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9화
오토와 카미유가 꽤나 지쳐 있었던 바람에, 일행은 산 중턱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포션으로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한다고 한들 카심과 펭이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부족해진 잠까지 채워 줄 순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자! 출발!”
“우어어어어어!”
카심의 외침에 따라서, 엄마 설인은 오토 일행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 정상을 향해 내달렸다.
쿵쾅쿵쾅!
10미터나 되는 설인이 산을 내달리는 광경이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산 중턱을 넘어서자 무시무시한 강풍이 휘몰아쳤다.
“크으윽!”
오토는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강풍에 아주 기가 질려 버렸다.
이런 강풍을 뚫고 산 정상에 오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 설인은 달랐다.
“우어어어어어어어!”
엄마 설인은 그 엄청난 몸무게와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강풍을 몸으로 뚫고 내달렸다.
험난한 지형?
절벽?
그런 건 엄마 설인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단숨에 수십여 미터를 점프하고, 절벽에 손가락을 박아 놓고 산을 타는데 그 돌파력이란 강풍 따위에 가로막힐 게 아니었던 것이다.
덕분에 오토 일행은 불과 한나절 만에 노르딕 산 정상 어귀에까지 도착했다.
다행히도 노르딕 산 정상 부근에는 기이하게도 바람이 불지 않아서, 오토 일행은 엄마 설인의 어깨 위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미, 미쳤다.”
오토가 강풍이 휘몰아치는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저 무시무시한 바람을 뚫고 왔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와. 그 난관들을 다 스킵해 버렸네. 하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여기 오려면 미친 던전들을 지나와야 하거든.”
“아?”
“빙하의 동굴, 수정 길, 나락의 계단이라고. 그곳들을 거쳐 왔으면 한 1주일은 개고생했을걸? 으으으.”
오토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그만큼 이곳 노르딕 산 정상까지 오는 과정들이 험난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 설인이 데려다준 덕분에, 그 험난한 과정을 건너뛰고 단숨에 정상까지 도착했으니 오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꿀 같은 상황이었다.
‘저거 예뻐서 어떡하지? 으이구! 이 복덩이!’
오토는 카심에게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부러 낙오시켜 볼까?’
카심이 낙오했다가 돌아올 때마다 뭔가를 가져오니, 계속 낙오시키다 보면 어쩌면 세계대전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황당무계한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물론 일부러 낙오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는 일은 없겠지만.
“우어! 우어어! 우어! 우어!”
엄마 설인이 오토 일행을 향해 무어라 말했다.
“자긴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녀오랍니다.”
카심이 그런 엄마 설인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
“…….”
오토와 카미유는 그런 카심의 통역에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언제 봤다고 벌써부터 통역이 가능한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나만 못 알아듣는 거야?”
오토가 혹시나 싶어 카미유에게 말했다.
“저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카미유가 고개를 저었다.
“우어! 우어어! 우어어어! 우어! 우어! 우어어어어어! 우어!”
“아?”
“우어! 우어어! 어어어어어어!”
“그래?”
“우어어어! 우어어어! 우어! 우어어! 우어어어어!”
“알겠어, 명심할게.”
“우어어어! 어어어!”
카심이 엄마 설인과의 소통을 마치고 오토에게 보고했다.
“전하, 산 정상은 매우 위험하답니다. 성지를 지키는 7개의 석상이 있는데, 엄마 설인조차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답니다. 이상 통역 끝입니다.”
“……고생하셨어요.”
오토는 카심이 용케도 엄마 설인과 꽤나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걸 보고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렸다.
“통역이 사실입니까?”
“응.”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ㅈ나 정확해.”
“…….”
“그러려니 하고 가자고.”
카심은 와이번들과도 농담을 따먹는 인간.
그 특유의 친화력을 머리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저 카심의 재능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게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 * *
오토 일행은 엄마 설인을 뒤로하고 노르딕 산 정상에 올랐다.
노르딕 산 정상에는 야만전사가 없었다.
야만전사들은 산 중턱부터 시작되는 지하로 된 길목을 지키고 있을 뿐 이곳 정상은 그냥 비워 두는 곳이었다.
왜?
애초에 이곳 정상은 아무도 지킬 필요가 없었으니까.
산 중턱부터 시작되는 거센 강풍을 뚫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인간은 없다시피 했고, 또한 따로 파수꾼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저기입니까?”
카미유가 저 멀리 자리한 제단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형의 제단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파란색 투구가 보관되어 있었다.
또한, 제단 주변에는 7개의 동상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동상들 하나하나가 야만전사를 형상화한 듯 덩치가 거대했고, 우람한 근육을 자랑했으며, 생김새 역시 가히 무시무시했다.
“지금부터 잘 들어.”
오토는 카미유, 카심, 펭이에게 설명했다.
“제단에 가까이 다가가면, 저 석상들이 깨어날 거야. 엄청 세니까 각별히 조심해. 정말로 세. 한 대라도 맞았다간 그대로 골로 갈 거야.”
“그럼 어떻게 상대합니까?”
“열심히?”
“예?”
“이걸 잘 써야 돼.”
오토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설명했다.
“관건은 저 7개의 석상들을 동시에 죽이는 거야.”
“동시에 말입니까?”
“3초 안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석상들은 죽으면 3초 안에 되살아나.”
“……!”
“시간차가 좀 있더라도 모든 석상이 3초란 시간 안에 쓰러져야 돼. 우리가 6개를 죽이더라도, 3초 안에 나머지 1개를 못 죽이면 나머지 6개가 되살아나는 거야.”
“그게 무슨 ㄱ…….”
설명을 듣던 카미유가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할 뻔했다.
어마어마하게 강하다는 석상들을 동시에 쓰러뜨린다는 게 상식적으로 절대 쉬울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별수 없어.”
