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16화 (317/401)

제316화

“까악! 까아아악!”

북부 장벽을 넘어 노르딕 산을 향해 비행하던 중 까막이가 울부짖었다.

휘이이이이!

강한 바람과 함께 몰아치기 시작한 눈보라가 시야를 가렸다.

“전하, 아무래도 더 이상의 비행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귁! 귁귁귁!”

오토는 카심의 말을 듣고, 즉시 비행을 중단하고 까막이를 착륙(?)시켰다.

제아무리 와이번이라 할지라도 이 날씨에 계속 비행했다가는 사고가 나도 단단히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와이번은 추위에 그리 강한 생명체라 아니라서, 제아무리 까막이라도 계속 이곳에 있도록 할 순 없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해서 혹사를 시킬 순 없는 노릇.

계속 비행을 강행한다는 건 안전 문제를 떠나 동물학대에 가까운 행위이기도 했고.

“까막아. 돌아가 있어. 알겠지?”

“까악! 까악!”

“금방 다녀올게.”

“까아악!”

“걱정 말고.”

카심이 까막이를 돌려보냈다.

까막이는 못내 카심과 같이 있고 싶은 눈치였지만, 혹한의 추위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장벽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미친. 진짜 춥네.’

오토는 살갗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에 몸서리쳤다.

마나를 운용할 줄 아는 오토에게도 장벽 너머의 추위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바람이 그야말로 칼바람이라, 털옷 밖으로 드러난 얼굴 주변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부츠 안 발가락에서도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발가락을 잘라내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 정도였다.

‘이거, 가지고 가서 얼굴 주변에 꼭 발라라. 그리고 이것도 마셔라.’

오토는 엘리제가 챙겨준 것들이 생각나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고, 그 안에서 크림과 포션 하나를 꺼냈다.

“노출된 부위에 발라.”

오토가 장벽 너머에서만 자생하는 나무의 기름으로 만든 크림을 카미유와 카심에게 나눠 주었다.

슥, 스윽.

기름을 맨살이 노출된 부위에 바르자 찢어질 것만 같던 통증이 조금은 가셨다.

벌컥벌컥!

역시 장벽 너머에서 자생하는 식물인 폭발하는 열매의 즙으로 만든 포션을 마셨더니 추위가 가시며 온기가 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우웅!

마나를 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개 같은 환경이네, 여기.’

오토는 어째서 장벽 너머가 대륙에서 가장 위험하고 혹독한 환경이라 말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장벽 너머는 애초에 사람이 살라고 있는 땅이 아니었다.

그 강인한 야만부족들이 이곳 장벽 너머 땅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성물의 힘 덕분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수십만 명의 인구수를 유지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가자.”

오토 일행은 정비를 마치자마자 저 멀리 보이는 노르딕 산으로 향했다.

휘청!

삐끗!

장벽 너머는 걷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지형 자체가 평탄한 땅이 아니라, 온통 돌덩이로 이루어진 돌 지형이라 여차하면 발목이 꺾여 돌아가기 일쑤.

썰매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뚜벅뚜벅 이동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지형 때문이었던 것이다.

* * *

노르딕 산을 향해 가는 과정은 험난했고, 그 첫 번째 시련은 <칼날 숲>이란 곳이었다.

“조심해.”

오토가 일행에게 경고했다.

“여기선 스치기라도 하면…….”

“악!”

오토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카심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주르륵…….

카심의 오른쪽 팔뚝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마저도 이내 곧 얼음이 되어 딱딱하게 얼어붙었지만.

생각 없이 걷던 중 나뭇가지에 몸을 스쳤다가 그대로 베이고 말았던 거였다.

“이 나무들, 스치기만 해도 베이니까 조심해요. 목이 뎅겅 날아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하니까.”

“예?!”

“고대의 저주가 걸려 있는 숲이라서, 나뭇가지에만 스쳐도 죽을 수 있어요.”

“마, 맙소사.”

“그러니까 조심조심. 나뭇가지는 절대 근처에도 가지 마요. 베이는 건 그나마 나은데 찔리기라도 했다간 옴짝달싹못하게 되니까. 봐요.”

오토가 저 멀리 꽁꽁 얼어붙은 사슴의 시체를 가리켰다.

사슴은 툭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찔린 채 그대로 얼어 죽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나뭇가지에 찔려서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카심이 놀란 표정으로 오토를 돌아보았다.

“네.”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안 빠져서 죽는 거예요, 그거.”

“하하하…….”

“이 숲의 나무들은 절대 안 부러지니까, 일단 찔리면 누가 강제로 빼줄 때까지 못 움직여요. 상처 부위로 냉기가 파고들어서 몸 내부를 얼려버리기도 하고.”

그게 오토가 축지법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럴 때 어릿광대의 재간 권능 중 하나인 축지법을 사용한다면 빠른 이동이 가능하겠지만, 이곳에서 사용했다가는 죽기 딱 좋았다.

빠르게 이동하다가 어느 나뭇가지에 베이기라도 했다간, 정말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조, 조심하겠습니다.”

카심은 한번 크게 데인 후라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오토의 조언에 따라 조심히 이동했다.

‘문제는 산 중턱까지 올라간 다음이 더 위험하다는 거겠지.’

오토는 앞으로의 여정을 떠올리며 끔찍하다는 듯 진절머리를 쳤다.

