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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42화 (343/401)

#제342화

북부제국의 남하는 세계대전의 도화선을 당기는 사건 중 하나.

그로 인해 북부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잘츠부르크 가문은 멸문하고, 엘리제는 전투 중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마신 때문이었다.

오토의 말처럼, 마신은 마신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였다.

마신은 마계의 악마 같은 게 아니었다.

이계(異界)의 악(惡)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북부제국의 시대를 앞서간 기술력의 비결은 결코 그들이 일구어낸 것이 아니었다.

100년 전 북부제국에 불시착한 정체불명의 비행체.

북부제국은 그 비행체 안에 담겨 있던 지식들로 어마어마한 기술의 발전을 이루었고, 마법과 과학을 접목시켜 마공학(魔工學)이란 학문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마신은 그 비행체 안에 들어 있던 존재로서, 북부제국의 황제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북부제국의 황제 바실리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신을 일깨우는 초강수를 둘 예정이었다.

그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 결국 엘리제의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왜?

엘리제는 그 무시무시한 전략 병기인 트리톤을 두 동강 낼 정도의 강자였으니까.

또한, 북부제국의 그 어떤 기사도 엘리제를 당해낼 수 없었으니까.

즉, 마신과 엘리제는 북부제국의 침공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만날 운명이었던 것이다.

‘엘리제와 함께 마신을 상대한다. 엘리제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강해진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오토는 그런 판단으로, 폐관수련을 결정한 거였다.

마신은 엘리제와 양패구상을 이룰 정도로 강한 존재였기에,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폐관수련이라도 해서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신 거라면…….”

카미유가 미소를 지었다.

“저 역시 수련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수련, 열심히 해. 북부제국과 싸우다 전사하면 곤란하잖아? 곧 조카도 태어나는데.”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카미유 또한 의지를 불태웠다.

‘전하께서 엘리제 아가씨를 지키시겠다면, 저는 전하를 지킬 겁니다.’

카미유는 기사로서의 본분을 결코 잊지 않았다.

군주에게 보호받는 기사?

그따위 무능한 기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전하의, 내 동생 오토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자 가장 단단한 방패막이가 될 것이다.’

카미유에게 있어 오토는 군주이자 또한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그런 오토가 마신과 싸우기 위해 폐관수련에 들겠다면, 카미유 역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던 것이다.

* * *

오토는 폐관수련에 들기에 앞서 주변 정리부터 했다.

폐관수련에 들면 국왕으로서의 업무에 집중하기 힘드니, 우선은 와지르 대공을 만나 전권을 위임했다.

“내가 이 나이에 네 녀석 몫까지 일해야 하는 게냐? 아예 죽으라고 하지 그러냐? 끄응!”

와지르 대공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은퇴하고 낚시나 다니려고 했거늘…….”

“은퇴하시려면 아직 몇 년은 더 일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뭬야?!”

와지르가 눈을 부라렸다.

“곧 관짝 들어갈 늙은이더러 뭐가 어쩌고저째? 아주 대놓고 노인을 학대하는구나?”

“에이, 학대라뇨.”

“이 지독한 놈. 네놈은 내가 뒈지면 리치로 만들어서 일을 시키고도 남을 놈이다.”

“설마요.”

“설마는.”

와지르가 오토에게 눈을 흘겼다.

“네놈 같이 악랄한 왕이면 그러고도 남지.”

“다 끝나면 편안하게 노후 보낼 수 있도록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니까 당분간만 부탁 좀 드려요.”

“에잉!”

와지르는 안 그래도 일이 많아 버거워하던 판국에, 오토가 자신의 업무까지 모조리 떠넘긴 게 못내 불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운영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래, 네 녀석이 큰일을 하겠다는데 당연히 도와주어야겠지. 얼마나 힘들겠느냐.’

와지르는 오토가 짊어진 짐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오토는 수천만, 어쩌면 수억 명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장 로웨나,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을 제어해서 아라드 제국의 내전을 틀어막고 있는 장본인도 오토가 아니던가?

그것만 해도 대륙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건져낸 영웅이라 할 만한데, 이제는 북부제국의 침공까지 막아내겠단다.

벌어질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기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오토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는 영웅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물밑에서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녀석을 도와준 것이 이 늙은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다.’

와지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 * *

오토는 그밖에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 뒷일을 부탁하고, 폐관수련에 나섰다.

오토의 폐관수련은 잘츠부르크 가문에 자리한 검의 무덤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다.

검의 무덤이란 역대 잘츠부르크 가문 사람들이 사용하던 검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고, 그곳에는 폐관수련을 위한 시설들도 갖추어져 있었다.

“나도 같이 가겠다.”

엘리제는 그런 오토의 폐관수련을 따라나섰다.

“응? 자기도?”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는데,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나. 같이 하자. 도움이 될 거다.”

“아.”

엘리제가 상대라면, 수련 효과가 좋으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래, 같이 가자.”

오토는 엘리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폐관수련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외로움.

괜히 폐관수련 도중에 미쳐 버리는 사람들이 나오겠는가?

