 가면 죽을 수 있다. 아니,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

“알아.”

“그런데도 가겠다는 건가?”

“가야 해.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그럼 한 달 정도만 기다려라.”

엘리제가 말했다.

“같이 가 주겠다.”

엘리제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노르딕 산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엘리제는 강함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가진 인물이었고, 한 치의 타협조차 없었다.

오토를 마냥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여기지도 않았고.

왜?

그게 오토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어. 지금 가야 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오토의 마음은 매우 급했다.

‘언제 북부제국의 침공이 앞당겨질지 모른다. 당장 키이우 국왕의 서거도 예전보다 빨랐어.’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오토는 1분 1초라도 빨리 노르딕 산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럼 지금 같이 가 주겠다.”

엘리제가 재차 오토에게 말했다.

“아니.”

오토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엘리제는 여기 남아서 할 일이 있어.”

“할 일?”

“곧 전투가 예정되어 있잖아. 그 전투에서 최대한 사상자를 적게 내도록 해줘. 야만부족들은 결국 우리와 손을 잡게 될 거야. 미래의 아군을 죽일 순 없잖아.”

“아……!”

“그리고 잘츠부르크 가문에서도 해 줘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 작전을 지휘해 줬으면 해.”

오토도 마음 같아선 엘리제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엘리제가 해 주어야 하는 역할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부득이하게 도움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믿어 줘. 작전, 성공해 보일 테니까.”

“너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걱정될 뿐이다.”

“알지, 알지.”

오토가 엘리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강해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잖아?”

“음?”

“이것도 수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해. 한계에 부딪히고, 극복하는 거.”

오토의 말은 진심이었다.

북부제국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지금도 한참 부족하기에, 더욱 강력한 무력을 손에 넣길 원한다면 끊임없이 한계에 부딪혀야 했다.

모략도 모략이지만, 때론 정직한 무력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정말…….”

이번에는 엘리제가 오토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자세다.”

걱정하다가도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설득하니 바로 수긍하고 칭찬하다니.

정말이지 엘리제다운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믿겠다. 반드시 강해져서 돌아와라. 죽지도 말고.”

“당연하지. 자기 두고 죽긴 왜 죽어.”

“…….”

“억울해서라도 절대 못 죽지.”

엘리제는 자기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이지 낯간지러우면서도 설레는, 귓가를 간질간질하게 하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 * *

오토는 노르딕 산으로 떠나기 전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우선 오토는 와이번을 보내 이오타 왕국에 있던 에고를 불러들였다.

“지금 시장에 풀린 마정석 최대한 긁어모아 주세요.”

“마정석 말씀이십니까요? 어디에 쓰려고 그러십니까요?”

“이유는 묻지 마시고. 난방용으로 쓰이는 마정석은 죄다 긁어서 여기로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요.”

“식량이나 방한용품도 싹 다 긁어모아 주시고요.”

“얼마나 필요하십니까요?”

“글쎄요.”

오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십만 명분 정도?”

“예에?”

“자금은 충분하잖아요?”

“물론 그렇습니다요.”

에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애닌 보함 상품이 잘 팔려서 자금 사정이 아주 넉넉합니다요. 쿄쿄쿄.”

“역시.”

교황의 치매를 치료한 것을 계기로, 다이애닌은 어마어마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그래서 지금 대륙인들은 너도나도 다이애닌의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치매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장기 할부 프로그램도 매우 잘 팔리고 있었고, 돈 많은 귀족들의 경우 망설임 없이 값을 지불하고 다이애닌을 사 갔다.

그 어떤 질병보다 고통스러운 데다가, 심지어 불치병이기까지 한 치매 치료제이니만큼 인기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에고는 쿤타치 가문의 상표를 내세운 제약회사를 차려서 채권까지 발행하고 있었다.

다이애닌을 주력 상품으로, 제약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한편 각종 포션들과 치료제들을 개발해 판매했던 것이다.

덕분에 이오타 왕국의 재정은 엄청나게 풍족했고, 오토가 필요로 하는 물자들을 충분히 갖출 여력이 있었다.

게다가 이오타 왕국은 칼리프 왕국으로부터 거의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마정석을 공급받고 있었기에, 난방용 마정석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엇으로 이득을 보려고 그러십니까요?”

에고가 오토에게 물었다.

“이득이요?”

“소인은 전하께서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준비하라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요. 쿄쿄쿄.”

에고가 웃으며 오토에게 기다린 귀를 쫑긋거렸다.

“소인에게만 알려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요?”

“역시 에고 님께는 못 당하겠네요. 하하하.”

오토가 너스레를 떨며 에고의 귓가에 속삭였다.

“장벽 너머 강철을 수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각종 몬스터들의 사체를 이용한 재료들도 있을 테고요.”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요?!”

에고가 펄쩍 뛰었다.

“장벽 너머 강철이라면……!”

에고의 두 눈이 마치 금화처럼 빛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장벽 너머에서 채굴되는 강철은 강력한 한기를 품고 있는 신비로운 금속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았다.

문제는 장벽 너머 강철을 수입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것.

철이 채굴되는 광산들이 모두 야만부족들의 영토 안에 있었기에, 어떻게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엄청난 이익이 나는 사업이 될 테니까, 한 두어 달만 기다려 주세요.”

“역시 전하이십니다요! 쿄쿄쿄!”

“에고 님도 눈치 백 단이시라니까? 쿄쿄쿄!”

오토와 에고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로군.”

카미유는 오토·엘리제 커플보다 어쩌면 오토·에고 커플의 궁합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돈과 사업 이야기를 나눌 때 오토와 에고의 모습이란 정말이지 천생연분 같아서, 영혼의 단짝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 * *

오토는 에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부탁하고, 잘츠부르크 가문의 가주이자 북부대공인 지안카를로에게는 휴전협정을 맺기에 앞서 취해야 할 군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걱정 말고 다녀오너라. 내 그리 할 터이니.”

지안카를로는 오토가 목숨을 걸고 노르딕 산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야만부족과의 휴전협정을 맺기로 결심했다.

진심은 통하는 법.

오토가 밑도 끝도 없이 목숨을 걸고 노르딕 산으로 갈 이유가 없었기에, 그 진정성을 봐서라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탁해.”

또한, 엘리제에게는 특별 임무를 주었다.

그것은 오직 엘리제만이 할 수 있는 임무였기에, 그 중요도가 높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반드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완수해내겠다.”

엘리제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너무나도 진심이라서, 오토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이럴 땐 정말이지 참군인이라니까?’

엘리제는 오랜 시간 총사령관으로서 아라드 제국군에 몸담아서 그런지, 때때로 군인다운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이제는 그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지는 오토였지만.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녀오겠습니다!”

오토는 카미유, 카심, 그리고 펭이와 함께 까막이를 타고 북부 장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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