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8화
‘역시.’
오토는 로셴 백작이 말귀를 귀신같이 알아듣는 걸 보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머리도 좋고. 그 좋은 머리를 부정부패하는 데 써먹어서 그렇지.’
로셴 백작은 오토, 그리고 에고와 비슷한 부류의 인물이었다.
눈치 빠르고, 머리 비상하고, 판단력 좋고, 자기 누울 자리 귀신같이 알아보고, 돈이 굴러가는 흐름에 아주 비상한 그런 인물 말이다.
“전하.”
로셴 백작이 오토에게 물었다.
“죽어 달라고 하시니 죽어는 드리겠습니다만, 이유는 알고 싶습니다.”
“그걸 몰라서 물어보시는 건 아닐 텐데요.”
“크, 크흠!”
로셴 백작이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야 빵을 만들다 보면 손에 밀가루가 묻…….”
“밀가루 열 번만 묻으면 나라 곳간까지 다 털어먹겠네, 아주.”
“…….”
“우리 이오타 왕국 놈 같았으면 수도 한복판에서 공개 처형해 버렸을 텐데.”
오토가 그렇게 말하자 로셴 백작이 벌벌 떨었다.
‘수, 숨이 안 쉬어질 정도다. 크윽.’
오토와 오토의 주변 인물들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압박감이었다.
어느덧 오토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압도하는 마성(魔性)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술의 경지가 높아지고, 무적황제의 권능도 늘어감에 따라 이미 초인의 영역에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다만 오토 주변 인물들이 워낙에 기라성 같아서,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크바르 국왕이 왕권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신 거죠?”
“마, 맞습니다.”
로셴 백작도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부정부패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 본의 아니게 다른 지방귀족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고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왜 크바르가 왕권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나라가 부정부패가 심하기는 해도 굴러가지 않을 정도는 아닌 데다, 국왕 입장에서 굳이 무리해가면서 급하게 왕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북부제국이 침공해 올 예정입니다.”
“부, 북부제국……!”
로셴 백작이 크게 놀랐다.
‘놀라겠지. 키이우 왕국은 몇 번 데인 적이 있으니까.’
북부제국은 역사적으로 대륙을 침공해 온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이 있긴 했는데, 그게 바로 키이우 왕국에 대한 침공이었다.
비록 번번이 실패로 끝났지만.
그래서 키이우 왕국 사람들은 북부제국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100~200년 주기로 북부제국이 침공해 올 때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쑥대밭이 되어 버리기 일쑤라,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북부제국을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 북부제국이 침공해 올 예정이란 말씀이십니까? 또?”
“그렇습니다. 크바르 국왕은 그걸 막으려는 겁니다. 우리와 함께.”
“그런 일이!”
“그러니 무리해서라도 왕권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키워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거죠.”
“저도 돕겠습니다.”
로셴 백작이 냉큼 말했다.
‘역시.’
오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로셴 백작은 탐관오리이기는 했지만 애국자라는 양면성을 지닌 인물.
북부제국이 침공해 온다는 걸 알면, 크바르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예정이었다.
그간 부정부패를 통해 착복해 온 개인 재산을 아낌없이 풀어서라도.
심지어 다른 귀족들이 국외로 탈출하는 와중에도 끝끝내 크바르의 곁에 남아 전쟁을 수행하고 지휘할 정도였다.
“좋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근데요…….”
“예?”
“북부제국의 침공에 힘을 보태시려는 이유가…… 개인 자산들이 다 국내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로셴 백작이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대부분이 처분이 힘든 국내자산이라서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맞네.”
오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국자였던 것도 다 돈 때문이었어. 이 지독한 인간.’
물론 반쯤은 농담조로 한 생각이었다.
정말로 돈 때문이었다면, 로셴 백작은 키이우 왕국이 아니라 북부제국에 붙어야 정상이었으니까.
자산을 지키기 위한 것도 맞지만, 최소한 반역을 저지를 만큼 타락하지는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거 이번에 제대로 힘을 보태 주시면 나중에 전쟁 터졌을 때 이미지 세탁도 해 드리죠.”
“그게 정말입니까?”
“에고 상단을 통해서 키이우 왕국의 국영 기업들을 운영할 수 있게끔 사업적으로도 도와드릴 테니까, 적극 협조해 주시죠.”
“충성충성충성!!!”
로셴 백작은 당장 오토의 발가락이라도 핥을 기세였다.
하기야, 로셴 백작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전화위복은 없을 지경이었다.
숙청을 비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후(戰後)의 부귀영화까지 보장되어 있으니,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거 하나 없는 거래였던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토 전하! 충성충성충성!”
“……충성은 크바르한테나 하시고.”
오토는 어이가 없었다.
* * *
그로부터 1주일 뒤.
“로셴 백작을 체포하라!”
“모두 항복하라! 저항하는 자들은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다!”
키이우 왕국군이 로셴 백작의 대저택에 들이닥쳤다.
콰앙!
와르르르르!
거대한 가고일인 골리앗은, 아예 로셴 백작의 대저택 3분의 1을 무너뜨려 버리기까지 했다.
“나, 키이우 왕국의 국왕 크바르는…….”
직접 탐관오리 토벌에 나선 크바르는 근위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셴 백작을 그 자리에서 처형해버렸다.
국왕이 직접 부패한 귀족이자 중앙정계의 실세인 크바르를 베어 버리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오오!”
“국왕 전하께서 탐욕스러운 귀족을 벌하셨다!”
“키이우 왕가에 성군이 났구나!”
