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모습을 드러낸 야만인 전사들은 그 덩치가 가히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이 추운 날씨에 근육질의 팔, 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옷을 입고 있었다.
꿈틀대는 근육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하나같이 보디빌더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니들은 추위도 안 타냐.”
오토는 야만인 전사들의 옷차림을 보고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저 타고난 강인함.
이런 극지방에서도 민소매를 입을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신체능력이 경이롭다 못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감히 대륙인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왔는가.”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팔다리를 분질러서 몬스터들에게 먹이로 던져 줘야겠군.”
눈 깜짝할 사이에 오토와 카미유를 포위한 야만인 전사들은, 거대한 대검과 도끼를 움켜쥐고 차츰차츰 거리를 좁혀 오기 시작했다.
스릉!
이에 카미유가 검을 뽑았다.
“안 돼.”
오토가 카미유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 뭐가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여기 왔다는 게 알려지면 안 돼.”
오토의 목표는 노르딕 산 정상에 있는 성물을 탈취해 야만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서 환심을 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 노르딕 산에 대륙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알려져선 곤란했다.
그렇게 되면 야만부족들의 의심을 살 테고, 동맹이 물 건너가는 수가 있었다.
오토 일행이 이곳 노르딕 산에 왔다는 건 철저히 비밀에 붙여야 할 사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발각됐잖습니까?”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려지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이미 들켜 버린 걸 어쩌라는 말인가?
“죽이면 안 된다는 거야, 내 말은.”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해.”
오토가 피식 웃으며 허리춤을 매만졌다.
“그러니까, 죽이지는 말고 방어만 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꼭 죽일 필요는 없어.”
오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 무기’를 꺼내 들었다.
“……?”
“……?”
“……?”
야만인 전사들은 오토가 길고 가느다란 쇠막대기를 꺼내 들자 눈을 끔뻑끔뻑 어리둥절해했다.
상식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꺼낼 만한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저 길고 가느다란 쇠막대기가 무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심이 들었다.
쇠꼬챙이처럼 급소를 찌르는 데 사용한다면 몰라도.
“푸하하하하!”
“크흐흐! 대륙 놈들이란 정말이지 터무니없군!”
“나약한 놈 같으니! 무기도 생긴 대로 노는구나!”
야만인 전사들이 오토를 조롱하며 배를 잡고 웃어 댔다.
오토는 동요하지 않았다.
“이걸로 처맞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이걸로 처맞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이걸로 처맞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어느새 여러 명으로 늘어난 오토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
“……!”
“……!”
야만전사들이 오토의 분신술에 당황하는 사이.
빠악!
오토가 부지깽이로 가장 앞에 있던 야만전사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컥!”
야만전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각성의 부지깽이에 맞으면 1퍼센트 확률로 기절하게 되는데, 하필 그 낮은 확률이 발동되며 기절해 버린 것이다.
“지금부터 기절할 때까지 맞는 거다.”
“지금부터 기절할 때까지 맞는 거다.”
“지금부터 기절할 때까지 맞는 거다.”
뒤이어 여러 명의 오토가 일제히 야만전사들에게 덤벼들어서, 그들의 머리통을 세차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빡!
빠악!
오토는 야만전사들이 기절할 때까지 집요하게 머리통을 패고, 패고, 또 팼다.
털썩, 털썩, 털썩…….
야만전사들이 하나둘 기절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지깽이에 맞는 것만으로는 별다른 데미지를 입지 않았지만, 계속 맞다 보니 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0분 뒤.
남은 야만전사는 오직 하나뿐.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기절해!”
오토는 아직까지 기절하지 않은 야만전사의 머리통을 향해 계속해서 부지깽이를 내리쳤다.
그 야만전사한테는 유독 기절 확률이 터지지 않아서, 계속해서 머리통을 내리찍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30분 뒤.
“……그럴 거면 차라리 죽이십시오.”
보다 못한 카미유가 한 마디를 툭 하고 던졌다.
그 야만전사가 유독 기절하지 않다 보니, 부지깽이로 거의 수백 대를 처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만… 그마아안…….”
그 강인하고 지독한 야만전사가 오토에게 애원했다.
“차, 차라리 죽여 줘… 그냥 죽여…….”
계속해서 머리를 얻어맞다 보니 죽여 달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토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야만전사의 머리통을 내리쳤고, 끝끝내 기절시키는 데 성공했다.
“꽥!”
야만전사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기절했다.
“후우.”
오토가 기절한 야만전사 위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스으으으!
어찌나 열심히 머리통을 내리쳤던지, 오토의 몸 주변에서 허연 김이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벌컥벌컥!
땀에 흠뻑 젖은 오토는 체온조절을 위해 포션을 꺼내 들이켜고는, 기절해 있는 야만전사들을 하나하나 뒤집었다.
그런 뒤 눈꺼풀을 강제로 열고, 영혼강탈의 권능을 이용해 그들에게 암시를 걸었다.
“따라해.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못 봤다.”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못 봤다.”
“대륙인 같은 건 본 적이 없다.”
“대륙인 같은 건… 본 적이 없다…….”
“눈사태에 휩쓸렸을 뿐이다.”
“눈사태에… 휩쓸렸을 뿐이다.”
오토는 기절한 야만전사들에게 일일이 암시를 걸고 나서야 그들을 놓아주었다.
“이럼 됐지?”
“고생하셨습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기절했다가 일어나면 눈사태에 휩쓸린 줄 알 거야. 우릴 봤다는 건 까맣게 모를 거고. 후우.”
“그럼 이제 이동하면 되겠습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카심 경과 펭이를 찾아야지.”
“예, 전하.”
