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1화
오토는 에고와 로셴 백작이 신무기 대량생산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키이우 왕국군 교육에 나섰다.
“충성! 전하를 뵙습니다!”
오토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스푸너가 우렁찬 외침과 함께 경례를 올려붙였다.
“먼 길 달려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전하께서 불러만 주신다면 대륙 어디든 달려올 수 있습니다!”
“하하하.”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지금부터 키이우 왕국군을 훈련시켜 주셔야겠습니다.”
오토가 임무 내용을 설명했다.
“키이우 왕국군은 추후 북부제국의 침공에 맞서 싸울 소중한 자원들입니다. 다만 지금 훈련 상태가 좋지 못하고, 기강이 많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음!”
“그러니 스푸너 중장님께서 직접 키이우 왕국군을 훈련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전하께서 명령하시니, 힘껏 키이우 왕국군 놈들을 조ㅈ…… 아니, 강군으로 담금질해 보이겠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스푸너는 교육의 달인.
게다가 사람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개화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기에, 그가 직접 나선다면 어떤 군대든 단기간에 강해지는 게 가능했다.
“전하, 어찌 이런 은혜까지 베푸십니까?”
크바르는 오토의 지원에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사훈련을 시켜주는 건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년간에 걸친 실전 경험과 연구를 통해 획득한 노하우는 그 자체로 커다란 자산과 같아서, 함부로 알려 줄 수 있는 지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로 쌓아 올린 지식이란, 그 가치가 억만금을 준다 한들 바꿀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런데도 오토는 거리낌 없이 군사지식을 나눠 주려 하다니…….
“다가올 전쟁에서 키이우 왕국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키이우 왕국은 북부제국의 전력 중 최소한 30퍼센트 이상을 빨아들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가입니다. 그런 나라이니 당연히 투자해야죠.”
“본국의 잠재력이 그 정도입니까?”
“예.”
오토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키이우 왕국이 북부제국의 병력을 얼마나 빨아들이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크바르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께서 도와주신 만큼,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좋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됐어. 이제 키이우 왕국은 계속해서 강해질 거다. 남은 시간 동안 군사훈련을 하면서, 신무기도 대량생산에 박차를 가하면 돼.’
그렇게 오토는 북부제국의 침공에 대비해 계획을 하나둘 이뤄나갔다.
이 세계에서 벌어질 가장 큰 이벤트이자 끔찍한 대재앙에 맞서기 위해서.
* * *
오토는 크바르를 만난 뒤 즉시 신형 무기를 생산하는 조병창(造兵廠)을 찾았다.
때마침 조병창에는 에고와 로셴이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또한, 이오타 왕국의 드워프들 역시 와 있었다.
생산시설인 조병창의 규모를 키우고, 신무기의 신뢰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드워프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전하.”
드워프들이 일제히 오토를 향해 예를 취했다.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전하, 이게 키이우 왕국에서 개발한 신무기입니다.”
드워프 에릭슨이 오토에게 길쭉한 원통형 기둥을 건넸다.
‘게이볼그.’
오토가 <게이볼그>란 이름을 지닌 원통형 무기를 어깨에 짊어졌다.
‘묵직하네.’
게이볼그는 마정석 탄두가 장착된 일종의 대전차화기로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원거리 무기였다.
“원거리에서 마정석을 감지, 타격하는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최대 사거리는 500미터 정도입니다.”
에릭슨이 오토에게 설명했다.
“사실 굉장히 기형적이고 기이한 무기이긴 합니다. 그냥 쏘면 명중률이 형편없는데, 마정석을 표적으로 삼았을 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도대체 왜 이런 무기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에릭슨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게이볼그는 적진에 마정석이 있지 않는 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기였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개발 단계에서부터 평범한 원거리 무기로 만들어야 했는데, 설계의 방향성 자체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 이거요.”
오토가 피식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사실 이게 진짜 제대로 된 무기를 개발하겠다, 해서 나온 무기라 아니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신무기 개발이랍시고 방산비리를 저지르려다 만들어진 거거든요, 그게.”
“예?!”
“맞죠?”
오토가 로셴 백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로셴 백작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필사적인 손사래를 쳤다.
“저는 그저 본국의 국방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신무기를 개발하려 했을 뿐입니다! 방산비리라니! 억울합니다!”
“억울하긴 개뿔이.”
“…….”
“이거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비를 얼마나 해쳐 드셨으면 자산이 2배로 늘어나셨을까?”
“크, 크윽!”
“하여간 욕심은.”
오토는 로셴 백작을 향해 눈을 한번 흘겨 주고는, 다시 에릭슨을 돌아보았다.
“한번 볼까요?”
오토가 저 멀리 표적으로 설치해놓은 마정석을 향해 게이볼그를 조준했다.
몇 초 뒤.
퍼엉!
슈우우우우우웅!
콰아앙!
500미터 밖에 놓인 마정석에 게이볼그의 탄두가 정확하게 명중하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짝짝짝!
오토의 게이볼그 사격을 지켜보던 이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사장님! 나이스샷! 하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 전하이십니다!”
“멋지게 명중했습니다요! 쿄쿄쿄!”
“못하시는 게 없으십니다! 하하하하!”