백성들은 크바르의 칭송하며 새로운 왕의 통치에 환호했다.
로셴 백작이 부정부패로 워낙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죽은 로셴 백작은 가짜에 불과했다.
“나, 날 그렇게들 미워했다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진짜 로셴 백작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기분이란 참 복잡하고도 미묘한 것인데, 그 와중에 모두가 환호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까지 날 미워할 줄은 몰랐는데…… 크흑.”
사실 로셴 백작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기는 했다.
그가 부정부패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긴 했지만, 딱히 백성들에게 밉보일 만한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물론 귀족으로서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만 해도 미움받을 만한 이유로는 충분했고, 죽어 마땅하긴 했지만.
“거 그러니까 착하게 사시라니까.”
“흑흑흑.”
“본인 잘못 알면, 부정부패만 이제 그만두시고 앞으로는 정직하게 사업하시죠. 귀족이랍시고 편법으로 돈 벌 생각 마시고.”
“알겠습니다…….”
로셴 백작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차피 만회하시게 될 겁니다. 북부제국의 침공 시기에 맞춰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면요.”
“예, 전하.”
로셴 백작이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 로셴, 반드시 명예를 회복해 보이겠습니다!”
“좋아요.”
오토가 그런 로셴 백작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더 잘된 일일지도?’
로셴 백작은 자신의 죽음을 백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걸 계기로 각성, 명예회복에 나서기로 했으니 앞으로 더욱 열심히 키이우 왕국을 위해 싸울 게 분명했다.
원래도 그랬을 인물이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욱 대오각성을 이룬 것이다.
“그럼 당분간 크바르 국왕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고 계세요. 크바르 국왕한테는 로셴 백작님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미리 말을 해 뒀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예, 전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로셴 백작을 죽인 오토는, 즉시 다음 계획을 밟아나갔다.
‘이제 지방귀족들이 발작을 일으키겠지. 로셴 백작이란 방패막이가 사라졌으니. 그중에선 반항하는 놈들도 있을 테고.’
오토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내걸렸다.
이미 키이우 왕국의 지방귀족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훤히 꿰뚫고 있었고, 그에 따른 대비책도 세워놓은 상태였다.
오토의 시각에서, 키이우 왕국의 지방귀족들은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 * *
오토의 예상대로, 키이우 왕국의 지방귀족들은 발칵 뒤집어지고 말았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오!”
“방패막이가 되어 주던 로셴 백작마저 뒈져 버렸으니 우리로서는 명분이 없소이다! 국왕의 요구에 굴종하던지, 그게 아니면…….”
“이런 빌어먹을!”
키이우 왕국의 지방귀족들은 소식을 듣고는 다급히 만남을 가졌다.
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뭘 그리들 당황하고 그러시오? 우리로서는 잘된 일이 아니오?”
대영지를 경영하는 포클론 공작이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국왕이 알아서 자충수를 두어주었는데, 우리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마땅하오.”
포클론 공작은 로셴 백작의 죽음을 전해 듣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 띤 얼굴로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 천박한 놈은 크게 실수한 것이오. 근본 없는 광대 출신이니 당연히 그렇겠지. 가진 거라고는 희미한 핏줄 하나가 전부인 놈이 뭘 알겠소이까?”
포클론 공작이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압박한다고 해서 순순히 명줄을 내놓아야겠소? 어차피 국왕의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고, 제대로 된 전력이라고 해 봐야 가고일들뿐 아니오. 우리가 작정하고 버틴다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 광대 놈으로서는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로셴 백작의 죽음으로 명분은 크바르에게로 넘어간 상황.
그렇다고 해서 귀족들이 크바르에게 충성을 맹세할 건 아니었다.
명분?
때로는 힘이 명분을 이기는 법.
궁지에 몰리는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데, 지방귀족들이 힘을 합쳐 대항한다면 크바르로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다들 잘 들으시오. 이건 극비사항이나, 그대들은 나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이니 특별히 말해 주겠소.”
그러자 지방귀족들이 꿀꺽! 하고 침을 삼키며 포클론 공작을 주목했다.
소문 난 능구렁이이자 교활한 여우인 포클론 공작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도 단단히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포클론 공작이 조금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오타 왕국의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이 비밀리에 서신을 보내왔소.”
그러자 귀족들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앗!”
“드래곤의 자식이라는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이 먼저 연락을 해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오오오!”
현재 오토는 대륙에서 어마어마한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오토에 대한 소문이 어찌나 무성했는지,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것을 넘어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들뿐이었다.
신흥강국이자 강대국의 젊은 왕.
검과 마법의 명가 쿤타치 가문의 혈통을 이은 자.
전쟁의 여신 엘리제의 약혼자로서, 검의 명가 잘츠부르크 가문의 사위.
불패의 지휘관.
진정한 바다의 제왕.
심지어, 드래곤의 혈통을 가진 용인(龍人)일지도 모른다는 소문마저 돌 지경이었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비밀리에 서신을 보내왔다는 것은, 무언가 깊은 의도가 있음이 분명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께서 본인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셨소이다.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전제 조건으로 하긴 했으나, 아라드 제국군을 보내준다고 하시었소이다. 그러니 내전이 벌어진다면, 저 천박한 광대 놈을 왕위에서 끌어내릴 것이오.”
포클론 공작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오오!”
“오토 국왕이 힘을 실어주다니!”
“이것은 우리의 압승이 아닙니까? 하하하!”
귀족들이 쾌재를 불렀다.
오토의 지지에 현 세계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군까지 도와준다면, 내전에서 승리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