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6화
베즈도리자 평야에 울려 퍼지는 오토의 목소리에는 언령(言靈)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고대 야만용사의 함성.
아군은 강하게.
적은 약하게.
아군의 사기를 북돋고,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권능이 발휘된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오토의 목소리가 키이우 왕국군 장병들을 아울렀다.
“저 어리석은 자들은 끝내 우리 앞에 무릎 꿇을 것이다. 승리를 의심하지 마라.”
오토의 그 말에 키이우 왕국군 장병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지던 공포가 잦아들었다.
다가오는 북부제국군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씻은 듯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그만큼 오토의 목소리에는 전쟁에 나선 이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불패의 지휘관이라더니……!’
키이우의 왕 크바르는 오토가 몇 마디로 위축된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것이야말로 정말이지 마법 같았다.
공포에 잠식당해 가는 아군을 이렇게 빠르게 수습해 버릴 줄이야.
이것은 대륙의 그 어떤 지휘관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진짜 마법이 아닌가?
“곧 포격이 쏟아질 예정입니다.”
오토가 크바르를 돌아보았다.
대륙은 아직 기술력이 부족해서 지상전에서 포를 많이 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부제국군은 달랐다.
북부제국은 몇 세대는 앞선 기술력을 보유했을뿐더러, 칼리프 왕국에 이어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마정석을 보유한 국가였다.
그러다 보니 마정석을 이용한 대포를 대량생산해내는 게 가능했고, 먼저 압도적인 화력으로 원거리에서 적들을 초토화시킨 후 쳐들어오곤 했다.
“방공호로 가시죠.”
“예, 전하.”
오토는 곧 쏟아질 북부제국군의 포격을 피해 성채의 지하로 향했다.
“모두 참호 안으로!”
“참호 안으로!”
키이우 왕국군 장병들 역시도 미리 만들어 놓은 참호 안으로 들어가 포격을 피했다.
오토는 북부제국의 전략·전술과 그들이 가진 무기체계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 대응하는 방법 역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키이우 왕국군은 미리 곳곳에 참호와 방공호를 파고, 북부제국군의 포격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포격이 쏟아졌다.
펑펑! 펑펑! 펑! 펑펑펑! 펑! 펑! 펑! 펑펑! 펑펑펑! 펑! 펑…… 펑!
오토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방공호 안이 흔들리고, 굉음이 귀청을 찢어발길 것 같았음에도 차분함을 유지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크바르가 오토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전하께서 해 주신 조언이 아니었다면 적들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을 겁니다.”
“별말씀을요.”
“그런데…….”
크바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오토에게 물었다.
“곧 북부제국군이 들이닥칠 텐데 정말 걱정입니다.”
포격이 이루어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북부제국군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을 터.
사실 키이우 왕국군 입장에서는 북부제국군이 접근해 오기 전에 원거리에서 막아내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그러나 화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니 애초에 맞대응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렇게 숨어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좋은데요?”
“예?”
오토의 말에 크바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핵심은 끌어들이는 겁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전술은 적들을 깊숙이 끌어당겨서 섬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 마시죠.”
“알겠습니다.”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자코 포격이 멎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포격이 잦아들고.
쿵! 쿵! 쿵! 쿵!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북부제국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작이다.’
오토는 즉시 방공호를 나서 성채로 향했다.
북부제국군이 새카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또한, 수백 대의 트리톤들이 지축을 뒤흔들며 덮쳐오는 중이었다.
“지금입니다!”
오토가 크바르를 돌아보았다.
“예! 전하!”
오토의 신호에 맞춰 크바르가 대지의 올가미를 움켜쥐었다.
스으으으!
대지의 올가미가 푸른 섬광을 뿜어내었다.
“키이우의 대지여. 지옥의 수렁이여. 적들의 발을 묶을 것이니.”
그와 동시에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질척질척!
질뻐어어어어억!
“크, 크윽!”
“발이…… 이런 빌어먹을!”
북부제국군은 당황했다.
크바르가 대지의 올가미를 사용하자마자 드넓은 베즈도리자 평야 전체가 질벅한 뻘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진창으로 변해 버린 베즈도리자 평야는 북부제국군의 발을 완벽하게 묶어 버렸다.
