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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23화 (324/401)

제323화

“아니… 아니이…….”

카심의 보고를 받은 오토는 그 찬란한 황금색 머리칼을 사정없이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게 참는다고 참아지는 거였냐고… 운동 좀 하면 낫는 거냐고…… 으으… 으으으!”

상상을 초월하는 야만부족들의 행태에 아주 기가 질려 버린 오토였다.

‘내가 야만부족들을 상식적이고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한 게 패착이다.’

장벽 너머 야만부족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아예 다르다는 걸 그만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후.”

오토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카심에게 물었다.

“어쨌거나 상황이 안 좋다 이거죠?”

“예, 전하.”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기다려야지.”

오토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전사들이 씨가 마를 상황이 되면 지들도 도움의 손길을 잡겠죠.”

“그, 그런 겁니까?”

“아마도……?”

오토는 확신하지 못했다.

‘다 얼어 뒈질 때까지 버티는 거 아냐? 무식하게?’

야만부족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째 조금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죽어라 이 악물고 버티는 놈들한테 제발 우리 도움 좀 받아달라고 엎드려 절할 수 없는 입장인지라, 지금은 기다리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말로 야만전사들이 단체로 폐사(?)할 단계까지 가면, 그땐 정말로 빌어야겠지만.

“계속 지켜봐 주세요. 너무 위험하면 성물의 힘을 다시 써서 살려는 놔야 하니까.”

“예, 전하.”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났을 때.

“전하, 북부대공께서 부르십니다.”

“그래?”

오토는 지안카를로의 부름을 받고 즉시 달려갔다.

“왔느냐?”

“예, 할아버님.”

“드디어 라그나르가 휴전협정에 대한 응답을 해 왔다.”

“……!”

“부족의 전사들이 갑작스러운 질병에 걸린 이상 그로서도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무식하다는 야만전사들조차 한계에 부딪히기는 한 모양.

“본국이 수백 년 동안 싸워 왔던 야만부족을 이렇게 항복시키다니? 허허허.”

지안카를로는 오토가 만들어 낸 상황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이게 가능한 줄 알았더라면, 본국이 장벽 너머를 장악하는 건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을 터인데.”

“하하하.”

“지난 수백 년 동안 전쟁터에서 전사한 본국의 순국선열들 또한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됐을 테고.”

그런 지안카를로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허망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이리 간단―사실 절대 간단하지는 않았지만―한 방법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지난 수백 년 동안 전쟁은 왜 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허탈했던 것이다.

“그건 야만부족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뭐라?”

“야만부족의 목숨과 대륙인의 목숨이 다르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허어…….”

“만약 대륙의 선조들이 이 방법을 알았다면, 대륙인들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네놈 말이다.”

지안카를로가 의심스럽단 눈초리로 오토를 노려보았다.

“이럴 때는 또 쓸데없이 영웅 같구나?”

“예?”

“적응 안 되니 하나만 해라, 하나만. 사기꾼인지 영웅인지 도통 모르겠으니.”

“…….”

“쩝.”

지안카를로가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선 이 기회에 대규모 침공을 벌여 야만부족들을 싹 쓸어버리고 싶다만, 참도록 하겠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오토는 지안카를로의 심정을 100퍼센트 이해했다.

대륙인이나 야만부족이나 서로에 대한 증오가 워낙에 크다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대의고 나발이고 일단 상대방을 공격해 씨를 말려 버리고 싶을 만도 했던 것이다.

‘그 야만부족과 사돈을 맺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되면 그땐 진짜 극대노하겠지?’

오토는 지안카를로가 손자인 케레스와 야만부족 공주인 쿠시키나의 그렇고 그런 관계를 알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니까. 후후후. 난 뒤에서 뒷짐 지고 구경이나 해야지.’

어차피 처맞는 건 케레스의 역할일 것이었으므로…….

“일단 휴전협정을 맺고,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쌓아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나도 안다.”

지안카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북부제국으로 파견했던 정보원들이 막 돌아온 참이다.”

“아!”

“물론 북부제국의 군사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는 못했다.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곳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렇겠죠.”

“하지만 북부제국의 발전한 대도시의 모습을 보니, 보통 군사력을 지니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보고였다.”

“북부제국은 무시무시한 신무기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무기들……?”

“예, 할아버님.”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대륙의 기술력으로는 그 신무기들에 대항하기 힘듭니다.”

“도대체 그 신무기라는 게 무엇이냐?”

“트리톤.”

“트리톤……?”

“강철로 이루어진 골렘입니다.”

비로소 오토의 입에서 북부제국이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이유가 흘러나왔다.

* * *

약 100년 전.

이 세계의 최북단에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불시착하면서, 북부제국은 기술의 특이점에 도달했다.

정체불명의 비행체에는 이 세계에는 없던 신비로운 기술과 지식이 가득했고, 북부제국의 마법사들은 그것을 연구해내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북부제국의 마법사들은 이 정체불명의 지식을 이용해 강철로 된 골렘인 <트리톤>을 개발해 내었다.

트리톤은 기존의 아이언 골렘보다 몇 배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전투기계로서, 상급의 마정석을 동력원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전투력은 가히 무시무시해서, 트리톤에 탑승한 북부제국의 기사 하나를 상대하려면 아라드 제국의 기사가 ‘최소’ 5명 이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순 비교에 불과할 뿐, 실제 전투에서는 이야기가 또 달랐다.

대규모 전면전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는 트리톤들의 파괴력은, 기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했다.

