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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21화 (322/401)

제321화

오토는 정말로 엘리제에게 뛰어들어, 그녀의 품에 꼭 안겼다.

“……징그럽게 뭐 하시는 겁니까. 하아.”

카미유는 그런 오토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왕으로서의 위엄?

혹은 체통?

오토는 그런 걸 내다 버린 인물이었고,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근래 들어 보는 눈들이 많을 때면 나름 근엄하고 강단 있는 젊은 국왕의 모습을 보여 줄 때도 있기는 했지만, 가까운 사람들만 곁에 있을 때면 그야말로 애새끼나 다름없을 때가 더 많았다.

카미유도 그러려니 하고, 어지간해서는 오토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타고난 천성 자체가 쾌활한 뺀질이라서, 사석에서의 모습까지 진중하길 바라는 건 무리가 있기도 했고.

그나마 전투를 치를 때면 눈빛부터 달라진다거나, 전쟁터에서 군을 지휘할 때는 이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런 카미유로서도 엘리제게 안긴 오토의 모습만큼은 도저히 봐주기가 힘들었다.

엘리제에게 안긴 오토는 솔직히 말해 좀 꼴불견이었다.

‘전하께서 무슨 골든 리트리버라도 되시는 겁니까?’

그 비유가 딱 알맞았다.

오토는 찬란한 황금색 머리칼을 가진, 훤칠하게 키 큰 미남자였다.

그런 다 큰 미청년이 약혼녀의 품에 안겨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란, 아무리 봐도 주인님 품에 안긴 덩치 큰 멍멍이 같았던 것이다.

“이제 괜찮다, 안심해라.”

엘리제는 그걸 또 받아주면서, 오토를 꼭 안아 주기까지 했다.

‘어쩌면 정말로 천생연분을 만난 걸지도.’

하마터면 두 사람이 이어지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토와 엘리제는 카미유가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이, 여긴 어떻게 왔어?!”

“걱정돼서 혹시 오나 안 오나 정찰하고 있던 참이었다.”

“정말~?”

“그렇다.”

엘리제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봤다시피 이곳은 정말 위험한 곳이다. 라그나르는 어마어마한 강자다. 이번엔 운이 정말로 좋았던 거다.”

“정말 고마워. 헤헤헤.”

오토가 행복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얼음장 같고 엄할 것만 같던 엘리제가 자신을 이토록 아껴 주고, 걱정해 준다는 게 느껴지자 행복감이 차올랐던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기 아니었으면 정말로 큰일날 뻔했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정말로 위험했다.”

“알지, 잘 알지. 그래서 정말 고맙고, 평소보다 더 반가운 거고. 지켜줘서 고마워, 자기.”

“이,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엘리제가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품에 안긴 오토가 얼굴을 비비적거리면서 애교를 피우는 모습에 그만 설레고 만 것이다.

‘은근히 귀여운 것에 약하시군, 엘리제 아가씨는.’

카미유는 엘리제가 귀여움에 약한 취향이라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전쟁의 여신이 토끼가 그려진 동전지갑을 들고 다닐 리 없을 테니까.

“나, 솔직히 감동했어.”

오토는 엘리제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라그나르를 그냥 보내 주기가 어려웠을 텐데.”

“……그건 맞다.”

엘리제의 눈빛이 살짝 서늘해졌다.

비록 그냥 보내 주긴 했지만, 엘리제로서도 그냥 보내 준 것은 크나큰 결정이었다.

여태 라그나르의 손에 죽은 아라드 제국군이 몇 명인데, 적국의 수장을 그냥 보내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엘리제는 지난 몇 년 동안 몇 번이나 라그나르를 해치우려 했다.

비록 그때마다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아쉽게 불발에 그쳤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라그나르가 쥐새끼처럼 엘리제로부터 잘 도망친 능력자(?)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라그나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맞아.”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필요한 인물이지. 그만한 적임자가 없으니까.”

“비록 적이지만 인정한다.”

“고마워, 믿어 줘서.”

오토는 엘리제가 라그나르를 보내준 이유를 알았기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헤헤. 나 신뢰받는 약혼자네. 기분 좋아.’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고.

“내가 아니면 누가 믿겠나.”

엘리제가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이 다 너를 모략가에 사기꾼이라 욕해도, 나만큼은 너를 믿을 거다.”

“정말 고마…… 으응?”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오토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략가에 사기꾼……? 사람들이 그래?”

“아, 아니다.”

엘리제가 황급히 시선을 돌려 오토와 눈을 마주치길 피했다.

“사람들이 나더러 모략가에 사기꾼이래???”

“그런 거 아니다.”

“누구야! 누가 그래! 누가 그따위 헛소문을 퍼뜨려!”

“……할아버님께서 그러셨다.”

“…….”

“타고난 사기꾼이라고 그러셔서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눈치다.”

“그, 그렇구나.”

“하지만 난 상관없다.”

엘리제가 오토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기꾼이라 할지라도 나는 널 믿을 거다.”

“고, 고마워.”

오토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도 널 지켜 줄 거야. 숙명으로부터.’

오토는 보호받기만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하려는 것 또한 엘리제를 지키고자 하는 것.

오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엘리제를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 * *

장벽을 넘어 잘츠부르크 가문으로 복귀한 직후.

“전하, 칼리프 왕국에서 편지가 도착하였사옵니다.”

오토는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저 멀리 남쪽 나라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

“칼리프 왕국이라면…… 아!”

오토는 편지를 열어 보지 않고도 누가 보낸 편지인지, 무엇 때문에 보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마수드가 보낸 거다. 지금쯤이면 술탄이 죽고, 새로운 술탄이 됐겠지.’

승천한 살라딘의 아들, 마수드.

