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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35화 (336/401)

#제335화

백발에 가까운 금발을 가진 미남자.

큰 키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는, 느린 발걸음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자생하는 얼음꽃들이 햇빛을 받아 무지개 색으로 반짝였다.

“날씨가 좋군. 보기 드물게도.”

바실리가 정원을 둘러보며 감상평을 남겼다.

이곳은 흑해 너머 혹한의 땅.

1년 365일 중에서 해가 내리쬐는 날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곳이다.

그러니 이런 날만큼은 이렇듯 야외에 나와 햇빛을 쬐여 주는 게 좋았다.

“군은.”

바실리가 도열해 있는 군 장성들에게 물었다.

그는 북부제국 로마노프의 황제.

이 혹한의 제국을 지배하는 지배자.

향후 대륙을 침공할 지배자이기도 했다.

“예, 폐하.”

총사령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남하(南下)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사옵니다.”

“그런가.”

“수송선들의 건조 역시 순조롭사옵니다. 후속 병력 또한 순차적으로 남하할 것이옵니다.”

“특이사항은.”

“없사옵니다.”

“좋군.”

바실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얼마나 걸리겠나.”

“예, 폐하. 이르면 8개월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흑해를 건너갈 수 있을 것이옵니다.”

“8개월이라…….”

바실리는 총사령관의 대답에 만족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군.”

“예, 폐하. 여러 일들이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고 있사옵니다. 더 앞당길 수도 있을 것 같사옵니다.”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실리가 고개를 저었다.

“강철군단이 대륙을 초토화시키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게 10년 후가 될지라도. 이미 본국이 가진 힘은 대륙을 뛰어넘지 않았나.”

“예, 폐하.”

“다만 남하하는 과정이 매끄럽기를 기대할 뿐이다.”

“현명하신 판단이시옵니다, 폐하.”

북부제국의 황제 바실리는 결코 조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하다.

그는 이미 정복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욱 중요시 여겼다.

“대륙인들의 동향은.”

“송구하옵니다, 폐하.”

“여전히 살피지 못하고 있다는 건가.”

북부제국의 입장에서, 대륙을 정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정찰은 지나치게 가혹한 임무였다.

정찰병들은 흑해를 넘고, 야만인들의 땅을 가로지르고, 나아가 북부장벽을 넘어야 했다.

사실상 완수가 불가능한 임무였다.

귀환은 더더욱 어렵고.

“식인황제 카이로스.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그가 쌓은 대장벽이 여전히 대륙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고 있으니. 어디까지 내다본 것인지 모르겠군. 그가 아니었다면 본국의 대륙 진출은 훨씬 앞당겨졌을 텐데. 그야말로 선지자이자 예언가가 아닌가. 대륙은 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오나 폐하.”

총사령관이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그런 카이로스의 업적도 결국 폐하의 강철군단 앞에 무너져 내릴 것이옵니다.”

“물론 그럴 것이다.”

바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진 대장벽 위에 대제국 로마노프의 초석을 다져 놓을 것이니.”

“예, 폐하.”

“무리하게 장벽 너머를 살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저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

“물론이옵니다, 폐하.”

“다만, 흑해는 철저하게 주시해야 할 것이다.”

흑해.

대륙과 북부제국을 잇는 검은 바다.

북부제국의 입장에선 그 바다를 넘는 게 관건이었다.

이미 기술력과 군사력에서 대륙을 압도하고 있다고 자부했기에, 강철군단을 무사히 상륙시키는 것에 주력하기로 한 것이다.

* * *

오토는 와이번을 타고 장벽을 넘어 야만부족들의 땅을 지나 대륙의 끝에 도착했다.

촤아!

촤아아아!

시커먼 파도가 몰아치는 대륙의 끝.

그곳에서 오토를 기다리고 있던 건 드레이크가 지휘하는 이오타 왕국의 함대였다.

“미친.”

오토는 해군의 규모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함대의 규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해적왕의 검은 함대를 중심으로, 거의 100척이 넘는 군함들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세계 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의 해군조차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가히 막강한 해군력이라 할 만했다.

‘드레이크를 주운 게 진짜 신의 한 수였구나.’

오토는 자신의 함대가 이렇게까지 성장해 있는 걸 보고 드레이크의 등용을 재평가했다.

본래 드레이크의 등용은 계획에도 없던 변수.

그러나 그 나비효과가 이렇듯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 정도 함대 규모면 어쩌면 북부제국을 상대로 해전을 벌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함대를 직접 목격한 오토의 표정이 더욱 환해졌다.

드레이크가 기대 이상의 함대를 꾸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북부제국의 침공을 막아낼 또 다른 수단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부대 차렷!”

처억!

“국왕 전하께 경례!”

“충! 성!”

장교의 구령에 맞춰 이오타 왕국의 해군 병사들이 오토를 향해 일제히 경례를 올려붙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드레이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오토에게 예를 취했다.

그런 드레이크의 태도는 매우 절도 있고, 또한 정중했다.

오토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이 뚝뚝 묻어져 나오는 태도였다.

‘저분이 국왕 전하시군!’

‘드래곤의 혈통을 가지셨다지?’

‘대륙 제일의 미남이시라더니.’

해군 장병들은 의전 중이라 감히 입을 열지는 못했지만, 눈빛으로서 오토를 경배했다.

