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20화 (321/401)

제320화

“……!”

“……!”

“……!”

카미유와 카심과 펭이는 조금 전 오토가 보여 준 움직임과, 그 환상적인 검술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호흡 만에 석상들을 스쳐 지나간 움직임과 빠르기.

그리고 무슨 짓을 해도 흠집조차 나지 않던 석상들을 베어 버리다 못해 아예 파괴시켜 버린 그 무지막지한 힘까지.

지금의 오토는 몇 시간 전에 고전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죽음을 복기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계기로, 오토는 자신의 잠재력을 각성한 상태였다.

검술을 물론 마나의 운용에 대한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던 것이다.

“저, 전하.”

카미유가 오토에게 다가가 물었다.

“방금…… 어떻게 하신 겁니까?”

“잘.”

“예……?”

“석상들한테 당하면서 치명상을 입을 때 있었지?”

“예.”

“그 경험들을 되새겨 봤어.”

“……!”

“뭐가 문제였는지, 어떻게 하면 됐을지 이해가 되더라고. 어느 순간.”

“그, 그게 무슨…….”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역시 검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조금 전 전투에서 깨달음을 얻어 한 번에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아가씨께서 하셨던 말씀이 진짜였구나.’

카미유는 평소 엘리제가 오토를 천재라고 인정하고, 고평가했던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카미유 역시 같은 경험을 했지만 깨달음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던 반면에, 오토는 이렇듯 큰 성장을 이루었으니 그 재능의 격차가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이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천천히 되새겨 봐.”

오토가 카미유에게 조언했다.

“분명히 얻는 게 있을 거야. 복기한다고 생각해. 그 안에 스스로의 한계점이 있으니까. 그걸 깨달았으면 검술은 당연히 발전할 거야.”

“예, 전하. 감사합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깨달음의 실마리를 가르쳐 주었으니, 고마운 건 당연한 거였다.

‘이제 마지막 권능을 얻을 수 있겠어.’

오토는 비로소 무적황제의 마지막 권능을 얻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무적황제의 마지막 권능은 검에 관한 것.

이번에 깨달음을 통해 검술이 진일보했으니, 충분히 그 권능을 얻을 자격을 획득했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권능을 얻고 나서도 계속해서 수련해야겠지만…….

“전하, 여기 있습니다.”

카심이 제단 한가운데에 있던 투구를 가져와 한쪽 무릎을 꿇고 오토에게 바쳤다.

오토는 그 투구를 받아들고, 아공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당장 이곳에서 투구를 사용하기는 좀 그렇고, 일단 복귀한 뒤에 그 권능을 휘두르려는 것이다.

‘이제 라그나르는 성물을 잃었으니까…… 힘이 약해지겠지.’

오토는 야만부족들의 군주 라그나르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100인의 군주 중 하나였지만, 성물을 잃은 이상 더는 그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될 터였다.

이제 야만부족들이 강해지고 약해지고는 오토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고생했어. 얼른 내려가자.”

“예, 전하.”

그렇게 오토는 야만부족들의 성물을 챙겨 노르딕 산 정상을 떠났다.

* * *

하산(下山)은 매우 빨랐다.

“우어어어어!”

엄마 설인은 오토 일행을 등에 짊어지고 무슨 썰매를 타듯 미끄러져서 노르딕 산 중턱까지 내려왔다.

덕분에 오토 일행은 무슨 눈썰매를 타듯 재밌고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또 타고 싶은데 정상까지만 한 번만 더 갔다 오자고 할까?”

“……정신 좀 차리십시오.”

카미유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오토에게 면박을 주었다.

정상에서는 검신(劍神)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더니, 내려오자마자 애새끼 같은 소리나 해 댈 줄이야.

“전하께서 애입니까? 눈썰매 타고 싶다고 노르딕 산 정상을 오르게?”

“헤헤헤.”

“제발 철 좀 드십시오.”

카미유는 잊을 만하면 철없는 소리나 해 대는 오토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사이.

“우어! 우어어어! 우어!”

“뭐?”

카심과 엄마 설인이 무어라 소통을 나누었다.

“우어어어! 우어! 우어어어! 우어어어어어! 우어어!”

“진짜로?”

“우어우어! 우어어! 우어!”

“괜찮겠어?”

“우어어어어! 우어!”

카심이 오토를 돌아보았다.

“전하.”

“예, 카심 경.”

오토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카심을 돌아보았다.

“한 번 더 태워 준대요?”

“……그건 아닙니다.”

“쳇.”

오토가 좋다 말았다며 입을 삐죽였다.

“그럼 뭐래요?”

“같이 가고 싶답니다.”

“네? 같이요?”

“아기의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서 은혜를 갚고 싶다면서, 당분간은 같이 다니면서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싶답니다.”

“헉.”

오토는 카심의 말을 듣고 놀랐다.

엄마 설인의 강력함은 이곳 장벽 너머에 서식하는 생명체들 중에서도 가히 압권.

그 전투력은 가히 어마어마해서, 엄마 설인 하나만 해도 거의 백 단위의 기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전투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도 그 거대한 덩치와 괴력을 이용해 도움을 줄 수 있을 테고.

“전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데려갈까 합니다.”

“당연히 허락하죠.”

카심의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엄마 설인과 같은 강력한 조력자를 마다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좋습니다, 같이 가죠.”

“감사합니다, 전하.”

“그 혹시.”

오토가 조심스레 말했다.

“한 번만 ㄷ…… 으갸갹!”

“제발 추태 좀 그만 부리십시오.”