노르딕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것 정도는 가진 지식으로 조심조심 가면 됐지만, 그다음부터가 진짜 무시무시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아직 장벽 너머의 혹독함은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 * *

오토가 장벽 너머에서 노르딕 산을 향해 가는 동안 잘츠부르크 가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잘츠부르크 가문의 가주이자 북부대공 지안카를로는 제국의 수도로 날아가 황제를 알현했다.

제아무리 북부대공이라 할지라도 야만부족들과의 휴전협정은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기에, 반드시 황제의 동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안카를로 대공! 오시었소! 하하하하하!”

황제는 지안카를로가 알현을 청하자마자 허겁지겁 달려왔다.

지안카를로는 지금 황제에게 있어 가장 신뢰가 가는 인물이었고,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지안카를로가 황제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북부대공께서 어쩐 일로 짐을 찾으셨습니까? 혹시 장벽 너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황제는 지안카를로가 미리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게 못내 불안한 모양이었다.

“예, 폐하. 당장 급한 일은 아니옵니다. 허나 폐하께 긴히 상의드릴 사안이 있어 이렇게 알현을 청했사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대공.”

“당분간은 장벽 너머의 원정을 중단하고, 야만부족들과 화친을 맺고자 합니다.”

“야, 야만부족들과 화친을 맺자는 말씀이시오?!”

황제는 지안카를로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발언이 튀어나오자 크게 당황했다.

장벽 너머 야만부족들은 아라드 제국뿐 아니라 이 대륙에 큰 위협이 되는 존재였고, 지난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소모전을 펼쳐온 철천지원수였다.

그런 야만부족들과 화친을 맺고자 한다니, 황제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시었소?”

“예, 폐하.”

지안카를로가 대답했다.

“본국이 수백 년 동안 야만부족들과 싸워 온 것은 사실이나, 지난 10년 동안은 그 분쟁의 정도가 도를 지나칠 정도였사옵니다.”

“으음.”

“때문에 우리 군의 피로도도 상당하고, 인명피해도 엄청나옵니다. 또한, 가히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이 들어갔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소강상태를 유도하는 게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허나 본국에는 엘리제가 있질 않소이까?”

황제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툭, 하고 막말을 던졌다.

“대공의 손녀를 보내 야만부족들을 다 쓸어 버리면 그만 아니오?”

순간 지안카를로는 욱! 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안카를로에게 있어 엘리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물론 잘츠부르크 가문은 검의 명가로서 강함을 숭상하는 가풍을 지닌 곳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 미친 전쟁광은 아니었다.

그들이 대를 이어 야만부족들과 싸운 이유는 오직 아라드 제국과 대륙을 지켜내기 위해서였지, 전쟁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나, 엘리제는 그런 부분에서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잘츠부르크 가문에서도 역대급으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덕분에 어려서부터 전쟁터로 나가야 했고, 이날 이때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베어 오며 혹사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황제는 그런 엘리제를 제국의 살인병기이자 해결사 취급을 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엘리제라 할지라도 사람을 죽이는 기계가 아닌 한 명의 여인이었음에도…….

“폐하.”

지안카를로는 충성심을 발휘해 분노를 억누르고는, 조용히 황제를 타일렀다.

“엘리제라고 해서 영원히 전쟁터를 전전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그렇소?”

“게다가 엘리제뿐 아니라 우리 기사들과 병사들 역시 피로감이 상당하고, 야만부족들과의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백성들이 많사옵니다. 나중에 전쟁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숨을 고를 필요가 있는 것이옵니다.”

“으음.”

황제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리 하시오. 장벽 너머의 일은 오직 대공에게 맡길 것이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결국, 지안카를로는 황제로부터 야만부족과의 화친을 허락받는 데 성공했다.

애초에 황제가 지안카를로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을 리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 * *

오토가 가진 지식 덕분에, 일행은 노르딕 산 중턱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부터는 성지를 지키는 야만부족들이 득실거리니까, 다들 조심하자고.”

“예, 전하.”

“알겠습니다.”

“귁! 귁귁귁!”

그렇게 노르딕 산을 계속 오르던 중.

우르르!

갑자기 가벼운 지진이 일어났다.

“뭐야……?”

오토가 주변을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딱히 별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잠깐 지진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오토는 카미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어? 어어어?”

카심이 저 멀리 위쪽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왜냐하면…….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새하얀 해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

“……!”

“……!”

오토와 카미유와 카심과 펭이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산사태.

아니, 눈사태.

조금 전 일어났던 가벼운 지진으로 인해 거대한 눈덩이가 무너지며, 무시무시한 눈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도, 도망쳐어어어어어어-!!!”

오토의 입에서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눈사태가 하필 코앞에서 시작되는 바람에, 미처 대응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대로 휩쓸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 * *

눈사태가 일어난 지 몇 시간 후.

“으음.”

카심은 겨우 기절 상태에서 회복해 눈을 떴다.

“여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하는? 카미유 경은? 펭이는?’

카심은 깨어나자마자 오토, 카미유, 펭이를 찾았지만 딱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리고…….

‘뭐가 이렇게 북실북실해……?’

카심은 문득 자신의 몸이 부드러운 털 뭉치 같은 곳에 눕혀져 있다는 걸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이, 이게 뭐야?!”

카심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zZ.”

알고 보니 웬 거대한 덩치를 지닌 설인(雪人)의 품속이었기 때문이다.

설인이 무슨 아기 다루듯 카심을 품에 꼭 안은 채 쿨쿨 잠들어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