그간의 행적들이 부풀려지고 미화되고, 때론 오해를 사면서 오토에 대한 소문은 어느덧 전설을 넘어 신화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

드레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전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게 저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못 본 사이에 아부가 많이 늘었네?”

“진심입니다.”

드레이크가 오토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의 주군이시여.’

오토에 대한 드레이크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물론 오토가 상납금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할 때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건 사실이었다.

다른 나라의 해군을 공격한 것 빼곤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로, 드레이크는 상납금을 바치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적왕이 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해적영주들을 모조리 쳐부수고 진정한 해적왕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복수에 미친 복수귀로서 삶을 끝마칠 뻔했는데, 이렇듯 정규군의 해군 제독으로서 바다를 제패하게 될 줄이야.

“부르신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1년 안에 큰 해전이 벌어질 거야.”

“해전이라 하심은…….”

“상대는 북부제국의 해군 함대가 될 거다.”

“북부제국은 결코 흑해를 넘지 못할…….”

“우리가 절대적 약세다.”

“예?!”

드레이크는 오토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오토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북부제국의 해군 전력은 이 세계에서도 최강이다.”

“믿을 수 없습니다.”

“사실이야.”

오토가 아는 북부제국의 함대는 마정석을 이용한 엔진을 탑재하고 있는 강철 군함들.

수송선 건조에 집중하다 보니 군함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테지만, 이오타 왕국의 해군 전력으로도 그들을 상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술력의 차이가 너무 커. 북부제국은 이미 몇 세대는 앞선 함대를 보유하고 있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전멸이야.”

“마, 맙소사.”

“그래서 부른 거야. 대비를 해야 하니까.”

드레이크는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웠으나, 결국엔 오토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토의 발언은 절대적이었고, 결코 허튼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차근차근 알려 줄게. 이제 이곳을 해군기지 삼아서, 북부제국과의 해전에 대비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오토는 드레이크와 며칠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며 북부제국의 해군력을 상대할 방법을 가르쳐주고, 상의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드레이크에게 해적 영주들의 성물이 있었기에 부족한 기술력의 격차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단들이 있었다는 것.

‘그래, 이 정도면 정면대결은 아니더라도 후속 병력을 차단할 정도는 된다. 운이 따라준다면 승리도 기대할 만하고.’

드레이크와의 이야기가 끝난 후.

“난 이제 북부제국으로 침투할 거야. 쾌속선 좀 빌려 줘.”

“예, 전하.”

오토는 마검사들과 함께 드레이크가 내어준 쾌속선을 타고 흑해를 건넜다.

* * *

흑해를 건너간 오토는 외딴 지역에 쾌속선을 숨겨두고, 해안선을 따라 은밀하게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북부제국의 해군기지는…….

“미, 미친.”

오토는 북부제국의 해군기지의 규모를 눈으로 목격하고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저, 전하.”

“맙소사.”

“저게 다 무엇입니까?”

오토와 함께 이번 작전을 수행하던 마검사들 역시도 북부제국 해군기지의 규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완벽히 기계화된 기지.

게다가 강철로 이루어진 군함들의 위용이란 대륙인들에게 있어 가히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저 멀리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수송선들만 보더라도, 대륙의 선박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북부제국이 대륙에 비해 최소한 몇백 년 정도는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오토는 그보다 규모에 놀랐다.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북부제국의 기술력이 비정상적으로 발전해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해군기지의 규모부터 군함, 그리고 수송선들의 숫자가 1.5배는 더 많은 느낌이었다.

그건 게임으로 접했던 것과 현실이 완벽하게 똑같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막아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오길 잘했어. 미리 정찰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커졌을 거다.’

사실 오토는 북부제국을 정찰할 생각이 없었다.

그간 여러 차례 변수와 맞닥뜨리며 위기에 처한 덕분에, 오토는 한 층 신중해져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정보조차 한 번 더 확인하고, 검토하는 조심성이 생긴 것이다.

‘이 정도 규모면 우리 영토에서 막아내는 게 버거워. 적진도 흔들어줘야 해.’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비밀리에 북부제국의 해군기지로 침투했다.

워낙 소수 병력이라, 침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위급 장교 하나를 세뇌시켜야 돼.’

오토는 마검사들과 함께 해군기지를 돌아다니며, 표적이 될 만한 인물을 물색했다.

‘사령관쯤 되는 고위급 장성들은 애초에 정신지배에 안 걸릴 거다. 그들의 정신력은 강하니까. 빅토르비치, 그놈이라면 딱 좋을 텐데.’

빅토르비치는 북부제국 총사령관의 참모로서, 준장(★) 계급을 가진 장성급 장교였다.

총사령관의 참모이니만큼, 빅토르비치는 사실상 북부제국의 모든 군사기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를 세뇌시킬 수만 있다면, 북부제국의 작전계획 전부를 알아내는 것은 물론 역정보를 흘려서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그것도 한계가 있겠지만, 지금 오토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인물이 빅토르비치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영혼강탈의 권능에 의해 정신지배를 당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기도 했고.

문제는 빅토르비치가 어디 있는지는 오토조차도 모른다는 것.

“여러분들은 최대한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지형지물, 내부구조, 그리고 각 시설물들의 위치를 파악해주세요. 저는 좀 더 깊이 침투해서 고가치 표적을 확보해 보겠습니다.”

“예, 전하.”

오토는 마검사들에게 명령을 내려놓고, 빅토르비치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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