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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17화 (318/401)

제317화

“크윽…….”

오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욱신욱신!

누구에게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온몸이 아팠다.

하기야, 눈사태에 휩쓸렸으니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만약 눈 더미에 제대로 깔렸다면, 제아무리 오토라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았으니까.

급하게 텔레포트할 여유도 없이 휩쓸려 버렸다.

텔레포트에 성공했다고 한들 눈사태의 범위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 애초에 시도조차 않긴 했지만.

“다들 괜찮…… 하아”

오토가 주변을 돌아보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온통 새하얀 눈밭.

카미유, 카심, 펭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눈사태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밀려갔거나, 최악의 경우 파묻힌 모양이었다.

“망할.”

오토가 이를 갈았다.

성물을 찾으러 여기까지 온 마당에, 예기치 않은 눈사태에 휩쓸려 버리다니…….

‘일단 찾아보자.’

아무리 성물이 중요하다 한들 동료들부터 찾는 게 우선.

오토는 즉시 투시 권능을 발동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점점 더 강력해진 투시 권능은, 산더미처럼 쌓인 눈 속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수색·정찰에는 이만한 권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2시간쯤 주변을 샅샅이 뒤졌을 무렵.

‘저기다!’

오토는 저 멀리 카미유가 눈 더미에 파묻힌 채 기절해 있는 걸 발견하고, 황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푹, 푸욱.

눈을 파내고.

“형! 혀엉!”

카미유를 눈 속에서 끄집어냈다.

“…….”

카미유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눈사태에 휩쓸리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입었을뿐더러, 저체온증으로 인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

오토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30분 안에는 숨을 거두었을 게 분명했다.

‘다행이야.’

오토는 카미유를 발견한 것에 대해 안도하면서,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는 ‘그 탕약’을 카미유의 입에 냅다 들이부었다.

콸콸콸!

걸쭉하고 시커먼 ‘그 탕약’이 카미유의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로부터 약 5초 후.

“……크윽.”

카미유가 눈을 떴다.

거의 원액에 가까운 ‘그 탕약’의 효과는 가히 막강해서, 중상을 입은 사람조차 몇 초 만에 회복시키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정신이 좀 들어?”

“……전하.”

카미유가 몸을 일으켰다.

“진짜 다행이야. 제때 발견 못했으면 여기서 얼어 죽을 뻔했어.”

“감사합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마터면 뱃속에 있는 아기가 아버지 없이 자랄 뻔했으니, 카미유로서는 오토가 정말이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감사는 무슨. 서로 구해 주는 거지.”

오토가 피식 웃으며 카미유를 일으켜 주었다.

“으윽.”

카미유가 오만상을 다 쓰며 입가를 슥, 문질러 닦았다.

“이걸 또 퍼마시다니…….”

과장을 좀 보태면 죽은 사람도 저승 문턱에서 데려올 수 있는 영약이라지만, 더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걸쭉한 식감도 식감이거니와, 특유의 그 냄새 때문에 한번 마시고 나면 며칠은 식욕도 없고 구역질이 나왔기 때문이다.

“왜? 싫어?”

오토가 히죽 웃으며 카미유에게 물었다.

“그 탕약 덕분에 살았는데?”

“그거랑은 별개입니다만. 으윽.”

카미유가 수통에 든 물을 입에 머금었다가 뱉어냈다.

후두둑!

뱉어낸 물이 얼음 결정이 되어 눈밭에 떨어졌다.

“카심 경과 펭이는 어디 있습니까?”

“몰라.”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합니다.”

카미유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구조하지 않으면…….”

“알지.”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수색해 보자. 1분 1초가 급해.”

“예, 전하.”

오토와 카미유는 즉시 카심과 펭이의 수색 작전에 나섰다.

이후 오토와 카미유는 카심과 펭이를 찾아 노르딕 산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워낙에 큰 눈사태가 나서 그런지, 도무지 카심과 펭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진짜 큰일이네.’

오토는 카심이 걱정돼서 발을 동동 굴렀다.

‘여기 진짜로 위험한 곳인데.’

이곳 노르딕 산은 각종 몬스터들과 괴수들이 득실거릴뿐더러, 성지를 지키는 야만부족들이 곳곳에서 어슬렁대는 곳이었다.

카심과 펭이가 제아무리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그들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 전에 살아 있는지조차 미지수였다.

눈사태에 휩쓸려 어디까지 떠내려갔는지, 얼마나 깊게 처박혔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정말로 눈 속에 파묻혔다면, 어쩌면 그대로 죽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찾아서 구해야 돼.’

다른 때 같았으면 카심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거나, 혹은 알았더라도 알아서 살아 돌아오겠거니 믿고 기다렸을지도 몰랐다.

왜?

카심은 항상 보란 듯이 살아 돌아오곤 했으니까.

돌아올 때마다 뭔가 이상한 것(?)들을 줄줄이 달고서.

그러나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이번만큼은 그런 행운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였다.

“왜 맨날 혼자 낙오하고 난리야…… 하아.”

“팔자가 그렇다지 않습니까.”

카미유가 카이로스가 해 주었던 말을 되새겨 주었다.

“카심 경은 별일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그렇게 믿고, 그랬으면 좋겠어. 근데 이번엔 진짜 걱정이…….”

그때.

“……!”

오토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얼어붙었다.