카미유가 오토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오토가 설인 썰매를 한 번만 더 타게 해 달라는 소리를 지껄이도록 놔둘 순 없었던 것이다.

* * *

엄마 설인이 동행해준 덕분에, 오토 일행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지역을 손쉽게 뚫고 아라드 제국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으로 매우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엄마 설인의 이동속도도 이동속도였지만, 오토가 어릿광대의 재간 권능을 이용해서 축지법을 발동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위험요소들을 지나쳐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장벽 너머는 어디까지나 야만부족들의 땅.

까막이를 타고 날아다니지 않는 이상 곳곳에 득실거리는 야만부족들을 완전히 피해 다니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히!”

“대륙인이 사스콰치를 타고 다니다니!”

“네놈들을 정체가 뭐냐!”

오토 일행은 엄마 설인의 등에 타고 이동하던 도중 한 무리의 야만전사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그 야만전사들은 북부 장벽 너머에서만 서식한다는 새하얀 곰을 타고 있었으며, 그 전투력 또한 어마어마하게 강한 정예들이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

오토는 하필 마주쳐서는 안 되는 인물과 마주치고 말았다는 걸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라그나르.

장벽 너머 야만인들의 왕.

절대로 마주쳐서는 안 될, 최악의 상대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대륙인들이 발을 들여놓았는가.”

거대한 코끼리, 아니 매머드 위에 올라탄 라그나르가 오토 일행을 내려다보며 그 차가운 눈을 빛냈다.

하필 라그나르가 아라드 제국군과 대치 중인 전선(前線) 인근을 시찰하던 중 마주친 모양이었다.

‘싸우면 전멸인데.’

오토는 바짝 긴장했다.

라그나르는 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로, 엘리제와도 몇 번 부딪힌 적이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전력을 다하는 엘리제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버티는 게 가능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니만큼, 그 강함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오토는 자신이 노르딕 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들, 지금 당장 라그나르와 맞붙었다간 5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목이 달아나리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었다.”

라그나르가 오토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무슨 이유로 이곳 우리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았는가.”

“…….”

“대답하라.”

라그나르가 재차 물었지만, 오토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의 오토는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빨리 판단을 내려야 했다.

‘투구를 써야 하나…….’

성물인 혹한의 강인함을 사용한다면, 라그나르를 어느 정도 약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물론 라그나르 정도 되는 강자라면 혹한의 강인함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문제는 그다음.

투구를 사용하는 순간 야만부족들과의 동맹은 물 건너가는 셈이었다.

야만부족들의 왕인 라그나르를 죽이는 순간 휴전협정은 영원히 물 건너가게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모략도 한계가 있는 법.

라그나르는 세 치 혀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죽을 순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어.’

결국, 오토는 혹한의 강인함을 사용해 라그나르를 약화시킨 뒤 싸우기로 결심했다.

당장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계획을 밀어붙인답시고 혹한의 강인함을 사용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살고 본다. 살아남아서 플랜B를…….’

오토가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어 혹한의 강인함을 꺼내려고 하던 그때.

번쩍!

쏴아아아아아아!

하늘 저 높은 곳에서부터 빛의 검들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모두가 놀라는 사이.

“멈춰라.”

전쟁의 여신이 강림해 라그나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엘리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보유한, 최강의 기사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 * *

‘됐어!!!!!!!!!!!!!’

오토는 엘리제가 나타나자마자 쾌재를 불렀다.

어찌나 반가웠냐 하면, 당장 엘리제에게로 달려가 와락 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엘리제야말로 오직 라그나르를 그냥 물러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라그나르.”

엘리제가 검으로 매머드 위에 타고 있는 라그나르를 겨누었다.

“저, 전쟁의 여신이 여긴 어떻게…….”

라그나르를 엘리제를 보자마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라그나르는 엘리제와 마주칠 때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경험이 있었다.

그때마다 천운이 따라주어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엘리제의 검에 목이 몇 번이고 날아갔어도 모자랐을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라그나르로 게임 영지 전쟁을 플레이하면, 엘리제라는 괴물을 상대로 살아남는 것이 주요 과제일 정도였다.

그만큼 엘리제와 라그나르 간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돌아가라.”

엘리제가 라그나르에게 권했다.

“곱게 돌아간다면, 이번 한 번만큼은 살려 주겠다.”

“뭐, 뭐라?”

라그나르는 엘리제의 말을 듣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왜?

이 순간이 엘리제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싸움이 벌어지면, 라그나르는 여기서 죽는다.

지금 라그나르는 소규모 병력들만을 이끌고 시찰을 나온 상태.

군대가 없는 이상 엘리제를 상대로 살아남는 건 불가능했다.

즉, 이번만큼은 어떠한 천운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냥 보내주겠다는 것인가?”

라그나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엘리제에게 물었다.

“나를 죽이지 않고?”

“황제 폐하께서는 너희들과의 전쟁을 멈추기를 바라신다.”

“황제가……?”

“그 하해와 같은 자비에 감사하도록. 또한.”

엘리제가 덧붙였다.

“저기 내 약혼자가 너희 야만부족과의 화친을 추진한 인물이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먼저 화친을 맺고자 하는 입장에서, 야만부족들의 왕인 그대를 죽일 순 없는 일이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믿을 것 같은가!”

“그럼 죽겠나?”

엘리제가 다시 물었다.

“…….”

라그나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객기를 부리기에는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던 것이다.

“……그대의 자비에 경의를 표하지.”

결국, 라그나르가 물러나고.

“자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오토가 엘리제를 향해 뛰어들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