오토는 그런 부하들의 반응에 멋쩍은 듯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우리 목표는 이 게이볼그를 최대한 빠르게, 많이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예! 전하!”
“그리고 게이볼그의 사용법을 동맹국들에게 빠르게 전파해서 훈련시켜야 합니다. 실전에서 사용법을 모른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테니까요.”
이 게이볼그야말로 북부제국의 무시무시한 무기인 트리톤들을 상대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조커 카드였다.
강철 골렘인 트리톤들은 북부제국이 가진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
하지만 이 게이볼그를 이용해 원거리에서 공격한다면, 트리톤들은 그저 깡통에 불과했다.
달려와서 공격하기도 전에 원거리에서 무력화될 테니, 북부제국의 전력 절반 이상을 날려 버리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생산에 최대한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적어도 6개월 안에 9,000개 정도는 만들어야 하니까, 다들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세요.”
“예! 전하!”
“또한, 이곳 조병창은 철두철미하게 방어해야 합니다. 최소한 1개 사단 이상이 24시간 방어해야 하고,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에도 철저히 대비해 주세요. 이 조병창에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북부제국이 침공해 오기 전까지 게이볼그를 충분히 생산해 내느냐 마느냐가 관건인 만큼, 조병창에 대한 방어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100번 1,000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 * *
한편, 크바르는 포클론 공작의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을 후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포클론 공작의 후계자는 다름 아닌 에스메랄다였다.
포클론 공작은 슬하에 딸만 넷이었는데, 첫째부터 셋째는 이미 시집을 가 버린 터라 막내인 에스메랄다가 후계자로서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게 되었던 것이다.
‘후우. 내 손으로 죽인 자의 자식을 만나야 하다니. 어렵군.’
에스메랄다를 만나기에 앞서, 크바르의 심적 부담은 상당했다.
포클론 공작을 죽인 장본인 주제에 그 딸을 만나 영지와 작위를 하사해야 했으니, 차마 어전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관용을 베풀기로 한 이상 크바르는 얼굴에 철판을 까는 수밖에 없었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는 이런 불편한 자리 역시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국왕의 의무였으므로.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어전으로 들어서자 에스메랄다가 크바르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라.”
“예, 전하.”
에스메랄다가 고개를 들고, 크바르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
“……!”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얼어 버리고 말았다.
‘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내 평생 꿈꾸던 분 같아.’
크바르와 에스메랄다는 서로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자리와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강한 이끌림을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덕분에 안 그래도 불편하기만 하던 작위 수여식은 더욱 딱딱하고 냉랭하게 진행되었고, 크바르와 에스메랄다는 속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는데… 그녀의 아버지를 내 손으로 처형하고 말았구나.’
‘평생 기다려 온 분인데… 역적의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이상형이라니.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불행해야 하는 걸까.’
크바르나 에스메랄다나 입장이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크바르는 죄책감에 감히 에스메랄다에게 사적인 대화를 걸 수가 없었고, 에스메랄다 또한 아버지를 처형한 크바르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크바르가 용기를 내어 에스메랄다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는 그대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요. 한평생 원망해도 좋소.”
“아닙니다.”
에스메랄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삼족을 멸해도 시원치 않을 역적의 자식. 이렇게 영지와 작위를 세습 받는 게 아니라, 처형당하거나 평민으로 강등되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
“앞으로 전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에스메랄다에게는 아버지 포클론 공작에 대한 사랑 같은 게 없었다.
포클론 공작은 에스메랄다를 도구처럼 여겼고, 늘 유모에게 맡겼으며, 딱히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살아생전 워낙 권력욕에만 미쳐 있는 인물이다 보니 자식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남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소. 내 그대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긴 하나,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요. 그러니 힘껏 그대의 영지를 경영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크바르와 에스메랄다의 첫 만남은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서로 불편할 법도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여지는 남아 있는 만남이었던 것이다.
* * *
오토는 키이우 왕국에서 며칠을 더 머물며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는 한편, 에릭슨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에릭슨 님.”
“예?”
“바쁘신 거 알지만… 혹시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말씀 주시지요! 하하하!”
“혹시 한 번 본 왕관을 똑같이 제작하실 수 있을까요?”
“음?”
에릭슨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왕관 하나를 모조품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어떻게 티 안 나게 안 될까요?”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걸 물으십니까?”
“왕관을 바꿔치기하고 싶어서요.”
“왕관을……?”
“군림의 보관, 아시죠?”
“군림의 보관이라 함은…… 설마 아라드 제국 황제의 왕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꿔치기할 수 있게 티 안 나게 제작해 주실 수 있나요?”
“으음! 일단 눈으로 직접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군림의 보관 역시 저희 드워프들이 제작한 물건이라 알려져 있으니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또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자리를 만들어 봐야겠네요.”
“왕관을 바꿔치기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아라드 제국 황제의 왕관을?”
“그건 비밀입니다.”
오토가 알 듯 모를 듯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게 절대권능의 재료거든요.’
절대권능이란 1개의 유니크 아이템과 4개의 성물을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초월 등급의 아이템.
이 세계관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들 가운데 가장 상위에 자리하며, 또한 가장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