‘적!’

저 멀리 야만인 전사들이 오토와 카미유를 발견하고 접근해 오고 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대륙인들이다!”

“대륙인 놈들이 어딜!”

“감히 우리들의 성지에 발을 들여놓다니!”

야만인 전사들이 오토와 카미유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 * *

한편, 설인의 품에 안긴 카심은 벌벌 떨고 있었다.

‘사스콰치잖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카심이 아는 한 이 설인의 정체는 북부 장벽 너머에 서식한다는 전설의 설인(雪人)이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지닌 이 설인은, 사람 하나를 산 채로 으적으적 씹어 먹는다고 알려진 괴물이었다.

아니, 단순히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스콰치는 키가 무려 10미터에 달해 보이는 괴수.

오우거 정도는 한 끼 간식거리로도 여기지 않을 것 같은 체급이었다.

‘진짜 큰일 났네. 어쩌지.’

카심은 감히 설인을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벌벌 떨면서 눈알만 데록데록 굴려야만 했다.

만약 설인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오싹!

이대로 한입에 잡아먹힌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우어.”

“……!”

“우어어어.”

설인이 깨어났다.

‘검을……!’

카심이 황급히 공격태세를 갖추려던 순간.

“우어, 우어, 우어?”

설인이 카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어라 말했다.

“……으응?”

카심은 설인이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 같아서, 일단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다고 들리기야 하겠느냐마는…….

“우어, 우어어어, 우어어어.”

“괜찮냐고 물어보는 거야? 설마?”

“우어어어.”

설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가 없다.’

카심은 본능적으로 설인이 나쁜 의도로 자신을 데려온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설인이 배고플 때 잡아먹으려고 도시락처럼 들고 있나 했는데, 막상 대화(?)를 나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 괜찮아.”

“우어!”

설인이 잘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우어! 우우어! 우어어! 우어우어! 우어우어우어!”

“날 구해 준 거야?”

“우어!”

“정말 고마워.”

카심이 진심을 담아 설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떡하지? 내가 뭐 해 줄 게 없네?”

“우어어어!”

“괜찮다고?”

“우어!”

“그래도 보답하고 싶은데…….”

“우어우어!”

설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카심을 땅에 내려놓았다.

‘동굴이네. 설인의 집인 모양이구나.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걸 주워 온 모양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돌아보던 중.

“어?”

카심이 저 멀리 쓰러져 있는 작은 설인을 발견하고 눈을 깜빡했다.

“저 친구는 누구야?”

카심이 설인에게 물었다.

“우어어…….”

“응?”

“우어, 우어어어.”

설인이 아기를 꼭 안는 시늉을 해 보였다.

“네 새끼야?”

“우어!”

“근데 왜 저러고 있어? 어디 아파?”

새끼 설인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새끼라고는 해도 어지간한 성인 남자보다 더 덩치가 컸지만.

“우어, 우어어어, 우어.”

“내가 한번 봐도 될까?”

“우어어!”

설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보자…….’

카심은 허락이 떨어지자 죽은 듯 누워 있던 새끼 설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외상이 심각해.’

새끼 설인은 그냥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복부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기절해 있는 거였다.

“우어, 우어어어…….”

어미 설인이 우울하다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우어어… 우어어어어…….”

“아이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새끼 설인이 큰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날 구해 줬구나. 아마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날 발견한 모양인데.’

카심은 그렇게 생각하며 어미 설인을 돌아보았다.

“혹시.”

“우어?”

“내가 치료를 시도해 봐도 될까?”

“우어어?”

“이거.”

카심이 품속에서 거무죽죽하고 걸쭉한 액체가 든 유리병을 꺼내 어미 설인에게 흔들어 보였다.

이오타 왕국의 핵심 인물들이라면 누구나가 들고 다닌다는 상비약인 ‘그 탕약’이었다.

“이거 마시면.”

카심이 ‘그 탕약’을 마시고 힘이 불끈 솟는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이렇게! 건강해져! 상처 다 나을 거야!”

“우어어? 우어어어?”

“진짜로!”

카심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어 보였다.

심지어 엄지를 힘껏 세워 따봉까지 날려 보이며.

설인이 대강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듯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 100퍼센트 다 통하지 않으니 이렇듯 바디랭귀지라도 섞어 가며 의사표현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우어! 우어어!”

설인이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영차!”

카심이 조심스레 아기 설인을 바르게 눕히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그 탕약’을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어미 설인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잡도록 했다.

콸콸콸!

카심이 아기 설인에게 ‘그 탕약’을 들이부었다.

그로부터 몇 초 뒤.

“……우어?”

아기 설인이 마치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스르륵.

아기 설인의 복부에 나 있던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우, 우어?!”

그 광경을 본 어미 설인이 화들짝 놀랐다.

설인 인생에서 상처가 이렇게 빠르게 치료되는 건 단언컨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어, 우어어어.”

정신이 든 아기 설인이 어미 설인을 향해 무어라 말했다.

“우어! 우어어어! 우어어어어어!”

어미 설인이 아기 설인을 꼭 안아 들고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어미 설인 입장에선 죽어가는 아기 설인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듯 살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다행이야.”

카심이 그런 어미 설인과 아기 설인의 모습을 지켜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떤 생명체든 간에 어미와 아기의 교감을 지켜본다는 것 정말이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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