혼자서 검을 휘두르고 수련하다가 외로움이 몸서리치고, 결국엔 헛것까지 보면서 정신이 나가 버리기 마련.

하지만 엘리제와 함께라면 그럴 걱정은 없을 터.

“다녀오겠습니다.”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오토와 엘리제는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검의 무덤 안에 자리한 수련장으로 향했다.

수련 과정은 혹독했다.

오토와 엘리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나운용법을 수련하고, 체력단련을 한 뒤 함께 식사를 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면, 즉시 대련이 시작되었다.

대련이 끝나면 대련 중 입은 부상을 치료하고, 즉각적인 사후검토 과정을 거쳐 단점이나 실수를 되새겼다.

점심에는 식사를 하고, 또 다시 대련과 사후검토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은 계속 반복되었다.

오토와 엘리제는 수면, 식사, 대련, 치료, 사후검토의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이게 진짜 수련인가.’

오토는 하루가 멀다고 강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고통스럽긴 했다.

언제나 맞는 쪽은 오토였고, 한번 대련을 할 때마다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만약 ‘그 젤리’가 없었더라면, 수련은커녕 3일도 채 버티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 젤리’야말로 오토의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일등공신이었다.

아무리 처맞고 치명상을 입었다 한들 젤리 한두 개만 씹어 먹으면 씻은 듯이 나으니, 금세 기운을 차리고 수련에 나설 수가 있었다.

덕분에 오토와 엘리제는 남들보다 더욱 강도 높고 혹독한 수련을 계속해 나가는 게 가능했다.

남들 같았으면 부상 한번 입으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동안 수련을 할 수가 없을 터.

하지만 ‘그 젤리’가 있으니 몸 상할 걱정 없이 강도를 계속 높일 수가 있어서, 수련의 효율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높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오늘은 좀 지치네.’

오토는 잠들기 직전 그렇게 생각했다.

매일 같이 기계와 같은 생활을 하며 검을 휘두르다 보니 정신적 피로감이 느껴지고, 무기력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폐관수련이 힘들다는 건가?’

물론 수련의 강도가 워낙에 셀뿐더러, 그간 쉴 새 없이 달려온 행적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로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 가능성이 컸다.

‘아냐. 이게 고작 한 달이야. 앞으로 몇 개월은 이렇게 생활해야 돼. 나약해지면 안 돼.’

오토는 이를 악물고 의지를 다잡았다.

이 혹독한 수련 과정을 이겨내야 강해질 테고, 그래야 엘리제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자자.’

오토가 그런 생각으로 눈을 감았을 때.

덜컥.

문이 열리고.

“자나.”

엘리제가 오토의 방을 찾았다.

* * *

“어? 자기?”

막 잠들려던 오토가 벌떡 일어나 엘리제를 맞이했다.

“아직 안 자는군.”

“막 자려던 참이었어. 근데 무슨 일이야?”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들렀다.”

“으응?”

오토는 그런 엘리제의 말이 다소 낯설었다.

엘리제가 먼저 술을 마시자고 말할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수련은 마냥 몰아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끔은 마음을 안정시켜 줄 필요가 있다.”

“아!”

“한 잔 마시면서 얘기나 나누자. 그간 말 몇 마디도 못 나누지 않았나.”

오토는 엘리제의 이런 배려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날 이렇게 챙겨주네. 내가 먼저 챙겨줘야 하는 건데.’

엘리제를 바라보는 오토의 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래, 같이 마시자.”

그렇게 오토는 엘리제와 더불어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근데 말야.”

“응?”

“그때 왜 그랬어?”

오토가 엘리제에게 물었다.

“뭐 말인가.”

“나 쫓아와서 화내고 발찌 채웠던 거 말야.”

당시 오토는 엘리제를 보자마자 도망쳤고, 결국엔 잡혔다.

오토를 포획(?)한 엘리제는 검을 들이대며 다음과 같은 협박을 날렸었다.

‘만약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강해지지 못한다면, 나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고…… 내 손으로 널 죽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오토가 아는 엘리제는 결코 그런 인물이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발찌까지 채웠었는지…….

“아.”

엘리제가 얼굴을 붉혔다.

“자기 그런 사람 아니잖아. 왜 그랬던 거야?”

“……그건.”

엘리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정말로 화가 났던 게 맞다.”

“화가 났다고?”

오토가 깜짝 놀랐다.

“왜 화가 났는데?”

“사실 그날 연회가 벌어지기 전에…….”

“……?”

“널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뭐?!”

오토는 너무나도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날 보러 왔었다고?”

“그렇다.”

“…….”

“할아버님께 약혼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널 찾아갔었다.”

“그리고?”

“처, 첫눈에…… 반했다.”

엘리제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 못했고, 귀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헉!”

오토는 엘리제가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놀랐다.

“그, 그래서. 화가 났다. 내가 첫눈에 반한 남자가…… 내 약혼자가…… 날 보자마자 도망갔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화가…… 났던 거다.”

“아…….”

“나도 모르게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사실…… 네가 약해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건 내 진심을 숨기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오토는 그제야 모든 진실을 전해 듣고,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나쁜 새끼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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