평범한 트리톤 1기의 돌파력이 차우차우에 탄 바그람만큼이나 강력하니, 단 10기만 전투에 투입해도 전쟁의 판도가 아예 뒤바뀔 정도였다.

“북부제국은 그 외계 기술력을 이용해 그간 기술이 부족해 군침만 흘리던 양질의 마정석과 철을 채굴할 수 있게 됐고, 트리톤을 대량생산해냈습니다.”

“도대체 그 트리톤이라는 골렘이 몇 기나 되기에 그러느냐?”

“최소 3,000기 이상입니다.”

“뭐, 뭐라!”

지안카를로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3,000기 이상이라면 그 전력이 얼마나 강력할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알보병만 가지고 탱크 3,000대를 상대하는 거랑 비슷한가? 그래도 이 세계 기사들은 오러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괜히 북부제국의 남하로 인해 야만부족, 잘츠부르크 가문, 아라드 제국군이 멸망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북부제국은 차례대로 키이우 왕국·야만부족을 멸망시키고 잘츠부르크 가문과 공멸한다.

그리고 그 공멸에 크게 일조하는 주역이 이 세계관 최강자인 엘리제.

엘리제가 없었더라면, 북부제국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카이로스가 쌓은 대장벽을 무너뜨리고 대륙을 집어삼키게 된다.

괜히 오토가 키이우 왕국, 야만부족, 잘츠부르크 가문, 그리고 이오타 왕국으로 구성된 북부동맹을 결성하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동맹을 결성한다 한들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예, 할아버님.”

“막을 방법이 있느냐?”

“키이우 왕국이 트리톤을 무력화시킬 신무기를 개발해냈습니다.”

“……!”

“이제부터 키이우 왕국에 대량의 마정석을 지원해 주고, 기술을 공유받아 트리톤에 대항할 신무기를 대량 생산해 내야 합니다.”

“설마.”

지안카를로가 뭔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 말했다.

“로웨나로 하여금 칼리프 왕국의 반군 세력인 이스마일족을 공격하도록 했다더니, 그 이유가…….”

“예.”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전이 빨리 끝나야 마정석의 안정적인 공급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칼리프 왕국의 내전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맙소사.”

지안카를로는 오토가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전해 듣기로 허구한 날 대륙 이곳저곳을 쏘다닌다더니,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깨닫는 지안카를로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는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그저 최대한 전쟁을 막아 보려 할 뿐입니다.”

사실 오토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거 원래 빌드도 아니고, 계획에도 없던 일입니다. 하하.’

게이머 김도진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선이라는 게 없는 인물이었다.

왜?

단순히 게임이니까.

최소한의 민심만 유지한다면,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게임을 클리어하기만 하면 되는데.

하지만 현실의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달랐다.

그에게는 정해진 선이라는 게 있었고, 이 세계에서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다.

‘엘리제가 전사하게 내버려둘 수 없어. 나도, 엘리제를 지킨다.’

오토는 엘리제를 위해, 처가인 잘츠부르크 가문을 위해, 그리고 대륙인들을 위해 최적화된 빌드를 포기하고 새로운 계획을 실행시켜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머리가 터질 수밖에.

“지금쯤 키이우 왕국의 새로운 왕 크바르가 권력을 장악해 나가고 있을 겁니다. 야만부족들과 휴전협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그를 지원해서, 빠르게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십시오.”

“내 그리하마.”

지안카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즉시 휴전협정을 위한 사절단을 꾸릴 것이다.”

“예, 할아버님.”

“네가 같이 가 줄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야만부족과의 휴전협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에, 오토는 협정이 잘 이루어지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아, 그리고.”

오토가 덧붙였다.

“이번 사절단에 케레스 형님을 꼭 데려가고 싶습니다.”

오토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사실 케레스는 바보삼형제들 중 하나였기에, 사절단에 데려가기에 그리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잘 싸우는 것밖에 없는데, 야만부족들과의 휴전협정에 데려가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깍두기에 불과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가 케레스를 데려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보고 싶겠지. 못 본 지 한참 됐을 테니까.’

지금쯤 케레스와 쿠사키나는 못 만난 지 벌써 2달이 넘어갈 무렵이라, 서로를 향한 갈망이 아주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비록 공식적인 자리일지언정, 서로 간단한 대화 한 마디나 눈빛 교환 정도는 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다.

“케레스 그 녀석을 데려가겠다고?”

지안카를로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오토에게 물었다.

“녀석은 내 손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순진하고 무식한 녀석이라 그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예, 할아버님.”

오토는 다 계획이 있었다.

“케레스 형님이 야만부족의 문화에 해박하다 못해 도가 텄다고 합니다.”

“그, 그 녀석이?”

“예.”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전투에 있어 위태롭지 않다고,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따로 공부한 것으로 압니다.”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사실이었다.

케레스는 쿠사키나와 밀회를 가지면서 야만부족의 관습에 대해 꽤 자세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사절단에 포함시켜 야만부족들과의 문화적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에 아주 최적화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허어! 그리 기특한 구석이 있었단 말이냐? 케레스가?”

“예, 할아버님.”

“그렇다면 케레스를 사절단에 포함시키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오토는 지안카를로와의 독대를 뒤로하고 즉시 케레스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내가 사절단에 포함됐다고?”

케레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쿠사키나를 만나지 못해 그리움에 사무쳐 있었는데, 이렇게나마 자리가 마련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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