걷기만 해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창에서, 수십만 북부제국군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웅!
위이이잉!
적게는 수십 톤에서 많게는 수백 톤의 무게를 가진 강철 골렘인 트리톤들은 아예 진창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워낙에 무게가 무겁다 보니 한번 뻘에 빠지면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돈좌(頓挫)되어 버린 것이다.
“……!”
“……!”
“……!”
크바르를 포함한 키이우인들은 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많은 북부제국군이 뻘에 빠져 허우적거려서 제자리에 돈좌되어 버릴 줄이야…….
‘지금.’
오토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포격과 화살을 준비하라.”
오토가 명령을 내렸다.
“포격, 준비!”
“화살, 준비!”
키이우 왕국군 포병들과 궁수들이 일제히 자세를 다잡았다.
“셋, 둘, 하나…… Fire.”
오토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진 직후.
펑펑! 펑펑! 펑! 펑펑펑! 펑! 펑! 펑! 펑펑! 펑펑펑! 펑! 펑…… 펑!
키이우 왕국군의 포들이 일제히 불을 내뿜고.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궁수들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으아아아아아아악!”
“커헉!”
“크아아아아악!”
진창에 빠져 발이 묶인 북부제국은 키이우 왕국군의 원거리 공격을 고스란히 얻어맞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그들에게는 참호나 방공호가 없었다.
또한, 평야라는 전장 환경의 특성상 숨거나 엄폐할 만한 지형지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이유로, 북부제국군 장병들은 키이우 왕국군의 원거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공격 마법을 있는 대로 퍼부어라!”
“예! 전하!”
오토의 명령에 따라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면서, 북부제국군을 향해 온갖 공격 마법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포탄, 화살, 그리고 마법까지.
온갖 원거리 공격이 퍼부어지면서, 북부제국군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렇다고 해서 북부제국군이 마냥 당하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북부제국의 핵심 병기인 트리톤은 강철 골렘이니만큼 어마어마한 방어력으로 키이우 왕국구의 포격을 버텨냈고, 화살을 튕겨내었다.
또한, 트리톤들에게는 적들의 원거리 공격을 방어할 수단이 있었다.
우웅!
돈좌되어 있던 트리톤들을 중심으로 원형의 장막이 생성되었다.
트리톤들은 단순히 방어력만 높은 게 아니라 마정석의 에너지를 뿜어내어 방어막을 생성함으로써, 적들의 원거리 공격에 대한 내성마저도 갖추고 있었다.
괜히 트리톤들이 북부제국의 결전병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모두 트리톤들 곁으로 가라!”
“트리톤들 옆에 있으면 살 수 있다!”
“가까운 트리톤에게로 피신하라!”
북부제국군 장병들은 트리톤들이 만들어낸 방어막에 숨어 키이우 왕국군의 원거리 공격에 대응했다.
“그래, 그렇겠지.”
오토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가 트리톤이 방어막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지금 그 행동이 더한 죽음을 부를 것이다.”
그렇게 읊조리는 오토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다음에 내릴 자신의 명령이 얼마나 많은 적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을 알았기에…….
“게이볼그 사수들, 준비하라.”
“준비하라!”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대(對) 트리톤 대전차화기인 게이볼그를 튼 사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준.”
“조준!”
게이볼그 사수들이 트리톤들을 겨냥했다.
“발사.”
“발사!”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키이우 왕국이 개발해낸 대전차화기가 불을 뿜으며 마정석으로 이루어진 포탄들이 트리톤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게이볼그의 포탄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마냥 트리톤들을 향해 날아갔다.
각도가 안 나온다?
방향이 안 맞다?
그런 건 게이볼그라는 대전차화기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게이볼그는 집요하게 마정석만을 쫓아가도록 설계된 무기.
각이 안 나와도, 방향이 조금 엇나가더라도 정확하게 마정석만을 쫓아가 정밀하게 타격하는 일종의 유도탄이었다.