오토가 칼리프 왕국까지 가 무역을 할 당시 인연을 맺었던 아이.

이제는 어엿한 군주로서, 부족국가인 칼리프 왕국을 통일왕조로 건설하기 위해 갓 발걸음을 떼어놓을 만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런 마수드의 주적은 북부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이스마일족 반군 지도자 산상노인 라시드일 터.

서서히 세계대전이 시작되려는 시점이니, 칼리프 왕국에서 대규모 내전이 일어나기 딱 적합한 시기였다.

이스마일족 지도자인 산상노인 라시드가 어린 술탄인 마수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면서, 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을 예정이었던 것이다.

“어디 보자…….”

오토는 자신의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편지를 열어 보았다.

대천사 지브라일의 화신이신 상부 어른께 보내옵니다.

(중략)

이스마일족이 반란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본국은 또 다시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사옵니다. 하여, 염치 불구하고…….

(중략)

바라옵건대, 이스마일족의 반란을 제압할 지혜를 나누어 주시옵소서.

‘역시.’

오토는 자신의 예상이 옳았음을 직감했다.

‘슬슬 때가 되긴 했지. 칼리프 내전을 시작으로 세계정세가 어지러워질 때가.’

다행스럽게도, 이번 사건은 오토가 아는 미래와 거의 엇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조금 빠른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라시드 이 영감탱이는 내버려두면 곤란해진다. 더욱이…… 로웨나에게 줄을 대려고 할 테니까 더 곤란해. 북부 산악지대는 내륙과 무역하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으니까.’

라시드는 내전을 벌이는 한편 로웨나에게 사신을 보내 협정을 맺고, 마정석을 공급해 주는 대가로 군대를 지원받을 예정이었다.

어쩌면 지금쯤 로웨나에게 라시드가 보낸 사신이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칼리프 왕국이 불안해지면 내가 힘들어져. 전쟁이 벌어지는 도중에 마정석의 공급이 끊기면 이래저래 피곤해지지.’

오토가 고민하던 때.

“지원군을 보내서 돕습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리한텐 칼리프 왕국의 내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지금은 힘을 최대한 아껴야 돼.”

“그럼 내버려두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니지.”

“……?”

“편지 한 장이면 해결되는데 뭘 고민할 게 있어?”

“예……?”

“내 편지 한 통이면 돼. 그럼 모든 게 해결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있어 봐.”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피지를 꺼내 슥슥 편지를 두 통 써 내려가더니 전령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칼리프 왕국의 술탄 마수드에게 보내 주시고, 이건…….”

오토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로웨나 대공한테 보내 주세요.”

그런 오토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마치 작은 악마와도 같았다.

* * *

한편, 오토의 편지 한 통에 겨우 정신을 차린 로웨나는 살육을 멈추고 열심히 자신의 세력을 경영해 나가고 있었다.

피에 미친 악귀와도 다를 바 없는 로웨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따르는 귀족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또한, 기사들의 충성심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로웨나는 평민들과 적들에게는 엄청나게 가혹했지만 귀족이나 기사, 혹은 병사들에게는 매우 좋은 대접을 해 주고 있었다.

워낙에 대우가 좋다 보니 로웨나의 폭정도 참아 줄 만했던 것이다.

덕분에 로웨나는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을 요새화시키면서, 계속해서 군사력을 기르는 중이었다.

황위에 오를 그날에 대비해서.

“하합! 합!”

“이얍!”

로웨나는 기사들이 수련하는 것을 시찰하던 중 칼리프 왕국, 정확히는 이스마일족으로부터 사신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발걸음을 옮겼다.

사신이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하여 저희 술탄이신 라시드께선 앞으로 로웨나 대공 전하께 마정석을 원가에 공급해 드릴 예정이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에게 군사를 보내 주시옵소서.”

“으음.”

상당히 괜찮은 제안인지라, 로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했다.

지금 이스마일족을 도와 칼리프 왕국을 장악해 두면 나중에 황위에 도전할 때 더욱 유리해질 것이었으므로, 로웨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었던 것이다.

“좋다.”

로웨나가 라시드가 보낸 사신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 그대의 주군인 라시드의 청을…….”

그때.

“대공 전하.”

기사가 로웨나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며, 오토가 보내온 편지를 건네주었다.

“뭐라? 동생이 편지를 보냈다?”

로웨나는 라시드가 보낸 사신을 세워 두고, 즉시 오토가 보내온 편지부터 뜯어 보았다.

오토와 관련된 일이라면, 로웨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례하군.’

사신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전혀 티내지 않았다.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입장에서, 감히 불쾌감을 드러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으므로…….

“여봐라.”

이윽고 편지를 다 읽은 로웨나가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예, 대공 전하.”

“저자를…….”

로웨나가 냉혹한, 붉은 살기가 번뜩이는 눈으로 라시드가 보낸 사신을 노려보며 명령했다.

“지금 당장 끓는 기름에 튀겨 죽여라.”

“예! 대공 전하!”

로웨나의 섬뜩한 명령을 받은 기사들이 즉시 라시드가 보내온 사신을 붙들고 끌고 나갔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사신을 끓는 기름에 튀겨 죽이려 하시다니! 놔, 놔라! 놓으란 말이다! 으아아악!”

라시드가 보낸 사신이 죽어라 비명을 질러대며 항의했지만, 로웨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감히 나와 동생 사이를 이간질하려 하다니! 이 개 같은 이스마일족 놈들!”

로웨나는 버럭 소리치며 분노에 치를 떨더니, 즉시 명령을 내렸다.

“채비하라! 내 당장 황제 폐하께 갈 터이니! 황제 폐하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대 아라드 제국군이 이스마일족을 토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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