오토는 이번만큼은 카심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맨날 혼자 낙오해서 서운해했었는데. 이런 위험한 곳에 내버려둘 수 없어. 반드시 구해 줄 거야.’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계속해서 카심 수색 작전에 나섰다.
* * *
한편, 아기 설인을 치료해 준 카심은 엄마 설인으로부터 매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우어, 우어!”
엄마 설인은 몬스터의 고기 같은 것을 카심에게 내주는 등 자신의 마음을 표시했다.
“난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우어?”
“그리고 지금 내가 좀 바쁘거든.”
카심이 엄마 설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하께선 무사하실까? 카미유 경은? 펭이는?’
카심은 한가하게 엄마 설인과 교감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
눈사태에 휩쓸린 오토, 카미유, 펭이가 걱정돼서 도저히 동굴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우어?”
“찾아야 할. 사람들이 있어. 동료들.”
카심이 열심히 바디랭귀지를 써 가며 엄마 설인에게 설명했다.
“우어! 우어어어!”
“으응?”
“우어! 우어어! 우어어어!”
엄마 설인도 카심에게 무어라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어! 우어어!”
“같이 가 주겠다고?”
“우어어!”
“정말로?”
“우어! 우어! 우어우어!”
엄마 설인이 카심과 자신을 가리키며 우린 친구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음.”
카심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장벽 너머 노르딕 산.
그리고 설인은 노르딕 산에서 서식하는 토착 생명체.
설인과 함께 수색작전을 실시한다면, 오토와 카미유와 펭이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으리란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우어!”
“깜짝이야!”
엄마 설인이 카심을 번쩍 들어서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아기 설인을 품에 안았다.
“우어, 우어어, 우어어.”
카심을 어깨 위에 태운 설인이 쿵쿵! 발걸음을 옮기며 동굴 밖으로 나섰다.
* * *
오토와 카미유는 그 후로도 거의 10시간 동안이나 카심과 펭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눈사태가 워낙 크게 일어났던 것인지, 카심과 펭이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토와 카미유는 수색작전을 잠시 중단하고 잠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어느덧 밤이 찾아온 데다,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도저히 수색작전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토와 카미유는 일찍 휴식을 취하기 위해 텐트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까득! 까드드득!”
“키이이이이!”
황소만 한 덩치를 가진 전갈들이 나타나 오토와 카미유를 포위했다.
그 전갈들의 껍질은 푸르스름한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딱 봐도 그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단단해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망할!’
오토는 전갈들을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와락 구렸다.
이곳 노르딕 산에 서식하는 서리전갈들은, 방어력이 그야말로 다이아몬드나 다름없을 정도로 강력한 개체들이었다.
게다가 맹독을 품고 있어서, 꼬리 끝에 스치기라도 했다간 그날로 황천길이었다.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곳답게, 이제는 야만전사들에 이어 서리전갈들과도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
“밤새 싸워야겠네. 하아.”
오토는 하필 서리전갈들이 나타난 걸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리전갈들은 그 막강한 방어력 때문에 단 한 마리를 잡는 데도 몇 시간씩 걸리는 끈질긴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서리전갈들이 거의 10마리나 나타났다면, 오늘 밤은 잠을 다 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싸웁니까?”
“당연히.”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대답하며 검을 뽑아 들던 그때.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난데없이 거대한 덩치를 지닌 설인이 나타나 서리전갈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우어! 우어!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설인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설인은 서리전갈들을 짓밟고, 둘로 찢어버리고, 꼬리를 뽑아 버리는 등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그 힘이 어찌나 무시무시했던지,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몬스터인 서리전갈들이 불과 몇 초 만에 갈가리 찢겨나갈 정도였다.
“미, 미친.”
오토가 설인이 황소만 한 크기의 전갈들을 무슨 벌레 밟아 죽이듯 때려잡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르던 그때.
“전하!”
“귁! 귁귁귁!”
설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카심과 펭이가 손을 흔들었다.
“카, 카심 경?!”
“카심 경!”
오토와 카미유는 설인의 어깨에 탄 카심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오토와 카미유는 황당함에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걱정돼서 그 개고생을 해 가며 찾아다녔더니, 또 뭔가 이상한 동물(?)을 데리고 나타난 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카미유가 오토의 귓가에 속삭였다.
“카심 경 걱정은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동감.”
오토는 카미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쯤 되면 걱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만 느껴져서, 왜 그리 찾아다녔나 회의감이 들 지경이었던 것이다.
“신 카심, 전하를 뵙습니다.”
“귁! 귁귁귁!”
카심과 펭이가 설인의 어깨 위에서 내려와 오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어떻게 된 거에요? 엄청 걱정했어요.”
“하하하. 사실은…….”
카심이 웃으며 그간의 사정을 오토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그렇군요.”
오토는 카심의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고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하고 따지고 들어봤자 카심의 불가사의한 인생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전하, 이 친구가 그러는데 산 정상까지 빠르게 데려다주겠답니다.”
카심이 엄마 설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산 정상까지요? 불가능할 텐데?”
오토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이곳 노르딕 산은 중턱 이후부터 세찬 바람이 1년 365일 내내 휘몰아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정산으로 가려거든 아주 오랜 옛날 고대인들이 파 놓은 동굴을 이용하는 게 정석이었다.
“이 친구는 갈 수 있답니다! 하하!”
카심이 엄마 설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인에게는 바람이 별것 아니랍니다! 전하!”
“저, 정말요?!”
“예!”
“아, 하긴.”
오토는 엄마 설인의 덩치를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키가 무려 10미터에 달하는 만큼 몸무게도 엄청날 테고, 그 엄청난 괴력으로 노르딕 산의 무시무시한 강풍을 버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