즉, 진창에 빠져 돈좌된 트리톤들로서는 게이볼그의 포탄을 피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콰앙! 쾅! 콰아앙! 쾅! 콰앙! 쾅! 쾅! 쾅! 쾅! 쾅!
게이볼그의 포탄들이 돈좌된 트리톤들, 정확히는 마정석으로 이루어진 마공학 엔진에 정확하게 적중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정말이지 참혹했다.
퍼엉!
퍼어어엉!
게이볼그의 마정석 포탄에 맞은 마공학 엔진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트리톤을 박살냄은 물론 근처에 있던 북부제국군 장병들까지도 모조리 산산조각을 내버렸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악!”
곳곳에서 북부제국군 장병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키이우 왕국군의 공격은 끊이지를 않았다.
슈우우웅- 퍼엉!
펑펑! 펑! 펑펑! 펑펑펑! 펑! 펑! 펑! 펑펑! 펑!
게이볼그 사수들은 쉴 새 없이 트리톤들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고, 그럴 때마다 대폭발이 일어나며 북부제국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덕분에 이번 전투에 투입되었던 수백 대의 트리톤들은 한순간에 고철덩어리가 되어 나뒹굴고 말았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피해였다.
트리톤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드는 시간과 자원이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것.
그러나 키이우 왕국의 신무기인 게이볼그의 경우 트리톤 한 대 값에 비하면 불과 150분의 1에서 25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즉, 지금 북부제국군이 입은 피해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그렇게 트리톤들이 파괴되며 북부제국군이 혼란에 빠진 사이.
스릉!
오토가 검을 빼들었다.
“전군…… 진격하라.”
오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키이우 왕국군이 일제히 북부제국군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크바르는 키이우 왕국군이 진격하자마자 대지의 올가미의 사용을 멈췄다.
계속 원거리 공격만을 할 순 없는 법.
땅이 진창이 되도록 유지했다간 아군도 같이 허우적거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키이우 왕국군의 진격으로 시작된 백병전.
“죽어라!”
“우리 땅을 침공한 자들에겐 오직 죽음뿐이다!”
키이우 왕국군 장병들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북부제국군을 휩쓸었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북부제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진창에 빠져 원거리에서 두들겨 맞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 전투에 투입되었던 트리톤들 대부분을 잃어버렸으니, 사기가 꺾임은 물론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터.
그 와중에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키이우 왕국군의 공격까지 받았으니,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할 리 없었다.
“후퇴! 후퇴하라! 신속히 후퇴한다!”
결국, 북부제국군 지휘관은 황급히 퇴각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남은 트리톤들은 적의 진격을 막아라!”
북부제국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몇 대 남지 않은 트리톤들이 맡은 역할은 컸다.
어마어마한 덩치와 방어력, 그리고 강한 힘을 가진 강철 골렘인 트리톤은 뛰어난 기사들 수십 명을 상대할 수 있는 괴물들이었다.
단 몇 대만으로도 키이우 왕국군 기사들을 무력화시키고, 아군의 후퇴를 돕기엔 충분했다.
왜?
평범한 병사들에게 있어 트리톤이란 어떻게 상대할 방법이 없는 존재였으니까.
오토가 살던 세계로 따지자면 트리톤은 탱크였고, 키이우 왕국군 장병들은 그저 알보병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어딜.’
오토는 트리톤들이 활약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팟!
오토가 텔레포트를 사용해 가장 가까이에 있던 트리톤에게로 이동했다.
쿠웅!
위이이이잉!
트리톤이 오토를 발견하고 그 육중한 몸을 움직여 검을 휘둘러왔다.
수백 톤의 강철 거인이 휘두르는 검이 오토를 덮쳤다.
오토는 피하지 않았다.
촤라라락!
오토가 드래곤의 뼈로 이루어진 명검 쿠란을 휘둘렀다.
그 결과.
쩌억!
트리톤의 그 거대한 검이 두 동강 나며 저 멀리 날아가 땅에 푹 박혔다.
- ……!
트리톤에 탄 파일럿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 이 무슨……!
그것은 상식의 파괴였다.
인간이 트리톤이 휘두르는 검을 두 동강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것이다.