오토가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게 성물을 얻는 방법이야.”
“맙소사.”
“각오 단단히 해. 장기전이 될 거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간다?”
오토는 카미유와 카심과 펭이가 준비된 것을 보고 즉시 제단 쪽을 향해 다가갔다.
- 성지에 든 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 목숨이 아깝지 않은 놈들이로구나.
- 성역을 더럽히려 하다니!
- 죽음으로도 이 죄를 씻지 못할 것이다.
- 크흐흐흐! 오래간만에 사냥감들이 왔군!
- 성물을 탐하는 자의 최후는 끔찍해야 마땅한 법.
7개의 석상들이 일제히 깨어나더니, 오토 일행을 향해 눈을 빛냈다.
부웅!
그리고는 그 육중한 몸을 날려 오토 일행을 향해 일제히 덤벼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
쾅! 콰앙!
채앵! 챙!
오토 일행과 7개의 석상들이 서로 뒤엉키며 한바탕 난전이 펼쳐졌다.
촤라락!
오토는 자신의 검술을 한껏 발휘하며 무려 4개의 석상을 혼자서 상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간 알게 모르게 강해져 왔기에, 이곳 야만부족들의 성지를 지키는 석상들과도 충분히 겨뤄 볼 만한 실력을 갖춘 상태였던 것이다.
반대로, 카미유와 카심과 펭이는 각각 한 개의 석상들만 상대하는데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귀이이이이익!”
제일 먼저 펭이가 나가떨어지고.
“크악!”
뒤이어 카심이 나가떨어졌다.
“……빌어먹을.”
카미유의 경우엔 그나마 좀 나았다.
광속검을 워낙 깊이 있게 수련했고, 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네놈도 죽여주마!
-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카심과 펭이를 쓰러뜨린 석상들이 가세하며 3:1의 구도가 연출되자 카미유도 차츰차츰 무너지기 시작했다.
“망할.”
오토는 석상들을 상대하며 카미유를 도와주려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석상들에게는 마법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석상이니만큼 석화, 맹독 등의 권능은 아예 먹히지 않았고 영혼이 없는 존재들이기에 영혼강탈도 소용없었다.
그나마 분신술을 사용해 상대하고 있기는 했지만, 석상들을 단 한 번에 죽인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푸욱!
석상 하나가 휘두른 도끼가 오토의 왼쪽 어깻죽지에 박혔다.
“……!”
오토의 두 눈이 충격으로 물드는 순간.
콰앙!
석상이 그대로 오토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악!”
오토가 저 멀리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전하!”
카미유가 황급히 오토를 향해 내달리고.
“마, 막아!”
“귁! 귁귁!”
겨우 일어선 카심과 펭이가 이를 악물고 석상들을 가로막아 오토를 보호했다.
“크윽!”
오토가 카미유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씨발 진짜.”
그야말로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
정말이지 무지막지하게 강한 석상들을 상대로 수적으로 불리하기까지 하니, 오토 일행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심지어 석상들의 방어력이 가히 막강해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감은 검으로도 그저 흠집만 조금 났을 뿐이었다.
지금도 열세인데,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전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해보자 이거지.”
오토가 으르렁거리며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시커멓고 말캉말캉한 젤리가 가득 든 봉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한 움큼을 집어 카미유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설마.”
카미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쩔 수 없잖아. 으윽.”
오토가 젤리를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장기전이잖아. 이거라도 먹으면서 버텨야지.”
“…….”
“그냥 먹으면서 싸워. 다 먹었다 싶으면 또 먹고. 그럼 즉사만 피하면 되잖아.”
오토가 오만 상을 다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오토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 * *
오토 일행은 ‘그 젤리’를 씹으며 야만전사들의 석상들과 몇 시간이고 싸웠다.
위험천만한 순간이 수없이 많았지만, 오토 일행은 누구도 죽지 않았다.
젤리를 씹으면서 싸웠기에, 부상을 입는다 한들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해 버리는 괴물 같은 재생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젤리를 씹으며 꾸역꾸역 싸움을 해 나가던 도중.
“악!”
석상이 휘두른 방패에 얻어맞고 저 멀리 나가떨어졌던 오토는,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당했지? 어디에 맞았지? 어떤 식으로 빈틈을 드러냈지?’
지난 몇 시간 동안 석상들에게 입었던 치명상들.
그 원인, 과정, 결과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
오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구나.’
그런데 그 수십 번 죽을 뻔했던 경험들이, 오토에게 깨달음을 안겨 주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 대련으로는 구현해낼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건 엘리제조차 가르쳐줄 수 없었으며, 실전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깨달음이었다.
왜?
오직 죽음의 순간에만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으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마련.
깨닫는다 하더라도, 이미 찾아온 죽음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하지만 오토는 평생에 단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죽음을 몇 시간 만에 수십 번이나 경험했다.
젤리를 씹으며 악착같이 버텼던 지난 몇 시간 동안의 사투가, 오토로 하여금 죽음을 복기(復棋)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엘리제가 말했던, 오토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 천부적인 재능이 비로소 만개(滿開)한 것이다!
‘보인다.’
깨달음이 찾아오자 적들이 달리 보였다.
지금 오토의 눈에는, 7개 석상들의 움직임이 마치 일목묘연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각기 다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석상들은 일정한 패턴대로 어떠한 규칙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자.’
오토가 검을 움켜쥐고 석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분신술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그 어떤 권능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오직 한 자루 검뿐이었다.
촤락!
촤라라라락!
촤아아!
오토의 검이 바람조차 베어 버릴 기세로 매섭게 휘몰아치고.
- ……!
- ……!
- ……!
일곱 개 석상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쿵! 쿠웅!
두 동강 난 석상들이 눈밭에 허물어졌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